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7)발각되다
“도착했소.”
“수고했어요. 여기, 대금.”
마부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아셰라가 금화를 튕겼고, 그를 받는 마부의 표정은 한층 펴졌다.
“수고하시오!”
나름대로 쏠쏠하게 챙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 걸까, 마부가 미소를 그리며 손을 휘저었다.
“네에~”
아셰라 역시 특유의 실없는 미소와 함께 그에 반응해주는 모습.
그리고, 마부가 마차를 끌고 떠난 이후.
“…….”
아셰라의 표정이 조금은 어둡게 가라앉았으니.
그건 그녀의 옆에 있는 화이트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국의 중심지, 제도.
그 거대한 성벽의 바로 앞에 선 채로.
천천히, 고요하게.
두 사람에게서 긴장감이 잔잔하게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아악!
“……!”
아셰라와 화이트, 그 두 사람의 정면에 갑작스레 환한 빛이 발하며 마법진이 생성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우웅!
당연하게도, 화이트가 아셰라의 앞을 지키듯이 막아서며 마나를 끌어 올렸으니.
그의 두 눈동자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아니, 굳이 말하자면 워프를 위한 마법진인가.’
단일 개체의 이동이 아닌, 다수의 이동을 위한 마법진.
그것도 상당히 완성도가 뛰어난, 설계자의 경지를 짐작케 하는 높은 수준의 마법진.
완성되어 가고 있는 마법진을 분석해 나가며, 화이트가 조심스레 그 오른손에 청백색의 창을 만들어 냈다.
우웅-
그리고, 끝내는.
마법진이 깔끔하게 그려지기까지에 이르렀고.
‘……적? 아니면 다른 누군가?’
화이트가 창을 쥔 손에 더욱 쎄게 힘을 주며 두 눈을 섬뜩하게 빛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적이면 그 자신의 창으로 베어넘기면 그만이고, 다른 누군가라 하더라도 그자들이 이쪽을 노리고 나타난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
……그렇지만.
[……크흐흐.]
“…….”
최종적으로, 음울한 울림으로 귓가에 꽂히는 불쾌한 음성에.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바뀌었다.
후욱!
펼쳐졌던 마법진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하며, 총 넷의 인영이 화이트와 아셰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네 존재의 모습이란, 화이트에게 있어서도 익숙한 자들의 것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백발의 노인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이었다.
‘에드발트 경, 루시펠에 더해서.’
화이트의 조심스런 시선이 네 사람을 찬찬히 훑고 지나갔다.
‘……아버지, 그리고 리이칸테르 후작이라니.’
한 차례 식은땀을 닦아내며, 화이트가 의구심이 떠오른 표정으로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어째서 그들이 지금, 이순간에 자신들의 앞에 나타났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째서인지, 화이트는 그 이유를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화이트와 아셰라, 두 명이 조심스레 시선을 교환했다.
‘……스승님이라도 숨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한 차례 혀를 차는 화이트.
그리고 그런 그의 뒤편에 몸을 감추듯이 숨긴 아셰라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걸까.
그녀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화이트의 옷자락을 약하게 붙들었다.
“…….”
고요한 정적.
그러나 분명하게 그 자신들을 바라봐 오는 네 존재의 시선에, 화이트와 아셰라가 표정을 굳혔다.
이내,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화이트.”
한 발짝 앞으로 나선 테이칸 클리포트였으니.
“아버지.”
화이트가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꾸했다.
“무슨 일입니까, 구태여 마법진까지 그려가며 워프로 등장하시다니. 새삼스레 화려한 등장에 눈을 뜨시기라도 한 겁니까?”
“…….”
화이트가 부자연스런 태도로 농담을 꺼내 들었으나, 테이칸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저 석상처럼 표정을 굳힌 채, 테이칸이 나직한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너였구나.”
“……예?”
그리고, 그렇게 테이칸이 꺼낸 짤막한 한마디에.
화이트는 그 자신의 포커페이스가 깨지는 것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을.”
침묵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건지, 화이트가 애써 무어라 말을 꺼내보려 했으나.
자연스레 목소리는 뚝뚝 끊기고, 식은땀이 하나 둘씩 흘러내리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그저 오연히 직시하며, 테이칸이 의구심이 섞인 눈빛을 빛냈다.
“금의 마왕, 금색 마탑.”
“──.”
“……이번에는 리이칸테르의 기사단장과, 후작가의 저택인가.”
무척이나 난감하다는 듯이, 테이칸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그런 테이칸의 태도에 화이트는 끝내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들켰다.’
그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뒤에 존재하는 다른 세 존재에게.
