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통성명
[…….]
엘더리치는 침묵했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뭐였을까.
분명 그 자신은, 제국의 인물들에게 자신의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을 텐데.
그 바로 직후.
푸른빛이 한 차례 선명하게 번쩍였고.
[……이게, 무슨.]
엘더리치의 입에서부터 경악이 섞인 음성이 새어 나왔다.
한 차례 몸을 비틀거리는 엘더리치.
마치 마비라도 된 것처럼, 그는 그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봐, 리치.”
[……!]
그리고 그런 리치를 향해, 화이트가 고요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기등등한 눈동자를 섬뜩하게 번뜩이면서 말이다.
“……내가 말이야, 일생일대의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단 말이지.”
[……?]
리치의 해골 바가지 위로 황당한 감정이 조심스레 떠올랐다.
……지금 이 어린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
방금 전의 그 푸른 번개는, 이 어린 아이가 시전한 마법인가?
리치의 표정이 서서히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 갔고.
“그걸 네가 방해한 거야.”
그런 리치의 기색에는 일절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화이트가 잔잔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할 준비는 됐냐? 리치.”
짤막하게 말을 끝맺으며, 화이트가 그 자신의 오른손에 푸른빛의 번개를 머금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스파크가 튀기며 사방을 환하게 밝혔으나.
[무슨…….]
적어도 엘더리치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7서클? 7서클이라고?]
리치가 경악 섞인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
그야말로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리치가 안광을 떨어댔고.
그런 그를 향해 오연한 시선을 향하게끔 하며, 화이트가 손을 말아쥐며 총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네가 어디서 뭘 하던 리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자, 잠깐.]
“그 불멸이라 불리는 서쪽의 엘더리치가 아닌 이상, 내 뇌전을 두 번씩이나 받아내지는 못하겠지.”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리는 화이트.
“……그럼.”
이내 그의 얼굴 위로 진중한 기색이 떠올랐고.
“잘 가라, 리치.”
화이트가 짧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검지에 머물러 있던 푸른빛의 번개가 점차적으로 살벌한 빛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
이윽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콰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화이트가 리치를 향해 섬뜩한 푸른빛을 발하는 번개를 쏘아 보냈고.
[……허, 허허.]
그 자신에게로 올곧게 날아들어 오는 번개를 마주 보며, 리치가 허탈한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별 신기한 어린놈을 다 보는군.]
그리고, 그다음 순간.
화아아아악!
“……!”
리치의 전신에서부터 어둡기 그지없는 검은 마나가 폭발적인 기세로 터져 나왔으니.
[첫 번째 공격을 성공시켰다고, 나를 지나치게 얕보는구나.]
그 안광을 살벌하게 번쩍이면서, 리치가 뼈마디를 뚜둑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우웅-
이내, 그의 손가락에 검은빛의 마나가 하나의 점으로 응집되기 시작되었고.
[두 번은 당해주지 않는다. 어린 신성(新星)이여.]
콰가가가가가가각!
손가락의 끝부분에서부터, 칠흑과도 같은 빛깔의 사슬이 튀어나왔으니.
화이트의 푸른빛 번개와, 엘더리치의 검은 사슬이 서로를 향해 거칠게 날아들어 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다음 순간.
채 수초가 지나지 않아 두 마법이 중간지점에서 맞부딪혔으니.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번개와 사슬이 서로를 거칠게 옭아매며, 거대한 굉음을 만들어냈다.
*****
“…….”
[…….]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었고, 그 중앙에 선 채로 화이트와 리치가 서로를 직시했다.
‘……내 뇌전을 이렇게 가볍게 상쇄해 낸다고?’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리치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조금 더 위협적인 방향으로.
‘대결계에 손상이 생겼기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는 예상했다지만.’
그 검은 사슬과, 어둡기 짝이 없는 마나.
……그것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였으니.
[크흐흐…….]
“…….”
화이트의 상념이 하나의 결론으로 끝맺어질 즈음, 리치가 불쾌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자연스레 화이트의 인상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뭐가 재밌지? 엘더리치.”
어느새 그를 부르는 호칭이, 단순한 리치에서 그의 진정한 정체를 뜻하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용케 알아봤구나, 어린 아이야.]
“……모를 수가 있나. 그 짙은 검은 마나를 보고도.”
[크큭, 그것도 그런가…….]
한 차례, 리치가 말을 늘어뜨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어떤가? 잘 보았나? 리이칸테르와 클리포트여.]
“…….”
화이트가 개입하기 직전까지, 그 자신과 대치하고 있던 두 사내였으니.
테이칸의 표정이 자연스레 심각한 기색으로 굳어졌다.
“아.”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의 표정도 미묘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테이칸의 존재감을 눈치챈 것일까.
화이트의 새하얀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질렀나?’
아니, 물론 분노가 솟아올라 반쯤 무지성으로 번개를 내리꽂긴 했지만.
……설마하니, 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었을 줄은.
“아들아?”
“……예, 아버지. 어찌하여 부르십니까?”
테이칸과 화이트가 서로를 향해 오묘한 시선을 한 차례 교환했다.
[호오…….]
