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대결계
“……!”
벌떡!
“그러니까, 슬슬 쓸데없는 탁상공론은 그만두고……. 에드발트 경?”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프리드리히의 모습에,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
그러나 그렇게 모인 의문 섞인 시선들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는 그저 창밖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자연스레 의문은 증폭되었고, 그에 황제가 직접 묻기까지에 이르렀으니.
“…….”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프리드리히가, 이내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채로 입을 열었다.
“결계에 누군가가 접근했습니다, 폐하.”
“……!”
황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결계에 누군가가 접근했다고……?”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듯이, 황제가 의구심 섞인 목소리를 중얼거렸고.
“……황궁의 대결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드발트 경?”
케실 공작이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물었으니.
“음…….”
잠시 침음성을 한 차례 흘리는 프리드리히.
이윽고 그가 눈빛을 진지하게 빛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 감지 마법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렇다네.”
“……!”
확실하게 공언하는 프리드리히의 태도에, 좌중의 모든 자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황제는 물론, 일곱 가문의 가주들과 그 후계자들까지.
회의실 내부에 한 차례 폭풍전야와도 같은 정적이 흘렀고.
이내 말문을 떼어내어 침묵을 깨뜨린 건, 테이칸 클리포트 공작이었다.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에드발트 경의 결계는 악의를 품은 자에게만 반응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테이칸이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제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공작 각하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에드발트 경.”
리이칸테르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의를 표했다.
“그 명확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더라도, 그자가 악의를 품고 결계에 접근했다면 한시가 급합니다.”
스릉!
그렇게 한 차례 말을 끊으며, 리이칸테르 후작이 그 자신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무슨 연유로 그리도 가만히 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서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자신이 직접 나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리이칸테르 후작이 그리 말을 끝맺으려 하는 그 순간.
“──.”
한 차례, 그 두 눈동자에 이채가 서리게끔 하며.
“이미 늦었네.”
프리드리히가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었고.
바로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거대한 굉음이 황궁 전체를 거칠게 울리게끔 만들었으니.
“……쿨럭.”
“에, 에드발트 경!”
결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검은 피를 내뱉은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괜찮네.”
달려오려는 다른 자들을 제지하며, 프리드리히가 소매로 입가를 거칠게 닦아냈다.
“후우…….”
그러고는 조심스레 한쪽 벽면에 등을 기대는 프리드리히.
이내 그가 두 눈을 살며시 감으며,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우웅-
“……결계가.”
프리드리히의 마나가 서서히 움직임에 따라, 황궁의 대결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아아아-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균열을 일으키던 결계가 천천히 수복되기 시작했고.
“……결계는 내가 어떻게든 유지할 테니, 이제 나가보도록 하게나. 흉수를 잡는 건 그대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
프리드리히의 나직한 한마디에, 좌중의 모두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예, 에드발트 경!”
팟!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리이칸테르 후작과 테이칸 클리포트였으니.
각자의 검과 마나를 손으로 움켜쥐며, 두 가주가 재빠르게 결계를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그들을 뒤따라 다른 가문의 가주들 역시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그 본신의 무력은 연약한 케실 공작만을 제외하면, 회의실 내부에는 후계자들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도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붉은 머리카락을 한 차례 찰랑거리며 오르카가 눈을 흘겼다.
“나는 오르카의 의견에 동의.”
“…….”
스릉!
율리안 슈나이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으며, 세레나는 그저 말없이 그 자신의 레이피어를 꺼내 들 뿐이었다.
“……잠, 잠시만.”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에, 에이단이 급히 제동을 걸었다.
“너희들. 일단은 조금 침착하고 상황을 살핀 뒤에 움직여야 한다고는 생각 안 해?”
가주들이 결계로 향한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에이단의 말은 무척이나 합당하기 그지없었으나.
“아하하. 글쎄, 일단 움직이고 난 뒤에 생각하는 게 내 특징이라. 미안해, 에이단.”
슈욱!
“……오르카?”
에이단의 부름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 육체를 핏물로 전환시켜 순식간에 회의실 내부를 빠져나간 오르카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에이단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불길한 감각이 전신을 엄습해 왔기에, 에이단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오르카는 둘째치고, 그렇다고 너희들까지 지금 움직이면─”
“미안하다, 에이단. 나는 가봐야겠어.”
“……뭐?”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저 평온하기 그지없는 율리안의 짤막한 한마디였다.
콰앙!
“……윽!”
율리안이 바닥을 박차며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고, 그에 한 박자 늦게 세레나 역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가겠어. 넌 여기 남아있던가.”
