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눈물
“…….”
말을 꺼내고 나서,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거의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고, 그 뒷감당은 생각지도 않았으나.
결정적으로 화이트로 하여금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는, 다름 아닌.
“─아.”
……그 말을 듣고 난 뒤의, 아셰라의 일그러진 표정이었으니.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불안한 기색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
-전, 12마왕 전부를 죽일 계획입니다.
“…….”
언젠가 그 자신의 제자가 꺼내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아셰라가 한 차례 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당시,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에 휩싸였었다.
그 자신의 제자가 12마왕을 전원 죽이겠다는, 그런 오만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말을 내뱉어서?
‘……아니, 아니죠.’
얕게 고개를 저어 그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하는 아셰라.
그녀의 표정 위로 씁쓸한 기색이 떠올랐다.
‘제자님이 무슨 이유로 그러한 말을 한 건지는 몰라요.’
사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기도 했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제자님이, 그 전원을 죽여버리겠다고 언급한 12마왕.’
그 일좌를 차지한 자가, 바로 그녀 그 자신이라는 사실이었으니.
아셰라의 표정이 한순간에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무슨 이유가 있어서 12마왕에게 그토록 증오를 품은 건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말했듯이,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
어쩌면, 어쩌면.
‘제자님이 죽이겠다고 다짐한 마왕 중에, 저도 포함되어 있다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가능성에.
아셰라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어두운 빛으로 침체되었다.
“……읏.”
얕은 침음성을 흘리며, 아셰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겁을 먹었다고 해도 좋을 테지.
그래, 자신은 겁을 먹은 것이다.
혹시나, 어쩌면.
그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제자님이.
‘흑(黑)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자신마저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면.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건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걸까.
……자신의 제자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
애써 무시했었다.
그의 다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가능성이긴 하였으나, 지금껏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기를, 사실은 그 자신만큼은 제외되어 있기를.
헛된 희망에 가까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구태여 그렇게 생각해가며.
어떻게든 진실에서 눈을 떼어내고자 했고.
……끝내 돌아온 결과가 이러한 것이었다.
-흑(黑)의 마왕, 아셰라.
-그게 스승님의 진정한 정체 아닙니까?
“……아, 아.”
아셰라가 목소리를 떨리게 하며 이마를 짚었다.
“……스승님?”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 역시 그런 그녀의 이변을 감지할 수 있었으니.
“……잠깐, 대체 왜 그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응.
물론 어느 정도 놀랄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지만, 이런 격한 반응은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화이트가 그렇게 당황하며 두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니.
“──아.”
털썩!
바로 직후, 아셰라가 그 가녀린 몸을 힘없이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아셰라?”
그리고 잠시 그런 광경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멍하니 몸을 굳히는 화이트.
“……!”
그러나 다행인지 아닌지, 그리 늦지 않게 정신을 차리며.
“……아셰라!”
쓰러진 아셰라를 향해, 화이트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그 자신의 정체가, 실은 12마왕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우는 흑의 마왕이라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는 건 괜찮았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그자가 무슨 반응을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않으면 될 일, 그저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이었으니.
……그렇지만.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의 제일 소중한 제자님이라면.
그것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12마왕에게 깊은 증오를 품고 있는 제자님에게라면.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 혹은 문제였으나.
‘애써 그러한 가능성들을 무시하며, 제자님과의 평범하면서도 달콤한 일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그저 외면하고 만 것이다, 자신은.
……아둔하기도 하지.
지나칠 정도로 멍청해서, 너무나도 어리석어서.
스스로가 진심으로 미워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럴진대.
어째서일까.
그런 생각마저도 하얗게 변질되어 잊혀질 만큼, 강렬한 충격이 자신의 뇌리를 강타하게 된 이 현실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돼버리고 만 것일까.
“아, 아하하.”
힘없이 몸을 늘어뜨린 채, 아셰라가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아셰라……?”
그에 화이트가 미간을 좁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알고 있었던 건가요?”
“네?”
그다음 순간 아셰라가 꺼낸 한마디에, 화이트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던 거냐, 라.
