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소집 명령
“황실에서 소집 명령이 내려왔다.”
“예?”
테이칸 클리포트의 짤막한 한마디에, 화이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자신의 아버지가 무어라 말한 거지?
황실?
소집 명령?
“…….”
순간적으로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였으나.
그 말에 담긴 심상치 않은 무게에, 화이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화이트가 테이칸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이를 악물었다.
……황실, 혹은 황제의 소집 명령.
클리포트 공작가를 비롯한 제국의 주요 가문들을 한곳에 모아, 중대한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소집 명령이란 그러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중차대한 일이 있었을 경우, 그 자신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이래 봬도 제국 최고의 명문가라 불리는 클리포트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다.
황제의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면, 분명 자신에게까지 이야기가 내려왔을 터.
……그렇지만, 이 시기에 황제가 소집 명령을 내렸던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벌써부터 미래가 변해가는군.’
화이트가 진중한 기색으로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긴, 그럴 만도 하긴 할 것이다.
애초에 금색 마탑에서 한 차례 큰 사건이 터지긴 했다곤 해도, 원래대로의 미래라면 금색의 마왕은 10년 후까지도 멀쩡히 살아있는 마왕.
무려 10년이란 세월 동안 더 살아있어야 할 마왕이, 벌써부터 죽어버린 것.
황제로서도 나름 심각한 일이라 판단할 만도 하지 않겠는가.
제국의 주요 가문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리고,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논의를 원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록 그 원인이라 할 만한 자가, 바로 자신이라지만.
“…….”
뭐, 상관없나.
그야말로 무척이나 상큼한 표정으로, 화이트가 한 차례 고개를 까딱거렸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게도 보일 만한 태도였으나, 어쩌겠는가.
애초에 현재 자신이 금의 마왕을 죽인 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셰라밖에 없었고.
말했듯이, 가문에게는 물론이고 황제에게조차 그에 대해 보고할 생각은 없었다.
비록 자신이 귀족인 이상, 명백하게 황제의 신하라고는 하나.
‘그거야 뭐, 명목적인 거고.’
알 바인가, 충성 따위.
자신의 아버지, 테이칸 클리포트는 황제에 대해 충성을 바치고 있다지만.
자신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
……뭐, 아니면 말고.
화이트가 어딘가 모르게 무책임해 보이는 눈웃음을 한 차례 그려냈다.
*****
“…….”
“…….”
제도로 향하는 길.
그 짧은 여행길 동안, 화이트는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눈싸움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건 바로, 테이칸 클리포트와 그밖에 없는 마차 내부에 존재하는.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별개의 인물이었으니.
‘……스승님,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해서 마차 내부에 탑승하신 겁니까.’
눈앞에서 일렁이는 흐릿한 형체에, 화이트가 한 차례 곤혹스러움에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왜 그러냐, 화이트?”
그에 테이칸이 의아함을 느끼고 물어 왔으나.
“……아닙니다, 아버지.”
화이트는 그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버지인 테이칸 클리포트는, 아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존재감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였기에.
8서클의 대마법사 급 마법사이자,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인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면.
필시 자신도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여야 하였을 텐데.
그 자신이 아셰라의 존재감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내게만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드러냈군요, 스승님.’
‘아하하.’
화이트가 꺼림칙한 눈빛으로 흐릿한 형체의 아셰라를 한 차례 훑었고, 그에 그녀가 얕은 웃음을 터뜨렸다.
‘불순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네요. 적어도 미소녀 스승님에게 보낼 만한 시선은 아닌 것 같은데.’
‘……?’
입모양으로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화이트가 한 차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들은 거지?
뭐, 미소녀?
“…….”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인상을 찡그렸으나.
‘제자니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잔잔하게 노려봐 오는 아셰라의 살기가 담긴 시선에, 화이트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무어라 말을 꺼냈다가는 아마 마차채로 터져나가지 않을까.
‘……뭐, 아셰라가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건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걸 또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지 않나.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인간이?
“…….”
그렇지만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내지는 말자.
자신은 아직 죽고 싶지 않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가며, 화이트가 한 차례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내 아셰라에게서 신경을 끄겠다는 듯이, 그가 창가에 턱을 괴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제도로 도착할 동안, 잠시 한 차례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
……그런 화이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자님, 제자님. 지금 이 가련한 스승을 내버려 두고 잠에 빠지려는 건가요? 네?’
