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리치
“…….”
황궁을 지키는 대결계에 균열이 난 지점.
황궁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어느 외곽에서, 두 사내와 로브를 쓴 괴인이 대치하고 섰다.
“오랜만이군요, 각하와 이렇게 합을 맞추는 건.”
“수년만이던가. 지금껏 우리 둘이 나서서 상대할 만한 적은 없었으니 말이네.”
리이칸테르 후작의 말에 테이칸이 얕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
그리고.
그런 두 사내를 지켜보는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이 하나 있었으니.
검은색 로브를 지나칠 정도로 깊게 뒤집어쓴 그가, 천천히 입꼬리를 섬뜩하게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자, 그럼.”
후욱!
리이칸테르 후작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대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하는데, 가능하면 불필요한 저항은 없었으면 하는군.”
그리 말하면서, 후작이 그 자신의 장검에 환한 황금빛의 오러를 담기 시작했다.
대마법사 급과 최소 동급.
8서클에 오른 테이칸 클리포트와 함께, 제국을 지키는 두 기둥이라고까지 불리는 리이칸테르 후작이 서서히 그 자신의 기운을 끌어 올렸고.
그에 맞춰서, 로브의 괴인이 처음으로 움직임을 보였다.
스윽-
“……?”
그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리이칸테르 후작과 테이칸의 표정이 묘해졌다.
마나를 끌어 올리는 것도 아니고, 검이나 창을 꺼내 드는 것도 아닌.
그저 단순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게 다란 말인가?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이냐.
……라고, 리이칸테르 후작이 말을 내뱉으려 하는 그 순간.
“……!”
“……!”
리이칸테르 후작은 물론이고 테이칸의 표정마저 한순간에 굳어졌다.
“……네놈, 손이.”
후작의 시선이 괴인이 들어 올린 오른손에 고정되었다.
……피부가 없었다.
아니, 피부만 없었을까.
그 밑에 자리를 잡고 있을 근육, 신경을 비롯한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단 하나, 뼈만을 제외한다면.
테이칸 클리포트가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며 양손에 강렬한 마나를 담기 시작했다.
“네놈, 인간이 아니군.”
금방이라도 그 괴인을 향해 마법을 폭발시킬 듯이 위협적인 기세를 뿜어대며, 테이칸이 말을 내뱉었고.
[……크흐흐.]
“……!”
대답이 돌아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그 목소리를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귀를 미묘하게 긁어대면서, 무척이나 불쾌하고도 거슬리기 짝이 없는.
마지막으로, 절대 인간의 목에서 나올 만한 음성이 아닌 것만 같은.
“망자(亡者)인가.”
……그건, 죽은 자의 목소리였다.
테이칸이 오히려 한결 표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적의 정체가 명확하게 파악된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후작.”
“예, 각하.”
테이칸의 부름에 리이칸테르 후작이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 그런 후작과 한 차례 눈을 맞추며, 테이칸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리치Lich일세, 저 자의 정체는.”
“……!”
리이칸테르 후작이 놀란 기색으로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리치Lich.
다르게 말하면, 마법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
……그 개체도 몇 없을뿐더러, 그마저도 제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존재들이었다.
“……정확하게 특정이 가능하시겠습니까?”
후작이 물었고, 그에 테이칸의 표정이 살짝 미묘해졌다.
“글쎄……. 정확한 건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네만.”
“하긴, 그도 그렇군요.”
고개를 한 차례 주억거리며, 후작이 검을 일자로 세워 들었다.
“그럼 저 로브부터 벗겨보도록 할까요. 정체를 특정하는 것에 있어서 한결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정확하네. 자네가 먼저 들어가면, 내가 후방에서 지원하도록 하지.”
“하하. 오랜만에 각하와 합을 맞추게 돼서 그런지, 묘하게 흥분되는 느낌이군요.”
“……지나친 흥분은 좋지 않아. 자네의 안 좋은 점이지 않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
테이칸의 표정이 살짝 미묘하게 걱정으로 물들었고, 그런 기색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파앗!
리이칸테르 후작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정면을 향해 달려나갔다.
결계를 넘어, 그 바로 앞에 서 있는 검은 로브의 괴인에게.
정확히는, 리치를 향해.
“……하압!”
짧은 기합과 함께, 리이칸테르 후작이 검을 일자로 곧게 뻗었다.
우웅-
그에 맞춰서 후작의 오러가 파직거리며 스파크를 튀겨댔고.
이내.
쩌어어어어어어어엉!
커다란 굉음과 함께, 후작의 검이 리치의 심장을 향해 정확하게 직격했다.
“……!”
그러나.
[크흐흐흐…….]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묘하게 태연하기 그지없는 리치의 음성에.
리이칸테르 후작이 급히 검을 뒤로 빼내며 몸을 물렸다.
“…….”
후작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금의 그 묘한 기척은, 대체.
[이번 대의 리이칸테르의 가주인가. 나름 경지에 오르긴 했다만…….]
“…….”
리치가 다시금 입을 열었고, 그에 리이칸테르 후작이 인상을 팍 구겼다.
[아직 부족해. 조금 더 성장하지 않으면 내게 네 검이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헛소리.”
콰앙!
단 한마디로 가볍게 리치의 말을 일축하면서, 리이칸테르 후작이 발로 지면을 거칠게 짓밟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금 전신에 오러를 두르면서.
