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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29화 (30/158)

(EP.29)당신이 소중하니까

“…….”

그 자신의 레이피어를 꽈악 쥐며, 세레나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오~ 뭐야, 뭐야?”

“무슨 일이…….”

“…….”

뒤늦게 도착하는 오르카와 크리스, 율리안.

그리고 그들보다도 한발 늦게 페르시아와 조슈아 역시 도착하였다.

그러나 딱 한 명,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니.

“에이단 케실은?”

오르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그에 조슈아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볼을 긁적였다.

“……뭐, 조금 쉬었다 오겠다더군.”

“음, 그래?”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오르카.

이내 그녀의 시선이 가장 앞에 서 있던 세레나에게로 향했다.

“어때, 뭐라도 있어?”

“……으음.”

오르카의 물음에, 세레나가 짤막하게 침음을 흘렸다.

‘……마지막 순간, 막 도착하기 직전.’

무언가 푸른빛을 띠는 막 같은 게 보였던 것도 같은데.

“…….”

잘못 봤나?

세레나가 괜히 그 자신의 눈가를 짓눌렀다.

거대한 폭음이 터지고, 그 이후로도 묘하게 거슬리는 소음들이 발생하길래.

필시 무언가의 사건이 터졌다는 직감이 들었고, 그에 급히 뛰어왔건만.

“……하아.”

세레나가 긴장감이 빠진 한숨을 내뱉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이게 무엇인가.

무언가의 사건은커녕, 황궁 내부에는 일말의 상처조차 없었으니.

‘……그만한 굉음이 터졌는데, 아무런 피해가 생기지 않았다고?’

최소한 복도의 기둥 한두 개는 무너졌을 줄 알았─

“……아.”

그제서야 세레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로부터 그리 떨어지지 않은 복도, 그 한쪽 기둥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려 있었던 것을.

“…….”

왜?

왜 저 기둥 하나만 저리도 무참하게 파괴되어 있는 거지?

세레나의 머리 위로 작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여전히 레이피어를 꼬옥 쥔 채로, 그녀가 천천히 기둥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아아-

천천히 그녀의 두 눈동자에 묘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을까.

“이건……?”

세레나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이 특이한 기척에, 이 푸른빛의 마나…….’

스윽-

기둥의 잔재에 남아 있는 마나를 한 차례 눈으로 훑으며, 세레나가 입술을 살짝 떼어냈다.

이내 그녀의 표정 위로 떠오르는 감정은 다름 아닌.

짙은 의구심과, 그 이상의 호기심이었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뭔 짓을 한 거야?’

세레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 차례 백금발의 소년이 떠올랐고.

“…….”

이내 세레나가 낮췄던 몸을 원래대로 돌리고 고개를 들었을 즈음에는.

그녀의 얼굴 위로는 유려한 눈웃음이 만들어진 채였다.

“……화이트. 화이트 클리포트.”

조용히 한 소년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세레나가 두 눈을 흥미로 반짝였다.

*****

“……아, 뭐야.”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에, 화이트가 불쾌한 감정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왜 그래요, 제자님?”

그에 아셰라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아뇨, 그냥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아서.”

“욕인가요?”

“묘하게 불쾌한 감각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흐응~”

아셰라가 기분 좋은 비음을 흘렸고, 그에 화이트가 눈가를 찌푸렸다.

“……만족하십니까, 스승님?”

이내 그가 언짢은 기색을 담아 그리 물었으나.

“네에? 뭐가요?”

돌아온 건 그저 능청스러운 아셰라의 대꾸였으니.

화이트의 이마 위로 힘줄이 하나 둘 돋기 시작했다.

“……하아.”

화이트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온몸이 욱씬거리고 있었다.

그게 어째서인가, 하면.

황실의 대마도사, 프리드리히 에드발트와의 짧은 교전에서 지나치게 무리를 했기에─

“…….”

─는, 물론 아니었고.

화이트가 떨떠름한 표정을 띄우고 아셰라를 흘겨봤다.

