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55화 (56/158)

(EP.55)기사단

‘호흡은 일정하고.’

쓰러진 화이트를 자세히 살피며, 아셰라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마나를 너무 많이 소모해서 탈진한 것뿐인가요.’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아직까지 8서클에 머물러 있는 자라고는 하나, 아파르 역시 엄연한 12마왕의 일원이자 언젠가 대마도사 급에 오르리라 예정된 강자였으니.

그런 자를 상대로, 화이트는 깔끔한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의 상태가 멀쩡했더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되리라.

‘……그리고.’

아셰라가 한 차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떠올리고 있는 건, 그 자신의 제자와 회색의 마왕의 전투 중에서도 마지막 순간이었다.

‘반영의 거울…….’

그녀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의 순간, 아파르의 고유 마법인 잿빛의 맹세에 직격하고 화이트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뛰쳐나갈 뻔했다.

그저 이성이 끊어지는 감각을 느끼며, 그 자신의 제자를 향해 검을 까딱여대는 아파르를 죽여버리기 위해.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아셰라의 이성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화이트였다.

잿빛의 맹세에 걸려, 그 자신의 마나가 아파르에게로 흡수되어 가고 있다는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텐데도.

그는 그저 입꼬리를 끌어 올릴 뿐이었으니.

‘무언가, 노리는 수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아셰라의 시선이 그 자신의 어깨에 얌전히 몸을 기대고 얕은 숨을 고르는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8서클, 그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평가받는 아파르의 고유 마법을 완벽하게 파훼하는 마법이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아셰라의 눈빛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품어지는 감정은, 놀라움이었고.

‘제자님의 마나 역시 그 순간에 가장 많이 빠져나갔었죠.’

그만큼 강력하고, 또 난이도가 아득히 높은 술식임이 틀림없으리라.

그녀의 눈으로 보았을 때도, 절대 7서클에 머물러 있는 화이트가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마법은 아니었기에.

어찌 의아함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시점에 있어서 그녀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은, 첫 번째가 제자 화이트였고.

두 번째가 그 제자인 화이트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었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괴물이 되어 돌아온 건지.’

피식-

아셰라가 얕은 웃음을 흘렸다.

“제자님, 제자님. 정말 괘씸하기 그지없는 제 제자님.”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힘없이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화이트의 볼을 쿡쿡 찔러댔다.

그에 한 차례 화이트가 미간을 찌푸렸으나, 다행히 깨어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모습에, 아셰라의 미소는 한층 더 짙어져만 갔다.

“…….”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뿐인 이 제자를 추궁하고 싶은 심정도 없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찌 그리 하겠는가.

‘말해준다고 했으니까.’

아셰라가 고요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조금은 쓸쓸한 눈웃음과 함께, 그녀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화이트의 머리를 향해 그 자신의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툭-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고, 화이트가 살짝 눈을 떨었으나.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셰라가 살며시 두 눈동자를 감기 시작했다.

‘……그 말해준다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니, 솔직히 자신의 제자 역시 그 정확한 시기를 계산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소중한 제자는, 이런 일로 거짓을 읊을 만한 자는 아니었다.

믿고 있기에.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는, 하나뿐인 제자였기에.

괘씸함에 볼을 부풀리거나, 가끔씩 스위치가 켜져 괴롭히는 일은 있을지 모르나.

아마 그녀 자신이 먼저 추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요.”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한쪽 눈만 슬쩍 떠서 화이트를 흘겨봤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 자신이 먼저 추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가 먼저 입을 열기를, 자신은 그저 기다리기만 할 테고.

그건 아마, 어지간한 대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을 진실이리라.

……그리고.

그리고.

“……그런 ‘어지간한 대변동’이라 함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셰라의 눈빛이 위태로운 빛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딘가 걱정스러운 기색 역시 묻어나는.

그런 모순적인 눈빛을 한 차례 빛내며.

“…….”

아셰라가 찬찬히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제자님이 그 비밀을 홀로 감싸 안고 있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

더 이상 그가 그 자신의 괴로움과 증오를 견디지 못하고, 틀어진 길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녀로서도 그저 가만히 방관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니.

“……그러니까, 늦지 않게만 얘기해달라고요.”

한 차례, 씁쓸한 기색으로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조심스럽게, 아셰라가 화이트의 새하얀 손을 맞잡았다.

어릴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굳은살 하나 없는 새하얀 손.

그러나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건 크기에 있을 것이다.

‘어느새 이렇게 멋지게 커져서는…….’

그녀 자신의 자그마한 손 정도는 전부 감쌀 정도로 커진 손을 조심스레 양손 안에서 굴리며.

아셰라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살며시 볼을 붉혔다.

그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녀 자신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할 것만 같았지만.

……대충이나마,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사랑에 빠진 소녀가 있다면 딱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조금은 자조가 섞인 웃음을 쿡쿡 흘리는 아셰라.

그녀가 조심스레 화이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화이트는 깨어나지 못한 채로, 그저 얕은 숨만 쌕쌕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쳐다보는 아셰라의 눈동자에, 묘하게 야릇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처음에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런 의문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제자님, 화이트.”

아셰라가 살며시 그 자신의 제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이내.

‘……조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약간은 위험한 생각을 속으로 품으며.

