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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22화 (23/158)

(EP.22)세레나 리이칸테르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먼저 화이트는 곰곰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그래, 그건 아마.

황제의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그 자신의 기준으로는 핏덩이들에 불과한 또래들을 훑으며.

화이트가 어지러움에 한 차례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

“그래, 이렇게 된 참에…….”

“폐하?”

회의를 파하고, 다들 제도에 마련된 가문의 저택으로 되돌아가려는 참.

황제가 가벼운 어조로 그리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한 번 따로 모여보지 않겠나?”

“……?”

그건 과연 누구한테 하는 말일까.

‘너희들’이라니.

아무리 황제라고는 하나, 제국의 주요 가문들의 가주들에게 그러한 호칭을 사용하지는 않을 터.

……자연스레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불안감에, 화이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황제를 돌아봤다.

그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황제.

그리고, 이내.

“그래, 너희들 말이다.”

“…….”

그 자신과, 타 가문의 후계자들을 쳐다보며 말하는 황제의 모습에.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마침 일곱 가문 모두가 제도에 모이기도 하였고, 장차 제국을 이끌어나가야 할 너희들이 한 번 따로 모여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

“내 막내 황녀가 딱 너희들과 동년배이지. 그 아이도 보낼 터이니, 한 번 너희들끼리 놀아보아라.”

굳어 있는 화이트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황제가 그리 말을 끝맺었고.

“……?”

“……???”

아무래도 그런 황제의 말에 당황한 건, 화이트뿐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런 기색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황제가 환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웠다.

“자, 뭣들 하나? 어서 가지 않고.”

“……폐하? 잠시─”

“어서 가거라. 내 황녀 역시 너희들에게로 가라 이를 터이니.”

“폐, 폐하─”

무어라 반론을 펼쳐 보려는 화이트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거침이 없었다.

발언을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말을 꺼내든 화이트를 꾸짖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다행은 개뿔, 이런 씨─’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화이트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눈가를 짓눌렀다.

‘나는 이런 어린 녀석들하고 어울리려고 제도에 온 게 아니란 말이다, 황제.’

옆에서 멍하니 황제를 쳐다보고 있는 그 자신의 또래들을 쳐다보며, 화이트가 속으로 침음을 흘려댔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긴 하였으나.

어쩌겠는가?

아직까지 자신의 신분은 그저 공작가의 평범한 후계자일 뿐.

정식으로 클리포트 가문의 가주로 올랐던 과거도, 제국의 유일한 대마도사 급 마법사로서 활약했던 그 시절도.

이제는 없어진 세계에 불과할진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황제의 명에 거스를 수 없었다.

“…….”

……아니, 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대놓고 황제의 명에 거역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화이트가 슬며시 이를 악물었다.

제도에 올라온 김에 여러모로 확인하고 싶은 것도, 처리하고 싶은 문제도 있었거늘.

어째서 황제는 그따위의 말을 꺼내는가.

‘지금의 나에게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과의 교류는 그리 중요치 않은데.’

……그런 불만을 속으로 품는 화이트였으나.

‘……어쩌겠냐, 지금의 내가.’

결국 끝내 나온 결론은, 명에 따르는 것이었으니.

그저 표정을 퀭하니 가라앉힌 채.

“자, 자. 어서들 가거라.”

“……예.”

황제의 명에 따라, 화이트가 몸이 이끌리는 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황제는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보다 그 자신을 대표로 선정한 듯하였다.

‘당연하다면 또 당연한 건가.’

한 차례 혀를 얕게 차며, 화이트가 뒷목을 짚었다.

……제국에서 황실 다음으로 고귀한 가문이라 하면, 당연하게도 클리포트 공작가일 것이니.

그 후계자인 자신에게 맡기겠다는 건가.

“…….”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굳어 있는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을 스윽 훑어보는 화이트.

그래, 황제는 그리 생각한 것이겠지.

‘이 녀석들을 이끄는 역할을 내게 맡기겠다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화이트가 연신 눈가를 짓눌러댔다.

……제도에 온 김에, 그 시간은 아셰라와 보내고 싶었는데.

“……귀찮기 짝이 없군.”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는 화이트였다.

……그건, 그래.

정말이지 무의식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에 불과하였으나.

“……지금, 뭐라고?”

“……?”

별다른 의미도, 뜻도 담겨 있지 않은 가벼운 푸념.

그것뿐에 불과한 한마디였지만.

“아무리 클리포트의 차기 가주라지만, 지나치게 건방지다는 생각은 안 들어?”

“…….”

아무래도 다른 후계자 중 누군가는 그리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응? 대답해봐, 화이트 클리포트.”

