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3)오르카 밤피르(1)
‘스승님은 어디 있는 거지.’
황궁을 빠져 나와, 제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화이트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제도로 돌아오는 길에 그 자신의 스승과 하였던 하나의 약속.
‘8서클에 오르는 걸 도와달라고 하려 했는데.’
한 차례 눈을 가늘게 좁히며, 화이트가 연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시야에 잡히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었으니.
애초에 흔치 않은 색깔이기도 하였고, 그녀가 주변에 존재했더라면 화이트로서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짧게 혀를 차며, 다시금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려는데.
“……?”
화이트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의 청년이 들어왔다.
“에이단?”
“……화이트?”
그쯤에서 청년 역시 화이트의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고개를 측면으로 돌렸다.
청년, 에이단이 어째서인지 식은땀을 연신 흘려대며 화이트에게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모양새.
그에 화이트가 말해 보라는 듯이 한 차례 고개를 까딱였다.
화이트의 허락에 한 차례 입술을 깨무는 에이단.
고민하는 듯도 하였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입이 찬찬히 열리기 시작했으니.
“……혹시 오르카를 보지 못했나?”
“……?”
에이단이 살짝 찌푸려진 표정으로 내뱉은 한마디에, 화이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아마 에이단이 입에 담은 ‘오르카’는 밤피르 가문의 차기 가주인 오르카 밤피르를 말하는 것일 터.
그녀를 왜 자신에게서 찾는단 말인가.
화이트가 의아함을 담아 고개를 갸웃했고, 그것으로 대답이 되었던 걸까.
“……그래, 못 봤구나.”
에이단이 씁쓸한 기색을 담아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나?”
“…….”
에이단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졌다.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는 대략적인 그림을 예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밤피르 후작가, 밤피르 후작의 장남의 잠적, 그리고 12마왕.
그리고 오르카를 보지 못했냐는 에이단의 질문까지.
여러 요소들을 종합한 결과, 나오는 결론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뛰쳐나갔군.”
“……후우.”
화이트가 짤막하게 중얼거린 한마디에, 에이단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더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너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리이칸테르 후작가에서 또 다른 마왕이 그 목숨을 잃었어. 아마 금의 마왕을 죽인 자의 소행일 거라고 예상되는데…….”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본론부터. 에이단.”
“……그래.”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며, 에이단이 한결 침착해진 기색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밤피르 후작가의 장남, 그러니까 ‘루이 밤피르’ 말인데. 12마왕으로 추정되는 그가 모습을 감춘 이후, 오르카의 상태가 이상해졌어.”
“이상해졌다, 라.”
화이트가 턱을 쓸며 중얼거렸고, 그에 에이단 역시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평소의 쾌활한 그녀의 모습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우울해하는 모습이었어. 예상도 못 하고 있었겠지. 그 자신이 지금껏 가족이라 생각했던 자가, 사실은 마왕의 거짓된 신분이었으니까.”
“그리고?”
화이트가 곧바로 되물었다.
그에 바로 직후,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며 에이단이 쓴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으니.
“……오늘 아침이었던가. 그 녀석, 오르카가 편지 한 장만 남겨 놓고 사라졌어.”
“…….”
화이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편지 한 장, 이라.
보지는 못 했지만, 화이트가 대충이나마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요약을 그다음 순간 에이단이 입에 담았다.
“‘오빠를 찾으러 갈 테니까, 찾지 말아줘.’”
“…….”
“……라고 하더군.”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깊은 한숨을 새어 나왔다.
그의 표정 위로 약간의 난감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멍청한 짓을.’
머릿속으로는 붉은 머리칼의 발랄한 소녀를 떠올리며, 화이트가 한 차례 혀를 찼다.
“……그래서 찾던 중이었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까지 온 제도를 뒤집어엎고 있지.”
“음.”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트가 납득했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오르카 밤피르, 그리고 루이 밤피르라.’
조금은 난감하게 되었다.
딱히 그녀와 별다른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그렇지만 최소한의 인사는 나눈 상태였으며…….
그녀는 약간의 벽을 치는 자신에게도 언제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왔으니.
“……하아.”
한 차례, 깊게 한숨을 내뱉고는.
우웅-
화이트가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감정, 내 목표에 있어서 도움이 안 되는 잔정이다.’
그녀를 구태여 찾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으나.
어째서일까.
그녀, 오르카 밤피르가 마왕의 손에 죽게 되는 결말을 상상하자니.
아주 조금이나마 심장이 저릿해져 오는 것은.
‘회귀했다고 해서 정신 상태마저 어려진 건지.’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한시라도 빠르게 8서클에 올라, 다음 마왕을 사냥해도 모자랄 판국에.
한가롭게 실종된 공주님을 찾고 있을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야, 화이트. 넌 회의 중에도 그렇고, 평소에도 그렇고 맨날 표정을 굳히고 다니더라.
-혹시 미소를 짓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지? 저번에 세레나랑 대련할 때를 보면, 웃지 않는 건 또 아닌 것 같은데.
-야, 야! 이 내가 이렇게까지 말을 걸어주는데, 대꾸 정도는 조금 성의 있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어?
“…….”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악마와도 같은 짓궂은 미소를 연신 입가에 걸치고 있던 한 소녀의 모습에.