아셰라가 얄궂은 미소와 함께 천천히 화이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멈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쭉 나아갈 것처럼.

이윽고, 그녀가 서서히 눈을 감았고.

“…….”

끝내, 화이트의 이마에 살짝이나마 입을 맞추기까지에 이르렀으니.

“……하아.”

이내 살짝 화이트에게서 몸을 떼어내며, 조금은 달뜬 한숨과 함께 아셰라가 품은 생각이란.

‘못, 참겠는데.’

조금은 위태로운, 그런 이상야릇한 생각이었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서서히 위험한 기색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얕은 붉은 빛을 발하는 화이트의 입술이었으니.

“……제자님이 잘못한 거라고요.”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모를, 그런 말을 한 차례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끝내, 정신을 잃고 기절한 화이트의 입술에 그 자신의 입을 맞추려고 하는.

……바로 그때.

챙, 채채채채채챙!

“…….”

금속이 연신 맞물리는 듯한 불쾌한 소음과 함께, 한순간에 수많은 기사들이 두 사람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정체를 밝혀라.”

그리고 한 사내가 무거운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섰다.

기사의 갑옷을 착용하고, 그 한쪽 가슴에는 리이칸테르 후작가의 문장을 단 사내였다.

아마 리이칸테르 후작가의 기사단, 그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앉은 사내일 테지.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자들은 그 전부가 리이칸테르 가문의 기사단원일 것이고.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 속에서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면.”

……그래, 그건 분명한 진실일 것이라고.

“지금부터 네놈들에게 리이칸테르 가문에 저지른 죄를 물어 연행하도록 하겠다.”

“…….”

……적어도, 리이칸테르 기사단의 부단장인 윌리엄은 그리 생각했다.

기껏해야 소년소녀 둘.

비록 경지가 높은 마법사로 추정된다지만, 이미 한쪽은 마나를 소진해 탈진 상태에 빠진 듯하였고.

설령 그 경지가 7서클에 도달한 마도사 급의 최정상이라고 하더라도.

긍지 높은 리이칸테르 후작가의 기사단을 상대로는,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최소한 윌리엄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었다.

“……하.”

……그래.

적어도, 그 두 마법사 중 소녀 측이 한 차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기 전까지는.

“……뭐가 웃기지?”

윌리엄의 두 눈동자가 분노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 만하지 않겠나.

그 이유도, 정확한 시작점도 알 수는 없었으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두 마법사는, 분명하게 리이칸테르 가문의 저택을 반파시킨 테러범이었으니.

리이칸테르 후작가에 진실된 충성을 맹세한 그로서는. 분노하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늦게 와도 되었을 텐데.”

진심으로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오직 그만은 아니었기에.

“왜 하필이면, 이딴 타이밍에 등장하고 난리인가요. 리이칸테르 가문의 기사님들.”

소녀, 아셰라가 금빛 시선을 잔잔한 분노로 물들이며 입꼬리를 싸늘하게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여전히 의식이 없는 화이트를 조심스레 지면에 눕힌 채.

아셰라가 찬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다른 악감정은 없어요. 당신들에게도, 리이칸테르 후작가에게도.”

“……무슨 말을.”

“그렇지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문하는 윌리엄의 말을 끊어내며, 아셰라가 양손에 환한 푸른빛의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은, 분명한 원망의 빛이었으니.

“……하. 왜 하필, 진짜로. 이딴 타이밍에 등장해서, 저와 제자님의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고 X랄인가요.”

욕지거리까지 내뱉기 시작하는 아셰라.

천천히 그녀의 말투가 험악해져 가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제자인 화이트가 의식이 있었다면, 당장 리이칸테르 후작가의 기사들더러 검을 물리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일갈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리이칸테르의 기사들에게는 그녀의 감정을 읽어낼 만한 능력이 없었기에.

“……쳐라.”

그저 마나를 끌어 올리는 아셰라를 향해, 적대 의사가 있다고 간주하며 윌리엄이 그리 내뱉었고.

“예!”

리이칸테르 가문의 기사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셰라를 향해 오러를 내뿜기 시작했다.

“…….”

적어도 팔다리 한 둘 정도는 자르고 제압하려는 것만 같이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그들을 향해, 아셰라가 무기질적인 눈동자를 향하게끔 했다.

그래, 그 눈동자라 함은.

무감정하면서도, 동시에 모순적이게 분노의 감정을 띠고 있는.

실로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완전히 상반된 감정을 띤 눈빛이었으니.

“잠깐 제 화풀이에 어울려 주셔야겠습니다. 기사님들.”

그야말로 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아셰라가 그리 말을 끝맺었고.

바로 직후, 그녀가 양손에 머금고 있던 마나가 폭발적인 기세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완드를 꺼내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억제 장치였으나.

그걸 어찌 알아볼 수 있겠나.

당장 리이칸테르의 기사들은, 그녀를 처음 만난 자들 뿐일진대.

“최소 6서클, 혹은 7서클일지도 모른다. 방심하지 말고, 확실하게 제압해라!”

“…….”

뒤편에 서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윌리엄을 한 차례 빤히 쳐다보는 아셰라.

“……아하하.”

이내 그녀의 입가에는, 그야말로 환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떠올랐고.

바로 그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리이칸테르 가문의 저택은 그나마 멀쩡하던 부분까지 모두 파손되어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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