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스승과 제자의 감정
특이한 인생이었다.
혹은 특별하다고 표현해도 좋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
아셰라가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 봤다.
첫 번째 삶은, 그저 평범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는 딸로 자랐고, 평탄한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마지막 순간, 기억나는 것은 그저 환한 불빛이었으니.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 자신의 제자의 말을 빌리자면.
‘환생 트럭, 이라고 했던가요.’
아셰라가 얕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평범했던 소녀는 다른 세계로 전생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백, 수천 년.
혹은 그조차도 아득히 초월한 억겁의 세월 동안 소녀는 삶을 이어갔고.
어느새 평범했던 소녀가 흑(黑)의 마왕이라 불리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고독함이 소녀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타지에 홀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 자신의 속을 터놓고 얘기를 할 만한 대상조차 만나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까.
소녀의 정신은 점차 피폐해져만 갔고, 언제나 돌아가기를 바랬다.
원래의 세계로, 원래의 가족들에게로, 친구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
아셰라의 두 눈동자에 씁쓸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정말 미친 듯이 방법을 찾아댔다.
오래된 유적을 뒤져서 과거의 대마도사가 남긴 기록을 살펴본다던가, 어느 왕국의 비고에 잠들어 있는 고대의 서적을 훔쳐본다던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반쯤 광기에 잠식되어서.
원래 그 자신이 살던 세계로 다시금 되돌아갈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죠.’
약간의 단서조차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 어떤 서적에도, 그 어떠한 기록에도 그 자신과 같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존재는 없었고.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소녀는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외부 활동을 모두 멈추고, 쌓아놓았던 부와 명예는 전부 내버려 두고.
그렇게 반쯤 잠적하듯이 어느 한 숲속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로부터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으나.
하나의 왕국이 멸망의 길에 들어서고, 또 다른 국가가 세워질 즈음.
그녀의 터전이었던 숲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하나의 저택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아함, 그리고 약간의 궁금증을 담아 다가가 보았다.
그래, 그야말로 별생각 없이.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고.
“──.”
……그리고.
그녀는 만나게 되었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뭐야, 이런 X발! 내 세계 돌려줘요! 내 PC 돌려달라고!
……과거, 지금에 와서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원래의 세계의 용어를 사용하는.
새하얀 백금발을 흩날리는, 어째서인지 모르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소년을 말이다.
정확하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나, 아마 소년 역시 자신과 같은 세계에서 넘어온 것이리라.
시대마저 같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스마트폰이니, PC니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시간대가 그리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아, 읏.”
그녀가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쿵, 쿵, 쿵.
한동안 죽은 듯이 멈춰있던 심장의 고동이, 다시금 조심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클리포트 공작가의 자제인 화이트 클리포트의 마법 스승이 되었고.
고작해야 10년 남짓.
그녀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시간이었으나.
그녀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그 자신의 유일한 동향인 소년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말았다.
“…….”
아셰라가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제자님과 함께한 시간은, 제가 살아온 세월 중 그 어떤 시기보다도 행복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않겠나.
그저 고독하기만 했던 수천 수만 년과,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는 10년은.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아득한 차이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 어리던 소년이, 제자님이. 이제는.’
서서히 감았던 눈을 뜨며.
아셰라가 다시금 화이트에게로 그 금빛 시선을 향하게끔 했다.
“말해봐요, 제자님.”
“……뭘요?”
묘하게 당황하는 듯한 그 자신의 제자를 앞에 두고, 아셰라가 떨리는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렇지만 얼굴 위로는 어딘가 모르게 기뻐 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제가.”
그녀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제가, 그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
한 차례, 화이트와 아셰라의 사이에 묘하게 두근거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부디 대답해주길.’
속으로 짧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떨리는 눈동자로 화이트를 직시했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다.
자신이 이 소년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유일한 제자님.’
그것만큼은 분명한 진실이었으나.
그 ‘사랑’이라 함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솔직히 지금까지도, 아직까지도.
분명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자신이 이 소년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그저 스승으로서의 사랑인지.
……그게 아니라면.
쿵, 쿵.
아셰라의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감각을 느끼며.
아셰라가 얕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혹은, 이성으로서의 사랑인지.’
그녀의 두 눈동자에 야릇한 기색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
“…….”
“…….”
