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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61화 (62/158)

(EP.61)고민

밝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가며, 화이트가 묵묵히 걸음을 옮겨갔다.

별다른 목적지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산책을 하듯이 제도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닐 뿐.

“…….”

그의 표정 위로, 조금은 심란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널 도우마, 화이트.

-비록 황실의 대마도사로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나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네 의지를 돕겠다는 뜻이지.

떠오르는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치하고 서 있던 프리드리히가 내뱉었던 말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화이트가 눈을 슬며시 감으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돕는 자의 존재.

애초에 자신은 그러한 존재에 대해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건 어째서인가.

“…….”

잠시 고민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이던 화이트는, 이내 그리 늦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라고.

이윽고 화이트의 표정 위로 떠오르는 것은 약간의 당혹스러움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생각지 않고 있었나.

어찌하여 조력자의 존재를 미리 안배해 두지 않았던가.

왜 그러한 것에 의문을 품지 않고, 끝내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가.

……그래, 어째서였을까.

처음부터 홀로 움직이고자 마음을 먹었다.

12마왕의 몰살, 다르게 말하면 복수.

그 험난하기 짝이 없을 복수의 길에, 자신은 다른 누군가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자 하였다.

‘왜?’

이내 떠오르는 생각은, 그저 그러한 결정을 내린 자신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그런 선택을 내렸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마왕들을 상대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

“…….”

……물론 그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혼자가 편하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고방식은 차치해두고서라도, 마왕과의 전투에 있어서 동료의 존재는 불필요했다.

애초에 12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선 최소 대마법사 급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여야만 했기 때문에.

자신이 7서클의 경지로 두 명의 마왕을 죽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 자신이 그저 평범한 7서클의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그뿐이었다.

실제로 회귀 이전, 7서클에 올랐던 시절의 자신이 그 시점에서 금의 마왕과 전투를 벌였다면 분명 필패하였으리라.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어째서일까.”

화이트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심란하게만 변해갔다.

이를 악물기도 하고, 입술을 얕게 깨물며, 표정은 연신 일그러뜨렸다.

상당히 고민하는 기색으로, 화이트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갔다.

“…….”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프리드리히의 제안은 화이트에게 있어서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 만한 종류의 제안은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어째서, 그 자신은 그 제안을 곧장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비록 전면에 나서서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뒤에서 최소한의 지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될 터.

그런 존재들이지 않은가.

대마도사 급 마법사만 두 명에, 그 자신의 부친인 테이칸 클리포트와 리이칸테르 후작까지.

그들이 자신을 지원한다면, 12마왕을 암살하는 일이 한결 편해지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제국 측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12마왕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제국은 오롯이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었으니.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그들에게 빌미만을 줄 뿐인 일이 될 테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개인들이 자신을 보조해 준다면.

12마왕을 암살하는 것에 있어서, 그들이 자신의 의지를 지지하고, 또 도움을 준다면.

‘……내가 바라는 목표에 있어서, 도움이 안 될 리가 있나.’

한 차례, 화이트가 어이가 없다는 기색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의 표정 위로 조금은 씁쓸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찌 이리도 멍청하고도 아둔한 건지.

결국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나.

스스로의 목표를 위해 정면만을 보고 달려가다가,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쓰러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과거의 그 자신과.

‘아니, 아니지.’

오히려 더 퇴보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그 시절의 자신은.

명백한 목표가 있었기에.

스승인 아셰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륙이 멸망의 길로 치닫는 것을 외면한 것이었다.

……어차피 대마도사 급 한 명이 더해진다고 한들 바뀔 전황이 아니었고, 그 당시의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오직 아셰라뿐이었으니.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간에, 마법의 연구에 몰두했던 것이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최소한의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고.’

그렇지만, 그 지금은 어떠한가.

세계가 종말의 길로 치닫고 있는가?

실시간으로 국가 하나가 무너지고, 하루가 지나면 대륙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대마도사 급 마법사를 포함한 수많은 강자들이 12마왕과 아셰라의 폭주를 감당하기 위해서 힘없이 스러져 나가는 상황인가?

……아니, 아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최소한의 여유가 있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아셰라가 폭주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에 더해, 이미 12마왕 중 두 명을 죽였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굳이 시간을 달라고, 제안을 보류할 이유 따위.

어디에도 없었을 텐데.

“……한심하구나.”

천천히 눈을 뜨며, 밝은 태양빛을 받아내며.

화이트가 그리 중얼거렸고.

“누가 한심하다고요?”

“……!”

바로 다음 순간, 뒤편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쯤이었다.

화이트가 몸을 움찔거리며 급하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당연하게도 목소리의 주인은, 화이트에게 있어서 더없이 익숙한 존재였으니.

“스, 스승님……?”

“네, 제자님의 스승인 아셰라입니다~”

아셰라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화이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언제부터 뒤에 계셨답니까?”

“으음. 언제부터, 라.”

화이트가 심히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고, 그에 아셰라가 한 차례 고민하듯이 턱을 쓸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그녀가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으니.

“제자님이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긴 듯이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던 때부터, 일까요?”

“……!”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수치심으로 물들고 말았다.

