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37화 (38/158)

(EP.37)사디스트 스승님

“…….”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왔을까.

“아으, 아으으…….”

아셰라가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는 연신 요상한 침음성을 흘려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는 자가 한 명 있었으니.

“왜, 새삼스레 수치스러운가요? 하나뿐인 제자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던 게?”

“……펑펑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요, 아무튼 눈물을 흘리긴 했다는 거 아닌가요.”

“윽, 으으…….”

화이트의 이어지는 놀림에, 아셰라가 얼굴을 화악 붉혔다.

……이게 뭐란 말인가.

비록 원치 않은 이명이었으나, 최강의 마왕, 최강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자신이.

그깟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해서, 한참 어린 제자 앞에서 눈물이나 흘려대는 꼴이라니.

“아으으…….”

그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도저히 떠올리지를 못하겠다.

-부디 저를 미워하지 말아줘요, 제자님.

“아, 아아…….”

……떠올리게 된다면, 그 자신의 그런 흑역사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아, 제자님. 제발 잊어줘요, 잊어달라고요.”

그렇기에, 무척이나 간절함을 담아 화이트를 향해 그리 중얼거리는 아셰라였으나.

“……싫은데요?”

“네?”

정작 돌아온 대답은, 즉답에 가까운 부정의 한마디였으니.

아셰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변했다.

“아니, 제가 어찌 그걸 잊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의 그런 약한 모습,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닐진대.”

“윽, 으윽…….”

피식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가 어깨를 으쓱했고, 그에 아셰라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무슨 형태로 설득을 해야만 할까.

제발 잊어달라고, 잊지 못하겠다면, 그냥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말아 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참이었으나.

“…….”

이윽고 화이트의 표정을 좀 더 자세히 살핀 아셰라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제자님…….”

……그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가, 이러한 상황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아셰라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어 갔다.

“지금 재밌나요, 이게? 하늘 같은 스승이 수치스러움에 죽어가고 있는 이 상황이?”

짐짓 살벌한 어투로 짓씹듯이 말하는 그녀였으나.

“네, 완전 재밌습니다.”

“…….”

“아니, 그렇잖아요? 그 스승님께서 눈물을 흘리는 꼴이라니, 쉽게 볼 수 없잖아요.”

“…….”

“미워하지 말아 달라며, 눈물까지 흘릴 정도라니……. 그렇게 제가 좋습니까, 아셰라?”

돌아온 대답과, 이어지는 말들은 그저 평탄하기 그지없는 어조였고.

한순간에 아셰라의 표정이 그저 무감정하게 바뀌었다.

스윽-

“…….”

“스승님?”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셰라.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화이트가 조심스레 물었고.

“……스승, 님?”

이내 그는 볼 수 있었다.

아셰라의 손에, 어느새 하나의 완드가 잡혀 있는 것을.

“…….”

서서히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하는 화이트.

당연하게도, 그의 표정 위로 긴장감이 떠오르고 있었으니.

“……에이, 아니죠?”

애써 희망을 담아 화이트가 우선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겠나.

고작해야 그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꼴을 한 번 봤다고, 설마하니.

……설마하니, 강제적으로 압박을 가하지는 않을 터.

“…….”

않아야만 할 텐데.

솔직히 말하면 영 자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전례가 없던 상황이었고, 처음 볼 수 있었던 스승의 눈물이었다.

그런 만큼, 그런 그녀가 얼마나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지.

그 자신으로서는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제자님.”

“예, 예?”

아셰라의 부름에 화이트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무슨 말을 꺼내려고 저리도 목소리를 낮게 내리까는가.

끝도 없이 증폭되어 가는 불안감에, 화이트가 한 차례 몸을 움찔거렸고.

이내, 아셰라가 다시금 입술을 떼어내며 말문을 열었다.

“잊지 않겠다면, 제가 스승의 권한으로 제자님의 기억을 강제로 소거시켜도 되겠죠?”

“……예?”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한마디.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그런 살벌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에, 화이트의 표정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애써 속으로는 부정해 보고자 했으나.

정작 이성은, 지금이라도 당장 이 자리를 떠나라고 알려오고 있었으니.

화이트의 그 푸른빛 눈동자 위로 약간의 두려움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테, 텔레포─”

곧바로 결심을 내린 후, 우선은 이 자리를 벗어나고자 마나를 운용하였으나.

“─안티 텔레포트.”

“……!”

그야말로 재빠르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스승은 파훼 마법을 시전하였다.

……천천히, 아셰라의 눈빛이 무서운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제자님, 제자님.”

“……예, 스승님.”

차분하게 자신을 불러오는 아셰라의 목소리에, 화이트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꾸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에 맞춰서 두 발짝 더 화이트를 향해 다가서는 아셰라.

“왜 따라오는 겁니까?”

그에 화이트가 또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왜냐니, 스승이 제자를 따라가는 것에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아셰라는 그저 고요한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그런 화이트를 향해 따라붙을 뿐이었다.

“…….”

“…….”

잠깐의 정적.

화이트의 새하얀 뺨을 타고 한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는.

‘뭔가, 약간 큰일 난 것 같은데.’

화이트가 허탈한 웃음을 한 차례 조심스레 흘렸다.

지금은 사라진 시간대, 그러니까 회귀 전을 포함해 수십 년을 그녀와 함께한 자신이다.

