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39화 (40/158)

(EP.39)관계 역전

“……적의 마왕, 그리고 청의 마왕은 안 됩니다. 그들은 지금의 저로서는 감당이 불가능해요.”

“생각보다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네요.”

“…….”

아셰라의 날카로운 지적에, 화이트가 한 차례 뜨끔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뭐,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미 스승님의 정체까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그것도 그렇긴 하죠?”

아셰라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화이트를 한 차례 흘기며, 아셰라가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저로서도 12마왕, 그들 전체가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저 방법이 없었기에 구태여 생각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습니까.”

화이트가 조금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꾸하며, 조용히 그녀의 시선을 피해냈다.

……그녀가 12마왕 전체가 사라져 주길 바라는 이유.

물론 그 모든 인과관계를 알지는 못하지만, 화이트는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제가 멍청했어요. 제 마법을, 제 마나를. ‘그들’이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는데.

“…….”

언젠가 그 자신의 스승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화이트가 거칠게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셰라가 그들의 그런 목적을 ‘역겹다’라고 표현한 이상, 결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터.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고, 그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아셰라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스승님 역시 그들의 몰살을 바라고 있다면.’

천천히, 화이트의 표정 위로 싸늘한 기색이 떠올랐고.

‘내가 망설일 이유는 더 이상 없다.’

……끝내 마음을 다잡은 듯한 태도로, 화이트가 결연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12마왕 간의 협정, 그게 스승님께 있어서는 걸림돌이 되었던 거겠죠.”

“…….”

협정.

다시금 화이트가 그 개념에 대해 입에 담았고, 그에 아셰라의 표정에 한순간 날카로운 기색이 서렸다가 이내 금방 사라졌다.

“후우…….”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한 차례 인상을 찌푸리며 아셰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협정에 대해 알고 있는 이상 더 숨길 것도 없죠. 제자님의 말이 맞아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하며,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12마왕 간의 협정.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고, 또 간단했다.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한 마왕끼리는,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로의 목숨을 노리지 못한다.’

“…….”

화이트와 아셰라의 표정이 동시에 진중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강력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많은 협정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화이트의 말에 아셰라가 중얼거리듯이 대꾸했다.

그녀의 표정에서부터 씁쓸한 기색이 한 차례 묻어나왔다.

“뭣 모르던 시절에 참여한 협정이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어딘가 아련한 눈빛으로, 아셰라가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전생의 세계에서는 그런 말이 있었던가.

계약이라는 것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하.”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딱 지금의 자신의 상황이 그 모양 그 꼴이었으니.

아셰라가 허탈한 기색을 가득 담아 한 차례 헛웃음을 터뜨렸고.

“……스승님.”

그에 화이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셰라를 쳐다봤다.

“……아, 뭐예요. 제자님. 그런 시선으로 볼 거 없어요. 그냥 그때의 제가 조금 멍청했던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듯이, 아셰라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자고요.”

그녀가 고개를 한 차례 까딱이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중요한 건, 지금의 제자님이 상대할 수 있는 마왕이 몇 없다는 거죠. 저와 대등한 형태의 싸움이 가능한 적의 마왕이나 청의 마왕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은 하나같이 괴물뿐인 집단이니까.”

“…….”

그 말에는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었기에, 화이트가 그저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12마왕이라는 집단, 혹은 세력.

물론 그 개개인의 성향이 너무나도 확고한 나머지, 의견이 합일된 상태로 일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마왕 샤사르의 이름 아래 모인 그들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도달할 수 있는 끝자락이라고 불리는 9서클, 다르게 말하면 대마도사 급의 경지.

그리고 대륙을 통틀어도 몇 없는 그 대마도사 급 마법사들의 반수 이상이,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마왕들이었으니.

“……12마왕의 절반 이상이 대마도사 급이라 불리는 괴물들이니까요. 더 이상 별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조차 없겠죠.”

화이트가 이를 으득 갈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고작해야 7서클의 끝자락에 도달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금의 마왕 같은 경우는 그 입장이 지나치게 특수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쳤던 탓에 죽일 수 있었던 거지, 진짜배기 마왕들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제가 덜 성장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자님.”

아셰라가 어딘가 모르게 이채가 서린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하하,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습니다. 저도 제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우선은 8서클에 올라 대마법사 급의 경지에 오른 뒤에─”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리고 이내, 무척이나 진지한 태도로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으니.

“……생각보다 멀쩡한 사고가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조금 놀랐달까요. 혹여 또다시 중2병이 발동해서 미쳐 날뛰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

무척이나 진지한 태도치고는, 지나치게 가볍기 그지없는 그녀의 말에.

화이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스승님?”

이내 화이트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는 그리 곱지만은 못했기에.

그야말로 어이가 없다는 태도를 감추지 못하고, 화이트가 두 눈을 샐쭉하게 떴다.

“제가 그렇게나 생각이 없는 놈처럼 보였답니까? 대체 저를 뭐로 보시는 겁니까?”