“……야, 야. 너희들 진짜!”
후욱!
슬슬 열이 뻗쳐올라오기 시작했기에, 에이단이 눈가를 짓누르며 무어라 말을 내뱉고자 했으나.
이미 세레나는 재빠르게 결계를 향해 뛰쳐나간 이후였다.
“…….”
에이단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작게 벌렸다.
……지금 이게 무슨 생각 없는 짓들이란 말인가.
저 녀석들은 진짜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그 에드발트 경의 결계에 균열이 생길 정도의 공격이 황궁에 가해졌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대결계의 특수성 때문이라고는 하나, 에드발트 경조차 직접 움직이지 못하는 마당에.
“……너희들이 가서 대체 뭘 하겠다고.”
에이단이 짓씹듯이 내뱉으며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열이 확 올라오며 전신을 뜨겁게 달구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가주들께서 먼저 출발하지 않았는가.
그 클리포트 공작과 리이칸테르 후작이라면, 어지간한 적은 그들의 선에서 처리가 될 터.
와중에 다른 가문의 가주들까지 그들을 따라갔다면, 설령 그 상대가 12마왕 중 하나라고 해도 상대가 가능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그 적의 마왕이라도 직접 나선 게 아닌 이상, 아직 어린 자신들까지 나설 이유가 없을 터.
“…….”
……그건 무척이나 합리적인 생각이었고, 동시에 논리적이기 그지없었으나.
그러한 것들을 에이단이 채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세 사람이 떠난 상태였으니.
“에이단 공자.”
“……어, 뭐?”
에이단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뒷목을 붙잡고 있는 도중, 뒤편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에이단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고, 그런 그를 향해 페르시아가 얕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하하…….”
그건 실로 수려하기 그지없는 미소였으나.
“……아니, 아니지?”
막상 그런 미소를 받아내는 당사자인 에이단은, 어째서인지 묘한 불길함을 느껴야만 했다.
아니, 설마.
아무리 그래도, 나름대로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그녀마저 움직이지는 않을 터.
……그런 희망을 담아, 에이단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마저 빠져나가겠다고 말하지는 말아줘. 저 막무가내 세 사람만으로도 나는 이미 머리가 터질 것만 같으니까.”
“……음, 으으음.”
페르시아가 한 차례 불편한 기색으로 침음을 흘리며 에이단의 시선을 피해냈다.
“…….”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에이단은 모르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그의 표정 위로 절망감이 떠올랐고.
“……미안해요, 에이단 공자. 다친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 저도 따라가 봐야겠어요.”
“…….”
차마 무어라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에이단을 뒤로 한 채, 페르시아가 회의실 내부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자연스레, 회의실 내부에 남은 후계자는 에이단과 조슈아뿐이었으니.
“……조슈아.”
“뭐지? 케실 가문.”
여전하게 묘하게 거리를 두는 듯한 호칭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에이단이 마지막 희망을 담아 조슈아를 향해 떨리는 시선을 옮겼다.
“…….”
“…….”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에이단이었으나, 그 시선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할 조슈아가 아니었기에.
“하아…….”
잠시 인상을 찡그리던 조슈아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알았다. 나는 만약의 상황을 위해 남아있도록 하지. 어차피 우리들이 가봤자 별 의미도 없을 테고.”
“아……!”
에이단이 반색했다.
그야말로 최후의 희망을 만난 어린양이라도 된 듯이, 에이단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조슈아를 쳐다봤다.
“……기분 나쁜 눈빛이군. 좀 치우지그래.”
정작 그런 시선을 받는 조슈아의 반응은 그저 떨떠름하기 그지없었으나, 아무튼.
그렇게 회의실 내부에는 프리드리히와 황제를 포함해 총 6명만이 남게 되었고.
“……재밌는 친구들을 만났구나, 크리스.”
“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꺼내 드는 황제를 향해 크리스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친구, 요?”
“그럼 아니더냐?”
“…….”
크리스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한 차례 고개를 이리저리 틀며 연신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
이내 그녀의 시선이 에이단에게로 향했다가, 조슈아에게로 향했다가.
“…….”
……마지막으로 결계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다른 후계자들에게 닿으며 멈춰섰다.
그러고는, 이내.
“……그럴지도요.”
“음.”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건 채 크리스가 고개를 한 차례 까딱거렸고, 그에 황제의 표정이 약간은 편안해졌으니.
어딘가 훈훈한 분위기가 부녀간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안심이군.’
‘……화이트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정작 그런 두 부녀의 생각은 조금 엇갈려 있었으나.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황제와 크리스가 각자의 의미가 담긴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