그런 만큼, 그녀의 표정을 살짝 살피는 것만으로도 그 의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이미 심사가 뒤틀려서 머리끝까지 열 받아 있네.’

화이트가 연신 식은땀을 흘려댔고.

“사랑하는 제자님, 제가 한가지 마법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내, 아셰라가 다시금 입을 열 때 즈음에는.

그녀의 양 뺨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느낌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마법, 입니까?”

화이트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 마법이라 함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

어쩌면 이미 자신은 그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최대한의 희망을 담아, 화이트가 은근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혹여 이 부족한 제자에게, 그 마법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

“아, 물론이죠.”

그리고 그런 그의 한마디에, 아셰라는 그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고.

이내 그녀의 입에서부터 튀어나온 말은, 화이트로 하여금 그야말로 정신을 놓아버리게끔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잠깐 기억을 지워버릴 거에요. 딱 24시간 정도만?”

“…….”

“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도 잘 조절해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게 해드릴 테니까.”

아셰라가 상큼한 미소와 함께 그런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었고.

“…….”

잠시 침묵하던 화이트.

그리고 이내, 몇 없는 선택지 중에 그가 고른 하나의 길은.

“……기어올라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저 올곧게 사죄를 하는 방법뿐이었으니.

“그래요, 그래야죠.”

곧바로 고개를 팍 숙여오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짜릿하다는 듯이 한 차례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표정 위로 서서히 야릇하고도 고혹적인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꿇어요, 화이트.”

“예?”

“뭐해요? 꿇으라니까?”

“…….”

아셰라의 돌발적인 명령조의 한마디에, 화이트의 표정이 순식간에 멍하니 바뀌었다.

……지금 자신이 뭔 말을 들은 거지?

뭐, 꿇으라고?

“…….”

화이트가 다시금 한 차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뭔가, 묘하게.

야릇한 미소를 띠고 있는, 자신의 스승의 낯빛이.

어딘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것은 과연 자신만의 착각일까.

한 발짝, 두 발짝.

아주 조심스럽게, 화이트가 뒤로 몸을 물려갔으나.

“─꿇어.”

“……!”

아셰라가 싸늘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그야말로 강제적으로.

쿵!

화이트는 그 자신의 몸을 힘없이 지면에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그의 표정 위로 한순간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지금 그녀, 아셰라가 사용한 마법.

정확하게는 권능.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언령(言霊)…….”

화이트가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언령.

그것은 마법임과 동시에, 마법의 끝자락에 반쯤 걸쳐있는.

권능(權能)이라고 불릴 만한 능력이었으니.

그건 마법사의 한계점이라 불리우는 9서클의 전유물임과 동시에, 어지간한 대마법사조차도 저항하기 힘든.

그야말로 불합리의 극치라고 불릴 만한 힘이었다.

“……그런 능력을 이딴 하찮은 일에 사용하다니, 진짜 돌아버린 거예요?”

“하하, 말이 험하기도 하셔라.”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이 가득 담긴 화이트의 일침에도 불구하고, 아셰라는 그저 양 뺨에 홍조를 띄울 뿐이었다.

그래, 그야말로 짜릿하기 그지없다는 듯이.

“……제자님, 제자님.”

“…….”

다시금 그 자신을 불러오는 스승의 목소리에,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는 화이트.

그러나 상관하지 않으며, 아셰라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쩌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스승. 조금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요?”

“…….”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제자님한테 확 알려버릴까 하는데. 어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로.”

아셰라의 말에 화이트가 재빠르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어차피 이미 알고 있던 성향, 혹은 속성이었고.

새삼스레 다시금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을 필요 따위 하등 없었다.

그에 더해, 만약 그녀가 정식으로 자신을 향해 그런 성향을 알려온다면.

……어쩌면, 이제부터는 앞으로도.

“…….”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에, 화이트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안 된다.

그런 일만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스승님, 잠시만 제 얘기 좀 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저는 스승님과 다르게, 그딴 특이한 성벽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렇기에, 화이트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내었으나.

“아하하, 걱정하지 마요. 제자님.”

아셰라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 위에 띄우고 있는 채였으니.

서서히 그녀의 표정이 싸늘한 기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제가 천천히, 상냥하게 알려드릴 테니까.”

“…….”

아셰라가 그렇게 중얼거렸고.

화이트의 낯빛이 한순간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

“……후후.”

화이트가 침묵했고, 동시에 아셰라의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내.

“……하, 하하.”

비틀린 웃음을 한 차례 흘리며.

“이 사디스트 스승님이, 진짜로─”

─미쳐버린 건가.

그렇게, 화이트가 그런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퍼억!

“컥.”

바로 날아든 아셰라의 발차기에 의해 화이트의 말을 끝맺어지지 못했다.

“안 되죠, 제자님. 하늘 같은 스승님께 어디 그따위의 언사를 내뱉으시나요.”

“…….”

그저 식은땀을 연신 흘려대며 침묵하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깜찍하기 그지없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아주 가끔씩만 즐길 테니까.”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한마디는 그리 깜찍하지만은 못했다.

“……하.”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던 화이트가 한 차례 허탈한 기색을 담아 탄식을 내뱉었고.

제도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한 인적 없는 평원에서.

화이트와 아셰라.

서로를 무척이나 아끼는 두 사람 사이에, 엇갈린 성향으로 인해 아주 잠시 비틀림이 생기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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