뒤편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에, 화이트가 고개만 살짝 꺾어 뒤를 돌아봤다.

……그 자신의 백금발과는 조금 다른, 짙은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자신을 사납게 노려보는 소녀의 모습에.

화이트가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귀족가의 어린놈들이란.’

서서히 그의 두 눈동자에 명백한 귀찮음과 언짢은 듯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

그리고 그러한 화이트의 눈빛은, 그 금발의 소녀의 화를 한층 더 돋우게 만드는 것에 성공적이었으니.

“짜증 나는 눈빛이네, 너.”

“…….”

금발의 소녀가 그리 중얼거렸고.

바로 직후.

채앵!

“……하.”

그녀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얇은 레이피어를 꺼내 들었다.

“너, 솔직하게 말해서 상당히 거슬려. 그러니까…….”

“…….”

스윽-

뽑아 든 검을 화이트에게 겨누며, 소녀가 살벌하게 눈을 번뜩였다.

“──덤벼.”

“…….”

“솔직히 궁금하긴 했거든. 그 대단하다던 화이트 클리포트의 천재적인 마법 실력 말이야.”

“……하아.”

이어지는 소녀의 말에, 화이트가 끝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우웅-

“후회하게 될 텐데.”

화이트의 양손에 서슬 퍼런 푸른빛의 마나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에 한 차례 눈썹을 까딱거리는 소녀.

이내 그녀가 자세를 다잡으며 짧게 중얼거렸다.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야.”

“그런가.”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화이트의 눈동자가 어두운 빛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굳이 상대해줄 필요까지는 없지만.’

……격의 차이 정도는 알려주는 것도 괜찮겠지.

아무렴, 지금은 사라진 시간대에서는 ‘검의 여제’라고까지 불렸던 소녀가 아니던가.

‘─세레나 리이칸테르.’

화이트가 속으로 그 금발의 소녀의 이름을 짧게 중얼거렸다.

검에 있어서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고.

언젠가 다가올 혼란으로 가득할 미래에 필시 도움이 될 전력이었으니.

‘한 번쯤, 확실하게 서열을 인식시켜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우웅-

그 얼굴 위로 무감정한 표정을 띄우고, 화이트가 천천히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자님, 힘내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아셰라가 그 자신의 제자를 향해 응원의 말을 속으로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무 저랑만 지내는 것도 제자님한테는 안 좋을 테니까요. 가끔은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은 거랍니다.’

아셰라의 눈동자에는 그렇게 아련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아셰라, 스승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알현실에서부터는 내게도 모습을 안 드러내더니.’

……정작 그런 아셰라의 시선을 받아내는 화이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서로가 상반된 생각을 속으로 떠올리며, 그렇게 두 사람은 한 차례 엇갈리고 말았다.

“──.”

그리고.

……그리고.

황궁의 어딘가, 아셰라와 화이트가 있는 장소에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

희게 물든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한 노인이, 의아한 빛을 얼굴 위로 떠올리며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은신 마법?’

노인은 정확하게, 아셰라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를 직시하고 있었으니.

‘……내가 겨우겨우 눈치챌 정도의 은신 마법이라고?’

노인의 표정이 점차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 차례 식은땀마저 흘려가며, 노인이 조심스레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노인의 의복에는, 황실 마법사단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문양에 그려진 별의 개수는 5개.

그게 의미하는 건 다름 아닌, 노인의 정체가 황실의 유일한 대마도사 급 마법사라는 것이었다.

‘……헤에.’

그런 노인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척 화이트에게로 시선을 고정하며.

아셰라가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제법이네요, 황실의 대마도사.’

……서서히, 황궁 내부에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건 그야말로 대마도사 급 마법사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마나의 미세하기 짝이 없는 파동에 불과했으니.

“──.”

금발의 소녀, 세레나 리이칸테르와 대치하고 있던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뭐지?’

정확하게 느껴지진 않았으나.

분명, 무언가 묘하게 불안한 마나의 움직임이─

샤아아악!

“……!”

그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감히 한눈을 팔아? 하, 하하…….”

“……아니, 잠깐. 그런 게 아니라, 지금─”

화이트가 급히 변명을 내뱉으려고 하였으나.

“─만만하게 보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이미 세레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번쩍!

한 차례 금빛 오러가 환하게 번뜩였고.

“……하아.”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세레나에게로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이트가 피곤한 기색으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분명 뭐가 느껴진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피어오르려다가 도로 가라앉은 의구심에, 화이트가 한 차례 고개를 갸웃거렸다.

콰아아아앙!

세레나 리이칸테르의 금빛 오러와, 화이트의 푸른빛 마나가 충돌하며 거친 폭발음을 만들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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