주어는 없었으나, 맥락상으로 파악하기에 분명 그건 그녀 자신의 숨겨진 신분을 얘기하는 것일 터.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렇기에 화이트가 조금은 곤란한 기색으로 설명을 시작하고자 했으나.
“……아하하. 정말로, 알고 있었다고.”
“……아셰라?”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묘한 이질감을 감지했기에?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기는 하겠으나.
일차적으로 화이트로 하여금 말을 멈추게끔 만든 원인은 다름 아닌.
“…….”
툭, 투둑.
“……아, 아셰라.”
……그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스승이 흘리는 한줄기의 눈물이었으니.
갑작스레, 그야말로 돌발적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당황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해야─’
……눈물을 흘린다고?
그 스승님이, 그 아셰라가?
그야말로 처음 겪는 상황, 처음 보는 그녀의 연약한 모습에.
화이트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마비되었다고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 같은데.
그저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서, 도저히 무슨 행동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쯤에서, 여전히 고요하게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 흘려가며.
“……들키지 않기를 바랐어요.”
아셰라가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제자님에게만큼은 안 들켰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 왔고, 제발 그러기만을 바랐다면서.
아셰라가 그리 덧붙였고.
“……그게, 무슨.”
화이트의 머리는 이미 마비되다 못해 탈진되기 바로 직전까지 이르렀다.
……지금 자신의 스승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거란 말인가.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고?
무엇을 말인가?
그 자신의 진짜 정체, 그러니까 흑의 마왕이라는 신분을?
‘……왜?’
화이트의 표정이 당혹스러움과 의구심으로 물들었다.
어째서,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는 건가.
그 자신의 정체가 12마왕의 일원인 게 그렇게나 중요한 문제였나?
“…….”
……아니, 물론, 중요하다면 무척이나 중요한 진실이자 비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둘째치고, 어째서.’
그 표정을 살며시 일그러뜨리며, 화이트가 얕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다른 건 다 차치해두고서라도.
어째서, 무엇 때문에.
당신은,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이렇게나 안쓰럽게 눈물을 흘려대는 거냔 말입니다.”
“…….”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는 화이트의 모습에.
아셰라는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아셰라의 표정 위로 간절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줘요.”
“예?”
이내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아셰라가 재차 말문을 떼어냈으니.
무척이나 간절한 듯이, 그 표정을 슬픔으로 물들이며.
“……부디 저를 미워하지 말아줘요, 제자님.”
“──.”
처음으로, 아셰라가 그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화이트에게 드러냈다.
*****
‘……아.’
처음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뇌가 정지한 것만 감각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자신의 뛰어난 두뇌는, 재빠르게 그런 그녀의 말에 담긴 속뜻을 꿰뚫어 볼 수 있게끔 했으니.
‘설마.’
화이트의 표정이 슬며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전, 12마왕 전부를 죽일 계획입니다.
……언젠가 그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화이트가 이마를 한 차례 손바닥으로 덮었다.
“…….”
자신을 바라보며 연신 안쓰럽게 눈물을 흘려대는 아셰라와 눈을 맞추는 화이트.
이내 그가 서서히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하니.
자신의 소중한 스승님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이 소녀는.
……어쩌면.
“……제가, 당신을 미워하다니요.”
“네……?”
멍하니 대꾸하는 아셰라를 향해 한 차례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화이트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잖습니까. 새삼스레,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스승님도.”
“……무슨, 말을.”
화이트의 말에도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아셰라.
“……그러니까.”
그리고 그런 아셰라를 바라보는 화이트의 표정 위로, 서서히 분노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분노는 그녀를 향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러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 벽안을 한 차례 잔잔하게 번뜩이며, 화이트가 입매를 비틀었다.
“제가 당신을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요, 아셰라.”
“어? 네, 네?”
점차 그 자신의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것을 화이트는 인지하고 있었을까.
‘……하,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제, 제자님?”
“…….”
