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2)악취미
“받아들이겠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구나.”
올곧은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해오는 화이트의 한마디에, 프리드리히가 조금은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예상보다도 이르게 자신을 찾아온 화이트의 모습에, 프리드리히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정을 내린 눈빛이구나. 망설임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보셨습니다, 에드발트 경.”
화이트 역시 그런 프리드리히를 향해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쳐 보였으니.
어째서인지 상당히 안정된 기색으로, 화이트가 고개를 꺾어 상공을 쳐다봤다.
“감사하게도, 누가 제 망설임을 지워주셨기에.”
“흐음?”
의미심장한 화이트의 중얼거림에, 프리드리히가 눈썹을 까딱이며 마찬가지로 상공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 직후, 프리드리히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이 눈동자에 이채가 서리게끔 했으니.
“음, 그런 거였나.”
한층 더 짙어진 미소로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무언가가 보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존재감을 흐릿하게나마 잡아낼 수 있었기에.
“전에도 느꼈지만, 사제 간에 참으로 사이가 좋더구나.”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프리드리히가 그런 말을 내뱉었고, 그것이 나름 만족스러웠던 걸까.
화이트가 유려한 눈웃음을 그려내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제 스승님이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제가 사랑하는 여성입니다.”
“호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화이트의 한마디.
그에 프리드리히가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화이트의 올곧은 어조에서부터, 나이를 먹은 후로는 느낄 수 없었던 청춘의 풋풋함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으니.
그의 표정 위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응원하도록 하마, 화이트.”
“감사합니다, 에드발트 경.”
각자의 뜻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프리드리히와 화이트가 서로를 향해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상공,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하늘 위에서.
‘……으, 아으아.’
어느 한 흑발의 소녀가 목덜미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왜, 왜 그런 말을 그렇게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난리냐고요……!’
은신 마법을 유지한 채로, 아셰라가 화이트를 향해 원망 섞인 시선을 연신 던져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일말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실로 행복하기 그지없다는 듯이 프리드리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
“에드발트 경도 아시다시피, 제 스승님이 워낙에 대단한 분이신 탓에.”
“음, 나를 뛰어넘는 대마도사 급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으니. 네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겠구나.”
“하하, 물론 마법적인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그녀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마법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화이트가 흔치 않게 눈을 반짝이며 연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만 말하는 거지만, 사실 그런 경지에 안 어울리게 참으로 귀엽기 그지없는 여성입니다. 제 스승님은.”
“허허허.”
화이트의 말에 프리드리히가 그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기분이 좋다는 듯이 웃음을 흘려댔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어느새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이 서려 있는 채였다.
‘청춘이구나, 청춘이야.’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품으면서, 프리드리히가 계속해서 그 자신의 스승의 자랑을 해대는 화이트를 향해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으, 읏.’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대화를 전부 듣고 있는 아셰라는.
‘제발,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요. 바보 제자님, 제발!’
무어라 말을 꺼내지는 못한 채로, 그저 은신 마법을 유지하며 속으로 원망 섞인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으니.
잘 익은 사과와도 같이 그 얼굴을 붉은빛으로 달아오르게 하며, 아셰라가 허공에서 연신 몸을 이리저리 뒹굴어댔다.
‘제자님, 그만 좀 해요. 제자님의 하나뿐인 스승이 수치스러워서 죽어버리고 말 거라고요……!’
……그 이후로 한동안, 프리드리히와 화이트가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절대로 은신 마법을 풀지 못하는 아셰라였다.
****
“다 모였는가.”
“예, 에드발트 경.”
황궁 내부, 황실 마법사단이 주둔하는 성.
그 꼭대기 층에 5명의 인물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황실 마법사단의 단장인 프리드리히 에드발트부터 시작하여.
테이칸 클리포트와 리이칸테르 후작, 엘더리치 루시펠.
그리고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인 화이트 클리포트까지.
누군가가 이 자리에 모인 인물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필히 의문을 품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으리라.
이만한 인물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조심스럽게 모여들었는가.
도대체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가기에, 이 정도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집결하였는가.
설마하니 반역이라도 모의하고자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생각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흐음.”
그리고 그런 장소의 상석에 위치한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밤피르 측에서도 연락이 왔다네. 밤피르 후작의 장남이 며칠 전 그 모습을 감추었다더군.”
“…….”
이내 그가 내뱉은 한마디에, 좌중의 모든 인물들이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으니.
“으음…….”
테이칸 클리포트가 한 차례 침음성을 흘렸고, 리이칸테르 후작 역시 표정을 찌푸렸다.
“그 며칠 전이라 함은, 아마 리이칸테르의 저택에서 난장판이 일어나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겠지요.”
“……그래.”
오직 화이트만이 태연함을 유지하며 물었고, 그에 프리드리히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방 안의 모든 인물들은 가능성이 높다 못해 거의 확실할 것이 틀림없는 가설을 하나 머릿속으로 떠올려야만 했다.
