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제자님이야말로, 저를 이성으로서 의식하고 있는 건?
“…….”
금색의 마왕이 죽고, 클리포트 가문의 마법사들이 도착한 이후.
화이트와 아셰라는 마법사단 단장이 방심한 틈을 타 금색 마탑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렇게 이동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클리포트 공작령 끝자락의, 어느 작은 도시.
그곳의 자그마한 술집에서, 화이트와 아셰라는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비록 손님은 그들을 제외하고는 없었으나, 그렇기에 오히려 아셰라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남이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만한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요.’
우웅-
아셰라가 차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한 차례 튕겼다.
딱!
마나가 얇은 막의 형태로 변환되며,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만을 조심스레 감쌌다.
“…….”
그리고 지금껏 조용히 술잔만을 까딱거리던 화이트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방음을 위한 막인가요.”
그의 입에서부터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화이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그 푸른 눈빛을 아셰라에게 향하게끔 했다.
“뭔가 비밀 이야기라도 하시려고요, 스승님?”
“……네, 뭐.”
왜인지 모르게 얄미워 보이는 그런 화이트의 미소에, 아셰라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이내 그녀가 차분히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첫마디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였으니.
“묻지 않겠습니다.”
“…….”
그 속뜻을 쉽사리 파악하지 못할 듯한 한마디에, 화이트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러나 그러한 화이트의 반응에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아셰라가 붉은빛을 띠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후우…….”
그리고 이내 얕은 한숨을 내쉬며, 아셰라가 화이트와 그 두 시선을 마주했다.
“다시 한번 말해줄까요? 그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자님.”
아셰라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자님의 급작스런 성장도, 지금껏 경지를 숨겨 왔던 것도, 금색의 마왕을 죽인 이유, 그리고 그 방법까지도.”
“…….”
“……아무것도 묻지 않겠어요, 저는.”
아셰라가 그리 말을 끝맺었고.
그녀가 꺼내든 말들에, 화이트는 비록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하고자 했으나.
‘……어째서?’
속은 무척이나 심란하면서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으니.
뺨을 타고 한 차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감각을 느끼며, 화이트가 얕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일까.
지금 아셰라가 가장 궁금해할 부분이 바로 그것들일 텐데.
그리고 그 모든 의문들의 해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그럴진대…….
“……묻지 않겠다고요? 어째서?”
결국, 의구심을 참지 못한 화이트가 입 밖으로 의문을 꺼내 들고 말았다.
‘……아차.’
순간 그 자신의 실책에 당황한 화이트였으나, 이내 최대한 빠르게 그가 얼굴 위로 무표정을 띄웠다.
자신이 지나치게 당황하는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줘서 좋을 건 없었다.
비록 그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또 아끼는 자신의 스승이었으나.
……그런 그녀이기 때문에 더더욱.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법이니.
화이트가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며 아셰라를 직시했고.
“……흐음, 음.”
그저 태연자약하게 와인을 들이키던 아셰라가 입을 연 것은, 화이트가 질문을 꺼내든 뒤로 1분이 지난 후였다.
그게 과연 화이트를 애태우기 위함인지, 혹은 그저 와인을 즐기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어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로.
아셰라가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는 모든 걸 말해주겠다’.”
“…….”
“그렇게 말한 건, 다름 아닌 제자님이잖아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아셰라가 조금은 씁쓸한 기색이 서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승님.’
그리고 그런 아셰라의 미소를 두 눈에 담는 화이트의 표정이란, 그야말로 죄악감에 잠겨 있었으니.
그러나 그러한 기색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끔, 그 자신의 스승이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게끔.
최대한 속내를 감추어 보고자, 화이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흐응…….”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어딘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차례 반짝이며.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기다릴게요.”
“예?”
그리고 그녀가 꺼낸 짤막한 한마디에, 화이트는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 자신의 스승이, 무척이나 아련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껏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아마 그녀 역시 나름대로 표정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언젠가는 들을 수 있겠죠.”
“……스승님.”
“그리 늦지 않게 말해달라고요, 제자님?”
그렇게 말을 마무리 지으며, 아셰라가 얕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웃음을 마주하는 화이트의 속내란.
‘……귀엽다.’
실로 단순하기 그지없었으니.
“……헛.”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웃음을 눈에 담자 정신을 반쯤 놓아버린 걸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어쩌면 조금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감상에.
화이트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뭘 하는 건지.
이 진지한 순간에, 그따위 가볍기 그지없는 감상이라니.
“제자님?”
그에 아셰라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화이트는 그저 그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
머릿속에서 그녀의 찬란한 눈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그리 늦지 않게 말해달라고요, 제자님?
-그리 늦지 않게…….
