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12마왕 회담
휘오오오-
한 차례 차갑기 그지없는 삭풍이 불어왔다.
대륙의 중앙에 자리 잡은 제국.
그 북쪽 끝자락을 넘어,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의 북부 지방.
1년 365일을 냉랭한 한기 속에 잠겨 있는 그런 북부 끝자락의 어딘가.
높이 솟아있는 산맥, 그 내부에 존재하는 오래된 고성에서.
쿠오오오오오오!
거칠기 짝이 없는 마나의 폭풍이 한 차례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콰아아아앙!
“…….”
거친 폭발음과 함께, 누군가가 고성의 입구에 내려앉았다.
그 긴 붉은 머리카락을 한 차례 흩날리며, 사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고성의 입구를 지나쳐, 그 내부의 어느 공동으로.
“다들 모였나? 제군들.”
“…….”
그곳에는 붉은 머리의 사내를 제외하고도 몇 명의 인물이 더 있었으니.
그 인물들 모두가 특이하기 짝이 없는 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적어도 그들은 그러한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늦었군, 적의 마왕.”
“하하, 북부 지방의 한파가 워낙 심해야지. 살짝 길을 헤매고 말았네.”
“헛소리를 하는군…….”
아니, 어쩌면 그 누구라 하더라도.
그들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들을 경우, 그 특이한 외견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정체라 함은─
“……뭐, 아무튼.”
“…….”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그 살벌한 적안을 한 차례 번쩍이며.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보고,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시작해 볼까. 마왕들의 연회, 혹은 회담을.”
평범한 자들은 그 존재 자체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산맥의 고성에서.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마법사들이자, 최악이자 최흉이라 불리는 12마왕들의 회담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
“결론은 그렇군.”
툭, 툭.
거대한 탁상에 둘러앉은 마왕들.
그중에서도 상석에 앉은 적발의 사내가 탁상을 손가락으로 약하게 두드리며, 찬찬히 입을 열었다.
“금의 마왕. 그 녀석을 죽인 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고…….”
“…….”
싸아아아-
사내가 그렇게 말을 흐리듯이 끝맺었고.
한순간에, 고성 내부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비록 사내는 연신 입가에 싱그러운 미소를 건 채였으나, 그런 그를 보는 다른 마왕들의 표정이란.
마치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을 대하듯이 하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으니.
적발의 사내, 다르게 말하면 적(赤)의 마왕.
쿠궁, 쿠구궁…….
그를 포함해서 일곱 명이 앉아 있는 탁상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하. 비록 그 무력은 한없이 약했다지만, 우리들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한 금의 마왕이 한순간에 그 목숨을 잃었는데.”
“……이봐, 우선 진정해라.”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그 녀석을 죽인 범인을?”
쿠궁, 쿠과광…….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다른 마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적의 마왕은 오롯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다른 마왕들의 시선 따위는 하등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
그러나 그를 제외한 12마왕들 역시, 그런 그의 오만한 태도에는 상관하지 않고 있었으니.
아니, 상관을 하지 못한다고 표현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우스운 일이군.”
쿠과과과과광!
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외부에서 한 차례 붉은색을 띠는 번개가 사납게 내리쳤다.
“…….”
다른 마왕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적(赤)의 마왕, 혹은 적색의 마왕.
그 사내가 바깥에서 불리는 또 다른 이명으로는.
최악의 마왕, ‘샤사르Shashar’.
그는 사실상 12마왕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건 우리 12마왕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건.”
비록 적의 마왕, 샤사르의 분노는 폭군의 그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런 그가 내뱉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었기에.
그를 제외한 여섯 명의 마왕 역시 표정을 굳히고, 슬며시 살벌한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뭐, 네놈의 의견에 동의하는 모양새가 되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말에는 나도 어느 정도 납득하는 부분은 있지.”
심해를 연상케 하는, 파랗고도 어두운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입을 열었고.
“야라크.”
그에 샤사르의 눈꼬리가 유려하게 휘었다.
마치 진정으로 기쁘다는 감정을 느끼기라도 했다는 듯이, 샤사르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군. 네가 내 의견에 동조해 주다니.”
“……하, 헛소리.”
야라크라 불린 푸른빛의 사내가 코웃음을 치며 눈을 흘겼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지 마라.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언제나 말이 거친 게 네 매력이지, 야라크.”
샤사르가 한 차례 고개를 까딱이며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에 야라크의 살기는 더욱 짙어졌으나, 샤사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
서서히 야라크의 전신에서부터 거친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만큼은 사안을 봐서, 참으려고 했건만. 네놈은 기어코 내 화를 돋우는구나.”
