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28화 (29/158)

(EP.28)죄를 지으면 벌을

“……죄송합니다, 에드발트 경.”

화이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자의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뒤에서 아셰라가 섬뜩한 눈동자로 화이트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화이트로서는 그녀를 거역할 수 없었으니.

무척이나 의도치 않게, 원하지 않은 형태로.

화이트가 황실의 대마도사, 프리드리히 에드발트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말을 꺼냈고.

“…….”

그때까지도, 프리드리히는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과연 화이트의 행동이 그의 화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이제 곧 ‘감히 나에게 기습을 가했더냐?’ 라면서 마나를 끌어올리지는 않을까.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런 쓸데없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해가며.

화이트가 속으로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콰악!

“……!”

아니, 고민하려고 했으나.

순간적으로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압박에, 화이트가 저도 모르게 몸을 한 차례 낮췄다.

“스, 스승님?”

“……화이트.”

화이트가 힘겹게 뒤를 돌아보았고, 아셰라가 그런 그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향하게끔 했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어느새 무기질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제가 말했죠. 은신 마법을 사용하고 황궁에 잠입한 건 명백하게 황제에 대한 도전 행위이고, 그렇기에 황실의 대마도사가 제게 선제공격을 가한 건 마땅하다고 할 만한 행동이었다고.”

“…….”

“……대답 안 해요?”

콰득, 콰드득.

서서히 머리에서 요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과일을 손으로 으깨는 것과도 같은 소음이었으니.

한 차례 식은땀을 흘리며, 화이트가 아셰라의 시선을 조심스레 피해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사죄를 해야 할 대상은 제가 아닐 텐데요.”

화이트의 말에도 아셰라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참으로 침울한 표정으로 화이트가 재차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프리드리히를 향해, 화이트가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황실에 반역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를 하게 되어 무척이나 유감입니다.”

그렇게, 화이트가 사죄 아닌 사죄를 끝마쳤고.

“허허…….”

그제서야 프리드리히가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무척이나 흥미가 돋는다는 듯한, 반짝이는 눈빛과 함께.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그 클리포트의 아이가 어린 나이에 5서클이라는 경지에 올랐었다고.”

“…….”

자비로워 보이는 미소와 함께 말을 잇는 프리드리히였으나, 그 말을 듣고 있는 화이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으니.

그도 그렇지 않겠나.

그 자신이 아셰라가 공격받았다고 생각했을 당시 사용한 마법은, 창은.

“그래. 5서클, 5서클이라…….”

……고작해야 5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쓸 만한 것이 절대 아니었으니 말이다.

프리드리히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클리포트 공작이 괴물을 숨기고 있었군.”

“…….”

화이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니……. 아버지는 상관이 없는데.’

그뿐일까, 아예 그 자신의 아들이 어떠한 경지에 올라 있는지 전혀 예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굳이 또 입 밖으로 꺼내 착각을 정정해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화이트가 그저 입을 꾹 닫았고.

그 와중에도 프리드리히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들과 상념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자신의 흰 수염을 쓰다듬는 프리드리히.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6서클? 아니, 최소 7서클인가.’

우웅-

프리드리히가 마나를 조심스레 끌어 올렸다.

‘어디, 한 번 시험해볼까.’

프리드리히의 미소가 점차 짙어져만 갔고, 이내 그가 하나의 간단한 마법진을 생성해냈다.

“…….”

그리고 그 과정을, 화이트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스윽-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검지를 들어 올리는 화이트.

이윽고.

“──.”

파캉!

“……!”

그 어떠한 영창도 없이, 그저 간단한 마나의 운용만으로.

화이트가 프리드리히의 마법진을 파쇄해냈다.

“……호오.”

그쯤 되자, 프리드리히의 표정은 그 이상이 없을 정도의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으니.

‘고작해야 10대 후반. 이제 막 약관(弱冠)을 앞두고 있는 아이가.’

그 자신의 마법을, 비록 아주 간단하기 그지없는 마법진이었다고는 하나.

완벽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파쇄하다니.

“내가 네 경지를 알아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냐? 화이트 클리포트.”

프리드리히가 의미심장한 기색으로 말을 꺼냈고, 그에 화이트의 눈썹이 한 차례 까딱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허허…….”

시치미를 뚝 떼는 화이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의 표정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간파의 마법진을 파쇄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실력은 드러내되, 그 진정한 힘은 보이고 싶지 않아 한 다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렴 그 자신의 가문이 충성을 바치는 황실의 대마도사고, 그런 존재가 고작해야 10대 소년인 그 자신에게 그리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 터.

