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25화 (26/158)

(EP.25)무시하자

“……이봐, 조슈아 하이젠.”

에이단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냐, 케실 가문.”

조슈아의 대꾸에, 에이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 내 눈이 어딘가 이상하지는 않은지 네 가문의 기계공학으로 알아봐 줄 수는 없나?”

“……그건 갑자기 왜?”

우선은 그리 되묻는 조슈아였으나, 그도 나름대로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던 걸까.

그의 목소리에 얼떨떨한 기색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대체 뭔지 모르겠어서, 혹시 내 눈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나머지…….”

“…….”

에이단의 물음에, 조슈아가 한 차례 눈가를 짓눌렀다.

……에이단의 말대로, 그의 눈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조슈아 그 자신도.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건 아닐 것 같네. 나도 지금 너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거든.”

“아, 그러냐?”

에이단이 한순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이 다시금 정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고.

이유 모를 동질감을 한 차례 느끼면서.

정말이지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꼴을 관람하듯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

“제 눈앞에서 당장 사라지세요, 화이트.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 제국의 고귀한 황녀, 크리스가 그렇게 싸늘하게 중얼거렸고.

그에 당연하게도 화이트가 당황하며 그녀에게 매달리─

“그래, 그거 괜찮네. 나도 지금 막 다른 용건이 생각난 참이라.”

─지는 않았다.

“……네?”

가벼운 어조로 그리 대꾸하는 화이트의 모습에, 크리스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지금 뭐라고?’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쯧.”

그에 화이트가 한 차례 혀를 찼다.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한 건 너잖냐.’

그래서 사라져 주겠다는데, 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그렇게 애달픈 시선으로 쳐다보는 건지.

“…….”

물론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는 화이트였다.

그는 크리스가 그런 말을 꺼낸 이유와, 그 심리까지도 다 꿰뚫어보고 있었고.

그리고, 아마 이제 이 다음 순간에는…….

“……잠깐, 제가 실언했어요. 화이트. 일단 기다려보세요.”

“아니, 어차피 네 말이 아니었어도 나는 갈 거였─”

“기다려보라고 했잖아요! 그럼 기다리세요!”

후욱!

그녀가 소리침과 동시에, 한 차례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

정말이지 예측하기 쉬운 상황에, 화이트가 짜게 식은 눈으로 크리스를 쳐다봤다.

그제서야 그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을까.

크리스가 몸을 움찔거리며 화이트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미, 미안해요. 소리 질러서.”

“…….”

그 즉시 사과의 말을 꺼내드는 크리스의 모습에, 화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렇게까지 올곧게 사과해오는데, 어찌 그냥 무시를 하겠는가.

그 정도로 그녀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그저 그녀의 속성이 영 불편했을 뿐, 오히려 자신은 그녀에게 나름대로의 호감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게 그녀가 바라는 종류의, 이성으로서의 호감은 절대 아니었지만.

‘……비록 성격은 조금 비틀려 있는 녀석이지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비틀리다 못해 일그러져 있다고까지 표현해도 좋겠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그녀의 능력, 정확하게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이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힘이었고.

필시 앞으로의 일에도 도움이 될 터.

‘12마왕이 본격적으로 마수를 뻗쳐오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 중 한 명과의 싸움 끝에 한 끗 차이로 패배했었던가.’

과거, 지금은 없어진 시간대에서의 그녀의 최후를 떠올리며.

화이트가 나름대로 안쓰러운 기색을 담아 크리스를 바라봤다.

비록 12마왕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한 마왕이었으나,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한 대마법사와 동등에 가까운 대결을 펼쳤다는 건 가히 업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네게 경의를 표하고, 동시에 동정한다.’

……크리스.

화이트의 두 눈동자에 씁쓸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을 어떤 식으로 해석했을까.

크리스가 안절부절못하며 속눈썹을 파르르 떨어대기 시작했다.

“화, 화났어요? 화이트.”

“……아니, 딱히.”

화이트가 뒷목을 살짝 짓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그러자 크리스가 순간적으로 반색하였으나.

