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오르카 밤피르(2)
“……지금 뭐라고, 아버지?”
처음에는 그저 되물을 뿐이었다.
“아하하, 농담하지 마. 오빠가 가문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둘째로는 그저 웃어넘기고자 했으며.
“……그리고 뭐, 오빠가 사실은 마왕이었다니.”
마지막으로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 밤피르 후작이 덤덤하게 전해온 하나의 소식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도대체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해는 하겠으나, 너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사실…….”
“…….”
그 이후로 아버지가 꺼냈던 말은 솔직히 제대로 듣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저 당혹스러운 감정이 파도처럼 몰아쳐 왔고.
끝내 내가 선택한 행동은,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방을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황궁을 빠져나가, 제도를 넘어서.
자신이 속한 가문인 밤피르 후작가의 영지가 있는 방향으로, 그저 흐릿한 안광을 번뜩이며.
달리고, 또 달렸다.
반쯤 이성을 놓은 듯이 기운까지 끌어올려 전신에 두른 채로.
‘……오빠가, 12마왕의 일원일 거라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오직 그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다른 상념은 일절 허용치 않은 채, 그저 형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으득!
저도 모르게 이를 갈며 피가 새어 나왔으나,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딴 하찮은 일에 신경을 소모할 수가 없었다.
‘……분명, 분명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붉은 눈동자는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으니.
“…….”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황실의 대마도사인 에드발트 경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었고, 거의 확실하다고 못까지 박았지 않나.
그렇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로, 오빠는─
“──!”
콰득!
한 차례, 입가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웃기지 마.”
그러나 괘념치 않은 채, 그렇게 흘러내리는 핏물마저도 이용해 가며.
어두운 숲속을 지나쳐 달려나갔다.
시야가 보이지 않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몬스터의 괴성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오빠가 마왕이었다면, 대체 언제부터?’
그저 저도 모르게 떠오르게 되는 상념을 막을 수는 없었으니.
이를 악물며 무시하고자 하였으나, 그런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쓸데없는 생각은 연신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마왕이 오빠를 대신해 그 흉내를 낸 건가? 그렇다면, 진짜 오빠는 어떻게 된 거지?’
“……닥쳐.”
‘……오빠는 무사한 걸까?’
“닥치라고…….”
‘정말로 마왕이 오빠의 탈을 쓰고, 그 행세를 하고 있었다면.’
“…….”
‘……나는, 왜.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한 거지?’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과 함께 상념이 끝맺어졌고.
“……!”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주먹을 측면으로 내지르고 말았다.
콰아아아앙!
후둑, 후두둑!
폭발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굉음이 한 차례 터져 나왔고, 측면에 존재하던 거대한 고목의 정중앙이 마치 망치로 후려쳐지기라도 한 듯이 깊게 파였다.
“…….”
어느새 걸음은 한없이 느려진 채였다.
“……하.”
……아니, 아니다.
어쩌면 속도는 멀쩡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치 깊은 심해에 가라앉기라도 한 듯이.
나의 정신은 점점 아득한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으니.
‘……오빠.’
속으로 한 차례 중얼거리며, 그렇게 흐릿한 시야로 걸음을 계속 옮겨가고 있는데.
“─찾았다.”
“……!”
바로 그다음 순간이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두운 숲속에 고요하게 울려 퍼진 것은.
화악!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자연스레 팔이 휘둘러졌고.
카앙!
“……인사 한 번 살벌하군.”
“……너.”
투명한 방어막이 허공에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뒤편에서 나타난 소년의 존재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었다.
“……화이트?”
의식하지 않았으나, 어느새 내 입에서는 소년의 이름이 흘러나온 채였다.
화이트, 화이트 클리포트.
클리포트의 후계자이자, 짧은 시간 동안 약간의 친분을 쌓았던 소년.
“…….”
……그런 그가, 왜 지금 이곳에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가지고 내 앞에 나타난 걸까.
이런저런 잡념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으나.
“네 오빠는 이미 죽었다.”
“──.”
이내 화이트가 입에 담은 짤막한 한마디에, 모든 생각들이 마치 실이 끊어지는 것처럼 흩어졌으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콰아아아!
바로 직후,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감추지도 않은 채 핏빛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무언가 대화가 더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잔잔한 분노가 담긴 눈빛을 섬뜩하게 번뜩이며, 오르카가 화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화이트를 찢어발길 듯이 그 손날에 핏빛 기운을 담으면서 말이다.
“……하아.”
그리고 다가오는 핏빛의 손날에, 화이트가 한 차례 한숨을 내쉬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웅-
심장 근처에 존재하는 서클에서부터 시작된 마나의 움직임은 이내 그리 오래지 않아 전신을 감쌌으며, 이윽고 오른손에 집결되기까지에 이른다.