천천히, 방 내부의 기온이 서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마 그자가 밤피르 후작가에 숨어들었던 12마왕일 테죠.”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그 가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당연하게도, 좌중의 분위기는 더욱더 심각한 기색으로 떨구어져 내렸으니.
“……밤피르 후작이 고민이 많겠어.”
조금은 씁쓸하다는 어조로 테이칸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듯이 리이칸테르 후작이 한 차례 고개를 무겁게 주억였다.
아무래도 일곱 가문의 가주끼리는 여러모로 깊게 연관된 사이다 보니, 이래저래 느끼는 바가 많은 모양.
‘……이해는 하겠지만.’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화이트가 한 차례 한숨을 내뱉었다.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 봤자 의미는 없는 것 아니겠나.
“……어차피 확실시된 일, 밤피르 후작 각하께도 정확한 사실을 전달할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화이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그에 프리드리히가 시선을 화이트 쪽으로 돌렸다.
“사실, 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더냐?”
프리드리히가 질문을 던지자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의 시선 역시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시선들을 태연히 받아내면서, 화이트가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진짜 밤피르의 장남은 어느 시점에서 12마왕 중 누군가에 의해 그 가죽이 벗겨졌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
조금은 살벌한 한마디, 그에 테이칸이 눈썹을 까딱거리며 설명을 요구했다.
가죽이 벗겨졌다, 라는 표현은 그만큼 섬뜩한 느낌을 주는 말이었기에.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내뱉는 화이트의 표정은 그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제가 리이칸테르 후작가에 숨어든 아파르, 그러니까 회색의 마왕을 처리할 당시 본 것이 있습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이트가 설명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회색의 마왕 아파르가 마치 허물을 벗어내듯 그 자신의 피부 가죽을 찢어버리는 광경이었으니.
“……아마 밤피르 후작가의 마왕도 그와 비슷한 형태로 정체를 감추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밤피르 후작 각하의 장남, 그를 어느 시점에선가 죽이고, 그 피부를 뜯어낸 것이겠죠.”
“…….”
살짝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게 화이트가 말을 끝맺었고.
자연스레, 혹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의 표정이 분노의 감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악취미군.”
“인간이 할 짓이 못됩니다.”
두 가주가 차례대로 중얼거렸고, 프리드리히 역시 나름대로 불쾌함을 드러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니, 최소한의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존재라면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죽은 자의 피부를 뜯어내어, 그 가죽을 덮어쓰는 것이 얼마나 잔혹하기 그지없는 행위인가.
그건 죽은 자를 향한 최대한의 모욕이자, 동시에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
한 차례, 내부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더 이상 꺼낼 이야기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루시펠이 가져온 정보는 리이칸테르와 밤피르 가문에 관한 것이었고, 그중 하나는 사망, 또 다른 하나는 잠적하였다.
12마왕 측에서 무언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이상, 제국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기에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더 이상 꺼내지지 않았고.
그리고 그쯤에서.
“아파르가 죽고 난 이후, 최소한의 위협이나마 느낀 것이지 않겠습니까.”
화이트가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정적을 깨뜨렸으니.
“어쩌면 루시펠이 그 자신들을 추적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눈치채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그렇기에 리이칸테르의 저택에서 아파르가 죽자마자, 밤피르 후작가에 숨어든 마왕 역시 모습을 감춘 것일 터.
여전히 자리에 도로 앉지는 않는 채로, 화이트가 고요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12마왕 측에서 작정하고 모습을 감추고자 한다면, 아무리 정보가 있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제국이라면 더더욱.”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화이트?”
테이칸이 물었고, 그에 화이트가 조금은 아쉽다는 기색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당분간은 다른 일곱 가문의 동향에 집중한 채로, 12마왕의 움직임 역시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밤피르 이외에도 어딘가에 마왕의 끄나풀이 숨어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말을 끝맺으면서, 화이트가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게 세상을 밝히고 있었으며, 태양빛은 언제나처럼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태양의 붉은빛을 한 차례 눈에 담고는, 화이트가 흐릿하게 눈빛을 빛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여 정보가 들어온다면 다시 연락을 주시기를, 여기서 온전하게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저나 루시펠 정도밖에는 없으니까요.”
프리드리히나 테이칸, 혹은 리이칸테르 후작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12마왕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는 없는 입장에 서 있었으니.
“루시펠. 만약 다음에 움직여야겠다고 판단했다면, 홀로 움직이지 말고 내게도 언질을 줬으면 좋겠군. 아무리 네놈이 9서클에 도달한 엘더리치라고는 해도, 상대는 12마왕이니까.”
[흐음,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그렇게 루시펠의 답을 듣고 나서는, 화이트가 고개를 한 차례 깊게 숙였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에드발트 경, 아버지, 그리고 후작 각하.”
[내게는 그렇게 공손하게 인사해 주지 않는 것인가?]
“다물어라, 루시펠.”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화이트가 혀를 차며 방을 빠져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