아셰라가 화이트를 향해 물었고, 그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따져보면 고작해야 1분, 혹은 2분을 넘기지 않았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졌으니.
묘하게 간질거리면서도, 어딘가 두근거리는.
왜인지 모르게 불편하지만은 않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고.
“……대답, 안 해줄 거에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셰라의 쪽이었다.
그녀가 두 눈을 슬며시 흘기며 화이트를 올려다 보기 시작했다.
“……크흠, 흠. 음.”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흔들리는 시선의 파괴력은 가히 대단했으니.
화이트가 약간은 붉어진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괜한 말을 꺼내가지고.’
화이트의 표정 위로 약간의 후회가 떠올랐다.
……어째서 그런 간질거리는 말을 내뱉었는가.
소중하다느니,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느니.
그따위의 말을 내뱉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밤하늘이……. 참으로 아름답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화이트가 한 차례 마른침을 삼켰다.
우선은 이 상황을 자연스레 빠져 나갈 방법을 떠올려 보았으나…….
“…….”
화이트가 미간을 좁히며 눈가를 짓눌렀다.
……말을 돌린다든가, 혹은 주제를 전환시키든 간에.
그러한 시도를 할 경우, 필시 그 자신의 귀여운 스승님께선 고요하게 살기를 드러낼 터.
‘하아…….’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화이트는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알고 있었기에, 어설프게 말을 돌리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분노하거나, 혹은 삐지거나.
어쩌면 울상을 지을지도 모르지.
“……하하.”
순간적으로 그런 아셰라의 모습을 상상하자, 어째서인지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고.
“제자님……?”
그에 아셰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그녀의 눈동자는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으니.
“……스승님.”
“네. 어, 네?”
그런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화이트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후우.”
그리고 다시금 마른침을 삼키며, 화이트가 한 차례 심호흡을 하였고.
이윽고, 그 눈빛을 진중하게 빛내면서.
“……저는.”
화이트가 입술을 조심스레 떼어내기 시작했다.
“말했듯이,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당신이 소중합니다. 아셰라.”
“……읏.”
흔들림 없는 화이트의 한마디에, 아셰라가 표정을 화악 붉혔다.
‘……제자님은 이렇게 진지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보다, 지금 계속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은데.
“…….”
아닌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착각한 걸까?
‘어? 지, 지금이라도 혼내야 하는 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었으나, 도저히 입 밖으로는 꺼내 들지 못하고.
그저 흔들리는 시선으로 아셰라가 화이트를 반강제적으로 마주했다.
‘으, 으으…….’
그녀가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시선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였으나.
어째서일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고, 또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
쿵, 쿵, 쿵.
아셰라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물들었으니.
‘분명 제자님한테 들켰을 거야, 들켰을 거라고요……!’
어지러운 머릿속을 도저히 정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아셰라가 양뺨에 홍조를 띄웠다.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가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고 물었던가요.”
화이트가 잔잔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그가 꺼내든 방법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아셰라.”
“……네?”
간단하고도 단순명료한, 어렴풋하게 말을 흐리는 방법이었다.
화이트의 입꼬리가 짓궂은 느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제 말에 담겨진 숨은 뜻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 지금 뭐라고요?”
아셰라의 표정이 화악 붉어졌으나, 이번만큼은 그 이유가 달랐으니.
그녀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둘씩 돋기 시작했다.
“제가 뭐라고 물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요? 제가 제일 소중하다는 그 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셰라가 확 소리를 내지르려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읏.”
그리고 얕게 침음을 흘리는 아셰라.
그녀의 표정 위로 분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얄미운 제자님이네요, 정말. 죽기 직전까지 때려패고 싶을 정도로.”
“하, 아하하…….”
화이트가 한 차례 힘없이 웃음을 흘리며 아셰라의 살벌한 시선을 피해냈다.
“……으으.”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계속해서 노려보면서, 아셰라가 이를 악물었다.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소중하다는 말의 진정한 뜻이.
다시금 그녀의 머릿속에 두 가지의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당신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니까.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자신의 앞에서 뻘줌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는 제자님이 내뱉은 그 말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그저 스승과 제자 간의 감정을 뜻하는 거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아셰라의 표정 위로, 서서히 설레이는 감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온전하게 느껴가며, 아셰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쩌면, 단순히 사제지간의 감정을 얘기한 게 아니라.
자신의 제자님은, 어쩌면.
자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