……그래, 진짜로 그가 5서클에 불과한 마법사였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제 프리드리히는 알게 되었다.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 화이트 클리포트.

세간에 알려지기를, 불세출의 마나를 타고난 천재.

약관을 채 넘기지 않고 5서클을 달성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

“허허, 허허허.”

프리드리히가 연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려댔다.

……그래, 그랬다.

고작해야 5서클, 9서클에 오른 대마도사 급 마법사인 프리드리히로서는 그리 신경을 쓸 만한 경지가 못 되었으나.

그러한 경지에 오른 나이가 겨우 10대 후반이라면, 그건 필히 천재라 불릴 만한 것일 터.

“…….”

……그럴진대.

5서클이라는 경지만 해도 그런 말들이 나오는 마당에, 하물며 그 이상이라면─

“화이트, 클리포트 가문의 아이야.”

프리드리히의 눈동자가 흥미롭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건 알고 있느냐? 내 간파의 마법진을 막아낸다 쳐도, 내가 진심으로 너의 경지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아직까지 나보다는 약한 네게 있어서 대항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반쯤 협박이나 마찬가지인 대사.

그러나 화이트는 그저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릴 뿐이었다.

그야말로 당당하게, 황실의 대마도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차세대의 클리포트 공작과 척을 지는 것은 당신께서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흐음, 그럼에도 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너를 제압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되면 그때는 전력을 다해 막아내야죠. 혹은 도망치거나.”

화이트가 입매를 비틀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 그렇게까지 하실 생각이라도 있으신지?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만.”

“호오…….”

상당히 무례한 어투였으나, 적어도 프리드리히는 그것에 대해 지적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저 두 눈을 흥미로 가득 채운 채, 프리드리히가 아공간에서 그 자신의 키만한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시험해보아도 괜찮겠느냐? 나는 네 진정한 실력이 알고 싶구나.”

“……하하, 이것 참.”

설마하니 진심으로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한 걸까.

화이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할까.’

……솔직하게 흥미가 없지는 않았다.

자신이 현재 오른 경지는 고작해야 7서클의 끝자락.

그럼에도 금색의 마왕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한때 9서클조차도 넘어선 지고의 경지에 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금색의 마왕과의 전투에서도 한 차례 틈을 보이고 말았거늘.

만약 그 상대가, 현 제국 최강의 마법사라면?

자신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혹은, 그 자신의 경지를 어디까지 더 성장시킬 수 있을까.

“……후우.”

한 차례 심호흡을 하는 화이트.

그리고, 이내.

“…….”

화이트의 그 푸른 눈동자 위로, 선명한 호승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욱-

그 자신의 양손에 푸른빛의 마나를 담아내며, 화이트가 유려한 궤적과 함께 손을 휘저었다.

“…….”

웅-

우우웅-

한 차례 마나가 고요한 울림과 함께 공명했고, 그 다음 순간.

쩌어엉!

푸른빛의 결계가, 화이트를 중심으로 하여 원의 형태로 감싸듯이 생성되었다.

“호오……!”

그에 한 차례 탄성을 내뱉는 프리드리히.

그 자신 역시도 가두듯이 감싼 푸른빛의 결계를 이리저리 관찰하듯이 둘러보며.

프리드리히가 두 눈을 연신 반짝여댔다.

그리고 끝내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당연하게도 화이트가 서 있는 장소였으니.

“솔직하게 말해볼까, 클리포트의 아이야.”

화이트의 벽안을 올곧게 직시하며, 프리드리히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대단해, 무척이나 대단하구나. 불세출의 마나? 타고난 천재? 그딴 건 다 허상이다. 네가 지금 오른 경지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이러한 결계를 만들어낼 정도라면 고작해야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했을 터.”

“…….”

“나는 지금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다. 20년, 아니, 어쩌면 10년만 흘러도…….”

말을 계속해서 쏟아내며, 프리드리히가 몸을 환희로 떨어대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저 소년이라면,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 화이트 클리포트라면.

“……어쩌면, 그 적의 마왕조차도 넘어서는 대마도사 급 마법사가 제국에 탄생할지도 모르겠구나.”

……만약 누군가가 그 짤막한 한마디를 들었다면, 그 존재가 누구라 하더라도 필시 대륙이 발칵 뒤집어질 테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마법사들 중에서 명실상부 최강자인 그 적의 마왕을 넘어서는 대마도사라니.

그것도 아직까지 10대 후반에 걸치고 있는, 어리기 짝이 없는 소년이?

