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리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결론은 금방 나왔다.
엘더리치, 루시펠의 제안은 수락.
그 기저에는 프리드리히 에드발트가 꺼내 든 신뢰의 한마디가 있었다.
“루시펠은 반쯤 미치광이에 가까운 마법사지만, 의외로 합리적인 사내일세.”
“그 말씀은…….”
“무언가를 감추고, 속이려 들 수는 있어도 거짓을 입에 담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
그건 굳이 말하자면 비슷한 말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표현이었으나.
그 미묘한 차이를 모를 정도로 지혜롭지 못한 자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프리드리히의 긍정적인 의견과 황제의 최종적인 수락으로 인해.
[크흐흐…….]
“…….”
엘더리치, 루시펠은 제국과 한동안 그 행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이 자리에 앉아도 되겠지. 안 그런가, 화이트?]
“……왜 내게 묻는 거지?”
프리드리히도, 황제도, 하다못해 다른 가주들도 아닌 자신에게 물어오는 루시펠의 모습에 화이트가 작게 인상을 찡그렸다.
구태여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가면서까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도 주변에 사람이 없는 시점도 아니고, 이렇게나 수많은 인물들이 이목을 이쪽으로 집중시키고 있는 순간에.
그건 그야말로 악의적이기 그지없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화이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말 걸지 마라, 리치. 네 그 음울한 음성이 무척이나 기분 나쁘니까.”
[크흐흐……. 내 앞에서 그리 당당하게 말을 꺼낼 수 있는 어린 놈은 몇 없을 것이다.]
루시펠이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며 사방을 둘러봤다.
“…….”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이트 역시 루시펠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으니.
황제와 크리스는 물론이고, 일곱 가문의 인물들 역시 루시펠과 그에게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화이트로서는 바라지 않았던 일이었고, 바라지 않았던 관심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이봐, 화이트. 제국은 손님에게 다과와 차 같은 것을 내어오는 간단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건가?]
“…….”
……지금 상황에서 가장 주요하게 지켜봐야 할 대상인 루시펠이, 그 자신에게로 연신 말을 걸어오고 있는 마당에.
다른 자들이 자신에게 흥미를 안 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로 일곱 가문의 후계자들은 물론이고, 그 가주들마저 놀라운 감정이 섞인 시선으로 자신과 루시펠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제발, 리치. 내게 말을 걸지 마라. 죽여버리고 싶어진다.”
화이트의 싸늘한 음성에 루시펠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어째서 그리도 거북해하는 거지? 비록 첫 만남이 유쾌하지는 않았다지만, 나는 너와 나름대로의 만담을 즐겼다고 생각했다만.]
“만담? 지금 만담이라고 했나?”
화이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으로 한 차례 헛웃음을 흘렸다.
만담, 만담이라.
그래, 푸른 번개와 검은 사슬이 거칠게 난무하던 현장은 둘째치고.
자신이 그와 나눈 대화가 정확히 무엇이었더라.
화이트가 눈을 슬며시 찌푸리며 곰곰이 기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
그리고, 고민은 그리 길지만은 않았다.
‘만담…….’
화이트가 천천히 그 단어를 곱씹으며 팔을 한 차례 두드렸다.
-이봐, 리치. 혹시 그 사고방식부터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음?
-그저 너 혼자서만 에드발트 경을 친우로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다.
-그랬던 건가? 그래서 이리도 나를 피하는 건가?
“…….”
어쩌면.
그래, 어쩌면.
그 표현도 마냥 틀린 건 아닌 게 아닐까.
화이트가 진지한 기색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가벼운 분위기였을지도?’
그런가?
그랬던 건가?
약간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며, 화이트가 턱을 괴었다.
대결계를 깨뜨리고자 한 범인, 혹은 침입을 시도하고자 한 적.
하물며 그 정체가 리치라면, 곧바로 그 현장이 피가 난무하는 전장으로 형태를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무척이나 의아한 일이지만, 진지하게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이 리치와 딱히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차례 품으며, 화이트가 어딘가 모르게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음?]
그리고 화이트가 입을 열었을 즈음, 루시펠은 어느새 시녀가 내온 다과를 입 너머로 쑤셔 넣고 있는 상태였다.
“……?”
그에 당연하게도 화이트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뭐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화이트가 한 차례 눈을 비비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해골 주제에 음식을 섭취하는 게 가능하다고? 어떤 형태로 흡수하는 거지?”
[아, 그것 말인가.]
화이트의 질문에 루시펠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입과 턱을 슬쩍 벌리며 그 안쪽을 보여주는 루시펠.