“응?”

그에 그저 천연스럽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셰라.

그건 무척이나 귀엽기 짝이 없는 미소라고 할 수 있기도 했으나.

적어도 지금의 화이트에게는 그저 가증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제자인 제가 참아야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

연신 부정하기만 하는 아셰라의 태도에 한 차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도 같았으나.

말그대로, 어쩌겠나?

“……쯧.”

화이트가 작게 혀를 찼다.

자신의 스승이 훈계라는 명목 하에 일방적인 폭력을 가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얼굴 위로 홍조를 띄우는 걸 보면,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는 게 분명하겠지.

‘참으로 특이한 취향을 가진 스승님이로군…….’

조금 더 나아가자면, 성벽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음, 으음…….’

순간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아마 자신은 원자 단위로 분해되지 않을까.

당연하게도 그 자신의 하늘 같은 스승님에 의해.

……어쨌든 간에, 우선은 넘어가도록 하자.

“…….”

……뭐, 안 넘어가 주면 또 뭘 어쩔 거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했으나.

아무튼.

“후우…….”

고개를 들어, 어느새 저물어가는 태양을 직시하고는.

“……하하.”

화이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금은 갑작스럽게, 일말의 전조도 없이.

“……제자님?”

“예?”

그에 아셰라가 이상한 놈을 보듯이 화이트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실실 웃어대고 그래요? 너무 맞아서 정신을 놓아버린 거예요?”

“어, 예?”

“그도 아니면 다시금 중2 감성이 올라온 건가요? 솔직하게 말해서 조금 소름 끼치는데요. 기분 나쁜 미소랄까.”

“…….”

아셰라가 거침없이 독설을 날렸고, 그에 화이트의 표정이 살짝 침울하게 변했다.

아니, 그냥 잠깐 노을을 보고 웃음을 흘린 것뿐인데.

어째서 자신은 저런 말까지 들어야만 하는 것인가.

살짝 삐뚤어질 것만 같았다.

“……스승님.”

그리고 동시에, 묘한 장난기가 올라오기 시작했기에.

“왜요, 제자님?”

“…….”

화이트가 묘하게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술을 떼고 말문을 열었다.

“자꾸 그러시면, 확 그냥 에드발트 경의 제자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야말로 그저 평탄한 어조로 중얼거린 것에 불과했으나.

그 농담조의 한마디가 일으킨 파장은 그리 작지만은 않았다.

“──.”

아셰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그러한 그녀의 기색을 화이트가 채 눈치채기도 전에.

“하하, 농담입니─”

쇄액!

“……!”

살벌한 마나가 담긴 손날이 화이트를 향해 날아들어 왔다.

콰앙!

후둑, 후두둑!

“…….”

어떻게든 피해내긴 피해냈으나.

그 자신의 뒤편의 벽면에 크나큰 상흔이 새겨지는 것을 두 눈에 담으며, 화이트가 식은땀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잘못 건드린 것 같은데.

불안한 직감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화이트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 하하.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평범한 농담이었습니다.”

“…….”

“……스승님?”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이트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잠시 묘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고.

“──.”

이윽고, 아셰라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제자님.”

“……예, 스승님.”

그 목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색에,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야말로 생사결을 앞둔 기사와도 같이 말이다.

……그저 농담을 던진 것에 불과할진대, 어째서 이렇게까지 긴장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들긴 했으나.

‘……화난 건가?’

그 자신의 스승의 감정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또 우선시해야 할 것이었기에.

화이트가 조심스레 아셰라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마요.”

이내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네? 스승님, 지금 뭐라고요?”

“…….”

순간적으로 알아듣지 못한 화이트가 되물었으나,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화이트는 이내 조금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스승님?”

그 자신의 스승의 몸이 살며시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화이트가, 곧 그 자신의 표정을 심각하게 굳혔다.

‘……무슨, 갑자기 왜?’

화이트의 얼굴 위로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아니, 진짜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스, 스승님.”