아무리 10년이라는 세월이 있다고 한들, 그 적의 마왕과 맞먹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누구나가 그런 생각을 품을 것이다.

12마왕도, 황실 마법사단의 엘리트들도, 길거리의 꼬마아이도.

“──.”

……그러나.

딱 한 사람.

그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가 한 사람 있었으니.

‘……10년, 10년이라.’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입매를 비틀었다.

……너무 과하다.

10년으로는 안 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5년, 그 안에 대마도사 급에 올라야만 그 자신의 복수가 안정적인 형태로 변할 수 있을 터.

5년이라 해도 가능성은 1할 미만이겠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12마왕들이 그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스승에게 타락의 술식을 주입할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저 오롯이 12마왕 전원을 몰살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1년.’

화이트의 두 눈동자 위로, 분명하고도 확고한 의지의 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1년 안에, 대마도사 급으로 올라선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었고,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자신의 적들을 상대할 수 있다.

잊어서는 안 되는 명제가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앞으로 상대해나가야 할 적들이란, 이 넓은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최강의 마법사들이니.’

언제까지고 고작해야 7서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8서클조차 넘어서서, 대마도사 급 마법사라 불릴 수 있는 9서클의 경지까지.

……반드시라고 해도 좋다.

‘─1년 안에, 나는 대마도사가 되겠다.’

그렇게, 화이트가 속으로 올곧게 다짐했고.

“……가겠습니다.”

바로 그 다음 순간.

상념을 재빠르게 지워낸 채, 화이트가 재차 마나를 양손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래, 와 보거라. 클리포트의 아이야.”

프리드리히 역시 그 자신의 스태프를 꽉 쥐고 마나를 운용하려는 모습.

……이윽고.

고작해야 5서클에 올랐다고 알려진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와, 제국 최강의 마법사인 황실의 대마도사가.

각자의 마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운용한 뒤.

서로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려는, 바로 그 순간.

“──아, 정말.”

“……?”

낭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 건, 그쯤이었다.

콰앙!

“……컥!”

순간적으로 목덜미에서 느껴진 극악의 고통에, 화이트가 신음성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풀썩!

화이트의 몸이 힘없이 쓰러져 내렸고.

“……스, 스승님?”

“…….”

쓰러진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싸늘한 눈빛을 빛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콰악!

“윽!”

“……제자님.”

이내 그녀가 화이트의 등에 대고 발을 올렸고.

무감정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싸늘한 미소를 띤 채.

“왜 제 말을 안 들으시나요?”

아셰라가 또렷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잠시만. 스승님? 일단 이 발부터 좀 치워주시고─”

“닥쳐요.”

콰악!

……발꿈치로 화이트의 등을 짓밟아대면서, 말이다.

얕은 홍조를 띄운 채로, 아셰라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제자님은 뭐가 그리도 당당하시나요? 지금 잘못한 건 저기 서 있는 황실의 대마도사가 아닌, 우리 제자님인데. 저와 이제부터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할 제자님, 이젠 막 나가려 하네요?”

“……아.”

저도 모르게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뱉는 화이트.

화이트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의 두뇌가 실시간으로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늦지 않게 최선의 변명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

“……아니, 그게 아니라. 에드발트 경께서 저의 실력을 보고 싶다고 하시는 탓에.”

“지금 그에게 제자님의 죄를 돌리려는 건가요?”

“…….”

가드가 불가능한 기술이 튀어나왔다.

화이트의 입이 자연스레 꾹 다물어졌고, 아셰라가 더욱 눈빛을 싸늘하게 바꾸었다.

“제가 예전부터 말했었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스, 스승님.”

“……그리고 그건,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제자님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에요.”

……서서히, 아셰라의 눈동자가 무서운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그 동안, 그야말로 뻘쭘하게 서 있던 프리드리히는 어느새 그 자신의 스태프를 도로 집어넣은 상태였으니.

잠시 한동안 떨떠름한 기색으로 두 소년소녀를 바라보던 그가, 이내.

“나는 이만 가보겠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뜻깊은 대화가 오가기를 바라도록 하지.”

홀로 긴급 탈출을 시도했다.

“……에드발트 경?”

그에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이, 화이트가 두 눈을 멍하니 깜빡거렸고.

“다음에 또 보자꾸나, 클리포트의 아이야.”

후욱!

그런 화이트의 무언의 외침에도 상관 않고, 프리드리히가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그리고, 이내 둘만 남게 된 공간에서.

“제자님, 힘내서 잘 버텨봐요?”

“…….”

사제 간의 뜻깊은 육체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