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5)공허할 것이 분명한 복수, 그렇지만
“…….”
“…….”
이후, 잠깐의 정적.
화이트는 그저 덤덤했고, 오르카는 눈물을 흘렸다는 점에 있어서 수치심을 느낀 건지 약하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
“……안 돌아가? 왜, 내가 가려고 하면 다시 막아서려고?”
“그래.”
“……하.”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화이트의 대답에, 오르카가 입매를 비틀었다.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었어? 새삼스레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네, 화이트.”
“…….”
오르카의 가시가 섞인 말에도 화이트는 그저 덤덤했다.
한쪽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화이트가 오르카를 지그시 내려다 봤다.
‘이 말괄량이 공주님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화이트가 연신 두뇌를 굴려댔다.
그녀를 제압하고 강제적으로 제도로 귀환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저항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간에 제압할 자신이 있었기에.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딱히 내키지 않네.’
어울리지 않게 그런 생각을 품으며, 화이트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푸른 눈동자가 한 차례 선명하게 번쩍였다.
“……오르카.”
결국 고민은 끝맺어지지 않았으나, 화이트는 우선 그녀를 나직하게 불렀다.
아직까지 약간 물기에 젖은 눈동자를 굴려, 오르카가 화이트를 올려다 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느냐는 듯, 마치 경계심을 품은 고양이와도 같은 눈빛으로 말이다.
“…….”
그리고, 그런 오르카를 잔잔하게 내려다보며.
‘……못해 먹겠네.’
화이트가 짧게 혀를 찼다.
“네 오빠, 루이 밤피르 말인데.”
“……!”
그리고 직후 화이트가 꺼낸 하나의 이름에, 오르카의 두 눈이 한순간에 가늘게 좁혀졌으니.
경계심을 한껏 끌어 올리며, 그녀가 양팔로 몸을 감싼 채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뭐하냐?”
당연하게도, 그런 묘한 반응에 화이트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뭐, 보는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다른 제삼자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무슨 악의 마법사가 가녀린 소녀를 겁탈하려는 줄로만 알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빠는, 왜.”
오르카가 입을 연 것은 그쯤이었다.
화이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루이 밤피르’에 대해서만 신경 쓰는 모습.
그런 그녀의 빤히 보이는 태도에, 화이트가 한 차례 얕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뭔가, 언제라도 좋으니 떠올려 봐라. 루이 밤피르가 어느 순간 갑자기 태도를 한순간에 바꾼 시점이 있지 않나?”
“……뭐?”
그리고 화이트의 그러한 질문에, 오르카가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니,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 드는 건지 모르겠다는 기색으로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런 노골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태연했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화이트가 지그시 오르카를 직시했고.
“…….”
그쯤 되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오르카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살며시 감았다.
“……오빠가 태도를 바꾼 시점이라고 했지.”
“그래, 그것도 상당히 갑작스럽게.”
“그건 왜 묻는 건데……?”
오르카가 되물었고, 그에 한 차례 입을 꾹 다무는 화이트.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만 하는가, 그런 생각을 품으며 화이트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을까, 화이트가 이를 악물며 재차 입을 열었다.
“……만약 어느 순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성격이 바뀐 시점이 있다면.”
한 차례 말을 끊고는,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푸른 안광이 흐릿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마왕이 네 오빠의 몸을 빼앗을 시점일 테니까.”
“……뭐?”
화이트가 태연하게 내뱉은 말, 그러나 전혀 가볍지 않은 그 내용에.
오르카가 눈동자를 흔들어대며 입을 살며시 벌렸다.
“……무슨, 소리야. 그게?”
목소리는 연신 떨리고 있었으나, 그딴 것들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몸을, 빼앗는다고? 마왕이, 오빠의 몸을?”
“그래.”
덤덤하게 대꾸하며, 화이트가 설명을 덧붙였다.
“리이칸테르 후작가에 숨어들었던 마왕이 써먹은 방법이기도 하지. 가문의 주요 인물을 죽인 후, 그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
“……!”
살벌하기 그지없는 한마디에, 오르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느새 그녀의 두 눈동자는 하염없이 요동치는 중이었다.
“……오, 빠가.”
목소리는 뚝뚝 끊겼으나, 어떻게든 말을 이어나가고자 오르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태도를 한순간에 바꾼 시점…….”
과거의 일들이 차례차례,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루이 밤피르’에 관한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
“안녕, 오르카. 좋은 아침이야.”
……상냥한 소년이었다.
1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 여동생에게 언제나 미소를 입에 걸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인 자신 역시 그런 그를 싫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히 따랐다고 할 수 있으리라.
나이 차는 2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남매는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다.
……어느 시점에서, 그 관계가 한순간에 틀어지기 전까지는.
“내게 말을 걸지 마라, 오르카 밤피르.”
“……오빠?”
“그딴 호칭으로 부르지도 말고, 그저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라. 나도 네게서 신경을 끌 테니.”
“오빠. 자, 잠시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황한 자신이 급하게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저 그것으로 대화는 끝.
옷자락을 붙잡고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 하는 자신을 거칠게 밀치며,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서 멀어져 갔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무언가 자신이 잘못한 게 있었을까, 혹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큰 사건이라도 있었던 걸까.
