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35화 (36/158)

(EP.35)당신의 정체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화이트가 몸을 지면에 눕혔다.

마나는 고갈된 지 오래고, 근성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진짜 괴물이라니까.’

속으로 짤막하게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바로 위를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어때요, 기분 좋았어요?”

“…….”

화이트를 그렇게 만든 당사자, 아셰라가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그를 내려다 봤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은 하지 말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하아…….”

그저 뚝 시치미를 떼는 자신의 스승의 모습에, 화이트가 얕게 한숨을 내뱉었다.

“…….”

이내 화이트의 눈동자 위로 약간은 씁쓸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참 멀었나.’

아셰라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얕게 입술을 깨무는 화이트.

약간의 분한 감정이 그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7서클, 아니, 8서클을 앞두고 있는 정도려나요.”

아셰라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문을 떼어냈다.

그녀의 눈꼬리가 유려하게 휘며, 환한 눈웃음을 그려냈다.

“대단하네요, 정말.”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겠어요, 당연히 제자님의 성장세를 말하는 거죠.”

아셰라가 쿡쿡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의 옆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고작해야 열아홉 살, 20대에 들어서기도 전에 대마법사 급을 앞두고 있다니.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괴물이잖아요?”

“…….”

그건 굳이 말하자면 칭찬이었으나, 정작 화이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무어라 말이라도 꺼내 볼까, 말까.

“하아…….”

잠시 고심하던 화이트가, 이내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 칭찬을 해줬는데 돌아오는 게 한숨이라니. 자꾸 그러면 이 스승,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고요?”

“……하.”

장난스레 말해오는 아셰라에게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화이트가 코웃음을 쳤다.

이내 그의 표정 위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정작 그러는 스승님께서는 그런 저를 완벽하게 압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을 들어봤자 기만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흐응…….”

화이트가 툴툴거렸고, 그에 아셰라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에이, 비교할 걸 비교해야죠. 저랑 제자님 사이에는 절대 좁힐 수 없는 세월의 차이가 있다고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그녀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화이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 하지 마요. 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길을 신경질적으로 걷어내는 화이트.

“아핫, 부끄러워요?”

“…….”

그에 아셰라가 짓궂은 미소와 함께 은근히 화이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그저 귀여웠는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제자님이 저를 멀리하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아프답니다.”

“헛소리하지 마시길, 스승님.”

그러나 그런 말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듯이, 화이트가 헛웃음을 한 차례 흘렸다.

“어릴 때야 그저 존경의 의미로 그랬을 뿐, 나이를 먹은 지금에 와서까지 그럴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화이트가 그저 태연하게 그리 중얼거렸으나.

“에이, 왜요? 저는 보고 싶은데, 제자님의 귀여운 모습.”

“…….”

정작 아셰라가 그리 대꾸하자마자, 그의 표정 위로 약간의 갈등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으니.

“아, 제자님. 지금 잠깐 고민했죠.”

“……아닙니다만?”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셰라가 싱글싱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아셰라를 잠시 지그시 바라보던 화이트가, 이내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딴 별 상관 없는 건 좀 그냥 넘어가죠.”

“에이, 이것도 나름 중요한 거라고요.”

우선은 그리 대꾸하는 아셰라였으나, 나름대로 그 자신의 제자의 의견을 반영해 주는 걸까.

그녀의 표정 위에서 장난기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자님.”

“예, 스승님.”

어쩐지 심상치 않은 그녀의 목소리에, 화이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또 저런 식으로 말을 꺼내놓고, 다시금 장난을 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

잠시 그런 생각을 떠올린 화이트였으나.

이내 두 눈동자에 명확하게 담기는 그 자신의 스승의 진지한 표정에, 화이트가 천천히 눕혔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화이트가 나름대로 진중한 기색으로 물었고.

“……후후, 그러네요.”

그에 아셰라가 한 차례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밝은 태양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을 잠시 지그시 바라보는 아셰라.

“제자님.”

……이내, 그녀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기색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말을 해주지 못하는 건가요?”

“…….”

그건 굳이 말하자면, 명확한 주어가 없는 말이었으나.

그 자신의 스승이 하고자 하는 말을, 화이트는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화이트의 표정 위로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제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말하는 겁니까.”

“……네.”

아셰라가 조금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꾸했다.

흔치 않게 그 자신의 제자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

그런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한 차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으니.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인상을 팍 찌푸리며, 화이트가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상념에 집중했다.

……자신이 감추고 있는 비밀.

