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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24화 (25/158)

(EP.24)얀데레 황녀님

“하나 말해두지, 세레나 리이칸테르.”

“……?”

그 뒤편에 푸른빛의 구슬들을 여전히 띄워 두며, 화이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금부터 더 나아가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의 배려는 없다. 그건 알아둬라.”

“……하.”

어쩌면 위협을 느낄 수도 있을 만한 말이었으나, 세레나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녀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배려해주면서 싸웠다, 이거지?”

“……뭐, 그렇게 해석이 되기도 하긴 하겠지.”

“…….”

화이트의 짤막한 긍정의 한마디에, 세레나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어지간히 자존심에 잔상처가 생긴 모양.

“……아, 그래. 이제 확실히 알겠어.”

“……?”

세레나가 부들거리며 입을 열었고, 그에 화이트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확실히 알겠다니, 무엇이?

“……하하.”

의문이 들었으나, 아무래도 세레나는 그에 관해 해답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열등감? 그래, 있을지도 모르지.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 자존심이 어지간히 높다는 걸.’

세레나가 서서히 분노의 미소를 얼굴 위로 띄우기 시작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스윽-

작게 중얼거리며, 세레나가 다시금 자세를 갖추었다.

몸을 낮게 낮추고, 검을 일자로 쭉 세우며.

그 레이피어를 곧바로 찔러넣을 듯이, 그녀가 두 눈빛을 선명하게 번뜩였고.

“─그냥, 네가 짜증 나는 게 문제인 거였어.”

“……?”

바로 직후, 그런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후욱!

그녀가 일직선으로 화이트를 향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즐겁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로, 말이다.

“그래, 네가 잘못한 거야. 화이트. 그러게 누가 그렇게 짜증 나게 하래?”

“……?”

도저히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혹은 진행되는 감정선을 따라가기에 벅차서.

화이트가 그 얼굴 위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빛을 띄웠고.

화아아악!

그다음 순간.

세레나의 금빛 오러가 담긴 레이피어와, 화이트의 푸른빛 마나가 담긴 구슬이 중간 지점에서 거세게 맞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

“…….”

휘오오오-

한 차례,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세레나와 화이트, 검과 마법.

그 둘의 격돌의 결과는 과연 어떤 형태일까.

‘……어떻게 됐지?’

그 순간만큼은 에이단 케실 역시, 어쩔 수 없는 궁금증에 사로잡히고 말았으니.

“하, 아핫. 대단한 녀석들이네. 이 위력은…….”

뱀파이어의 후예, 오르카 밤피르가 그 붉은 머리카락을 한 차례 흩날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검과 마법, 리이칸테르와 클리포트.

그 둘의 대결은, 비록 후계자들끼리의 작은 다툼이라고는 하나.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빅 이벤트나 다름없었으니.

누가 이기게 되더라도 필시 크게 화제가 되겠지.

기대, 그리고 나름의 흥분이 담긴 눈동자를 서서히 빛내며.

일곱 가문의 후계자들이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윽고, 먼지 구름이 서서히 걷혀갔고.

점차적으로 세 사람의 인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잠깐.

세 사람?

에이단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확 굳어졌다.

그 이외에도 오르카, 조슈아, 율리안, 페르시아의 낯빛 역시 심상치 않게 변해갔으니.

그 다섯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은 정확하게 동일했다.

……어째서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의 모습이?

“……너는.”

“어……?”

그리고, 그에 당황한 건 단연 그들뿐만은 아니었다.

화이트가 표정을 굳히고 중얼거렸고, 세레나가 얼빠진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아하하.”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은 한 존재가, 얕은 웃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하며.

두 사람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선은,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하면 될까요?”

“…….”

세레나의 검과, 화이트의 마법을 각각 한 손으로 막아낸 은발의 소녀가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으……. 역시 아프네요. 아무리 기운을 둘렀다지만, 맨손으로 막아내는 건 조금 벅찼던 걸까요.”

은발의 소녀가 그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얕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왼손에 비하면 한층 더 깊게 상처를 입은 모습.

“아무래도 그대로 부딪혔으면, 리이칸테르 영애가 패배했겠네요. 이 정도 위력이라면…….”

“…….”

그녀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이내, 화이트는 떠올릴 수 있었다.

‘……반짝이는 은발, 설마.’

아마 지금을 기준으로 10년 전쯤, 그 자신이 아직까지 꼬맹이에 불과하던 시절.

