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과거의 어느 한때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공작 각하.”
“음.”
마부석에 앉은 집사의 부름에, 테이칸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뒤이어 화이트 역시 마차를 빠져나왔다.
“…….”
그러면서 한 차례 측면을 힐끔거리는 화이트.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입모양으로 의아함을 드러내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그 자신의 스승님은, 황궁까지도 따라올 생각인 듯하다.
……황궁에는 대마도사가 직접 유지하는 대결계가 있을 텐데, 과연 그녀의 은신 마법이 안 걸리려나?
‘……바로 걸려서 뇌전 마법에 타 죽는 건 아니겠지?’
한 차례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으나.
“……설마.”
이내 화이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픽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제국 최강의 마법사의 결계라고는 하나, 그 자신의 스승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대마도사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그녀의 은신이 들킬 일은 없겠지.
그렇다면 자신 또한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심신에 좋으리라.
화이트가 얕은 심호흡과 함께 아셰라에게서 신경을 끄기로 마음을 먹었다.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지.
뭔 의도를 가지고, 무슨 목적으로 이리 졸졸 따라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지나칠 정도로 졸졸 뒤따라붙는 것도 같지만!
“…….”
화이트가 얕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정신이 온전키만 하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래, 일단 나한테는 말이지.’
그건 단순히 화이트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였으니.
화이트의 표정 위로 조금은 무책임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뭐.
그녀가 제국의 황실이나 다른 고위 가문의 인물들에게 무슨 짓을 한다 해도, 그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니겠나.
오히려 제자된 도리로서 그녀를 도우면 도왔지, 그녀를 고발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황실 기사단이나 황실의 마법사들이 이 속내를 들춰보았다면 필시 이리 소리를 치며 달려들겠지.
‘이 반역자 놈─! ……이라고 말이지.’
화이트가 마치 정말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의 안색이 조금은 나은 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
클리포트 가문의 위세는 그야말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제국에 둘뿐인 공작가, 그마저도 나머지 하나와 비하면 그 격이 천지차이였다.
제국의 건국부터 오롯이 황실에 충성해 온 명문가이자, 현 대마법사 급 마법사인 테이칸 클리포트를 가주로 두고 있는 마법명가.
거기에 후계자인 ‘화이트 클리포트’ 역시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마나에 있어서 불세출의 재능을 갖추고 있다고.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번 생에는 첫 번째 황궁 방문인가?’
클리포트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의복을 착용하고 있자니, 황궁 역시 프리패스나 다름없었기에.
그야말로 간단한 검문만을 제외하면, 아무런 제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테이칸 클리포트의 얼굴을 모르는 자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한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군.’
화이트가 천천히 추억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건, 그래.
아셰라가 폭주하고, 천천히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할 즈음.
황궁.
제국의 상층부에서는 여러 얘기가 오고 갔었다.
그야말로 여러가지 개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심하게, 혹은 험하게.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고, 대륙이 전례 없는 위험에 빠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
화이트의 그 푸른 눈동자가 슬며시 감기기 시작했다.
*****
“죽여야 한다, 지금 당장! 폭주가 더 지속되기 전에!”
“죽일 수는 있습니까? 그 흑의 마왕이라고요! 최강의 마왕!”
“그래도 죽여야 해, 그것만큼은 자네도 동의하는 바가 아닌가?”
“……그건.”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슨 방법이 있는 겁니까?”
상대적으로 젊은 이가 그리 물었고.
“…….”
짧은 침묵 끝에 상대방이 꺼낸 대답은, 그야말로 가관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흑마법을 사용한다.”
“……예?”
젊은 사내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
“어쩔 수 없어, 그 방법밖에는! 흑마법에 손을 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자네는 그 괴물을 죽일 방법을 떠올릴 수 있겠나?”
“그건…….”
젊은 사내의 두 눈동자가 갈등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조금은 가능성을 느꼈을까, 상대방이 더욱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리고 흑의 마왕만이 다가 아니야. 다른 12마왕은 어떻고? 이미 황실의 대마도사께서는 힘을 잃으셨다. 더 이상 우리들만으로는 그들에게 대처가 불가능해!”