아니, 어쩌면 혹은 황제에게까지도.
자신이 몰래 활동하고 있던 것을.
……자신이 두 명의 마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도, 화이트의 표정이 심각한 기색으로 굳어지기 시작하였으니.
화이트가 그 자신의 뒤편에서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아셰라를 조심스레 흘겨봤다.
‘……스승님에 대한 건, 들키지 않았나?’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 자신이 12마왕 중 둘을 죽였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것보다도, 화이트는 우선 그 자신의 스승에 대해서 걱정했다.
……그녀의 경지가 들키는 건 괜찮다.
이 넓은 대륙에는 모습을 감춘 9서클의 대마도사란 상당히 많이 존재하였고, 그중에는 정확한 정체, 혹은 외견조차 밝혀지지 않은 마법사들 역시 수두룩했으니.
그렇기에, 괜찮았다.
황실의 대마도사, 프리드리히 에드발트에게 그녀의 경지가 들켰을 때도.
루시펠이 회의를 엿듣는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을 때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자신의 스승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었고, 애초에 그 자신의 경지를 드러낸 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정체’가 들키는 것은, 완전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었으니.
“…….”
화이트의 눈동자가 천천히 싸늘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내, 아셰라에게서 서서히 시선을 떼어내며.
화이트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테이칸과 그 뒤편의 세 존재를 직시했다.
“……화이트.”
그리고 그러한 아들의 눈빛에, 테이칸이 한 차례 눈가를 가늘게 좁혔으니.
“감출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다 들킨 것 같으니.”
그런 테이칸을 그저 무감정하게 직시하며, 화이트가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여전히 눈빛을 살벌하게 번뜩이는 채로.
“그렇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겁니까?”
“……뭐?”
당당하게 나오는 화이트의 태도에, 테이칸이 한순간 눈을 깜빡였다.
설마하니 이렇게 대놓고 태연한 태도를 고수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걸까.
테이칸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화이트를 바라봤고, 그런 시선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애써 가라앉히며.
“……제가 12마왕을 죽였다고 해서, 뭐 어쩌라는 말입니다.”
화이트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연신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그 존재 자체가 해악인 자들입니다.”
“존중할 가치가 없는 생명체들, 죽어 마땅한 존재들.”
“그것이 12마왕이고, 제가 그들을 죽인 것은 그저 대륙의 악(惡)을 토벌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점차적으로, 그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화이트는 인지하고 있었을까.
말을 이어나가면 나갈수록, 그 자신의 눈빛 역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을까.
‘……정신 차려라, 화이트 클리포트.’
한 차례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이를 악물었다.
12마왕을 죽인 범인.
대륙에 전란의 분위기를 몰고 온 시발점이 된 존재.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 앞으로도 12마왕을 죽여나갈 예정이라는 것을 들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들켜도 상관없다.
“…….”
……아니, 마냥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국에게, 혹은 적의 마왕에게 들킬 경우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겠지만.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거기까지만 들킨다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은.
……그 자신의 스승의 진정한 정체가, 12마왕의 일원인 흑의 마왕이라는 것이었으니까.
“……무슨 의도로 제 앞에 나타나신 겁니까? 그것도 에드발트 경과 루시펠, 리이칸테르 후작 각하까지 동행한 채로.”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화이트가 말을 이어갔다.
“대륙에 혼란을 가져온 저를 벌하실 생각입니까? 그래, 분명 그러할 테죠.”
“……잠깐, 화이트. 우선 우리의 말을 들어봐라. 우리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
“뭐가 아닙니까, 제가 바보로 보이십니까?”
명백하게 건방진 태도로 테이칸의 말을 끊어가기까지 하면서, 화이트가 눈빛을 섬뜩하게 빛냈다.
그에 자연스레, 테이칸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별달리 마나를 끌어올린 것도, 웅혼한 마법진을 그려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고요하게 살기를 눈동자 위로 띄우는 것.
그러한 단순한 행동 하나로, 화이트는 좌중의 모든 이를 침묵하게끔 만들었다.
……그건, 그래.
“……화이트.”
도저히 10대의 소년이 가질 수 있을 만한 깊이의 눈빛이 아니었으니.
테이칸이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
그에 잠시 한 차례, 화이트가 움찔하며 동공을 흔들리게끔 했으나.
금방 태도를 태연하게 고치며, 그가 더욱 쎄게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한 일이고, 이제 와서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 차례, 화이트가 다시금 뒤편의 아셰라를 조심스레 흘겨봤다.
“이것은 온전히 제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니, 그 모든 처벌 역시 제게 향해야만 할 겁니다.”
그러나 금세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화이트가 말을 이어나갔다.
