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69화 (70/158)

(EP.69)심상 세계

“…….”

똑, 똑.

마치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은 소리가 화이트의 머릿속에서 고요히 울려 퍼졌다.

눈은 지그시 감고, 표정은 편안하게 고치며, 명상을 위한 최적의 자세를 갖춘다.

고오오오-

화이트를 중심으로 찬란한 푸른빛의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한 소녀가 있었으니.

그 검은빛 머리카락을 한 차례 흩날리게 하며,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금빛 시선에 온전히 담기는 것은 오로지 그녀 자신의 제자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녀가 화이트에게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실 7서클만 해도 괄목할 정도의 경지일진대.’

아셰라의 표정이 약간 오묘한 빛으로 바뀌어 갔다.

실제로 그럴 만도 하지 않겠나.

그 누구도 고작해야 20살을 앞둔 10대의 나이에 7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뿐일까, 지금 그녀의 앞에서 고요히 명상에 잠긴 소년은 벌써 8서클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하나, 그녀가 그 자신의 제자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조건은 충족되었을 텐데.’

……그건, 그녀의 제자가 이미 8서클에 오를 수 있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하고, 화이트의 마나를 관조하기 시작하고 난 후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경악스러운 사실을 두 눈에 담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야말로 괴물이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화이트를 한 차례 흘겨볼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으리라.

……그렇지만.

‘그런데, 어째서.’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었으나, 정작 지금에 와서 아셰라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은 단 하나.

‘왜 제자님이 8서클에 오르지 못하는 걸까요.’

조용히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품으며, 아셰라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답답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8서클에 오르지 못하는 화이트의 성장 부진이 답답하다는 뜻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지금 현재 그녀를 심란하게끔 만드는 요인은 단 하나.

바로 그녀 그 자신의 능력 부족이었으니.

‘……제가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제자님을 훨씬 더 좋은 형태로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는 흑의 마왕이라니, 아마 다른 마왕이 들었더라면 곧장 욕지거리가 날아들며 뒷목을 부여잡을 일이었겠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 아셰라는 진심이었다.

제자를 위해,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그것만을 고민하며, 아셰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자님.’

그녀가 얕게 이를 악물었다.

잔잔하게 불타오르는 시선은, 여전히 화이트에게로만 향하고 있었다.

*****

‘……후우.’

속으로 숨을 고르며, 화이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가.

집중을 하고 난 후로 제법 오래 지났을 거라고 예상은 되지만, 정작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기에.

그저 잡념을 치우고, 화이트는 더욱더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것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깊이, 좀 더 깊숙한 곳까지.’

작게 중얼거리면서, 화이트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고오오오-

피어오르던 푸른빛의 마나가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8서클 대마법사의 그것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아니, 오히려 그것마저도 뛰어넘는 양질의 찬란한 마나였다.

그리고 그 마나를, 그저 온전히 전신에 집중시키며.

화이트가 몸을 한순간에 굳혔다.

긴장했다거나, 혹은 두려움에 떨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몸을 석상처럼, 그저 일말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봐야 할 건, 나의 심연.’

고요하고 잔잔하게, 화이트가 그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깊숙한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휘오오오-

“…….”

한 차례 불어 오는 삭풍에, 화이트가 조심스레 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푸른빛의 광휘였으니.

“──아.”

짧은 탄식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화이트의 눈동자 위로 오묘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력은 점차적으로 푸른빛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끝내, 모든 것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였다.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둡지는 않으며, 오히려 더욱 찬란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어서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게끔 했다.

화이트가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백색의 공간.

하얗고, 또 새하얗다.

아름답던 뒤편의 바다와는 다르게, 그곳에는 마치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 것처럼 구분된 공허의 세계였다.

“……오랜만에 와보는구나. 내 심상 세계에는.”

화이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살며시 지워내며.

화이트가 고요한 눈빛을 한 차례 번뜩였다.

“이곳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화이트가 걸음을 옮겨나갔다.

우선은 뒤편의 바다, 푸른빛으로 번쩍여 눈을 부시게 할 정도로 밝은 청색의 바다로.

“……푸른색과 하얀색이라, 그것만큼 나를 잘 가리키는 것은 또 없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여유로움을 한껏 드러내는 화이트.

그도 그렇지 않겠나.

애초에 심상 세계라는 공간은, 그 자신이 온전히 자신의 통제권을 쥐고 있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었다.

그뿐일까,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게 바로 심상 세계였으니.

“……하하.”

화이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바다를 향해 발을 내디딘다.

조금은 차가운 감각이 다리를 적셨으나,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그 자신의 것이었고, 자신의 세계일진대.

어찌 겁을 먹을 수가 있겠나.

“……자, 보여줘 봐라. 나의 첫 번째 세계.”

푸른빛의 바다를 고요히 직시하며, 화이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린 후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작해야 수 초, 그도 지나지 않아서.

화아아아악!

“──.”

찬란한 푸른빛의 바다가, 마치 화이트를 덮치듯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으니.

화이트는 그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환한 미소마저 얼굴 위로 띄우며, 그 파도를 온전히 받아내고자 한다.

화이트의 벽안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

눈을 살며시 뜬다.

이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하얀색의 로브.

회귀 이전, 그 자신이 애용하던 백색의 로브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화이트가 그 로브를 잡아채듯이 하며 뒤로 둘렀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거대한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다.

콰앙!

“……!”

마치 문이 박살 나는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그 너머에 있던 모든 인물의 시선이 화이트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그들.

“클리포트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그야말로 이구동성.

모든 인물이 화이트를 향해 그리 인사했다.

고개를 깊숙하게 숙인 채로.

그리고 그들을 향해, 화이트는 그저 무기질적인 눈동자를 빛낼 뿐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라.”

이내 열리는 입에서는, 화이트의 의지와 상관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몸은 어른 남성의 그것과 같이 커져 있었고, 목소리 역시 소년의 그것과는 그 결을 달리했다.

한 차례 그 백색의 로브를 펄럭이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12마왕 측에 당했나? 그도 아니면─”

“…….”

침묵하는 좌중의 인물들을 싸늘하게 둘러보며, 화이트가 고요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무척이나, 감정이 억눌러진 듯한 목소리로.

“……그도 아니면, 나의 스승에게 돌아가신 건가.”

“가, 각하.”

“…….”

대답하지 않는 가신들의 모습에, 화이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지.’

꺼낸 말들과는 상관없이 정신은 멀쩡한 듯, 사고는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클리포트의 가주로서가 아닌, 클리포트의 후계자인 ‘화이트’로서의 사고가 말이다.

‘내가 진정으로 시간을 되돌리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이.’

“……래서, 경들은 무슨…….”

“……송합니다…….”

이어지는 목소리들에서 신경을 끊으며, 화이트가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8서클이었으니.

그를 위해, 우선은.

‘……간절함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속으로 음울하게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눈빛을 사납게 번뜩였다.

‘조금은 위험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8서클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그 위협을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하리라.

오늘 이 자리에서.

‘화이트 클리포트’의, 나만의 고유한 심상 세계에서.

‘……8서클에 오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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