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아무리 황실의 대마도사라도
“…….”
콰앙, 콰아아아아앙!
황궁의 상공, 그 한복판에서 연신 거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각양각색의 마법들이 폭격의 형태가 되어 날아다녔으나, 그러한 마법들은 그 의미를 다하지 못했으니.
「쉴드」
「청록빛 나무줄기」
아셰라는 그저 무채색의 방어막을 펼쳐 무덤덤하게 마법을 막아냈고, 프리드리히는 그 자신의 방식대로 폭격에서 몸을 지켜냈다.
“…….”
휘오오오-
한 차례, 두 대마도사 급 마법사 사이에 삭풍이 불어왔다.
아셰라는 연신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친 채였고, 프리드리히는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기색.
이내, 먼저 입을 연 것은 프리드리히 쪽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
“……?”
조금은 갑작스런 한마디에, 아셰라가 손을 턱에 대고 고개를 갸웃했다.
믿을 수 없다, 라.
‘뭐, 대충 무슨 말이 나올지는 알 것도 같지만요.’
그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대마도사 급 마법사의 등장이라거나.
그런 자의 모습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10대 소녀로 보이는 것이라던가, 혹은 그러한 정체 모를 자의 진짜 정체에 관해서 고심이라도 하고 있겠지.
아셰라가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저하고 최소한 동등하다고 할 만한 전투가 성립되는 마법사는 오랜만이네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꾸만 피어오르려는 호전성을 애써 내리누르는 아셰라.
그리고.
“이 정도의 마법, 그리고 그 덤덤한 태도.”
그런 그녀를 향해, 프리드리히가 재차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놀랐네. 나를 상회하는 대마도사는 적의 마왕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늘.”
조금은 허탈한 기색으로 프리드리히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상당히 여러 가지 감상을 느끼고 있는 모습.
천천히 그의 표정 위로 복잡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은 넓고, 또 마법의 가능성이란 무궁무진하죠, 프리드리히 에드발트. 당신이 아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랍니다.”
“…….”
마치 가르치듯이 얘기하는 아셰라였으나, 적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프리드리히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정 부분 납득하는 바가 있었으니.
“……그대의 말도 맞는 부분이 있지. 아니, 오히려 정확하기 그지없다고 해야 할까.”
프리드리히의 낯빛이 어느샌가 편안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나를 너무 과신하고, 동시에 세상을 얕봤군. 사죄하도록 하지, 정체 모를 대마도사여.”
“……헤에.”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에 아셰라의 눈에 한 차례 이채가 서렸다.
그 황실의 대마도사가, 정체 모를 대마도사 급 침입자에게 고개를 숙인다라.
만약 황실 마법사단의 인물이나, 제국의 귀족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야말로 입이 떡하니 벌어지고 마리라.
그 대마도사가, 그 프리드리히 에드발트가.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12마왕을 제외하면 최상위급에 속하는 대마도사 급 마법사가, 한낱 소녀에게 고개를 숙이는 광경이라니.
우선은 그 자신의 두 눈부터 의심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쉽게 믿기 힘든 광경이었고, 그만큼 정중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아까까지 금방이라도 배제할 듯이 마법을 난사해대더니, 새삼스레 뭘까요?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심경의 변화라고 할 것까지는 없네, 다만.”
아셰라의 가벼운 물음에,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말을 늘였다.
그의 두 눈동자에 희미하게나마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대가 나를 압도할 수 있었음에도, 나와 급을 맞추어 상대해주었으니. 그것으로 자네의 말이 증명된 게 아니겠는가.”
프리드리히가 태연하게 한마디를 내뱉었고.
그에 아셰라의 눈가가 살며시 좁혀졌다.
“……말이라, 무슨 소리인지?”
우선은 그 의중을 꿰뚫어보고자 아셰라가 그리 물었고, 그에 프리드리히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대가 말했지 않나. 나와 황실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고.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지.”
“흐음……. 계속 말해봐요.”
어느새 전장에 난무하던 살벌한 기세는 깔끔하게 흩어진 채였다.
무어라 말을 맞추지도 않았지만, 아셰라와 프리드리히가 동시에 지면을 향해 내려앉기 시작했고.
그 발끝이 황궁의 복도에 닿을 즈음, 프리드리히가 다시금 말문을 떼어냈다.
“이것만 보아도 그렇지. 굳이 황궁에 피해를 입히지 않고자 그 상공으로 전장을 옮긴 것도, 나의 틈을 찌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도.”
“…….”
“그 모든 것이 그대가 황실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프리드리히가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을 끝맺었고.
“……흐응.”
아셰라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한 차례 밝게 반짝였다.
“이번 세대의 대마도사는 상당히 현명하군요. 아, 딱히 비꼬는 건 아니예요. 그저 말그대로, 현자(賢者)라고라도 평해야 할까요?”
“그건 영광이군. 비록 그 정체는 알 수 없다지만, 나보다도 아득히 뛰어난 마법사에게 그런 평가를 듣는 건 희귀한 경험이지.”
“말이 조금 통하네요. 약간의 융통성이 있어서 다행이랄까?”