“깨달은 척, 지고의 경지에 오른 척하는 것이 리치의 전유물 아니었나? 새삼스레 그런 말에 동요할 정도로 나는 어리지 않다.”
살기를 가득 담아 눈빛을 번뜩이며, 리이칸테르 후작이 검을 일자로 내리그었다.
[어리석기는…….]
그에 이번에는 리치 역시 눈에 띄게 움직임을 보이는 모습.
느긋한 움직임으로 한쪽 손, 아니, 정확히는 뼈를 들어 올리며.
우웅!
리치가 로브 속에 숨겨져 있는 안광을 거칠게 번뜩였다.
[후배에게 한 수 가르쳐 주도록 하지, 크흐흐…….]
“검을 쓰는 놈도 아니면서 말이 많군.”
그리고, 바로 직후.
쩌어어어어어어엉!
리이칸테르 후작의 황금빛 오러가 담긴 장검과, 칠흑 같은 마나를 품은 리치의 뼈로 이루어진 손이 맞부딪혔다.
*****
“……저기 계시는데.”
핏빛 안광을 번뜩이며, 오르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양손을 쾅쾅 부딪히며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있는 율리안과, 차분하게 표정을 가라앉힌 채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세레나의 모습이 오르카의 시야에 잡혔다.
“페르시아도 뒤따라 오고 있는 것 같고. 에이단이랑 조슈아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
짧게 중얼거리며, 오르카가 다시금 정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 잡힌 광경에, 오르카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어, 잠깐. 지금 리이칸테르 후작 각하가 검을…….”
“……!”
그리고 그 짧은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소녀가 한 명 있었으니.
세레나가 급히 고개를 치켜들며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콰앙!
“……읏, 잠깐. 세레나!”
지면을 거칠게 박차고 달려나가는 세레나의 모습에, 오르카가 허탈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도 괴물은 괴물이라니까. 그 화이트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
“뭐, 훗날 검에 있어서 일인자의 자리에 오를 거라고까지 평가되는 녀석 아니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
“아, 깜짝아.”
어느새 옆에 접근한 율리안의 한마디에 오르카가 살짝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금방 침착을 되찾으며, 오르카가 슬며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어디 보자, 리이칸테르 후작께서 어떤 이상한 놈한테 검을 휘두른 것까지는 보였는데…….”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오르카가 작게 비음을 흘렸다.
“흐음, 먼지구름에 감싸여서 잘 안 보이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봐야 하나.”
오르카가 짧게 중얼거렸고, 그에 율리안이 금방 반응을 보였다.
“그럼 가보면 되지 않겠나. 망설일 이유가 있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콰앙!
“……어, 야?”
율리안이 지면을 걷어차듯이 하며 달려나갔다.
“하아……?”
그에 얼떨결에 혼자 남게 된 오르카.
그녀가 붉은 머리칼을 한 차례 흩날리며 혀를 찼다.
“나도 한 막무가내한다고 생각했는데, 저 녀석들은 더 하네. 정말이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 역시 속도를 한층 더 높이는 모습이었다.
다시금 그 자신의 육체를 핏물로 전환시키며, 오르카가 재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
“…….”
현장에 제일 일찍 도착한 세레나 리이칸테르.
그 금발을 바람에 휘날리게 하며, 그녀가 눈을 잘게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건 어째서였을까.
그녀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오른 자들의 전투에, 그들이 뿜어대는 기세에 경직하고 만 것일까.
“……아버지?”
아니었다.
세레나의 시선은, 어느 한 사내에게로 고정되어 있었으니.
“……커헉.”
세레나의 시선을 받아내는 사내, 리이칸테르 후작이 한 차례 핏물을 토해냈다.
“……아, 아버지!”
그에 화들짝 놀라며 세레나가 급히 그에게로 접근하고자 했으나.
“오지 마라.”
“……!”
그런 그녀를 테이칸이 손을 내미는 것으로 제지했다.
리이칸테르 후작을 보호하듯이 감싸며, 테이칸이 한쪽 손에 대량의 마나를 응집시켰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테이칸의 손바닥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으니.
8서클의 대마법사 급, 테이칸 클리포트의 대명사인 화염계 마법이었다.
[…….]
그러나.
비록 적당히 견제의 의미로 쏘아보낸 폭발이었다고는 하나, 그 8서클의 테이칸 클리포트가 사용한 폭렬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일말의 상처조차 없었으니.
우웅-
어느새 칠흑과도 같은 빛깔의 검은 방어막이 구의 형태로 리치를 지키듯이 감싸고 있었다.
[모자라다.]
“……네놈.”
[모자라, 한참 모자라…….]
“…….”
리치의 중얼거림에 점차적으로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자신의 검은 안광을 거칠게 번뜩이며.
[나를 상대하려면 네가 직접 왔어야 하지 않겠나! 내 친우, 프리드리히 에드발트여─!]
“……!”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리치가 사납게 소리를 내지름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부터 어둡기 그지없는 마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캬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악!
“……무슨, 저건.”
리치의 중심으로, 서서히 지면이 돌출되기 시작했으니.
[네가 직접 나를 맞이하지 않겠다면, 내 강제로 네 결계를 찢어발기고 들어가도록 하지.]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수많은 망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리치의 주변에서부터 새하얀 해골들이 하나둘 솟아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