‘어쩌라는 겁니까…….’
어느새 옆자리에 앉은 채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아셰라의 행동에, 화이트가 눈가를 짓눌렀다.
아니, 자신이 일부러 그녀를 무시했다는 건, 그녀의 행위를 눈감아주겠다는 의미지 않겠나?
적어도 겉으로는 공작가 자제의 평범한 마법 스승인 그녀가, 중대한 사안이 생긴 탓에 제도로 향하는 가주가 타고 있는 마차에 몰래 탑승한다?
만약 걸리게 될 경우, 공작의 목을 노리는 암살자로 몰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테이칸이 그럴 거라고는 화이트로서도 생각하지 않았으나.
만약 테이칸이 그녀의 존재감을 눈치챈다고 해도, 뭐…….
‘같이 가겠나, 아셰라 선생?’
……필시 호쾌한 웃음과 함께 그런 말을 내뱉겠지.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솔직히 말해볼까.
‘제자님, 제자님~ 제 말이 안 들리시나요? 입 안에 화염구가 처박히고 싶은 걸까요~?’
“……하아.”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상당히 길어지는 제도행 여행길에, 슬슬 지루함을 느끼던 참이었기에.
한 차례 눈이라도 붙이고자 하는데.
‘제 - 자 - 님!’
“…….”
……바로 귓가에서 저리 속삭여대는 마당에, 어찌 잠을 청할 수 있겠나.
그야말로 귀찮고 성가시기 그지없는 스승이었다.
‘……아니. 애초에 왜 온 겁니까, 스승님은? 뭔가 제도에 볼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참다 못한 화이트가 눈을 번뜩이며 입모양으로 그리 물었으나.
‘아뇨, 그런 건 없는데요?’
‘……?’
돌아온 건 그런 짤막하고도 단순한 한마디였으니.
화이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가, 이내.
“하아아, 이런 씨…….”
“화이트?”
화이트가 깊기 그지없는 한숨을 한 차례 내뱉었고, 그에 다시금 테이칸의 표정이 묘해졌다.
마치 또다시 이상하게 변해가는 아들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마 그는 지금쯤 과거의 어느 한때를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제 오른손에는 흑의 용이 잠들어 있습니다, 아버지.
-화이트?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붕대를 풀 수 없습니다!
-……그럴 거면 왜 이름은 화이트로 바꿔달라 했냐? 블랙 클리포트가 아니고?
……화이트를 바라보는 테이칸의 시선이 점차적으로 오묘해지기 시작했다.
필시 과거의 그때를 떠올리고 있을 테지.
그러나.
대답할 여유도, 대꾸할 여력도 없었기 때문에.
화이트는 테이칸을 향해 그저 고개를 얕게 가로저으며, 다시금 아셰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
……은신 마법으로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고 싱글싱글 미소를 얼굴 위로 띄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란.
무척이나 성가시고, 또 귀찮기 짝이 없었으나.
‘……귀엽네.’
딱 하나 좋은 점이 있었다면, 그건.
그래, 굳이 하나 이유를 만들어보자면…….
……그건, 무척이나 귀엽기 그지없는 스승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뭐, 금색 마탑으로 향하는 길에도 함께 하긴 했다지만.’
화이트가 얕게 혀를 찼다.
그때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 당시에는 복수심으로 불타올라 그 자신이 여유가 없기도 하였고, 그녀의 의도조차 알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그저 그냥 ‘그랬구나~’ 싶은 심정이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기도 하였고.
……지금 같이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 속의 여행길이라면.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스승과 함께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흐음.”
묘하게 아련한 기색으로, 화이트가 한 차례 눈빛을 고요하게 빛냈다.
……그리고.
‘아, 제자님. 또 쓸데없이 아련한 눈빛 띄우는 거 제가 모를 줄 알아요? 사실은 그냥 그런 기분을 내고 싶은 것뿐이죠?’
“…….”
그런 아셰라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화이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설마하니 그렇겠습니까, 스승님? 당신의 제자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우선은 그리 반박해 보았으나.
‘음, 중2병 말기 환자 제자님으로요?’
‘…….’
돌아온 것은, 그야말로 합리적이라 할 만한 대꾸였으니.
화이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들켰나.
이런 젠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