“…….”
……뒤편에서 가만히 서 있는, 그 자신의 스승이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만약에, 만약에라도. 제게 향해야만 할 처벌이 제 스승에게까지 향한다면─”
그때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제국이고 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고 말 것이라고.
그렇게 덧붙이며, 화이트가 말을 끝맺었으니.
“…….”
잠시 한 차례 서늘한 정적이 좌중에 내려앉았다.
화이트는 눈을 사납게 뜨며 뒤편의 아셰라를 보호하듯이 감쌌고, 테이칸은 어째서인지 애매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그런 화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신 건지.’
그리고, 예상했던 격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화이트의 쪽이었다.
프리드리히 에드발트, 루시펠, 테이칸 클리포트, 리이칸테르 후작.
그 모두가 화이트보다도 강한 자들이었고,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그게 명백한 진실이었기에.
당연하게도, 대륙을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은 죄를 묻고자 할 줄 알았다.
……최소한 화이트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였고.
“…….”
어딘가 모르게, 서로가 엇갈린 듯한 침묵이 사방을 싸늘하게 얼리고 있을 때.
“……하아.”
그런 차갑기 그지없는 정적을 깨부순 목소리는, 다름 아닌 화이트의 뒤편에서부터 들려왔으니.
퍼억!
“……!”
그런 목소리에 채 의문을 품기조차 전에, 화이트는 뒤통수로 날아든 타격에 강렬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스, 스승님?”
그리고 당연하게도, 위치상 그런 화이트를 공격할 만한 존재는 아셰라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화이트가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을 담아 아셰라를 뒤돌아보았고.
“……이런 패륜아를 봤나.”
“……!”
화이트는 볼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스승이, 무척이나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제가 그렇게 가르치던가요, 제자님.”
“……잠, 잠깐. 스승님?”
그에 무척이나 당황해, 화이트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들었으나.
“입, 다물어요.”
“……!”
쩌어어엉!
바로 직후 날아든 언령의 권능에, 화이트는 강제적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부터 이어진 것은, 마치 벌을 내리기라도 하는 듯한 아셰라의 공격이었으니.
퍼억!
“……!”
“……하늘 같은 아버님께 그런 망발을 지껄이라고, 제가 그런 식으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후욱!
아셰라가 그 자신의 완드를 허공에 휘젓자, 무형의 기운이 화이트에게로 날아들어 타격을 가했다.
연신 완드를 휘둘러가면서, 아셰라가 짐짓 화가 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되나요, 안 되나요. 제자님, 말해 보라고요, 얼른.”
“──.”
“어? 대답 빨리빨리 안 해요? 더 혼나고 싶어요?”
“──!”
“그래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저한테 조금만 맞고 시작하도록 하죠.”
대답하지 않는 화이트의 태도가 그녀의 화를 더욱 돋우었을까.
그녀의 눈빛이 점점 더 살벌한 기세로 번뜩이기 시작하였으나.
‘……아니, 언령을 풀어줘야 무슨 말이라도 하지!’
화이트는 그저 억울했다.
대답을 하기 위해선 입을 열어야만 하는데, 정작 말을 들어야 할 당사자인 그녀가 언령을 풀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대답을 하라는 말인가.
화이트가 애써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그러한 의도를 전달하고자 했으나.
“표정 안 풀어요? 더 맞고 싶어요?”
퍼억!
“…….”
아셰라는 그저 한결같을 뿐이었다.
……그리고.
“……저게 뭐 하는 짓이란 말입니까, 각하?”
“…….”
그런 사제간에 이루어지는 육체의 대화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네 명이 있었으니.
리이칸테르 후작이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목소리로 테이칸에게 말을 걸었고.
“……묻지 말게, 나도 조금 혼란스러우니.”
그 자신의 아들이 그저 부끄러웠을까, 테이칸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나의 친우, 프리드리히여. 하나 질문이 있다만.]
“……뭐지?”
그리고 두 대마도사의 대화 역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새삼 우스운 광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으음…….]
잠시 고민하는 듯이 목소리를 늘어뜨리던 루시펠이, 이내 떠올랐다는 태도로 재차 입을 열었다.
[저게 그, 뭐라고 했던가. 가학 성애자인가, 피학 성애자인가 하는 그러한 것인가?]
“…….”
그리고 그가 꺼내든 한마디에, 프리드리히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으니.
“……제발 좀 닥쳐주면 안 되겠나, 루시펠.”
[음, 알겠다.]
프리드리히의 살기가 섞인 중얼거림에 루시펠이 즉각 대꾸하며 한 발짝 뒤로 몸을 물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