“…….”
젊은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
“누구……?!”
황궁의 어느 실내, 그 대문이 조용한 소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한 건.
두 사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긴장으로 물들었으나.
“……아, 화이트 클리포트 경!”
이내 등장한 백금발의 사내의 모습에, 두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당신께서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제국에 남은 유일한 대마도사 급 마법사이시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금기의 마법에 손을 대신다면─”
“…….”
“……그 흑색의 마왕을 죽이는 것도, 무리는─”
“…….”
사내가 계속해서 떠들어 댔으나, 화이트는 그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그건 어째서였을까.
감히 금기의 마법을 입에 담는 그들이 우스워서 그랬을까?
혹은, 금기를 범할 예비 반역자들에게 분노해서?
그들을 처벌할 생각을 품고 있는 거였을까.
“──.”
……아니였다.
“……죽여?”
“그래서, 흑색의 마왕을. ……화이트 경?”
순간적으로 화이트가 입에 담은 짤막한 한마디에, 사내가 급히 말을 멈추었다.
사내가 화이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제서야 사내는 눈치챌 수 있었다.
화이트의 그 푸른 눈동자가, 무척이나 어두운 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는 걸.
그래, 그야말로.
그 찬란하기 그지없던, 바다와도 같은 빛깔을 잃어버릴 정도로.
“하, 하하하.”
“……화이트 경?”
화이트가 공허한 웃음소리를 터뜨렸고, 그에 사내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서고 말았다.
화이트의 웃음소리에서 무척이나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낄 수 있었기에.
불길하기 짝이 없는 감각에, 한 차례 목덜미에 식은땀이 흐르고 지나갔으나.
마냥 그런 감각만을 생각해서 뒤로 물러나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지나치게 급박했다.
그렇기에, 사내는 잘못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생에 다시 없을, 최악의 실수라고 할 수 있을 선택을 말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화이트 경. 당신께서 결단을 내리신다면, 저희가 당신을 보조하고 돕겠─”
촤아아악!
─핏물이 터져나왔다.
“……누굴 죽인다고?”
“……!”
화이트가 광기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에 젊은 사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으, 으아─!”
그리고, 그가 채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서걱!
한 차례의 가벼운 절삭음과 함께.
툭!
사내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두 고위 귀족이, 두 사내가.
비록 실시간으로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나, 그야말로 허무하게.
그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반쯤 정신을 놓은 화이트에 의해서.
“……하, 하하하. 아하하하하.”
이내 홀로 남은 화이트.
그가 서서히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공허한 웃음을 연신 터뜨려대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그리고, 이내.
……천천히 화이트의 웃음소리가 작아지면서.
“─내 스승님을, 죽여? 누구 마음대로?”
끝내는, 그의 입술을 비집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쿠궁, 콰과과광!
“──.”
한 차례, 창문 바깥에서 번개가 지면에 내리꽂혔다.
“……하.”
화이트가 섬뜩한 빛이 서린 눈동자를 한 차례 살벌하게 번뜩였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되돌릴 것이다.”
……괴로움과 죄악감이 섞인 목소리로, 화이트가 짧게 중얼거렸다.
펄럭!
그 흰색의 로브를 한 차례 휘날리게 하며, 화이트가 몸을 돌렸다.
그야말로 붉은 피로 칠갑이 된 방 내부를 뒤로 하고.
끼이익!
화이트가 다시금 문을 열며 발을 내디뎠다.
“……어떻게든 되돌릴 거란 말이다. 원래대로, 모든 것을.”
대륙도, 세계도.
제국도, 공작령도.
……나의 스승, 아셰라도.
그 모든 것을, 원상태로.
깔끔하게─
투둑, 투두둑.
쏴아아아-
“…….”
공교롭게도, 화이트가 그리 말을 끝맺자마자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젖기 시작하는 전신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화이트가 두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 줄기의 액체는, 과연 정말로 빗줄기일까.
그게 아니라면, 혹은 다른 무언가였을까.
“……빗줄기치고는 지나치게 뜨겁구나.”
어딘가 아련한 기색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한 차례 소매로 눈가를 닦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