그건 바로,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물론 미래라는 것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이미 금의 마왕을 죽인 시점에서 많이 틀어지긴 했으나.

그 과거의 경험, 미래의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자신은 고작해야 5서클에 불과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잡으면, 한때 9서클을 넘어선 경지에 오른 적이 있는 자신이 고작해야 5서클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리는 없었기에.

7서클에 오른지는 이미 상당히 오래되었고, 이제는 대마법사 급이라 불리우는 8서클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

화이트의 얼굴 위로 씁쓸한 기색이 한 차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 고작해야 열아홉의 나이에, 자신은.

그 어디를 가더라도 고위 귀족 그 이상의 대우를 받는 대마법사 급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스승, 아셰라가 말하고자 하는 건 아마 그것일 터.

평범하게 생각하면 절대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지, 달성할 수 없는 업적.

그렇지만 자신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했기에, 이 어린 나이에 8서클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인가.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

당장 자신의 전력을 한 번 맛 본 적이 있는 금색의 마왕조차 그 부분에 있어서는 대경실색하였으니.

‘……스승님이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가.’

화이트가 아련한 표정으로 한 차례 숨을 골랐다.

말해야 하는가,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굳이 선택해야만 한다면, 이성은 후자를 고르라고 강제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미래를 보고 왔다고, 혹은 시간에 간섭해 과거로 다시금 되돌아왔다고.

……미래의 당신이, 처참하기 그지없는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가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아셰라가 한 차례 얕은 한숨을 내뱉었으니.

“뭐어. 아직까지 결심이 안 섰다면 괜찮아요, 제자님. 언젠가는 말해주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렇죠?”

“……스승님.”

화이트가 약간의 죄악감을 담아 그녀를 향해 씁쓸한 시선을 향하게 했고.

“……푸흡.”

그에 한 차례 아셰라가 웃음을 터뜨렸으니.

“……스승님?”

“아핫, 아하하……!”

화이트가 의문을 드러내자니, 아셰라의 웃음소리가 한층 커졌다.

“……아, 미안해요. 그냥, 조금 전 제자님의 표정이 너무 웃겨서.”

“웃겼다고요……?”

화이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표정이 너무 웃겼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

……조금 전,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그러한 실없는 생각을 한 차례 하고 보는 화이트.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유려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셰라가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 그래. 굳이 말하자면, 비에 젖은 강아지의 표정 같았달까?”

“……예?”

그리고 아셰라가 내뱉은 그 말에,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으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뭐, 비에 젖은 강아지?

“……그게 무슨 개소리랍니까?”

저도 모르게, 화이트가 욕지거리를 중얼거렸고.

“어허, 제자님.”

콰앙!

“컥.”

짐짓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런 화이트를 아셰라가 손날로 응징하였으니.

그녀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욕을 내뱉나요, 제가 그리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죄송합니다.”

우선은 찝찝한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내뱉는 화이트.

그러나 약간은 억울한 감이 들었기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스승님.”

그리고 이내, 화이트가 약간 결연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문을 떼어냈다.

“네, 제자님. 듣고 있다고요?”

“…….”

아셰라의 가벼운 대꾸에, 화이트가 짐짓 심각한 기색으로 표정을 굳혔다.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지금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다면.

“…….”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화이트의 표정 위로 결연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자님?”

그리고, 그에 의아한 기색을 담아 아셰라가 화이트를 불렀고.

“……아셰라, 저는.”

이내 화이트의 입에서, 서서히 그가 감추고 있던 비밀 중의 하나가 흘러나오려 하고 있었으니.

화이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아셰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무슨 말을 하시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실까.”

자연스레, 아셰라의 표정 역시 진중한 빛으로 바뀌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고, 화이트와 아셰라가 각자의 빛을 담아 서로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저는.”

화이트가 다시금 입술을 떼어내며 말문을 열었다.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아셰라.”

그리고, 그렇게 튀어나온 짤막한 한마디는.

“──.”

아셰라로 하여금, 한순간에 그 표정을 차갑게 가라앉히게 만드는 것에 성공하였으니.

“……지금, 뭐라고.”

아셰라가 약간이나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이걸 말하는 게 옳은지 어떤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그녀를 향해 올곧은 눈빛을 향하게 하며, 화이트가 다시금 입술을 떼어냈다.

“흑(黑)의 마왕, 아셰라.”

“……!”

“……그게 스승님의 진정한 정체 아닙니까?”

반쯤 충동적으로, 본래의 그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이트가 그 자신이 감추고 있던 비밀 중 하나를 아셰라의 앞에서 꺼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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