곧바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앗’ 하는 탄성과 함께 그녀가 한순간에 표정을 싸늘하게 바꿔버렸다.

“……뭐, 화가 안 났다면 이만 가보도록 하세요. 저도 당신을 계속 보고 있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

상황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을 예상했기에, 화이트가 대충 손을 휘저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그에 한 차례 쓸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무는 크리스.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은 걸까.

그녀가 입술을 한 차례 떼어냈다가, 이내 다시금 도로 닫았다.

그녀의 표정 위로 아련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그러한 그녀의 묘한 분위기를 다 눈치채고 있던 화이트였지만.

‘오늘만큼은 저 녀석한테 시달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 좋다.

무시하도록 하자.

분명 또 저렇게 차갑게 말하고, 혼자 남게 되면 울먹거리겠지만.

분명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자신으로서도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게 되겠지만!

잊지 말자.

그녀는 마냥 심약한 황녀 저하에 불과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바람의 이능'은 오러나 마나에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는 힘이었고.

그녀가 한 차례 이성을 반쯤 놓고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면, 무척이나 일이 귀찮게 변질될 터이니.

‘……다음에 만나면 맛있는 거라도 하나 사먹여야 하나.’

분명 아득히 오래 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녀는 달달한 과자를 좋아했던가.

한순간의 귀찮음으로 외면한 것에 대한 사죄로는, 적당히 제도 내의 유명한 제과점의 과자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 결정하도록 하자.

물론 수도 없이 먹어본 과자일 테지만, 아마 자신이 가져다 준다면.

그녀는 필시 기뻐하겠지.

‘……귀찮기 그지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 귀찮음에 회귀 이후 반쯤 신경을 끄고 있던 녀석이기도 하였지만.

그녀의 힘을 인정하고, 그녀와의 추억도 서서히 몇 개 즈음 떠오르고 있었기에.

-화이트, 이 꽃 예쁘지 않아요?

-화이트, 이 과자 엄청 맛있어요! 제가 하나 줄게요!

-화이트, 화이트!

“…….”

조금은 귀찮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상대였고.

비록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깊이가 한층 남다르다지만, 이상하게 비틀려 있기까지 하다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몇 없는, 분명하게 ‘친우’라 부를 수 있는 존재인 건 맞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소꿉친구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

한 차례 눈썹을 까딱거리는 화이트.

그의 얼굴 위로 슬며시 귀찮은 기색이 서린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우선 지금은 넘어가도록 하자.

어째서냐, 하면.

그건 그냥.

귀찮으니까.

그것도 무척이나.

‘……크리스를 상대하는 건 미래의 내게 맡기도록 하지.’

정말이지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속으로 품으며.

화이트가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른 걸음걸이로 후계자들과 크리스가 있는 공간을 빠져나갔다.

‘스승님은 어디쯤 계시려나.’

그야말로 일편단심.

속으로 그 자신의 작은 스승을 떠올리며, 화이트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건 크리스는 물론, 후계자들 중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진심이 담긴 환한 미소였다.

‘아마 황궁 내부에 있긴 할 텐데…….’

우웅-

화이트가 천천히 감지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 바로 직후.

“……!”

화이트의 감지 마법에 무언가 묘한 기척이 잡히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커다란 폭음이 터져나왔다.

“……?!”

“뭐, 뭐야?”

화이트가 빠져나가고, 그들끼리 나름대로의 대화를 나누던 후계자들과 크리스의 고개 역시 폭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그 정확한 상황까지는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상황의 심각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기에.

스릉!

세레나가 집어넣었던 레이피어를 다시 꺼내들며 표정을 굳혔다.

크리스가 그 자신의 양손에 바람의 기운을 흘려넣었고,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들보다는 한층 폭음이 들려온 위치로부터 가까이 있던 화이트는.

어째서인지, 그 표정을 살벌하게 바꾸고 있었으니.

‘……아셰라!’

폭음이 터져 나오기 전, 분명하게 감지된 그 자신의 스승의 기척에.

화이트가 그 벽안을 살벌하게 번뜩이며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음이 터져나온, 황궁 내부의 어딘가를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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