-화이트, 저희가 다음에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그때는, 약혼을 맺을 수 있을까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고, 슬며시 그 눈동자를 자신에게로 향하던.

황실의 상징인, 은빛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던 자그마한 소녀의 모습을.

“…….”

화이트가 서서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간을 기준으로는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분명, 자신이 10대 중반에 들어섰을 즈음…….

-아들아, 황실에서 약혼 제의가 왔더구나.

-예?

-막내 황녀, 크리스의 의견을 반영해 우리 가문과 약혼을─

-싫습니다만…….

-뭐?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잠깐. 아들아?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느냐?

-아뇨, 잠시 급한 용무가 떠올라서요.

-무슨 그런 설득력 없는 소리를…….

-그럼, 이만! 아버지!

-아들아, 아들아? 어째서 텔레포트를 시전하는 거냐?

-방해하지 마시길, 좀 혼자 있고 싶으니까!

“…….”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에.

화이트가 한 차례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오랜만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줄까요. 화이트?”

“……크리스.”

아름다운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은발의 미소녀를 앞에 두고, 화이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띄웠다.

그 이유는 어째서인가.

그건 바로, 다름 아닌.

“제 약혼 제의를 걷어차고, 4년 만이던가요. 참 뻔뻔하게도 황궁에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하하, 정말이지.”

“……잠깐. 애초에 약혼에 관련된 이야기는 어렸을 적에도 한 차례 거절했었고, 이번에 황궁으로 오게 된 건 그저 황제 폐하의 소집 명령에 의해─”

화이트가 난감한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하였으나.

“─다물어요, 화이트.”

“…….”

두 눈을 살벌하게 번뜩이며 중얼거리는 크리스의 모습에, 화이트가 이마를 턱 짚었다.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곤란하게 됐군.’

화이트의 표정 위로 심각할 정도의 귀찮은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우선 이 상황을 설명하려면.

자신이 어찌하여 황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크리스의 약혼 제의를 거절하였는지부터 얘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그야말로 단순명료하기 짝이 없는 이유에 불과했으니.

“제가 없는 동안, 혹여 연인이라도 사귀거나 하셨던가요? 네? 화이트, 대답해 줄래요?”

“……아. 제발, 좀.”

화이트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손을 내저었으나, 크리스의 눈빛은 그저 점차적으로 살벌하게 변해갈 뿐이었다.

반쯤 살의까지 띄워가며, 그녀가 화이트를 향해 옅은 홍조를 띄워 보였다.

“……제 제의를 거절하셨으면, 언제까지고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았어야죠, 화이트.”

“…….”

……그래, 그랬다.

그녀는,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속성은.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

“…….”

연신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눈빛을 섬뜩하게 빛내는 크리스를 떨떠름한 시선으로 직시하며.

“…….”

화이트가 과거의 한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 좋아해요, 좋아해…….

……그건, 정말이지.

비록 지금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지만, 그 당시의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나름대로의 섬뜩함을 가져다주었을 정도로 사납고도 애틋한 눈빛이었기에.

그래, 그녀의 속성은 다름 아닌.

전생의 용어를 빌려 와서 설명하자면, 단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만약 이 현실이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면, 이런 문구가 뜨지 않았을까.

[삐빅- 등장인물, 크리스가 속성 ‘얀데레’를 각성하였습니다! 플레이어의 앞날에 불행이 가득하겠군요! 힘내서 분발하시길!]

“…….”

화이트의 표정이 귀찮음과 성가심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 스승님. 어디 계신 건가요. 갑자기 엄청 보고 싶어졌습니다.’

속으로는 그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흑발의 소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물론 그러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은 없었다.

……당연하게 그다음 순간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이 갔기에.

아마 즉시 뺨을 맞게 되지 않을까.

딱히 그것에 별다른 피해나 상처를 입지는 않겠지만…….

“…….”

그저 입을 꾹 다문 채로, 화이트가 현실을 부정하고 나섰다.

‘기절하기에 좋은 마법이 뭐가 있더라. 블랙 아웃, 라이트 이펙트…….’

딱 1시간만 기절하고 깨어나면, 그때 즈음에는 상황이 전부 정리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헛되고도 의미 없는 희망을 한 차례 속으로 조용히 품으며.

화이트가 슬며시 두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피곤하면 자야지.

암, 그렇고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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