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데이트, 대련?
“아핫, 아하하하하!”
“……웃지 마시죠, 좀.”
화이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아셰라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핫, 아하하! 이걸 어떻게 참아요, 안 웃을 수가 없는데!”
“…….”
화이트의 표정이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후계자 자격으로 한창 회의에 참석하고 있어야 할 자신이 어쩌다가 다시 그녀와 함께 다니고 있는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명료하기 그지없었으니.
“아, 아하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다 때려치우고 텔레포트로 빠져나오다니……!”
“…….”
아셰라가 꺄르륵 웃음을 터뜨려댔다.
그게 그렇게도 웃겼던 걸까.
화이트가 한 차례 어지러운 감각을 느끼며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어쩌겠습니까. 황제가 미쳐 날뛰려고 하는데.”
“에이, 그거야 다 제자님 잘못이죠.”
아셰라가 검지를 들어 올리고는 휙휙 좌우로 흔들어댔다.
“저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요?”
짓궂은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아셰라가 화이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막내 황녀, 그러니까 크리스라는 이름의 소녀가 제자님이랑 어릴 때 어울렸던 시절을 말이에요.”
“……하아.”
아셰라가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끝맺었고, 그에 화이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를 울리다니, 그건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라고요, 제자님.”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아셰라가 연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화이트를 놀려댔다.
“그건 그렇고, 제 제자님이 여성을 홀리는 능력 하나는 확실한가 봐요. 황실의 꽃이라 불리는 그 막내 황녀를 홀릴 정도라면, 말 다 한 거 아니겠어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장난에 어울리기에는 좀 심란하니까.”
“아하하~”
아셰라가 그 특유의 실없는 웃음을 한 차례 흘렸고, 화이트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뭐, 이렇게 된 거.”
그런 화이트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아셰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회의도 빠져 나왔겠다, 굳이 찾으러 나오는 사람도 없겠다. 이러면 이제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요?”
“……?”
화이트가 한 차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남은 길이 하나밖에 없다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후후, 제자님. 제가 말했던 것도 같은데.”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띄우는 화이트를 향해 한 차례 유려한 눈웃음을 그려내며, 아셰라가 입가를 가리고 쿡쿡 실소를 흘렸다.
이내 그녀의 얼굴 위로 묘한 기대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자고 했잖아요, 데이트. 단둘이.”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화이트로 하여금 절대 쉽사리 넘길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고.
“……데이트요?”
당연하게도 화이트는 미끼를 물었다.
미끼인 걸 알고 있더라도, 그 미끼가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기에.
어딘가 반쯤 멍한 표정으로, 화이트가 두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자, 갈까요? 제자님.”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고.
“저와의 데이트,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 않나요?”
“……아.”
화이트는 저도 모르게 그런 그녀의 손길을 마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반쯤 홀린 듯이, 그 표정을 약간의 기대감과 희망으로 물들이며.
*****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미끼를 물어서는 안 됐는데.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만.
-저와의 데이트,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 않나요?
“하아…….”
……그렇게 말해오는 아셰라의 환한 미소란.
도저히 거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자신은 미끼를 물어버렸고.
“…….”
끝내,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고 만 것이었다.
휘오오오오-
한차례 삭풍이 화이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꼭 이렇게 하셔야 했나요, 스승님.”
그의 표정 위로 귀찮은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후, 속은 제자님이 잘못한 거죠.”
“하아…….”
아셰라가 장난기가 넘치는 표정으로 깜찍하게 한쪽 눈을 깜빡였고, 그에 화이트는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지금 그들이 위치한 장소는, 제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딘가의 평원이었으니.
그 어떤 구조물도, 사람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평원.
그러한 장소에서, 화이트와 아셰라가.
우웅-
서서히 그 자신의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것도 데이트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자님.”
“헛소리도 정도껏 하셔야 받아줄 수 있습니다, 스승님.”
화이트가 퀭한 표정으로 푸른빛의 마나를 양손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말에도 아셰라의 미소는 짙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에이, 혹시 알아요? 서로의 마나로 상대방을 덮칠 때, 어쩌면 야릇한 감정에 휩싸일지도.”
“……오해할 만한 말은 하지 마시죠. 솔직하게 열 받으니까.”
화이트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둘 돋기 시작했고, 그건 그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하였다.
실제로 그는 현재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기에.
물론, 그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그 자신의 스승은 절대 아니었고.
‘멍청한 놈…….’
그저 그 스스로를 향해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해탈한 듯이 무감정한 표정을 띄웠다.
데이트라는 명목하에, 분명 아셰라는 자신의 진짜 경지를 알아보려고 할 터.
괜히 데이트라는, 그런 설레이는 단어에 혹한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뭐, 스승님께 그런 걸 바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겠죠.”
반쯤 체념한 듯이, 화이트가 양손을 번갈아 휘저으며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어라, 그건 무슨 뜻인지? 제자님,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아셰라 역시 그 자신의 완드를 꺼내 들며, 미묘하게 눈썹을 까딱거렸다.
“하하, 별거 아닙니다.”
그에 얕게 웃음을 흘리는 화이트.
이내 그의 표정 위로 묘하게 비웃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으니.
“스승님이 그 나이를 먹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봤다는 걸 고려하지 못한 제 잘못이죠.”
“…….”
싸아아아-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대놓고 심기를 건드리는 한마디에.
아셰라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변하였으니.
“……제자님.”
그녀의 눈동자가 차갑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많이 컸어요? 그런 식으로 대들 줄도 알고.”
“대들다니요. 오해입니다, 스승님.”
짐짓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화이트였으나, 그런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 하하.”
아셰라가 한 차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기질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그냥 살짝, 제자님이 숨기고 있는 진짜 경지에 대해서 어림짐작하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죠. 반쯤 몸을 풀고 싶기도 했던 참이고.”
