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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68화 (69/158)

(EP.68)8서클

8서클.

다르게 말하자면, 대마법사로 인정되는 최소한의 경지.

인외의 존재들인 9서클의 대마도사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현실적으로 일반적인 마법사가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계단.

……그렇다고 그에 오르는 것이 쉬운가, 라고 묻는다면.

그 누구라도 즉각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7서클까지는 모른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피를 토해가며 마법에 매진한다면 어쩌면 오를 수도 있을지 모르는 경지.

그렇지만 8서클, 나아가서 9서클의 경지는 단순히 노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재능, 찬란한 마나를 천부적으로 타고 나지 않는 이상,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으리라.

그런 경지였다, 8서클이라 하는 높은 산맥은.

……그렇지만.

그러한 경지였지만.

화이트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 8서클의 경지에, 자신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리라고.

어째서, 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한 번 올라봤기에.’

그저 그뿐.

그렇기에 남들보다는 조금 더 낮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일 터.

그 8서클이라는 높디높은 산맥이,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다짐은.

아셰라와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련이 시작되고 나서 단 하루 만에 처참히 깨부숴지고 말았으니.

“……조졌다.”

“어허, 예쁜 말.”

딱!

“…….”

그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스승의 딱밤에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화이트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8서클.

어쩌면 조금은 무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궁극적으로 그 자신이 바라봐야 할 경지인 9서클도 아니고, 그 아래 단계라면.

하물며 한 차례 오른 적이 있던 경지라면.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르는 것에 힘이 들지언정, 어떤 형태로든 오르게 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얕보았다고 해도 좋다.

화이트는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간단히 오를 수 있는 경지는, 7서클까지가 한계였구나.’

그의 바다를 담은 것만 같은 푸른 눈동자가, 한 차례 씁쓸한 빛을 발했다.

*****

“재능은 충분해요. 제자님은 제가 본 자들 중 가장 찬란한 빛의 마나를 타고난 마법사이니까요.”

콰아앙!

“그렇지만, 8서클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나 보네요.”

콰아아아앙!

연신 귓가를 울리는 폭음을 덤덤히 받아내며, 화이트가 이를 악물고 손을 휘둘렀다.

마법진이 그려지고, 술식이 새겨지며, 이윽고 마나가 부여되자.

순식간에 하나의 마법이 탄생하였으니.

「헬 플레어」

지옥의 불길이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내며, 아셰라를 집어삼킬 듯이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첫째, 간절함이 부족해요.”

「아이시클 블레이드」

콰가가가가각!

아셰라가 짤막하게 중얼거리며 시전한 얼음의 검날에, 그 지옥의 불길은 한순간에 진압되고 말았다.

7서클의 마법 중에서는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한다는 ‘헬 플레어’를 그저 일격에 소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셰라는 그저 태연했다.

그 금빛 눈동자를 흐릿하게 빛내며, 그녀가 찬찬히 말을 이어나갔다.

“둘째도 간절함, 셋째도 간절함이죠.”

“…….”

숨을 거칠게 고르는 화이트를 오연하게 내려다보며, 그녀가 다시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웅-

화이트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마법진이 그려지고, 순식간에 하나의 마법을 만들어 냈다.

촤륵, 촤르륵-

마치 사슬이 당겨지는 듯한 금속음이 한 차례 고요히 울리며, 아셰라의 정면에 일렁이는 공간의 균열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바로 직후.

촤르르르르륵!

“……윽!”

어둡기 그지없는 공간의 균열에서부터 날아든 푸른빛의 사슬은, 화이트를 순식간에 옭아매기에 이르렀으니.

쿵!

채 저항할 틈조차 주지 않고, 아셰라의 사슬이 화이트를 무릎 꿇렸다.

“…….”

조금은 얼떨떨한 기색으로 화이트가 멍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설마 이 정도로까지 한순간에 제압될 줄은 몰랐던 걸까.

분한 것도 같고, 혹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기색이 표정에서 묻어나왔다.

‘그보다 왜 맨날 속박당하는 것 같지?’

한 차례 의문을 품는 화이트였으나, 상념은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이상하긴 하네요. 제자님의 안에 존재하는 잠재력이라면, 8서클에 오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텐데. 아, 물론 쉽지도 않겠지만요.”

아셰라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고, 그 말에 화이트는 그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몰랐으나, 그녀와 마법을 섞고 설명을 듣다 보니, 어째서인지 알 것만도 같았기에.

‘……간절함.’

아셰라는 자신에게 그것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건 어째서일까.

간절함.

복수의 간절함, 구원을 위한 간절함.

