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생명체의 마나를 강제적으로 폭주시켜, 양질의 마나를 억지로 끄집어내고.”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는 화이트의 표정은,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깊게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 마나들을 한곳에 모아, 인위적인 형태로 대마도사의 경지에 진입한다.”
콰직!
그렇게 말을 끝맺고는, 화이트가 손에 쥐고 있던 보고서를 한순간에 구겨버렸다.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화이트의 두 눈동자에 명백한 분노의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지그시 바라보는 금빛 시선이 하나 있었으니.
“마음대로 구겨버리다니, 제자님 말대로 결정권을 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어째서인지, 장난스러우면서도 어딘가 기특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셰라가 나른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
그에 화이트가 눈을 샐쭉하게 뜨며 아셰라를 흘겨봤다.
“……어차피 스승님도 이리 하셨을 것 아닙니까. 제가 배우고 자란 대상이 당장 당신일진대.”
“흐흥…….”
확고한 의지가 담긴 화이트의 말에, 아셰라가 기분 좋은 비음을 한 차례 흘렸다.
그녀의 눈꼬리가 유려하게 휘며 환한 눈웃음을 자아냈다.
“일단 칭찬해줄게요, 제자님. 제 의도랑 제자님의 생각이 겹쳤다는 것도 나름대로 기쁘기도 하고?”
“……그게 뭡니까, 스승님.”
화이트가 얕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 중요한 보고서를 두고도 이런 가벼운 태도라니.
별달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라도 한 건가?
……그도 아니면.
“…….”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화이트가 한 차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그녀의 진정한 정체는, 흑의 마왕.
그걸 기준으로 두고 생각해 보면.
‘……하긴.’
어째서인지 납득하는 기색으로 화이트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 자신의 스승이라면, 아득한 세월을 살아왔을 그녀라면.
이러한 종류의 시도는 수도 없이 봐왔을 터.
그리고, 자신이 아는 그대로의 아셰라라면.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형태의, 강제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연구를 폐기해왔을 터.
“……후우.”
화이트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그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쳤다.
그리고, 이내.
화악!
“와아~”
손바닥에서 작은 불길을 솟아오르게 하며, 화이트가 금색 마탑의 연구 보고서를 깔끔하게 태워버렸다.
채 수 초도 지나지 않아 보고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주 약간 남은 잔재는 화이트가 손을 털어버림으로써 완벽하게 흩어졌다.
“이야, 우리 제자님. 결단이 아주 빠르네요? 칭찬해, 칭찬해~”
“장난치지 마세요, 스승님……. 중요한 일이지 않습니까.”
화이트가 어질어질하다는 듯이 이마를 탁 짚었다.
“…….”
그러면서도 한 차례 그 벽안을 진중한 빛으로 번뜩이는 화이트.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면서도, 그 속은 한층 복잡하기 그지없었으니.
‘……금의 마왕의 시도는 이걸로 막혔지만.’
그래, 그랬다.
마나의 폭주, 금색 마탑에서부터 새어 나온 거대한 마나의 파동.
그로 인해 황실과 클리포트 가문에서는 마법사들을 파견했지만, 결국 끝내 금의 마왕의 연구는 막아낼 수 없었을 터다.
12마왕이라는 이름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대륙의 정점에 서 있다는 황실이나, 최고의 마법명가라 불리우는 클리포트 가문이라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를 죽였다.
애초에 금의 마왕은 그 자신이 대마도사의 경지로 올라가고자 그러한 연구를 시작한 것일 터.
비록 그러한 종류의 시도가 그리 간단히 성공하지는 못할 테지만,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로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그를 처벌한 것이다.
“…….”
우선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하하.”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게 아니지.’
시도해서는 안 되는 연구?
처벌?
그따위 것들은 하등 상관없지 않았나.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굳이 자기 자신까지 속일 필요가 있을까.
……자신은 그저 복수를 위해 금색의 마왕을 죽였고.
연구를 멈추게 된 건, 어쩌다 보니 따라오게 된 결과.
굳이 표현하자면, 부가적인 요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화이트의 눈빛이 한 차례 살벌한 기색으로 빛났다.
‘내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그건 바로.
12마왕에 대한 복수와.
“…….”
화이트의 푸른 시선이 한 차례 옆의 아셰라에게로 옮겨졌다.