……처음부터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화이트의 눈빛이 원망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따라오고 계셨다면 언질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무슨, 관음증도 아니고─”

콰앙!

“네~ 그 입 닥치세요.”

“…….”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망치로 후려치기라도 하는 듯한 아셰라의 돌려차기였으니.

얼떨결에 가드를 하긴 했으나, 마치 부러진 듯이 팔이 욱씬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아…….”

그렇기에, 그 자신의 팔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화이트가 무어라 툴툴대려고 하였으나.

“……제자님.”

그 바로 다음 순간, 아셰라가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기에.

“예?”

화이트가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도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부르는 것일까.

그런 의도를 담아, 화이트가 눈을 부라리고자 했지만.

“…….”

바로 직후, 시야에 들어오는 그 자신의 스승이 짓고 있는 씁쓸한 표정에.

화이트는 자연스럽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그리 걱정하고 계시나요, 제자님.”

“……무슨 말씀입니까?”

“시치미 떼지 마요, 다 눈에 보이니까.”

쓴웃음을 입가에 걸며, 아셰라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뭘 고민하고 있나요. 무엇을 생각하기에, 그렇게나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나요.”

“…….”

“제자님이 그런 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요.”

“……스승님.”

화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으나, 그에 대답하지는 않은 채로 아셰라가 부드러운 손길로 화이트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그에 몸을 한 차례 움찔거리는 화이트였으나, 물러서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듯이 아셰라가 그런 화이트의 손을 꼬옥 붙잡았으니.

“……제자님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천천히, 아셰라가 화이트를 향해 몸을 기울여 갔다.

마치 그의 품에 안기기라도 하는 듯이, 아셰라가 화이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었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라고요?”

조금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제 존재를 잊을 정도로 고민에 잠긴 제자님은 오랜만에 보는지라, 저도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분이랄까.”

“…….”

아셰라가 씁쓸한 기색으로 내뱉은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을까, 화이트가 한 차례 몸을 움찔거렸다.

“……그건.”

그리고 무어라 변명이라도 내뱉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아하하,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그저 조금 제자님이 걱정될 뿐이니까.”

“…….”

그런 변명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아셰라가 느긋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언제나 제자님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천천히,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흐릿하지만 분명한 형태로 이채를 빛내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의 제안을 받아들이든, 12마왕을 몰살하고자 하든 간에, 저는 언제나 제자님의 편이라고요. 그것만 알면 되는 거예요, 제자님은.”

“…….”

“고민하지 마세요, 망설이지도 말고. 제자님이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저는 그 의지를 지지하고 또 도울 테니까.”

“……스승님.”

계속해서 말을 내뱉는 아셰라를 향해, 화이트가 한 차례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고.

그런 화이트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아셰라가 유려한 눈웃음을 그려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아셰라의 행동에.

그녀의 미소에, 그녀가 내뱉은 말들에.

화이트는, 무척이나 가슴이 아려오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애달픔, 혹은 죄책감.

그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묘하게 아련해지는 감각과 함께.

화이트는 어딘가 모르게 심란하던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이때까지의 고민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뭘까, 이 기분은.’

조금은 허탈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따스한 햇빛이 그 자신을 비추는 것도 같았다.

실로 신선한 감각, 동시에 낯설기 짝이 없는 기분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그리 나쁜 감각인 것만 같지는 않다고.

그런 생각이 한 차례 화이트의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

그리고, 끝내 화이트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고 보인 행동이란.

꽈악!

“……!”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자신의 손을 맞잡은 아셰라를 꼭 끌어안는 것이었으니.

“……제, 제자님?”

조금 전까지의 그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을까.

아셰라가 한순간에 그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동공을 흔들어댔다.

“왜, 왜요. 갑자기 왜 이렇게 강하게 껴안는 건데요?!”

“……글쎄요.”

아셰라의 당혹감 섞인 목소리에 그저 태연히 대꾸하며, 화이트가 그녀를 더욱 쎄게 끌어안았다.

그야말로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영원히 붙들고 있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이.

그리고 바로 직후.

“좋아합니다, 스승님.”

“……!”

화이트가 무척이나 가볍기 짝이 없는 어조로 그런 한마디를 내뱉었고.

“……어, 어어?”

아셰라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몸을 크게 움찔거렸으니.

목덜미의 끝부분까지 붉게 물들이며, 아셰라가 입술을 얕게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채 무어라 말을 내뱉기도 전에.

“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진심을 담아, 화이트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읏.”

그리고,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두 번 연속으로 들은 아셰라의 표정이란.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야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듯이.

“하으으…….”

수치스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은 빛을 띠고 있었으니.

“아으, 진짜. 제자님은, 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거냐고요…….”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거든요, 바보 제자님.”

딱!

그녀의 손이 한 차례 화이트의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갔으나, 화이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

그저, 조금 전까지의 그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며.

흔치 않게 진심을 담아, 화이트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 놓을 거냐고요, 정말.”

그리고 그쯤에서 아셰라도 단념한 걸까.

얕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화이트를 마주 끌어안아 주었다.

“이번에만 허락하는 거라고요. 다음에도 이렇게 건방지게 나오면, 두 번은 없어요.”

……무척이나 설레이는 듯이, 표정을 붉게 물들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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