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연구 보고서
“……지금 뭐라 했나?”
테이칸 클리포트, 클리포트 가문의 가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옆에는 화이트가 표정을 굳힌 채 서 있었다.
본래 테이칸은 가문의 규율에 따라 화이트를 처벌할 생각이었으나.
“……금색 마탑이 무너지고.”
“…….”
제2 마법사단 단장이 들고 온 소식에, 그런 ‘사소한’ 문제에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테이칸의 입에서 침음성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금의 마왕이,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가주님.”
“……허어.”
제2 단장의 즉각적인 대꾸에, 테이칸이 허탈한 한숨 소리와 함께 몸을 뒤로 눕혔다.
의자가 기울어지며 작게 끼긱거리는 소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
테이칸의 표정은 그야말로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1분, 2분.
5분이 지나도 침묵이 지속되었고, 그때까지도 테이칸의 표정은 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었고,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었으니.
“……끄응.”
이내 테이칸의 입이 다시 열리고, 또다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상념도, 고민도.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휘몰아치는 감각을 느끼며,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가를 떠올리기 위해 테이칸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테이칸, 화이트, 그리고 제2 마법사단 단장이 있는 가주의 집무실 내부.
그야말로 불편하기 그지없는 정적이 내려앉았고.
세 사람은 각자의 생각을 그 속으로만 떠올리고 있었다.
“…….”
테이칸 클리포트는 금색 마탑의 붕괴와 금의 마왕의 죽음이라는 대사건에, 자칫하면 가문이 얽힐 가능성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군.’
제2 단장은 그 자신이 따르는 가주와, 그 가주의 후계자가 있는 장소에서 홀로 침묵을 지키는 상황이 무척이나 불편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정작 제2 단장이 들고 온 소식으로 반사 이익을 얻게 된 화이트의 속내는.
‘……잘 넘어갔나?’
……그러한, 그야말로 금의 마왕과는 하등 상관없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어쩌면 조금은 무책임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아니, 물론. 내가 죽이긴 했다만은.’
화이트가 오묘한 표정으로 한 차례 손목을 쓰다듬었다.
그래, 금색의 마왕을 죽인 건 자신이 한 일이 맞았다.
……맞긴 했으나.
‘근데, 뭐 어쩌라고.’
화이트가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치 심각하게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듯이 태도를 꾸미며.
‘아버지나 가문에 보고할 생각도 없고…….’
그도 그렇지 않나.
애초에 금의 마왕을 그 자신이 죽였다고 알린다 한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건 그들이 과연 그 사실을 믿어주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물론, 아셰라를 동원하여 그들에게 신뢰를 심어준다면 믿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긴 하였으나.
“…….”
화이트는 그렇게까지 해가며 그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생각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화이트의 푸른빛 눈동자가 한 차례 선명한 빛으로 번뜩였다.
‘……금의 마왕을 죽인 건에 대해서는, 언제까지고 비밀로 묻어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애초에 복수의 길을 걷겠노라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화이트는 남에게 그 자신의 의도를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록 아셰라에게는 부득이하게 알리게 되는 형태가 되긴 하였으나, 그건 예외로 친다고 하고.
그 자신의 아버지, 테이칸 클리포트든.
소속된 가문이자, 언젠가는 그 가주의 자리를 이어받을 클리포트 공작가든 간에.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세력에게도.
화이트는 그 자신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이건 내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업이다.’
화이트의 눈썹이 한 차례 까딱거렸고, 동시에 그의 표정 위로 결연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에게 알릴 이유도 없고, 알려서도 안 되는 일.
12마왕 전원을 섬멸하겠다는 생각은, 그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신념이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가 12마왕 전원과 대적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황실에게 그러한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다?
그 즉시 황제는 황실의 유일한 대마도사를 보내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를 잡아서 끌고 올 터.
혹은 대마법사 급의 마법사를 전원 보내 클리포트 공작가의 저택을 포위한다던가.
방식은 아무렴 상관없을 테다.
중요한 것은, 화이트의 목적이 황실에 흘러갈 경우.