그저 속으로 무책임한 말을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아셰라의 어깨를 잡아채고는 그 자신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
그에 당연하게도, 다른 문제는 순간적으로 잊어버리며 아셰라가 얼굴을 화악 붉히기에 이르렀으니.
“……제, 제자─”
“잠깐만 다물어봐요, 아셰라.”
“──!”
아셰라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바로 직후 그 자신의 입을 막아버리는 화이트의 손에 의해 그러한 시도는 제지되고 말았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이게?’
그저 눈빛으로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버리게 되었고.
그런 아셰라를 내려다보는 화이트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흑의 마왕, 아셰라.”
“……!”
다시 한번 아셰라의 숨겨진 신분을 입에 담는 화이트.
당연하게도 아셰라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불안감에 휩싸였으니.
그녀의 두 눈동자가 불안한 기색으로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12마왕이니, 최강의 마법사니. 그딴 건 다 상관없어요.”
그리고 그런 그녀를 더욱 쎄게 끌어안으며, 화이트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출처까지 얘기해줄 수는 없지만,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아셰라.”
“…….”
여전히 아셰라의 입을 한 손으로 막은 채로, 화이트가 천천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어쩌다가 흑의 마왕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그 내막까지도 다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
그 짤막한 한마디에, 아셰라가 심하게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알고 있다고요? 전부 다?’
마치 그렇게 묻는 것만 같은 아셰라를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화이트가 한 차례 혀를 찼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그냥, 모든 걸 이야기해줄 수는 없었기에.
하나쯤 자신이 숨기고 있던 비밀을 얘기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 비밀이라는 것이 하필이면 그녀를 불안에 떨게끔 만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으나.
“…….”
……비교적 침착을 되찾은 지금, 이제는 자신이 그녀를 진정시켜야 할 때였다.
그렇게 한 차례 속으로 다짐하며.
화이트가 잔잔한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마나를 노린 적(赤)의 마왕의 제안에 속아, 잠시 행동을 같이했었다고 했던가요.”
“……!”
또다시 크게 경악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셰라.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화이트가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겠지.’
아마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을 얘기였고.
당사자인 적의 마왕과 그녀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가, 자신의 입에서부터 튀어나왔으니.
그 출처는 다름 아닌, 지금은 사라진 시간대의 아셰라 그 본인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로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할 일이리라.
“놀랄 것 없습니다, 아셰라. 적의 마왕을 비롯한 12마왕들, 이제는 당신이 그들과 완전히 갈라섰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까.”
“…….”
더 이상 놀람을 표현할 방법을 잃어버린 듯이, 아셰라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여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을 막은 손을 조심스레 치워내며, 화이트가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진정이 됐나요? 아셰라, 아니, 스승님.”
호칭을 정정하며, 화이트가 옅은 미소를 그 입가에 걸었다.
“제가 당신을 미워하거나, 증오하게 될 일 따위는 절대 없을 겁니다.”
“…….”
화이트의 말에 한 차례 흠칫하고 몸을 움찔거리는 아셰라.
이내 그녀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화이트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장담해요? 진짜?”
“……하하.”
무척이나 불안해 보이는 기색으로 아셰라가 물었고, 그에 화이트가 힘없는 웃음을 한 차례 흘렸다.
이윽고 화이트가 잔잔한 미소와 함께 아셰라의 손을 맞잡았다.
‘……아.’
그리고 그 부드럽기 그지없는 손길에, 아셰라는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말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묘하게 울컥하던 감정이 진정되는 감각이 들었다.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잡으니까,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장담해요, 스승님. 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원히.”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으니.
“……제자님.”
아셰라의 눈가가 다시금 물기에 젖기 시작했다.
“……12마왕을 죽이겠다고 한 건, 그저 제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지. 설마하니 제가 스승님을 해하려고 하겠습니까. 애초에─”
─제가 12마왕을 전멸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부터가, 당신 때문이었는데.
……당신을 위해서일진대.
뒷말은 당연하게도 잇지 못하였다.
……아직까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었다.
그저 씁쓸한 기색으로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조금은 진정이 됐을까요, 나의 스승님.”
화이트가 아셰라의 검은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