그리고 그런 두 부자의 시선 교환에, 엘더리치가 묘한 탄성을 흘렸으니.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어린놈이 튀어나왔는가 했더니, 클리포트의 아이였나. 참으로 특이하기 짝이 없는 가문이로다.]
리치의 중얼거림에 화이트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탁 짚었다.
“……잠깐. 좀 닥치고 있어봐라, 엘더리치.”
[크큭, 그러도록 하지…….]
화이트의 말에 의외로 간단하게 물러나는 리치.
마치 부자끼리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기라도 하라는 듯이, 리치가 몸을 슬며시 뒤로 빼냈다.
“참 고마운 배려군…….”
그에 한 차례 입매를 비틀며, 화이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
“…….”
그리고 이내, 테이칸과 화이트가 다시금 서로를 향해 오묘한 눈빛을 던지기 시작했다.
“공작 각하.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소년은 각하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만…….”
리이칸테르 후작의 질문에 테이칸이 자신이 없다는 듯이 오묘하게 대꾸했다.
화이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뿐인 아들을 못 알아보는 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답니까?”
화이트가 최대한의 불쾌함을 담아 그리 내뱉었으나.
“음, 저 건방진 어투를 보아하니 내 아들이 틀림없구나.”
“…….”
정작 돌아온 건 그런 테이칸의 태연하기 그지없는 대꾸였고.
자연스레 화이트의 이마에 한 차례 힘줄이 돋아났다.
“허허. 왜 그러느냐, 아들아. 하나뿐인 아버지에게 보낼 만한 눈빛은 아니구나.”
“……제 눈빛이 뭐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번개를 내리꽂을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
테이칸의 농담조의 한마디에, 화이트가 눈가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일이 귀찮게 됐네.’
……속으로는 조심스레 상황을 파악해나가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화이트의 시선이 잔잔하게 사방을 훑어나갔다.
우선은 엘더리치.
‘저 해골바가지는 일단 차치해두고서라도.’
재빠르게 돌아가는 시선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 그리고 리이칸테르 후작…….’
화이트의 미간이 슬며시 좁혀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느꼈을까.
화이트가 조심스레 시선을 상공으로 향하게끔 했다.
“…….”
“…….”
……흐릿한 형체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한 소녀와 화이트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어떻게 해야 하죠?’
화이트가 전언 마법으로 그리 물었으나.
‘그걸 왜 제게 묻나요, 제자님.’
돌아온 대답은 그야말로 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기에.
그럼에도 최대한의 희망을 담아, 화이트가 그 자신의 스승을 향해 흔들리는 시선을 향하게끔 했다.
‘좀 도와주시죠. 정작 같이 와놓고 혼자 은신 마법으로 쏙 빠져나간 주제에.’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실까.’
아셰라가 쿡쿡 웃음을 흘렸고, 그에 화이트가 애써 미소를 지어내 보였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저랑 같이 텔레포트로 빠져나가실래요?’
‘응, 싫어요.’
‘…….’
아셰라의 즉답에 화이트가 눈가를 조심스레 짓눌렀다.
‘아니, 스승님. 하나뿐인 제자가 일생일대의 위험에 빠졌는데, 조금의 도움조차 못 준다는 말씀입니까?’
‘아하하, 일생일대의 위험은 무슨. 그냥 제자님의 경지가 조금 탄로 난 것뿐이잖아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 않습니까!’
화이트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아셰라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아셰라는 그저 짓궂은 미소를 입가에 걸 뿐이었으니.
‘그럼, 잘 해결해봐요? 저도 여기 더 있다가는 저 엘더리치가 은신 마법의 위화감을 눈치챌 것 같으니,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스승님? 스승님?’
화이트가 급히 그녀를 불렀으나, 이미 그녀는 결정을 내린 뒤였다.
‘얍, 텔레포트!’
파앗!
짤막하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아셰라의 형체가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 아셰라……!’
한 발짝 늦은 화이트의 공허한 외침만이 조용히 울려 퍼질 뿐이었으니.
“…….”
화이트가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흐음.]
……그리고 그쯤에서, 엘더리치가 다시금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부자간의 대화는 잘 끝났나?]
“…….”
화이트가 묘하게 살기가 섞인 시선을 고요하게 리치에게로 향하게끔 했다.
[……?]
그에 잠시 의아함을 느끼는 엘더리치였으나.
[음.]
이내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을까.
리치가 턱을 괴며 화이트를 향해 오묘한 안광을 한 차례 빛냈다.
[이렇게 된 거, 통성명이나 하지 않겠나? 클리포트의 아이야.]
“…….”
화이트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졌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기색에는 상관하지 않은 채, 엘더리치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으니.
[나는 서쪽의 엘더리치, 루시펠Lucifel이라고 한다. 동시에 모든 리치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불멸의 마법사이자, 너희들이 따르는 제국의 대마도사, 프리드리히 에드발트의 오랜 친우이기도 하지.]
엘더리치가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끝맺으며, 다음은 너라고 말하는 듯이 시선을 화이트에게로 던졌다.
“…….”
화이트의 눈동자가 천천히 싸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