황제가 그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준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12마왕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하물며, 장차 제국 마법계의 정점에 설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가 그런 위험한 목표를 속으로 품고 있다면.
황제는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구도를 뒤집어엎는 것도 불사하리라.
“……그러니까, 그대들은 금색 마탑이 무너진 후에야 도착했고.”
“예, 저희는 그 이후에 금의 마왕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12마왕 측에서 그 건으로 우리를 걸고 넘어질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지요.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우리가 의심스러워 보이겠군.”
“아무래도 모양새가 영 미묘했던지라…….”
“황실 측에서도 마법사들을 보낸 걸로 아는데.”
“아, 그들에 관해서는…….”
……테이칸 클리포트와 제2 마법사단 단장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들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
그 틈을 비집어서, 화이트는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가주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나중에 시간이 조금 흐르고, 화이트가 사라짐을 눈치챈 테이칸 클리포트가 극대노 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금색 마탑의 붕괴와 금의 마왕의 죽음은, 금세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그야말로 한순간에, 대륙은 반쯤 뒤집히기에 이르렀다.
“……금의 마왕이 죽었다고?”
“그게 사실인가?”
“틀림없어. 제국의 황실에서 직접 발표한 내용이니.”
“그럼 이제 12마왕이 11마왕이 되는 건가?”
“쯧,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지금 이 대사건의 핵심은, 그 흉수가 누구냐는 것이지.”
“……흉수라고 표현할 필요까지야. 그 금의 마왕이지 않나. 솔직히, 나로서는 그 미친놈이 죽든 말든─”
“쉿, 입조심 해야 하지 않겠나. 혹여나 금색 마탑의 생존자들에게 그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그 미친놈들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 걸 생각하면.”
“어찌 됐든, 대마법사 급에서도 손에 꼽히는 그 금의 마왕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대륙은 그렇게 한동안 시끄러워질 것만 같았다.
실은 제국의 자작극이었다는 둥, 황제가 드디어 12마왕과 정면으로 대치할 생각을 품었다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고.
……또는, 곧 커다란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이 돌기까지 했으니.
대륙의 정세가 얼마나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는지는, 길거리의 거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그리고, 그런 복잡하기 짝이 없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정작 그 시발점이 된 화이트는, 그저 태평하기 그지없었으니.
“태양 빛이 정말 밝네요. 이런 날에는 불 속성 마법을 연구하고 싶어진달까…….”
“정말 태연자약한 제자님이네요.”
화이트의 멍한 중얼거림에, 아셰라가 어지럽다는 듯 이마를 한 차례 짚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이내 그녀가 화이트를 흘겨보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건 어쩔 거에요? 제가 가져온 금색 마탑의 연구 보고서 말이에요.”
“…….”
그에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윽고 화이트가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아셰라를 향해 약간의 의아함이 섞인 눈빛을 던졌다.
“……그걸 왜 제게 물어보십니까? 새삼스레, 제게 결정권을 주실 생각도 아니실 거면서.”
그런 화이트의 퉁명스러운 말에, 아셰라가 얕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 글쎄요. 그냥, 제자님의 생각이 조금은 궁금하다고 해야 할까요?”
“…….”
화이트의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운 빛으로 침체되기 시작했다.
……금색 마탑의 연구 보고서.
그게 뜻하는 바는, 금의 마왕이 그 자신의 본거지인 금색 마탑에서 몰래 연구하던 마법에 대한 것이었으니.
덧붙이자면, 자신이 금의 마왕을 상대하는 동안 아셰라가 마탑의 지하를 박살 내고 가져나온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에 적힌 내용이라 함은 다음과 같았으니.
“……인위적으로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르는 것.”
“…….”
화이트의 중얼거림에, 아셰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녀 역시 나름대로 생각을 품고 있는 듯이, 표정이 살짝이지만 굳어졌으니.
“……하아.”
그런 그녀를 살짝 흘겨보면서, 화이트가 얕은 침음성을 흘렸다.
‘……금의 마왕, 그 또라이 새끼.’
속으로는 이미 죽은 금색의 마왕에게 그런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말이다.
화이트가 가볍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