그다음 순간, 화이트의 오른팔에서 거친 마나가 푸른빛의 광휘의 형태를 띤 채 쏘아져 나갔으니.
“……!”
다가오는 푸른빛의 광휘에 순간적으로 흠칫하며, 오르카가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며 양팔을 교차시켰다.
콰아아아앙!
“…….”
폭음이 한 차례 터져 나왔고, 그에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이것으로 끝이 났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상당량의 마나를 담아 쏘아 보낸 마법이긴 하나, 그녀를 정도 이상으로 상처 입히는 것은 그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필시 움직임에 큰 제약이 생길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화이트가 예상하였고.
“……!”
바로 그 직후, 화이트는 뒤편에서부터 날아드는 공격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쯧.”
한 차례 혀를 차며, 화이트가 몸을 회전시켜 그 반동으로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어느새 한 줌의 핏물이 되었다가 뒤편에서 나타난 오르카를 향해.
퍼억!
“큭……!”
오르카가 한 차례 침음성을 흘렸다.
가드를 세워 막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그 타격은 고스란히 전신으로 퍼져나갔으니.
인상을 팍 일그러뜨리는 오르카를 직시하며, 화이트가 여유로운 태도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 명랑하던 오르카 밤피르는 어디 갔을까. 새삼스레 분노를 느끼기라도 하나?”
“……너!”
그리고 그런 태도에, 오르카가 더욱 강렬하게 살의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콰앙!
그 안광을 거칠게 번뜩이면서, 오르카가 지면을 박차고 다시금 화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패턴, 그러나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 화이트에게로 날아드는 공격은 손날이 아니었으니.
“…….”
핏빛 기운을 머금은 새하얀 다리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드는 모습을 온전히 시야에 담으며, 화이트가 가볍게 목을 꺾었다.
“……!”
딱 한 발짝.
조금만 더 나아갔더라면 분명히 닿았을 거리에서, 오르카의 다리가 멈췄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피해낼 줄은 차마 예상치 못한 걸까.
한 차례,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한 듯한 태도를 보였고.
그 짧은 빈틈을 놓칠 정도로 화이트는 미숙하지 않았다.
“울려라.”
짤막한 한마디.
「파동」
“……!”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현상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으니.
언젠가 프리드리히가 화이트에게 사용했었던 마법이, 이번에는 화이트의 손에서부터 펼쳐졌다.
파아아아아앙!
“……읏!”
수면에 파문이 일 듯, 청아한 소리와 함께 허공이 한 차례 요동쳤다.
그리고 그 허공의 요동침에, 오르카가 얕은 신음성을 흘리며 지면에 몸을 힘없이 쓰러뜨렸다.
“…….”
그녀의 두 눈동자가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통, 좌절, 그리고 그 이외의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그녀의 표정 위로 떠올랐고.
“자, 이걸로 끝.”
그런 오르카를 향해, 화이트는 그저 태연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돌아가자, 오르카 밤피르.”
이내 손목을 꺾으며, 쓰러진 오르카를 향해 손을 내미는 화이트.
그런 그의 손길을 한 차례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봤다가, 이내 오르카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화이트를 직시했다.
그녀의 얼굴 위로는,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왜?”
이윽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들기 시작했으니.
“왜 돌아가야 하는데. 아니, 너는 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실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어조로, 오르카가 연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가문으로 돌아가 봐야겠어. 오빠를 만나야만 하니까…….”
천천히, 그녀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고조된 감정 역시 목소리에 담기기 시작했으니.
“그냥, 나를 내버려 두라고……!”
“…….”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는 화이트에게 이글거리는 눈빛을 향하게 하며, 어느새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눈물을 한 차례 닦아내는 오르카.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그녀가 원망의 빛을 담아 화이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막아서는 건데? 네가 뭔데, 네가 뭐라고 내 앞을 막아서?!”
콰앙!
어느새 쓰러졌던 몸을 힘겹게 일으키면서, 그녀가 다시금 지면을 거칠게 내리밟았다.
“나를 방해하지 마! 동정하지도 말고, 그저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두란 말이야……!”
기어이 숫제 울먹거리기까지 하는 그녀.
거세지는 두통, 요동치는 감정에, 오르카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새하얀 뺨을 타고 한 줄기의 눈물이 조심스레 흘러내렸다.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둬. 제발, 화이트.”
이내, 그녀가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애써 짤막하게 중얼거렸고.
“…….”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화이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연신 흘려대면서도, 감정을 힘겹게 억눌러 가며.
표정을 아련하게 일그러뜨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힘없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드는 그녀의 모습이란.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안쓰럽군.’
화이트로 하여금, 그런 감상을 느끼게끔 만들었으니.
“…….”
화이트가 난감한 감정을 느끼며, 한 차례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곤란하게 됐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