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교육이란 이름의
“…….”
어째서일까.
화이트는 우선,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부터 떠올려 보고자 했다.
‘어디 보자. 먼저 집 나간 공주님을 집에 던져놓고…….’
그리고 동시에 헛소리를 하는 재상 후계자를 밟아줬던 것도 같다.
그 후에는 아마 조금 휴식을 취하고자 황궁 내에 마련된 클리포트 가의 저택으로 가고자 했는데.
……그랬는데.
“제자님, 제자님. 제가 지금부터 질문 하나를 할 거예요.”
“예?”
위에서부터 들려온 목소리에, 화이트가 눈을 깜빡거리며 무의식적으로 대꾸했다.
어느 틈에 납치라도 당한 건지, 어느새 의자에 앉아져 있는 채였다.
……그것뿐이라면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스승님? 이거 뭔가 묶여 있는 모양새로 보이는데, 제 착각이겠죠?”
어째서인지 의자에 몸이 속박되어버린 현실에, 화이트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었다.
다름 아닌, 그 자신의 하나뿐인 스승에게로.
“착각은 아닌데. 보면 몰라요? 제자님 지금 납치된 거예요.”
“…….”
정면에 서서 그 자신을 내려다보며 그리 말해오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싸늘함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화이트의 턱선을 타고 식은땀이 조심스레 흘러내렸다.
긴장감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화이트가 애써 꿋꿋하게 아셰라를 마주 봤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시선에, 어딘가 모르게 아셰라의 양 뺨이 상기되었으니.
“……좋아요, 그런 당당한 시선. 애써 강해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조금 귀엽네요.”
“……?”
그 자신의 스승이 내뱉는 이해하지 못할 소리에, 화이트가 한 차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무척이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띄운 채로.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건가.
화이트의 낯빛이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입꼬리를 살짝 움찔거리며 아셰라가 입을 열었으니.
“질문을 하나 한다고 했었죠.”
“예?”
“하나 물을게요, 제자님.”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기뻐 보이는 듯한, 아니, 숫제 짜릿하기까지 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녀가 잔잔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8서클에 오르기 위한 수련을 도와달라고 해놓고, 왜 멋대로 제도를 빠져나가고 난리인가요? 이 스승을 온종일 기다리게 해놓고 말이죠.”
“……아, 그게.”
그리고 그렇게 아셰라가 내뱉은 말에, 조금은 상황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화이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어라 입을 열고자 했으나.
“조금 전까지 밤피르 후작가의 저택에 있다가 온 참이에요, 전.”
“……?”
그 자신의 말을 끊듯이 하며 말문을 떼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며, 표정을 의문으로 물들였으니.
“……무슨 일을 하길래 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했더니.”
그러나, 그 의문은 아셰라의 이어진 말에 금세 풀릴 수 있었다.
그다지 좋지 않은 형태로 말이다.
“밤피르 가문의 영애와 밤을 함께 하고 왔더군요, 제자님.”
“…….”
아셰라가 고혹적이면서도, 동시에 모순적으로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 그리 말을 내뱉었으며.
화이트의 표정은 한순간에 어둡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굴러가는 두뇌, 어떻게든 해결법을 찾고자 화이트가 애썼고.
“……오해.”
이내 그리 늦지 않게, 화이트가 쩔쩔매며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승님.”
“흐응……. 오해, 오해라.”
화이트의 말에 아셰라가 의미심장하게 비음을 흘렸다.
그리고 살짝 눈꼬리를 휘게 하는 그녀.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차가움이 묻어나오는, 그런 눈웃음에.
‘아, 큰일 났다.’
화이트는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을 품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직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간담이 내려앉는 감각과 함께, 화이트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어댔다.
“……저는 말이죠. 의외로 조금 집착이 강한 편이랍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다시금 입을 열었으니.
“사실상 제게 직접적으로 고백까지 해놓은 주제에, 제가 아닌 다른 여자아이랑 놀아난 제자님에게 약간의 벌을 주고자 합니다.”
그렇게 말을 끝맺으며, 아셰라가 서늘한 미소를 한 차례 그려냈다.
“……걱정하지 말아요. 원래의 목적대로, 8서클에 오르는 수련은 도와주도록 할 테니.”
저벅, 저벅.
천천히, 그녀가 화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한쪽 손에는 완드가 들려 있는 채였다.