“오해야, 야라크.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
파직, 파지직-
적의 마왕 샤사르와, 청의 마왕 야라크의 마나가 중간 지점에서 거친 스파크를 튀기며 부딪혔다.
그렇게 두 마왕이 서로를 향해 각자의 의미가 담긴 시선을 살벌하게 교환하고 있자니.
“……뭐, 일단은 진정하지 그래요?”
“…….”
또 다른 인물이 입을 연 건 그 순간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둘의 신경전이 아니라고요. 금의 마왕, 그를 죽인 범인을 특정하는 게 오늘 저희가 모인 이유 아니었나요?”
자(紫)색의 마왕, 바이올렛.
연한 보랏빛 머리카락을 한 차례 찰랑거리며,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둘이서 결판을 내든 말든, 한쪽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그건 알아서 하도록 해요. 그렇지만 지금 꺼낼 얘기는 아닌 것 같군요.”
“그건 맞는 말이지, 바이올렛. 나는 네 의견에 동의한다.”
샤사르가 한순간에 그 살벌한 마나를 갈무리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야라크 역시, 여전히 분노하고 있기는 한 듯한 기색이었으나…….
납득하는 바가 있었는지, 그도 마찬가지로 내뿜었던 마나를 다시금 되돌렸다.
“……자, 그럼. 바이올렛의 말대로.”
이내 진정된 분위기 속에서, 샤사르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입가에는 여전히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는 채였다.
그러나, 바로 직후.
“─중요한 건, 금의 마왕을 죽인 벌레를 찾아내 짓밟는 것이다.”
“……!”
콰가가가가각!
한순간에 기세를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게끔 하며, 샤사르가 그 붉은빛 눈동자를 살벌하게 번뜩였다.
“감히 우리의 명예에 잔상처를 입힌 벌레이자,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우리들과 동급으로 취급되던 금의 마왕을 죽인 녀석이니.”
그게 누구든 간에.
……밟아 짓누르고, 쥐어 비틀어 짜고.
끝내 최악의 고통을 안겨주며.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끔 해야만, 모든 것이 원상태로 되돌려질 것이다.
“그것만이 금의 마왕, 그 녀석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겠지.”
이내 깔끔하게 살기를 지워내며, 다시금 샤사르가 눈웃음을 얼굴 위로 띄웠다.
“자, 그럼 한 번 특정해 보도록 할까.”
샤사르의 양손에 얕은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고.
다른 마왕들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살벌하게 변해갔으니.
그야말로 12마왕의 이름에 걸맞은 분위기가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금의 마왕을 죽인 범인의 정체를, 말이지.”
그 어떠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한 마왕을 죽인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였다.
하나의 마왕을 죽일 경우, 대부분의 마왕이 샤사르에 의해 집결되어 그 범인을 쫓을 것이고.
끝내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끔 조정해 나가겠지.
그야말로 그 범인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12마왕의 절반이 전면에 나선다면, 설령 제국이라 한들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제국에는 대마도사 급의 마법사가 단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로는 샤사르를 비롯한 마왕들을 막을 수 없을 터.
‘……이 전쟁은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일 테죠.’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이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래, 금색의 마왕을 죽인 범인이 그 누구든 간에.
샤사르가 작정하고 그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고, 다른 마왕들이 그를 보조한다면.
세상에서 그들이 죽이지 못할 마법사란 존재하지 않았다.
“…….”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바이올렛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아니죠.’
그러고는 다시금 그녀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정정한다.
12마왕의 절반이 나선 이상, 그들이 죽이지 못할 마법사란 없다.
……그래,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 하나, 조금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한 명만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바이올렛의 얼굴 위로 조금은 씁쓸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속으로 떠올리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흑(黑)의 마왕, 아셰라.’
그 적색의 마왕, 샤사르를 넘어서 최강의 마왕이라 불리우는 흑색의 마왕이었으니.
……만약 금의 마왕을 죽인 범인이 그녀라면.
아무리 샤사르라고 하여도─
‘……설마, 아니겠죠.’
순간적으로 든 생각을 곧바로 부정하며, 바이올렛이 한 차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녀일 리가 없지 않겠나.
잠적한 지 수백 년이 지난 그녀다.
이제 와서, 그녀가 금색의 마왕을 죽일 이유는 없을 터.
“…….”
……없어야만 할 것이다.
한 차례, 바이올렛의 얼굴 위로.
분명한 ‘두려움’의 기색이 떠올랐다가, 이내 재빠르게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