화이트가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끼면서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오르카더러 멍청하다고 욕할 판이 아니었군.’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 올리며.
“……전개.”
그가 짤막하게 시전어를 중얼거렸으니.
화아아아악!
바로 직후, 화이트를 중심으로 하여 푸른빛의 광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제도를 가득 메우고, 그 성벽 너머까지 뻗어나가는 푸른빛의 광휘는, 이내.
‘……찾았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름 없는 숲속에서 자그마한 붉은빛을 감지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화이트?”
“…….”
환한 푸른빛에 한 차례 눈살을 찌푸렸던 에이단이 조심스레 물었으나, 화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감지 마법에 온전히 집중하며.
화이트가 그 자그마한 붉은빛을 정확하게 특정시키기 시작했고.
이내, 그 붉은빛의 정체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나서는.
“갔다 온다, 에이단.”
“뭐?”
“제도에는 없으니까, 세레나나 다른 녀석들보고 헛수고하지 말라고 전해주면 좋겠군.”
“어, 뭐? 야, 화이트?”
후욱!
바로 직후, 그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 에이단의 부름은 무시한 채.
화이트가 텔레포트를 시전하여 한순간에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
붉게 빛나던 적발을 거칠게 흐트러뜨린 채로, 오르카가 연신 걸음을 옮겨갔다.
다리에 걸리는 나무줄기나, 잡초 같은 것들은 그저 짓밟아버리며.
그녀가 두 눈동자를 섬뜩하게 번쩍였다.
그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마주치는 누군가를 죽여버릴 것만도 같은 살기였으니.
“──찾았다.”
“……!”
그런 오르카의 뒤편에서부터,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쯤이었다.
화악!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저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걸까.
오르카가 눈빛을 살벌하게 번뜩이며 핏빛으로 물든 손날을 휘둘렀다.
카앙!
“……!”
그러나 그런 그녀의 핏빛 손날은, 어느 투명한 방어막에 의해 허무하게 가로막혔으니.
“……인사 한 번 살벌하군.”
짧게 혀를 차며, 화이트가 사뿐히 지면에 발을 내디뎠다.
“……너.”
그리고 그제서야 그 자신의 뒤에서부터 나타난 소년이 누군지 눈치챈 건지, 오르카가 당혹감이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상당히 고생하기라도 한 건지,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몰골로.
그 붉은 머리카락은 땀으로 엉망이 되어 아무렇게나 휘날리고 있었고, 새하얗던 피부는 어느새 먼지로 범벅이 된 채였다.
그럼에도, 그 눈동자만큼은 선명하게 빛내면서.
“……화이트?”
오르카가 그 자신을 올곧게 마주해 오는 소년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그래, 나다.”
그런 오르카를 향해 귀찮다는 듯이 한 차례 혀를 차며, 화이트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도망친 민폐투성이 공주님을 회수하러 왔지. 반항은 없었으면 하는데.”
“……?”
화이트가 태연하게 중얼거린 한마디에, 오르카가 두 눈을 멍하니 깜빡거렸다.
“……지금 뭐라고?”
그야말로 그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이, 그녀가 이마를 짚으며 되물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에도 상관하지 않은 채, 화이트는 그저 평온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태도로 다시금 입을 열 뿐이었다.
“네 오빠는 이미 죽었다. 네가 알고 있던 존재는 네 가족이 아니라, 12마왕이 그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것뿐이라고.”
“…….”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에.
오르카의 붉은 눈동자가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포기하라는 말이지, 오르카.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후작 각하께서도 걱정하시겠지.”
“…….”
그저 태연하게 말하는 화이트의 모습에, 그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콰앙!
그녀가 핏빛으로 물든 다리로 거칠게 지면을 내리찍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런 위협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돌아가, 화이트.”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태도에 살기를 흩뿌리며, 오르카가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으니.
“뒤늦게 사춘기가 오기라도 한 건가? 새삼스럽게 가출이라니, 밤피르 후작가의 미래가 무척 걱정되는데.”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고자 화이트가 장난스레 내뱉었으나.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대로 돌아가.”
“…….”
아무래도 때와 상황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역시 나는 농담에는 소질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한 차례 품으며.
“돌아가지 않겠다면, 어쩔 거라는 말이지?”
화이트가 그저 평온한 어조로 중얼거렸고.
“──.”
콰아아아아!
바로 직후, 오르카의 전신에서부터 강렬한 핏빛의 기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돌아가지 않겠다면, 상관하지 않아. 그렇지만 나를 막아서겠다면.”
“…….”
“……아무리 너라도, 그냥 때려눕히고 지나갈 거야.”
그녀의 두 눈동자가 살기로 일렁이며 섬뜩한 빛을 발했다.
“……하아.”
그리고, 그런 오르카를 그저 태연자약하게 직시하는 화이트.
우웅-
이내 그가 오르카의 기세에 맞춰서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고.
“……싸우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 화이트.”
“그래, 뭐.”
고요하게, 그러나 어딘가 금방이라도 거칠게 터질 것만 같은.
그런 살벌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화이트와 오르카, 두 소년소녀가 서로를 향해 각자의 빛이 담긴 시선을 올곧게 향하게끔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