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귀환
“으음.”
“아, 일어났어요?”
“……스승님?”
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금빛 눈동자에, 화이트가 조금은 흐릿하게 중얼거렸다.
“네, 스승님입니다~”
아셰라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
그리고 그런 그녀의 대답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화이트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는 그.
다그닥, 다그닥!
시끄럽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화이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여긴 어디죠, 스승님?”
“어디긴, 마차 안이잖아요. 제자님은 그런 것도 몰라요?”
“……그걸 물은 게 아니잖습니까.”
화이트가 눈가를 씰룩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잠깐의 침묵.
그러나 곧, 화이트가 늦지 않게 입을 열었으니.
“……아파르는, 어떻게 됐죠? 확실하게 죽었습니까?”
“…….”
화이트의 조심스런 질문에, 아셰라의 표정 역시 살짝은 진지하게 변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라도 하는 듯이 아셰라가 약간 인상을 구겼고.
이내 그리 오래지 않아, 그녀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회색의 마왕 아파르는 죽었습니다. 제자님의 손에, 확실하게도.”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꺼낸, 화이트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게끔 하는 한마디에.
“그렇습니까…….”
마치 무척이나 안도했다는 듯이, 화이트가 깊은 숨을 골랐다.
아셰라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확실하게 죽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나요?”
“…….”
아셰라가 의미심장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화이트 역시 그 표정을 굳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이 감정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안도감, 혹은 피로감.
그도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허탈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 만도 하지 않겠나.
다행히 아파르는 분명하게 죽음에 이른 것 같았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화이트에게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는 모를 일이니.
아마 그 자신도 잘은 알지 못할 터였다.
그렇기에, 화이트는 그저 단조로운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기분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
“……솔직하게, 아파르를 확실히 죽였다는 사실에 잠깐 안도감을 느끼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자신에게로 다가온 감정의 파도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겠다고.
그리 덧붙이며, 화이트가 아련한 표정으로 말을 끝맺었다.
“…….”
잠시 다시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게 불편하지는 않았으나,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듯한 감각에 화이트가 이마를 짚었다.
‘……마나를 너무 많이 소모했나.’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테지.
고유 마법, ‘반영의 거울’을 사용해 잿빛의 맹세를 아파르에게로 되돌려 꽂아버리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으니.
한낱 7서클의 마나로는 해낼 수 없는 일.
그렇지만 그 자신이 그저 평범한 7서클에 불과하지는 않았기에.
그렇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아파르의 고유 마법을 역산해서, 술식을 개변하고, 방향을 돌려 끝내 아파르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슬슬 8서클에 올라야만 하는데.’
화이트가 얕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표정 위로 조심스레 떠오르는 감정은 분명한 초조함이었다.
8서클.
흔히 말하는, 대마법사 급에 오르는 최소한의 자격.
따지자면 화이트의 부친인 테이칸 클리포트가 그러했고, 동시에 아셰라가 테이칸에게 밝힌 경지이기도 하다.
테이칸이 아셰라를 신뢰하는 이유 역시 그러한 경지에서 비롯되었고.
“……스승님.”
화이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듣고 있어요~”
그에 아셰라가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대꾸했고, 화이트가 재차 말을 이어갔다.
“……그, 다름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척이나 조심스레, 그리고 조금은 그녀의 눈치를 보는 듯이.
“혹, 돌아가면 제게 잠시 어울려 줄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렇게 화이트가 꺼낸 한마디에, 아셰라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어울려달라는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걸까.
그에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을 느끼며, 화이트가 다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8서클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비록 제가 뛰어나다고는 해도, 대마법사 급의 벽을 넘는다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으니까…….”
“아하.”
화이트가 횡설수설 설명을 늘어놓았고, 그제야 아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수련을 도와달라는 말이군요?”
“……뭐, 말하자면 그렇습니다만.”
간단하기 그지없는 요약에 화이트가 조금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물론, 화이트의 의도와 완전히 부합되는 요약이긴 하였으나.
‘뭐지, 이 묘하게 부끄러운 기분은.’
화이트가 눈가를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응?”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묘한 태도를 눈치채지 못할 아셰라가 아니었으니.
그녀가 한 차례 비음을 흘리며, 은근한 표정으로 화이트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뭐예요, 제자님. 새삼스레 제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게 부끄러워지기라도 한 건가요?”
“……!”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재빠르게 그러한 기색을 감추며, 화이트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에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셰라가 짓궂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귀엽네요~’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품으며, 아셰라가 말을 이어나갔다.
“뭐, 딱히 어릴 때처럼 둘이서 오순도순 공부를 하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8서클에 오를 실마리가 필요한 게 아니었나요, 제자님?”
“……예에, 옳으신 말씀입니다.”
화이트가 애써 올라오려는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대꾸했고, 그에 아셰라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핫.”
한 차례 그 특유의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아셰라가 눈꼬리를 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흥미롭다는 듯이, 혹은 이 상황 자체가 재밌기 그지없다는 듯이.
“뭐, 좋아요. 하나뿐인 제자님의 부탁인데,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하아.”
겨우 떨어진 허가에, 화이트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8서클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기에.
‘물론, 혼자 오르고자 해도 오르지 못할 건 없겠지만…….’
실제로, 그는 이미 한 차례 그보다도 높은 경지에 오른 전적이 있었으니.
시간만 충분히 들인다면, 8서클의 벽을 넘어선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그렇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지.’
화이트가 얕게 혀를 차며 상념에 잠겼다.
그래, 8서클에 오르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축복받은 마나, 더해 찬란한 마법의 재능.
그러한 요소들은 필히 그 자신을 8서클에 올려놓는 것에 성공할 테지.
그렇지만, 과연 그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모될까.
‘……한시가 급해.’
실제로 화이트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반쯤 충동적으로 금색 마탑을 박살 냈을 즈음부터, 이미 복수의 길은 시작된 것이었다.
금색의 마왕이 죽은 이상, 12마왕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그런 만큼 중요한 건 제한된 시간이었다.
12마왕이 샤사르의 이름 아래 하나로 집결되어 일을 터뜨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마왕의 수를 줄여야만 했다.
“…….”
화이트의 눈동자가 약간의 불안감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12마왕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
그것에는 여러 가지 인과가 얽혀 있긴 하였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 복수 그 자체에 있지는 않았다.
……화이트의 시선이 조심스레 그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흑발의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래.
그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가치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것들은.
‘아셰라의 수호, 그리고.’
……그녀가 타락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끔 만드는 것.
최대한 안정적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고, 타락의 원인이 될 12마왕을 처리해 나가는 것.
복수는 그에 곁들이는 덤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라도 빠르게, 자신은─
“……스승님.”
“네?”
“…….”
곧바로 되돌아오는 아셰라의 대답.
그에 조금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화이트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쳐 보였다.
“……제자님?”
……그 미소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던 건.
과연 아셰라의 착각에 불과했을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묘한 직감에 눈가를 가늘게 좁히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올리고는 그녀의 찰랑이는 흑발을 거칠게 헤집는 화이트.
“……뭐, 뭐예요? 제자님, 이게 뭐 하는 짓이죠?!”
그에 당연하게도 아셰라가 얼굴을 화악 붉히며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으나, 화이트는 손을 움직이는 것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하하.”
“제자님? 제자님? 웃지만 말고, 이 무례한 짓에 관해서 설명이나 좀 해보시죠?”
“…….”
화이트는 그저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답하지 않았고.
“제자, 제자님? 진짜 맞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요? 어, 어어?”
심히 당황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만이 마차 내부에 고요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