휘오오오!
그녀의 완드에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결집되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죠. 건방진 제자님에게는 벌을. 그게 저와 제자님 사이의 규칙 아니겠어요?”
“하하, 농담도 참.”
그에 대응하듯이, 화이트가 푸른빛의 뇌전을 양손에 머금었다.
“저는 언제나 스승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건방진데요?”
아셰라가 입매를 비틀며 빈정거렸고, 그에 화이트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지, 하나만 덧붙이자면 말이죠.”
“……?”
미묘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의문을 드러내는 아셰라를 향해, 화이트가 느긋한 태도로 손가락을 뻗었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제가 스승님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총의 형태를 띠듯이 손을 말아쥐고는, 이내.
콰앙!
한 차례 짤막한 폭음과 함께, 화이트가 손가락에 응집시켜 놓았던 뇌전을 폭발시키듯이 쏘아냈다.
슈우우우욱!
“…….”
그 푸른빛의 뇌전은 그야말로 아득히 빠른 속도로 아셰라를 향해 날아갔고.
금방이라도 가녀린 그녀의 육체를 꿰뚫어버릴 것만 같았으나.
“……하, 정말이지.”
쩌어어엉!
“……!”
아셰라가 가볍게 휘저은 완드에 의해, 한순간에 그 경로가 틀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래, 그야말로 정반대 방향으로.
“……이런!”
그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 자신의 푸른 뇌전을 피해내기 위해 화이트가 재빠르게 몸을 측면으로 물렸다.
쩌저저적!
“허!”
바로 방금 전까지 화이트가 서 있던 장소를 섬뜩하게 스치고 지나가며, 푸른 뇌전이 근처의 거대한 고목 하나를 한순간에 불태워버렸다.
“하나뿐인 제자를 죽일 셈입니까, 스승님! 제가 담은 마나보다 10배는 더 강한 마나를 실은 것 같습니다만!”
화이트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아셰라는 그저 잔잔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에이, 그 정도로 죽을 제자님이었다면 진작에 저한테 맞아 죽었죠.”
우웅-
그야말로 태연하게 중얼거리며, 아세라가 다시금 완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괜찮지 않아요? 가끔은 이런 것도.”
“……무슨 말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에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아셰라가 싱그러운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웠다.
그리고, 이내.
콰아아아아아아아!
“……허.”
드넓은 평원의 한중간에서,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으니.
“제자님과 대련하는 게 얼마 만인지. 이 스승은 솔직하게 기쁘답니다.”
그 살벌한 마나의 폭풍과는 동떨어진,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아셰라가 한 차례 그 금빛 눈동자를 사납게 번뜩였다.
“……자, 그럼.”
“……!”
아셰라가 그 자신의 완드로부터 시작된 마나의 폭풍을 서서히 화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내리긋기 시작했다.
“한 번 받아 보세요, 제자님.”
“……저 살벌한 마법을요?”
허탈한 기색이 가득 담긴 헛웃음과 함께, 마치 농담하지 말라는 듯한 태도로 화이트가 되물었으나.
“저는 언제나 진심이랍니다.”
아셰라는 그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두 금빛 눈동자에 담겨 있는, 분명하게 느껴지는 살벌한 기색은.
화이트의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하하…….”
이럴 때야말로 그녀의 비위를 맞춰줘야 해야겠지만.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어쩌면 조금은 신선한 감정을 느끼며.
“……뭐, 연애 경험이 없을 거라고 했던 게 그리도 화가 나셨답니까? 불초 제자는 그저 사실만을 말했을 뿐일진대.”
화이트가 이제는 아예 대놓고 비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러한 그의 태도는 아셰라로 하여금 최대치의 분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하, 하하. 참, 정말이지. 제 제자님이 드디어 실성하신 걸까요? 자꾸 기어오르려고 하시네?”
“원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제자는 언젠가 스승을 뛰어넘게 되어 있습니다. 아셰라.”
한마디도 지지 않는 화이트.
슬그머니 호칭을 바꾸는 건 덤이었다.
“……제자님, 정말 죽고 싶어요? 그런 취향인 건지, 제게 맞아 죽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던가?”
아셰라의 미소가 점차 살벌한 느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쿠궁, 쿠구궁…….
콰과과광!
아셰라의 완드에 묶여 있던 마나의 푸른 폭풍이 거칠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제자님이 정녕 저와의 싸움을 원하신다면, 그에 응해주는 게 스승으로서의 도리겠죠.”
“아니, 대련하자고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아셰라잖습니까.”
“……따박따박 말대꾸하지 마세요, 제자님.”
끝내 아셰라의 금빛 눈동자에 선명한 살기가 떠오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미소만큼은 여전하게 유지한 채로.
“……자, 그럼.”
아셰라가 정말이지 즐겁기 그지없다는 듯이, 완드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직후.
“─한 번 놀아볼까요, 제자님.”
“……!”
아득한 상공까지 솟아올랐던 푸른색의 폭풍이, 이윽고 화이트를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
“……하하.”
정면으로 타격을 받을 경우, 어쩌면 뼛조각조차 남기지 못할 수준의 마법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잔잔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으니.
그의 눈동자 위로 그 자신의 스승의 그것과 똑같은, 즐겁기 그지없다는 듯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가 이기면, 이번에는 좋은 포상을 기대해도 좋은 겁니까? 아셰라.”
“제자님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대단한 포상을 준비해 두도록 할 테니까, 우선은 저를 한 번이라도 이기고 말하세요.”
아셰라가 입매를 비틀며 화이트를 향해 쏘아붙였고.
“……그리고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그녀가 그리 중얼거림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사이클론cyclone」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화이트를 향해 덮쳐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