아셰라가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완드를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듯이, 그녀가 양손을 장난스럽게 들어올렸다.
“다행히 일이 좋게 풀린 것 같으니, 저로서도 나름의 협조는 해드리죠. 조금 전 얘기했던, 제자가 걱정되어서 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어요.”
“……제자, 라.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었지.”
프리드리히의 두 눈동자에 어딘가 모르게 열정적인 기색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떠한 자인가? 필시 현재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마법사이겠지? 그도 아니면 혹,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하는 신성인가?”
그가 두 눈을 빛내며 말을 쏟아냈고, 그에 아셰라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뭐예요. 당신이 제 제자님에 대해 알아서 뭐하게요?”
이내 무언가 떠오른 생각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녀의 목소리에 차츰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만약의 얘기이지만, 제 사랑스러운 제자님을 뺏어갈 생각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며.
그리 덧붙이고는, 아셰라가 홱 몸을 돌렸다.
“어딜 가는가?”
그러나 그 살기에도 아랑곳 않고 프리드리히가 물었고, 아셰라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제 제자님 만나러요. 뭐, 불만이라도 있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고개만 살짝 꺾어 프리드리히와 눈을 맞췄다.
사아아-
서서히 그녀의 오른손에 살벌한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건 분명 경고일 것이라고, 프리드리히는 직감할 수 있었다.
“허허……. 그대의 제자는 참으로 행복한 인물이겠군. 대마도사 급 마법사에게 이리도 사랑을 받고 있다면.”
더 이상 파고들었다가는 정말 다시금 부딪혀야만 할 것 같은 감각에, 프리드리히가 한 발 물러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마도사가 총애하는 제자라니, 흥미가 안 갈 수가 없는 부분이었으나.
그 당사자인 그녀가 이렇게까지 거부하는데 계속 흥미를 드러내는 것은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았다.
“……흥.”
그리고, 그런 프리드리히의 선택은 탁월했다.
금방이라도 마법을 일으켜 현실에 이변을 만들어낼 것만 같던 마나가, 서서히 일렁거리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홱 몸을 돌려 다시금 걸어나가는 아셰라.
‘제자님은 뭐하고 있으려나.’
그녀가 속으로 백금발의 소년을 떠올리며 총총걸음으로 이동해나갔다.
비록 황실의 대마도사에게 은신 마법이 파악되는 바람에, 한 차례 맞붙긴 하였으나.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을 맞이했으니.
‘뭐, 나쁘진 않네요.’
속으로 프리드리히에 대한 인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아셰라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자신이 그를 봐주면서 상대한 건 맞았으나, 그걸 파악하고 인정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거기에 더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자가 황궁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끔 그저 놓아주는 것 역시 나름대로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으리라.
다섯 개의 별을 가진 황실 마법사단의 정점에 위치한 자로서, 그런 선택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프리드리히 에드발트.”
한 차례 그의 이름을 짧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괜찮지 않겠나.
황실과는 그리 연이 없었으나, 이번 세대에는 한 번쯤 연줄을 만들어 놓는 것도.
“……흐흥~”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셰라가 작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바로 직후였다.
“아셰라!”
“……?”
익숙한 목소리가 한 차례 울려퍼짐과 동시에.
쩌어어어어어엉!
“……!”
멀어져 가는 아셰라의 뒷모습을 그저 허허로이 바라보던 프리드리히에게, 푸른빛의 창이 내려꽂힌 것은.
“……???”
아셰라의 표정이 황당으로 물들었다.
프리드리히가 공격을 받았기에?
……아니, 그보다는.
프리드리히를 향해 날아들고, 또 그의 마법진에 의해 가로막힌 청색이 창이.
무척이나 익숙하고도, 또 친근하기 그지없었기에.
“……제, 제자님?”
아셰라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쯤에서.
콰앙!
황궁의 복도, 그 기둥 하나를 박살내며 화이트가 튀어나왔다.
“……!”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백금발의 소년의 모습에, 프리드리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
「파동」
우웅-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마나를 운용했고.
파아아아아앙!
이내 그 마나는, 마법진의 형태가 되어 화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단순한 마법, 그러나 그 시전자가 대마도사라면 그 위력 역시 남다를 것이었으니.
공간을 울려가며 다가오는 공기의 파동에 겁을 먹을 법도 할진대.
그저 표정을 무기질적으로 바꾸며, 화이트가 한쪽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내.
퍼어어어어어어엉!
화이트가 손아귀 안에 품고 있던 마나를 폭발의 형태로 바꾸어 터져나오게끔 했고.
“……스승님을 건드렸다면, 아무리 그 황실의 대마도사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
한 차례 살벌한 눈빛을 번뜩이며, 화이트가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
“…….”
그쯤에서 프리드리히와 아셰라의 표정은 미묘하기 그지없게 바뀌어 있었으니.
“……아, 제자님. 제발, 뒷북 좀.”
아셰라가 어지럽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아니, 대체 왜.
자신의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제자님은.
이제 와서,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종료된 이 순간에 저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몰려왔고, 아셰라가 화이트를 외면하기 위해 고개를 홱 돌렸다.
‘……아, 난 몰라요. 알아서 수습해요, 제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