그가 검은 안광을 한 차례 휘날리며 웃음을 흘렸다.
[보이나? 내 육체를 이루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뼛조각이 아닌 것이지.]
“…….”
그리고, 그렇게 루시펠이 보여준 뼛조각 너머의 광경에.
뼛조각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붉은색을 발하는 육체 기관에.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불쾌한 기색으로 구겨졌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저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그리 확신하며, 화이트가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혀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나? 아니, 그보다는 리치가 된 이후로 만들어서 붙인 건가?”
[정답.]
턱을 닫으며, 루시펠이 다시금 다과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마법을 놓지 못하여 죽음을 거스르긴 했으나, 그렇다고 미각마저 포기하기에는 안타깝더군.]
“……그래서?”
왠지 그 뒷이야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으나, 우선 화이트가 그리 반문했고.
[한 5년쯤 연구를 진행했었던가. 나는 끝내 리치의 몸으로 미각을 느끼는 것에 성공했지. 마법으로 만들어 낸 혀를 뼈에 접착시키는 것으로 말이다.]
“…….”
돌아온 대답은, 그야말로 화이트의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의 표정 위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마법에 미쳐서, 마법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주제에.
미각은 놓지 못하겠다고?
아니, 그래서 리치의 몸으로 맛을 느낄 수 있는 육체 기관을 창조해냈다고?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화이트가 대놓고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크큭, 크하하하……!]
그에 루시펠이 폭소를 터뜨렸으나, 그럼에도 일그러진 화이트의 표정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아아……. 역시 재밌군, 화이트. 흥미롭기 그지없는 어린 놈이다, 너는.]
“그딴 흥미 필요 없으니 도로 집어넣어라. 다시 그 뼈마디 하나하나에 뇌전을 꽂아버리기 전에.”
오가는 말은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없었으나.
어째서일까.
그러한 두 존재의 대화가, 무척이나 오래된 친우 간의 대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물론, 루시펠 쪽에서 일방적으로 호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긴 했으나.
아무튼.
“……허어.”
그러한 광경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그 불멸의 엘더리치를 상대로, 저런 대화가 성립이 된다고?”
케실 공작이 입을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이내 그의 시선이 뒤편의 프리드리히에게로 향했다.
“……에드발트 경. 저 둘의 대화를 그저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 겁니까?”
─위험하지는 않겠느냐.
케실 공작의 말에 담긴 속뜻은 그러한 것이리라.
그리고 프리드리히는 그 속뜻을 분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으나.
“걱정하지 말게.”
“예……?”
그는 그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오히려 허허로운 미소마저 입가에 건 채로, 프리드리히가 화이트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빛냈다.
“루시펠으로서도 저 소년, 화이트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 말씀은?”
잘 이해를 하지 못했기에, 케실 공작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되물었으나.
프리드리히는 그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이, 그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프리드리히의 잔잔한 시선이 오롯이 화이트에게로 꽂혀 들었다.
‘경지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아 했었지.’
그렇다면 자신은 그런 그의 의지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하나 꼽자면, 그건 그저 단순하게.
자신이 저 소년과 척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
한 차례, 프리드리히의 눈빛이 심상치 않을 기색으로 빛났다.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건, 어느 한 흑발의 소녀의 모습이었으니.
‘……화이트의 뒤에 있을 그녀를 생각해서라도, 그를 존중해줄 가치는 충분하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
아무리 제국의 대마도사이자, 실질적인 대륙 마법계의 리더인 자신이라고는 해도.
그런 자신을 압도하는, 적어도 자신보다 반 수는 앞서 있을 대마도사 급 마법사와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
프리드리히가 조금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다시금 화이트를 바라봤다.
최소 7서클, 혹은 그 이상.
10대의 나이로 대마법사 급의 경지를 앞두고 있는,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한.
한마디로, 괴물이라 불러야 마땅한 소년.
……그가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대마도사 급의 마법사에 오르는 것 역시 시간 문제일 터.
자신이 궁금한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어쩌면, 네 재능이라면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프리드리히가 잔잔하고도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대마도사 급 마법사.’
다르게 말하면, 마법의 한계점이라 불리우는 9서클.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지고의 경지에.
어쩌면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소년이라면, 저 소년의 재능이라면.
그에 더해, 자신을 압도하는 대마도사 급의 소녀가 그를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
제국에, 클리포트 공작가에.
새로운 대륙의 정점이 탄생하는 것도.
“허허.”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에드발트 경?”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웃음의 의미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케실 공작은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으니.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프리드리히가 잔잔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