무엇이 계기가 되어, 그 자신의 오빠는 저렇게 성격이 거칠게 바뀌었는가.
……그저 사춘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커가며 성격이 크게 변하는 경우도 있고, 루이의 경우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냥 그렇구나, 오빠가 내게서 멀어지려고 하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자신 역시 애써 그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다.
이후 자신이 재능을 인정받아 밤피르 후작가의 후계자로 정해졌을 즈음엔, 그는 반쯤 자신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나는.
오빠를, 루이 밤피르를.
마음 깊이 존경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관계를 원상태로 복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
한 차례, 허탈한 감정이 담긴 헛웃음을 내뱉으며.
그렇게 서서히 상념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
“…….”
툭, 투둑.
말을 꺼내지는 않았으나, 다시 눈을 뜬 시점부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는 오르카의 모습에 화이트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기억이 났나?”
“…….”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은 채, 오르카가 그저 무겁게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녀의 무릎을 적시고 있었다.
“……만약 루이 밤피르가 변한 시점이 있다면, 그게 마왕이 후작가에 숨어든 순간이겠지.”
“…….”
침묵하는 오르카를 그저 내려다보며, 화이트가 잔잔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네 오빠는 그 시점에서 이미 목숨을 잃었다. 네가 지금껏 오빠라고 생각했던 ‘루이 밤피르’는, 그저 역겨운 괴물이 네 오빠의 피부를 뒤집어쓰고 있던 것뿐이지.”
“…….”
“……정신 차려라, 오르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오르카를 향해, 화이트가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지는 의미가 담긴 손길이었으나, 이번에도 오르카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저 붉어진 눈가에서 연신 눈물을 흘려보내며, 그녀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수 분이 흐른 뒤였다.
“……그냥 성격이 변했다고만 생각했어.”
“…….”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지. 원래 커가면서 성격이 크게 바뀌는 아이도 있는 법이라고, 네가 이해하라고…….”
……웃기는 일이지 않느냐고, 덧붙이며.
그녀가 일그러진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게 아니었던 거야. 네 말이 맞다면, 지금껏 나는 오빠를 죽인 마왕을 오빠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우습게도.
……한심하게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녀가 공허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그녀가 흐릿하게 눈을 빛냈다.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한 녀석이었구나.”
오르카가 자조가 담긴 웃음을 흘렸다.
아까부터 계속 떨어져 내리던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연신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
……그리고.
화이트는 줄곧, 그런 그녀를 그저 오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으니.
오르카가 고개만 살짝 꺾어 그런 화이트를 흘겨봤다.
“……화이트. 여성이 울고 있으면 위로할 줄 알아야지. 그렇게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만 있으면, 미움받고 말 거라고?”
“위로받기를 원하나?”
“…….”
애써 농담조로 던진 한마디에 즉각 대꾸가 돌아오자, 살짝 당황한 건지 오르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표정을 풀며, 그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니, 필요 없어. 그런 건 날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척이나 힘겹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한 기색으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새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르려 하는 상공을 쳐다보며.
오르카가 입술을 얕게 깨물고는 홀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를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어. 마왕이라는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채, 그냥 그렇게 후작가로 향하고자 했지.”
……그런데, 그랬는데.
“틀렸었나 보네. 네 말을 듣고 나니까. 그냥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하, 아하하.”
공허한 헛웃음을 흘려대며, 그녀가 일그러진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
한 차례, 싸늘하기 짝이 없는 숲속에 어두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오르카는 할 말을 다 했는지, 그걸 끝으로 입을 꾹 다물고 연신 눈물을 흘려댔으며.
화이트는 그런 그녀를 그저 묵묵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복수는 공허하지.”
“……뭐?”
“많은 자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었고,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잠깐, 너, 무슨 말을─”
“결국 복수라는 건, 공허하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될 문제다. 오르카.”
이마를 짚고 말을 멈춰 세우려는 오르카의 목소리를 단호하게 끊어버리며, 화이트가 그 벽안을 살벌하게 번뜩였다.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섬뜩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채였다.
“……오르카.”
“뭐, 뭐야.”
그런 화이트의 모습에 약간 겁먹은 걸까, 오르카가 한 차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시선은 화이트에게로 향하게끔 했고.
그런 그녀를 향해, 화이트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너를 도와주마.”
……지금까지 두 차례 내밀었던, 돌아가자는 의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그런 손길을.
“어쩌면 그저 허탈할지도 모른다. 모든 게 끝나면 공허함이 전신을 가득 채울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이며, 화이트가 진중한 눈빛으로 오르카와 눈을 맞췄다.
오르카 역시,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런 화이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으니.
“……어린 나이에 죽어간 네 진짜 오빠의 복수, 그건 네 손으로 해내야 할 문제가 아닐까.”
“…….”
“내가 도와주겠다. 나 역시 그 녀석한테 볼일이 있으니까.”
“……너.”
어느새 눈물이 완전히 멈춘 상태로, 오르카가 흐릿한 목소리를 내뱉었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화이트가 처음으로 잔잔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너와 함께 복수의 길을 걸어주겠다는 의미다. 나 정도 되는 마법사의 도움을 거절할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오르카.”
“…….”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오르카의 그 붉은 눈동자에 흐릿한 이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