12마왕을 죽이고, 아셰라를 지키겠다는 간절함은 세상의 그 누구의 간절함보다도 아득할 정도로 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럼, 그게 아니었던 건가?

‘그건 아닐 테지.’

화이트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졌다.

그래,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간절함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12마왕의 섬멸을 바라고, 누구보다도 아셰라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자신이라면.

그 간절함을 기반으로 8서클에 오르고자 했더라면, 필시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자신은 대마법사라 불렸을 테지.

“…….”

……그렇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은 8서클에 오르지 못하는가.

아니, 하다못해 최소한의 실마리 정도는 찾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도 안 된다면, 안 되고 있다면.

문제는 필시 자신에게 있을 터.

화이트는 그쯤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의 간절함은 부족하지 않다.’

그건 확실했다.

자부한다고 해도 좋다.

누구의 간절함보다 깊고, 또 높기 그지없는.

이 간절함은, 만약 조건이 갖춰진다면 자신이 한때 올랐던 경지인 9서클로까지 자신을 어렵지 않게 이끌어 주겠지.

……그렇지만.

“…….”

화이트의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운 빛을 띠기 시작했다.

미간은 좁혀지며, 표정은 살며시 일그러지고.

입술을 달싹이던 화이트가 이내 내린 결론이란.

‘8서클에 오르는 것에, 나는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가.’

……처음으로 돌아가, 아셰라의 말과도 같이.

자신의 간절함이 적어도 이 상태에서는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으니.

‘한 번 올랐던 경지이기에, 얕보지는 않았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하겠지.

9서클도 아니고 8서클.

그저 거쳐 지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정으로 간절함을 담아 수련에 임했는가.’

수련을 시작한 지 고작해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지만, 자신의 간절함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은, 8서클에 오르는 것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았다.

얕보았고, 간절함을 담지도 않았다.

우스워 보였던 것일까.

현재 그 자신의 부친인 테이칸 클리포트 역시 생사의 기로에서 8서클의 경지에 올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경지다, 8서클이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한낱 7서클에 불과한 자신이 무시해도 될 경지가 아니라는 거다.

“……하아.”

화이트가 한 차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여전히 아셰라의 푸른 사슬에 묶여 있는 채로.

그러나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으며, 그저 상념에만 몰두하면서.

─인정하도록 하자.

8서클의 경지, 다르게 말하면 대마법사의 경지.

그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태도를 버리다 못해 아예 갈아엎을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과거의 나 자신을 잊어라, 적어도 지금만큼은.’

9서클의 끝자락, 그 너머의 경지마저 엿보았던 대륙 최강의 대마도사는 이제 없다.

대륙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을 때, 클리포트 가문의 가주로서 활약했던 [백색의 마법사]는 이 자리에 없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고작해야 7서클의 끝에 서서 8서클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으니.

“……스승님.”

화이트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아셰라를 불렀고, 그 목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색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아셰라가 잔잔하게 대꾸했다.

“왜 부르시나요, 제자님.”

“…….”

그리고 그 대꾸에, 바로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승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한 차례, 입술을 강하게 짓씹듯이 깨물었다.

콰직!

당연하게도 입가에서부터 핏물이 새어 나왔으니.

“……어?”

아셰라의 두 눈이 당혹스러움으로 크게 떠졌다.

“제, 제자님? 아무리 그래도 자해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 스승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괘, 괜찮아요?”

“…….”

피를 눈에 담자마자 발을 동동 구르며 급하게 속박을 풀어내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척이나 아련하고도, 어딘가 모르게 진지한.

그런 기색으로 웃음을 흘리고는, 이내.

“제가 모자랐습니다.”

“네?”

한순간에 표정을 진중한 빛으로 고치며, 화이트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무시하고, 또 얕봤습니다. 은연중에 어쩌면 간단한 일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

다급히 사슬을 풀어내던 손을 멈추며, 아셰라가 화이트를 마주 보았다.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일렁이며.

“8서클에 오르기 위한 수련, 조금 더 길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가요.”

화이트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셰라가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동안 대체 무슨 상념을 품은 건지.’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그녀.

그러나 이내, 표정을 다시금 진지하게 고치고는.

그녀가 화이트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제자님의 수련을 도와주는 건 스승의 당연한 도리라고 할 수 있겠죠.”

“……하하, 그런가요?”

“그럼요, 물론이죠.”

“…….”

아셰라의 흔들림 없는 대답에 한 차례 입을 꾹 다무는 화이트.

그러나 이내, 아셰라가 내민 손을 꽈악 붙잡으며.

화이트가 환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웠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그걸 말이라고, 당연한 일이잖아요? 제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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