-그리…….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그녀가 내뱉었던 한마디가 맴돌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말을 내뱉으며 그녀가 지어 보인 눈웃음이란.
‘……위험한데, 이거.’
세계의 멸망까지도 목격하고 온 화이트를 잠깐이나마 주춤하게끔 만들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사실 그쯤이면 대마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게 아닐까.
대마도사 급 마법사 중에서도 최정상에 올랐던 자신을 이렇게까지 동요하게 만들 정도라면, 정신계 마법의 정점에 서도 좋을 정도인 것이─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화이트가 고개를 홱홱 털어 잡념을 떨쳐내고자 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어느새 얕게 붉어져 있는 상태였으니.
“흐응…….”
화이트의 그러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할 아셰라가 아니었다.
그녀가 묘한 비음을 흘리며, 턱을 괴고 화이트를 향해 지긋한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뭔가요, 스승님.”
“아뇨, 별로?”
화이트의 질문을 대충 흘려넘기는 아셰라.
“그냥…….”
이내 그녀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리며, 태연한 목소리로 짧게 중얼거렸다.
“……제 제자님이, 제 미소를 보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달까요?”
“……!”
그리고 그 짧은 한마디의 위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화이트의 얼굴이 화악 붉게 달아올랐다.
“……스승님!”
그가 짐짓 화난 표정을 꾸며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위협용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아하하~”
아셰라는 그저 태연하게 받아넘길 뿐이었다.
“……아, 아.”
도저히 몰려드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겠던 걸까.
화이트가 한 차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이마를 탁 짚었다.
이내 그가 다시금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후후. 저한테 당해내기에는, 제자님은 아직 멀었군요.”
어느새 자신의 완드를 꺼내 들고 장난삼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아셰라가 장난스런 미소를 띄웠다.
“뭐, 저번에는 또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요? 약혼을 하고 싶냐니 뭐니…….”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채로 눈동자를 흔들어대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정말이지. 이건 오히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어딘가 모르게 요염하게끔 꾸며내며.
아셰라가 화이트를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제자님이야말로, 저를 이성으로서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
그런 그녀의 한마디에, 화이트의 얼굴이 정말이지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붉어지기에 이르렀고.
차마 그러한 얼굴을 가릴 생각조차 못 하고, 화이트가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 그게─”
이내 어떻게든 힘겹게 입을 열어보았으나.
“…….”
끝내 제대로 된 문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그런 게 아니라고, 장난치지 말라고?
자신의 스승에게, 그러한 진부한 대사를 꺼내야만 할까?
“…….”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솔직하게 잘 모르겠지만…….
‘……진짜로,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네.’
화이트가 그 자신에게까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속으로 읊었다.
……아무튼, 자신은 그 간질거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크흠, 음.”
그래, 아무튼 간에.
정말이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무어라 대답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하아아…….”
화이트가 눈가를 짓누르며 얕게 침음을 흘렸다.
-제자님이야말로, 저를 이성으로서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녀의 고혹적인 목소리에.
화이트가 다시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목덜미까지 붉게 물드는 것은 덤이었다.
‘흐응…….’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마치 관람하듯이 바라보는 금빛 시선이 하나 있었으니.
‘정말이지, 귀여워라. 제자님도 참.’
아셰라가 어느새 한결 편안해진 기색으로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흔치 않게 붉게 물든 화이트의 얼굴을 감상하며.
‘제자님이야말로, 저를 이성으로서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흐흥~”
……그 자신이 내뱉은 말이, 설마하니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추측이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로.
사실 그녀가 그런 말을 내뱉을 때만 해도, 그 속은 반쯤 농담을 꺼내는 심정이나 다름없었는데.
자신의 제자가 얼굴을 붉히는 이유가, 그저 평범하게 확 몰려드는 수치심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아셰라.
……사실 대담하게 그런 말을 꺼내기는 했으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경험이 전무한 그녀였다.
“저기요, 제자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그렇기에, 그녀 자신의 제자의 진짜 속내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태연하게 짓궂은 장난을 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에이, 뭘 그리 당황해요? 새삼스레, 설마 진짜로 제자님이 저를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다던가~?”
아셰라가 장난스런 미소를 그려내며 화이트의 손등을 그녀 자신의 완드로 쿡쿡 찔러댔다.
“……윽.”
그러한 아셰라의 공세에도 전혀 대응하지 못한 채, 화이트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인적이 없는 자그마한 술집 내부에서.
얇은 마나의 막을 두른 채, 두 사람 사이로.
어딘가 설레면서도, 두근거리고.
동시에 묘하게 간질거리는 듯한 분위기가 한 차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 뭐죠. 왠지 모르게 더워지는 것 같은데.’
……비록 두 사람 중 한 명은, 눈치 없게도 그러한 분위기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