우웅-
한 차례 마나가 움직였고, 자연스레 아셰라의 완드에 환한 푸른빛이 내려앉았다.
“…….”
그리고 그런 광경을 정면으로 직시할 수밖에 없었던 화이트의 표정이란.
그야말로 사형수의 그것과도 같이, 무척이나 허탈한 기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니.
이윽고.
“……이런 X발.”
화이트의 짤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황궁의 깊숙한 어딘가, 인적이 드문 공간에서.
“……아핫.”
한 차례 야릇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조금은 거친 수련이 시작되었다.
*****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요? 제자님이 왜 밤피르 후작가의 영애를 찾으러 나갔는지.”
“…….”
“아무리 그래도 그 소녀가 스스로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겠죠. 이해합니다, 납득도 했고요.”
“…….”
이어지는 아셰라의 설명에도, 화이트는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그 자신을 실시간으로 거칠게 짓밟고 있는 자가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어봤자,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으니까.
“……우선은 발부터 치우고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스승님?”
“아, 죄송해요. 그만 습관적으로.”
고혹적인 눈웃음을 그리며, 아셰라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얕은 한숨을 내쉬면서, 화이트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으니.
“……삭신이 쑤시네요. 정말 이게 수련을 위한 게 맞았던 겁니까?”
화이트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아셰라를 흘겨봤다.
“에이, 그럼요. 이 스승을 믿지 못하는 건가요?”
그러나 돌아온 대꾸는 그저 태연하기 그지없는 한마디였고.
“……하아.”
그저 깊게 탄식을 내뱉는 것 말고는, 화이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인생…….’
화이트의 눈동자가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
‘사실은 조금 질투가 나고 말았다, 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화이트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고개를 틀며, 아셰라가 한 차례 쓴웃음을 흘렸다.
어찌 말할 수 있겠나.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밤피르의 영애를 찾으러 나간 것이라지만, 정작 돌아온 이후로 그런 그녀의 상태가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요상하게 바뀌었으니.
그 자신에 비하면 한참이나 어린 소녀에게 질투해, 약간의 화풀이를 했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여자를 홀리는 데에 재능이 있는 걸까요, 제 제자님은.’
조금은 괘씸한 감정이 들어서, 아셰라가 살짝 볼을 부풀렸다.
아니, 그도 그렇지 않겠나.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한 소녀를 한순간에 멍한 상태로 만들어 버린 거란 말인가.
아직 그녀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으나, 아셰라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소녀, 오르카 밤피르가 느끼고 있을 묘한 감정의 정체를.
“……아하하.”
아셰라가 한 차례 그 특유의 실없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밤피르 후작과 오르카의 대화를 지켜본 후 돌아오고 나니까, 그녀는 저도 모르게 괘씸한 제자에 대한 감정을 참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참, 저도 문제는 문제라니까요.”
아셰라가 무의식적으로 그리 중얼거렸고, 그에 욱씬거리는 어깨를 두드리던 화이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문제라니, 뭐가 말입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어찌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겠나.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셰라가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새삼스레 순간의 충동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저를 철이 없게끔 만든 건, 다름 아닌 제자님이니까요.’
그러니까 응당 그런 화이트는 자신의 화풀이에 어울려 주어야 하지 않겠나.
“아핫.”
한 차례, 다시금 이상야릇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아셰라.
그런 그녀를 쳐다보는 화이트가 몸을 떨어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소름 끼치게.”
“…….”
그렇지만 또 한마디를 덧붙여서 화를 부르는 건, 화이트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퍼억!
“컥.”
한 차례 가볍게 다리를 휘두르는 것으로 그 자신의 제자의 입을 다물게 한 아셰라가, 이내 유려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진짜로 수련을 시작해 볼까요, 제자님?”
그렇게 한마디를 툭 내뱉으며 아셰라가 마나를 끌어 올렸고, 이번에야말로 그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역시 지금까지의 그건 그냥 스승님의 취미였던 게 아닙니까.”
툴툴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화이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만큼.”
자리에서 다시금 일어서며, 화이트가 마찬가지로 푸른빛의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8서클에 오르는 걸 도와주셔야 합니다, 스승님.”
“후후,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화이트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셰라가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최대한 단기간에, 확실하게 8서클에 오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도록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