화이트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담아 아셰라에게 손을 뻗었다.

보통 누군가가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면, 우선은 어딘가 아픈 게 아닌가를 의심하겠지만.

그 자신의 스승에게 병원체가 통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고.

‘발작? 쇼크? 그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자연스레 화이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가정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길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

툭-

“……스승님?”

화이트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들은, 그 어느 하나도 지금의 아셰라의 상태와 관련이 없었으니.

그 갸날픈 몸을 슬며시 자신에게로 기대오는 아셰라의 행동에, 화이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아셰라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말라고요.”

“네?”

……그야말로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묘하게 떨려대는 목소리로.

“하지 말라고요, 그런 말.”

“스승님……?”

아셰라의 진중한 어투에, 화이트의 표정 역시 천천히 바뀌어 갔다.

천천히 그의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스승의 일그러진 표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이거, 설마?

화이트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지금 그녀의 이 반응은, 아마.

“…….”

툭-

아셰라가 손가락으로 화이트의 어깨를 쿡 찔렀다.

“……너무해요, 제자님.”

그 공격 아닌 공격에는 마나는커녕, 일말의 힘조차 담겨 있지 않았기에.

‘……아, 웃으면 안 되는데.’

화이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며, 화이트가 최대한 진지한 태도로 몸을 굳혔다.

그리고 그쯤에서 아셰라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으니.

“다른 스승을 찾겠다니, 황실의 대마도사 밑으로 들어가겠다니.”

“…….”

“……다시 한번 제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기만 해봐요. 확 죽여버릴 테니까.”

아셰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화이트의 어깨에 슬며시 기댔다.

“…….”

쿵, 쿵.

……조심스레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는,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아셰라인가, 화이트인가.

혹은, 둘 다라던가.

“……아, 정말.”

이내 묘하게 불편한 침묵을 참지 못하고, 화이트가 머리를 헤집으며 말문을 열었다.

“스승님.”

“네에…….”

이제는 숫제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아셰라가 말을 늘이며 대꾸했고.

그에 더 이상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화이트가 재차 말을 이었다.

“농담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농담이었다고요.”

“……그래도.”

아셰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화이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금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제 진심을 말씀드릴까요? 스승님.”

“어, 네?”

아셰라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진심, 이요?”

그 단어는 그만큼 의미심장하면서도, 또 은근히 두근거리게끔 하는 것이었기에.

아셰라의 표정이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스승님.”

그리고 그런 그녀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화이트가 진중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

아셰라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화이트를 직시했다.

쿵, 쿵, 쿵.

이제는 그 심장의 고동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 심장의 소리가 두 갈래로 나누어진 것처럼 들리는 것은, 과연 착각이었을까.

서로를 향해 나름대로의 감정이 담긴 시선을 향하게끔 하는 화이트와 아셰라.

서서히 두 사람을 중심으로 묘하게 간질거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

화이트가 잔잔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에 아셰라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 말은…….”

그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화악 하고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화이트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새삼스레 에드발트 경을 공격한 것도, 그와 대치하고 선 것도. 자칫하면 황실 마법사단에 대한 도전으로 몰릴 만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한 이유가.”

그 모든 게 당신 때문이었다고.

……당신을 위해서였다고.

그리 덧붙이며, 화이트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당신이 소중하니까.”

“──.”

“……당신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니까, 당신이 공격받았다고 생각하자 이성을 반쯤 잃고 말았습니다. 미안해요, 아셰라. 아까의 그것도 그저 농담에 불과했어요.”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마디를 더하며, 화이트가 그리 말을 끝맺었고.

“…….”

그쯤에서 아셰라의 얼굴은, 그야말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니.

“제, 제자님. 그, 말은…….”

“…….”

아셰라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화이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심각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차마 감출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그 말은, 그 말을.”

아셰라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어냈다.

“……그 말을, 제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좋은 걸까요?”

실로 그 외모와 똑같은, 마치 10대 소녀의 그것과도 같은 설렘이 담긴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우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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