최대한의 불쾌함을 담아, 화이트가 아셰라를 향해 그리 내뱉었으나.

“음, 제 제자님은 중2병 말기 환자임이 틀림없죠. 그렇게 생각하면 마냥 가능성이 없는 말도 아니지 않을지…….”

“…….”

아셰라에게서 돌아온 장난스러운 대꾸에, 화이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아핫, 아하하!”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눈에 띄는 변화에 아셰라가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으니.

“아, 아아. 농담이에요, 농담. 뭘 그리 진지하게 삐지고 그래요? 애도 아니고.”

“……안 삐졌습니다만?”

“응,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삐진 표정이었으니까.”

“…….”

화이트가 이마를 탁 짚으며 눈가를 가볍게 짓눌렀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그녀의 농담이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화이트가 한 차례 일그러진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고.

“아, 아하하.”

그쯤에서 조금은 장난이 지나쳤다는 생각을 한 걸까.

아셰라가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제자님? 설마 진짜 삐진 건 아니죠?”

“아니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적어도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화이트가 그리 대꾸했으나.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

정작 돌아온 대답은 그따위의 말이었으니.

화이트가 진심을 담아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그에 아셰라가 아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아하하. 제자님?”

“……뭡니까.”

무척이나 싸늘하게 반문하는 화이트의 모습에, 아셰라가 식은땀을 슬며시 흘리기 시작했다.

“…….”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싸늘하게 대꾸하는 일이 없는 화이트였기에.

아셰라가 조금은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고.

이내, 그녀가 꺼내든 방법은.

“……사탕, 먹을래요?”

“……?”

아공간에서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들어 화이트에게로 조심스레 내미는 것이었으니.

“…….”

“…….”

잠시 미묘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으나.

이내, 그리 늦지 않게.

“……아, 진짜!”

“으앗!”

탁!

화이트가 막대사탕을 거칠게 쳐냈고, 그에 아셰라가 한 차례 놀란 기색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아…….”

화이트가 어이가 없다는 태도로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 진짜 저를 어떤 식으로 보시는 겁니까? 고작해야 사탕으로 유혹해봤자, 기분만 나빠질 뿐이라고요.”

“읏, 으읏.”

진심이 담긴 화이트의 중얼거림에, 아셰라가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

그에 도리어 두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던 건 화이트의 쪽이었으니.

……울상을 짓는다고?

지금 이 상황, 이 타이밍에서?

“제, 제자님. 저는 그냥…….”

“…….”

“……미, 미안해요.”

……이어지는 아셰라의 사과에, 화이트는 무언가 기묘하기 짝이 없는 감각에 휩싸여야만 했다.

뭐지, 뭘까.

분명하게 잘못한 건 아셰라의 쪽이었고, 사과를 받는 건 자신의 당연한 권리임이 틀림없었으나.

“…….”

화이트가 한 차례 눈을 가늘게 뜨고 여전하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아셰라를 흘겨봤다.

‘……뭐지.’

화이트의 표정에서 떨떠름한 기색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실수를 한 건 자신의 스승이었고, 사과를 받아야 할 건 자신임이 맞았으나.

이렇게 그녀가 울상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무척이나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아…….”

화이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뱉었다.

“음, 으음.”

그에 다시 한 차례 아셰라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이 몸을 움찔거렸다.

묘하게 우물쭈물하는 기색으로 그녀가 화이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

“…….”

또다시 짧은 정적이 흘렀고, 이내.

“……스승님.”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화이트가 조심스레 말문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울상을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묘한 장난기가 솟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네, 네. 제자님. 말씀하세요.”

어딘가 모르게 심히 긴장한 태도로 아셰라가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거렸다.

마치 지금이라면 무슨 말이라도 다 들어줄 것만 같은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얕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못하셨죠?”

“……네.”

우선은 화이트가 그리 물었고, 그에 아셰라가 곧장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직후, 화이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언제나 하시던 말씀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 뭐더라.”

“네, 네?”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그, 그랬죠?”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감각에, 아셰라가 한 차례 몸을 흠칫 떨었다.

‘……뭐, 뭘까요.’

그녀의 새하얀 뺨을 타고 한 차례 식은땀이 조심스레 흘러내렸다.

……그 자신의 제자의 눈빛이, 묘하게 짓궂은 빛을 발하는 것만 같다는 감각에 휩싸이며.

아셰라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내,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 즈음에는.

“벌, 받으셔야겠죠?”

“……네?”

아셰라의 표정 위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의 당황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걸까.

마치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띄우며, 아셰라가 두 동공을 거칠게 흔들어댔다.

“스승님.”

“……제, 제자님. 눈빛이 묘하게 무서운데요. 우선, 조금만 진정하고─”

애써 그렇게 말하며 화이트의 집요한 시선을 피해보려는 아셰라였으나.

텁!

“……히익!”

곧바로 그 자신의 어깨를 거세게 붙잡아오는 화이트의 행동에, 아셰라가 묘한 신음성을 한 차례 흘렸다.

“…….”