……그래.
자신의 목적은, 처절한 복수와.
……그녀의 수호였으니.
그것만큼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목적을 혼동해서도 안 되고, 복수에만 사로잡혀 복수귀가 되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것.
그건 바로─
“……스승님.”
“네?”
화이트가 어딘가 아련한 목소리로 아셰라를 불렀고, 그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꽈악.
“……어, 어?”
그야말로 갑작스레, 화이트가 아셰라를 꼭 끌어안았다.
그에 당연하게도 아셰라는 몸을 굳힌 채 두 눈을 깜빡거렸으니.
이내, 온몸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한 육체의 감각에.
“……어어어어?!”
그녀의 얼굴이 화악 하고 달아오르기에 이르렀다.
“제, 제자님? 이게, 아니. 갑자기 왜……!”
“…….”
“……아, 일단 이것부터 놓고! 잠시, 제자니임……?”
“…….”
아셰라의 거친 반항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그녀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꽈악 그녀를 끌어안으며, 화이트가 잔잔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미안합니다, 아셰라. 잠시만 이러고 있게 해주세요.”
“……제자님?”
그 목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색에, 감정에.
아셰라의 표정 역시 한층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아셰라는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화이트의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자님…….’
그제서야 조금은 진정할 수 있었을까.
한층 가라앉은 표정으로, 어딘가 쓸쓸한 기색을 담은 채.
꼬옥-
“……!”
아셰라가 화이트를 역으로 끌어안았다.
“……아셰라?”
그에는 아무리 화이트라고는 하나,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설마 역으로 안겨 올 줄은 몰랐을까.
화이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왜요, 설마하니 제가 제자님을 안아줄 줄은 몰랐나요?”
“……그, 그런 게 아니라.”
“……후후.”
아셰라가 짓궂은 기색으로 얕은 웃음을 흘렸다.
이내 그녀의 얼굴 위로 장난스러운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꽈악!
“아, 아셰라?”
한층 더 쎄게 화이트를 끌어안으며.
아셰라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어때요, 제게 안긴 감상은? 한 가지 말해주자면, 저 그리 쉬운 여자는 아니랍니다?”
제자님은 참 행운아라고, 그렇게 덧붙이면서.
아셰라가 천천히 화이트에게서 그 몸을 떼어냈다.
“아…….”
그에 화이트가 어딘가 아쉬운 듯이 침음을 흘렸고, 아셰라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갑자기 안겨 오다니, 솔직히 놀라긴 했어요? 제 제자님은 어느새 어엿한 남자가 된 것 같네요.”
“……음, 크흠.”
조금은 노골적인 아셰라의 표현에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화이트가 무안한 기색으로 한 차례 헛기침을 내뱉었다.
“……후후.”
그런 화이트를 지그시 바라보며, 아셰라가 다시금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표정 위로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제자님.”
“어, 예?”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어째서인지, 묘한 빛이 일렁이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그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은 그리 부드러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
그리고, 바로 직후.
퍼억!
“……!”
아셰라가 돌려차기를 시전했고, 그 갑작스런 공격에 화이트가 힘없이 그 몸을 무너뜨렸다.
“아, 아셰라?”
“……제자님.”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화이트를 눈앞에 두고, 아셰라가 그 눈동자를 어둡게 물들였다.
그러나 입가에는 명확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며.
“……제가 말했었죠?”
그녀가 청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스승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화이트.”
그 대사만큼은 살벌하기 그지없었으니.
아셰라가 어딘가 가학적인 미소와 함께 화이트를 향해 가냘픈 다리를 내질렀다.
콰악!
“아, 잠시만. 아셰, 스승님?”
화이트가 급히 호칭을 정정하였으나.
“이미 늦었어요. 사랑하는 제자님.”
아셰라는 이미 마음을 먹고 결정을 확고히 한 상태였기에.
무감정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고혹적인 미소를 한 차례 지어 보이며.
아셰라가 얕은 홍조와 함께, 화이트를 짓밟기 시작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함부로, 저를,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스, 스승─”
“다물어요!”
“커헉.”
“……아핫!”
……그렇게, 한동안 아셰라의 일방적인 폭력은 계속되었고.
어째서인지, 화이트를 짓밟는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기뻐 보였던 건.
화이트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