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48화 (49/158)

(EP.48)확정사항

“…….”

엘더리치, 루시펠이 프리드리히의 인도하에 회의실 외부로 빠져나간 이후.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슈나이더 백작이었다.

“애초에 리치의 무엇을 믿고 그의 말을 신뢰한단 말인가?”

“……그 말은?”

“처음부터 우리 제국을 분열시키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네.”

그가 꽈악 움켜쥔 의자의 팔걸이는 그의 악력에 의해 이미 반쯤 으스러져 있었다.

슈나이더 백작이 이를 갈며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리치의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그저 가장 기초적인 방비부터 하는 게 어떻겠나?”

“기초적인 방비라면…….”

“결계를 강화하는 걸세. 황궁만을 지킬 뿐만 아니라, 제도 전체를 감쌀 정도로 크게. 에드발트 경뿐만 아니라 지금은 은퇴하신 제국의 전 마법사 서열 1위, 카르세인 경도 다시 부른다면…….”

“기각, 그분은 너무 노쇠하셨네. 더 이상 현장에 나설 역량이 못 되신단 말이네.”

테이칸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에 케실 공작 역시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카르세인 경에 관해서는 나도 클리포트 공작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일세.”

“…….”

한 차례, 회의실 내부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누군가는 입을 열어야 하겠지만, 묘하게 입을 열기 힘든 그런 분위기가 사방에 맴돌았고.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표정을 굳히고 있는 건 밤피르 후작과 리이칸테르 후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루시펠이 입에 담은 두 가문의 주인이 바로 그들이었으니.

화이트가 턱을 괴며 조심스레 눈빛을 빛냈다.

개인적으로는 엘더리치, 루시펠이 거짓을 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굳이 말하자면 직감의 영역에 가까웠으나, 화이트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국의 중추에 12마왕의 마수가 뻗어져 있다는 것만은 명확했기에.

‘회귀 전, 스승님이 폭주하고 제국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무너졌다.’

국가 자체가 마비가 될 정도의 수준으로, 제국의 수뇌부들이 힘없이 쓰러졌다는 뜻이었다.

그건 그야말로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속도였고, 또 기이한 현상이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하나의 가능성이 부상하게 된다.

‘만약 12마왕이 그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암약했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게 납득이 된다.

제국의 대마도사 급 마법사, 프리드리히 에드발트가 그리도 빠르게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그 이외의 일곱 가문 역시 분열하여 합일된 행동을 보이지 못한 것 역시.

……그 모든 내막에, 12마왕의 존재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부여되어버리고 만다.

아마 그들은 아셰라의 폭주를 틈타 그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그런 짓을 했겠지만…….

피식-

다른 자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작게, 화이트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뭐 하나, 결국 스승님에 의해 그들 자신도 전부 쓸려나간 주제에.’

화이트의 표정 위로 혐오의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역겹다고 해야 할까.

그냥 단순하게 그들의 행동 자체가 역했다.

자신의 스승, 아셰라를 그런 상황에 처하게끔 벼랑 끝까지 몰아세워 놓고.

정작 그 자신들 역시 폭주한 아셰라의 무력과 마법을 감당하지 못해 쓸려나갔으니.

실로 멍청하지 않은가.

아둔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이트는 진심으로 그들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너희들은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고요한 살의의 빛이 화이트의 눈동자 위로 떠올랐다.

물론 아셰라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에 의해서겠지만.

그들은 끝내 처참한 몰락의 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그건 확정사항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라.

“…….”

한 차례 창밖으로 푸른 하늘을 슬며시 바라보며.

화이트가 살벌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닐지도…….”

정적으로 가득 찬 회의실 내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졌다.

“……지금 뭐라 했느냐, 에이단?”

케실 공작이 뒤편에 서 있는 그 자신의 아들을 향해 의아한 시선을 향하게끔 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이단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양 손을 공손하게 내저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에이단의 표정 위로는 어딘가 묘한 기색이 서려 있었으니.

“말해 보아라. 무언가 떠오른 게 있기라도 한 것이냐?”

케실 공작이 약간의 기대감을 담아 그리 물었다.

그 자신의 아들이 영특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혹시 아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불편한 침묵을 깨줄 번쩍이는 생각을 떠올리기라도 했을지.

“……그것이.”

에이단이 조금은 곤란하다는 듯이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어느새 회의실 내부의 전 인원이 에이단에게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에 어찌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차례, 에이단이 몸을 움찔거렸으나.

“……단순하게 생각해 보았을 뿐입니다.”

이내, 에이단이 결연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12마왕 중에는 그 정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자들도 상당하기에, 어쩌면 제국의 중추에 있는 인물이 그 일원일 가능성도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슈나이더 백작이 미묘하게 눈썹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긴 하나, 단순한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나? 근거가 없지 않나, 근거가.”

“…….”

슈나이더 백작이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리 물었고, 그에 에이단이 잠시 긴장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

아무리 공작가의 후계자라고는 하나, 슈나이더 백작이 보내오는 무거운 시선에 압박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반쯤 무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에이단이 재차 말문을 떼어냈다.

“……오히려 없는 게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슈나이더 백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국은 12마왕과 대적하는 가장 큰 국가이자 세력입니다. 그에 반해, 12마왕, 그 개개인은 하나같이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괴물들이지 않습니까.”

에이단이 마음을 다잡은 태도로 재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한 번 입을 열자, 말은 그야말로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제국의 내부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그 진정한 정체가 ‘12마왕’이라는 것을 숨기고.”

“어떠한 형태로, 제국의 중추로서 활동하고 있을지.”

“과연 저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추측이자, 필수불가결한 의심이지 않으냐며.

에이단이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고 그리 말을 끝맺었다.

“…….”

그리고 그렇게 에이단이 꺼내든 추측에, 회의실 내부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황제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고, 일곱 가문의 가주들은 그 나름대로의 감정을 얼굴 위에 띄운 채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에이단의 입을 통해 듣지 않아도, 어쩌면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12마왕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수백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수명의 한계를 돌파한 괴물 같은 마법사들이었으니.

그들이 작정하고 그 정체를 감춘다면, 당장 일곱 가문의 중추로서 활동하는 것도 마냥 무리는 아닐 것이다.

“…….”

에이단의 추측은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그야말로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기 그지없는 말들에.

그제서야 달아올랐던 감정들을 가라앉히며, 가주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에이단 케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아니, 분명하겠지.”

슈나이더 백작이 살짝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표정 위로는 씁쓸한 기색이 떠올라 있는 채였다.

“최소 8서클의 끝자락, 혹은 9서클에 도달한 대마도사 급 마법사가 작정하고 정체를 감추고자 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육감을 가지고 있어도 깨달을 수 없을 터.”

“그 말은…….”

“…….”

한 차례, 말을 끊으며.

슈나이더 백작이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일곱 가문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어떤 인물이, 어쩌면 정말로 12마왕일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이내 그가 무심한 어조로 내뱉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말에.

회의실 내부의 기온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아, 춥다.’

그저 표현이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일곱 가주들이 내뿜는 기세에 의해 회의실 내부는 점차적으로 차가워지고 있었기에.

에이단이 한 차례 싸늘한 공기에 몸을 떨었다.

‘……괜히 말을 꺼냈나.’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에이단이 가주들의 눈치를 살폈다.

‘건방지다고 찍힌 건 아니겠지.’

한 줄기의 식은땀이 에이단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실제로는, 에이단의 그러한 주장에 가주들은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으나.

그 자신이 내뱉은 말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그의 안 좋은 점 중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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