“……제, 제자님. 저기요? 뭐라도 말을 해주면 안될까요? 저, 좀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하하…….”

아셰라의 떨리는 목소리에, 화이트가 한 차례 가학적인 웃음을 흘렸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어딘가 모르게, 지금껏 자신을 괴롭혀 오던 그녀의 기분을 이해할 것만도 같은 감각이 들었다.

화이트가 묘하게 상기된 표정으로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 올렸고.

“……히끅.”

그런 화이트의 살벌한 기세에, 아셰라는 그저 몸을 흠칫 떨어댈 수밖에 없었으니.

‘……무슨 벌을 줘야 할까.’

여전히 아셰라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은 채로, 화이트가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시간을 계속 끄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솔직히 지금의 이런 그녀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

……은근히 긴장하는 기색으로 눈동자를 떨어대는 그녀의 모습이, 묘하게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화이트의 벽안이 한 차례, 위험한 느낌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제, 제자니이임…….”

그쯤되자 아셰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짓게 되었으니.

“진, 진정. 일단 조금만 진정하고, 저희 차분하게 대화를…….”

아셰라가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고 그리 중얼거렸으나.

“대화, 대화라. 좋죠, 스승님.”

“……네?”

그마저도 이용해 주겠다는 듯이, 화이트가 은근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스승님께서 언제나 저를 상대로 하셨던 게 바로 육체의 대화였잖습니까.”

그리고 천천히, 그 자신의 몸을 낮추면서 아셰라와 눈높이를 맞춰가는 화이트.

“…….”

“…….”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섞인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고.

어느새 바로 지근거리에서 눈을 맞추게 된 화이트와 아셰라.

“……스승님.”

화이트가 짓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조심스레 불렀다.

“…….”

두근, 두근.

그렇지만 아셰라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고 표현해야 할까.

‘뭐, 뭐죠. 왜 또 심장이…….’

……어딘가 모르게 심장의 박동이 거세지는 것만 같다는 감각에 휩싸이며, 아셰라가 천천히 얼굴을 붉혀가기 시작했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눈을 맞춰오는 그 자신의 제자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그녀가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어째서일까.

자신을 바라봐 오는 제자님의 시선이, 묘하게 포식자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 저런 시선으로 제자님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제 역할이었는데 말이죠.’

익숙하지 못한, 아니, 오히려 처음 느껴보기까지 하는 생소한 감각에, 아셰라가 한 차례 몸을 움찔거렸다.

“읏, 으읏…….”

“…….”

……그에 더해, 묘한 신음성까지 흘려대기 시작하는 아셰라.

‘─아.’

뚝.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화이트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못 참겠다.’

곧바로, 그 벽안을 한 차례 위태롭게 번뜩이며.

“스승님.”

“……제, 제자님?”

화이트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셰라를 향해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싸는 화이트.

“……읏, 으.”

당연하게도 그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는 아셰라였고, 자연스레 그녀의 얼굴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저, 저항해야 하는데.’

그녀의 표정 위로 혼란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저항해야 하는데, 거부해야만 하는데.

……이런 행동,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제자님에게 허락할 생각은 없었는데.

적어도, 적어도 조금 더 애태운 뒤에나 허락해줄 생각이었는데.

“…….”

두근, 두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에 아무런 움직임조차 보이지 못하며.

“……하아, 하아.”

달뜬 숨소리와 함께 아셰라가 두 눈동자에 야릇한 기색을 띄우기 시작했고.

“──.”

그쯤에서, 화이트는 진정으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끊어진 무언가의 정체 또한.

‘……아, 모르겠다.’

화이트의 숨소리가 묘하게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런 숨소리는 그의 이성이 반쯤 끊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

서로가 침착을 되찾았을 즈음 돌아오게 될 후폭풍과 뒷감당.

그러한 생각이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머릿속을 깔끔하게 비워버리며.

화이트와 아셰라가, 천천히 서로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고.

서로의 입술이 살포시 겹쳐지려고 하는, 바로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어딘가에서부터 거대한 폭음이 한 차례 터져나왔다.

화이트와 아셰라가 급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상공을 쳐다봤다.

“……저건.”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황궁을 감싸는 대결계, 프리드리히 에드발트가 직접 관리하는 황궁의 견고한 방패가.

쩍, 쩌적.

……서서히, 균열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

그리고 그쯤에서 놓았던 정신줄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걸까.

화이트와 아셰라가 미묘하게 붉어진 표정으로 서로에게서 떨어졌고.

‘……어떤 개같은 잡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슬며시, 화이트의 두 눈동자 위로 분명한 살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잡히면 곱게 죽지는 못할 줄 알아라.’

우웅-

화이트가 그 푸른 빛의 마나를 조심스레 끌어 올렸고, 아셰라는 그 자신의 완드를 꺼내 드는 모습.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파앗!

스승과 제자, 사제가 동시에 텔레포트를 시전하며 그 모습을 한순간에 감추었다.

대결계를 공격한 자를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서로에게 그 자신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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