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운명, 그리고 시간
“──.”
꿈을 꿨다.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일.
아니, 그리 오래전의 일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닌가.
시간만으로 따지자면, 기껏해서 2년이 채 안 지났을 테니.
……그렇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그때의 일은.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무척이나 아득한 저 너머의 일처럼.
비록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는 하나, 매우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으니.
“…….”
그건 아마, 아셰라가 폭주하기 직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
……화이트의 정신이 점차적으로, 과거의 어느 한때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
“……스승님.”
콰앙, 콰아아아앙!
번개가 수도 없이 거칠게 내리치던 날이었다.
그러나 그 번개들이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실시간으로 사방에 내려꽂히고 있는 번개들에는, 그야말로 다양하기 짝이 없는 빛깔들이 입혀져 있었고.
동시에, 마법사라면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 선명한 마나의 기운이 담겨져 있었기에.
쩌저저저적!
번개에 직격한 고목 하나가 검게 물들며 허무하게 쓰러져 내렸고.
“아하하…….”
그와 동시에, 어느 한 앳된 여성의 얕은 웃음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그런 아셰라를 정면에서 직시하는 화이트.
그의 두 눈동자는, 그야말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짙게 요동치고 있었다.
“……누구입니까?”
이윽고, 화이트가 떨리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비록 심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기는 했으나.
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담겨 있는 감정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대체, 누가 스승님을 이 지경까지.”
……분명한 분노의 감정이었으니.
화이트의 표정이 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지경까지, 몰아세운 거냔 말입니다!”
쩌어어어어어엉!
격동하는 화이트의 감정에 따라, 그의 전신에서 한 차례 짙은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대마도사 급의 마법사가 그 자신의 마나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라면.
지금 이 순간, 화이트의 감정이 어느 정도의 격동을 겪고 있을지.
그 누구라도 쉽게는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제자님, 진정해요.”
그러나, 그러한 화이트의 폭발적인 마나의 기운에도 불구하고.
아셰라는 그저 잔잔한 미소만을 그 입가에 걸칠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 위에 떠오른 감정은, 어쩌면 체념의 빛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제가 멍청했어요. 제 마법을, 제 마나를. ‘그들’이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는데.”
“……스승님.”
“아하하……. 결국은 그런 거죠.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역겨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
아셰라의 이어지는 말에, 서서히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알 수 있었기에.
이제 곧, 그 자신의 스승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잘 알고 있었기에.
화이트는 요동치는 감정을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된다.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
……나의 스승이다.
나를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고, 언제나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던.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나의 스승.
……아셰라.
“…….”
쿠궁, 쿠구궁…….
화이트의 마나가 불안한 기색으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의 표정 위로, 자책감과 죄악감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뭐가 대마도사 급 마법사냐.
뭐가 9서클을 넘어선, 대륙에 몇 없는 지고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란 말이냐.
그 자신의 스승 하나 구하지 못하면서.
힘없이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자그마한 소녀 하나 구하지 못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상념들이, 화이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체 어떻게 해야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지?
명색이 대마도사 급 마법사가 아닌가.
다룰 수 있는 마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단순히 한두 가지로 치부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죽음에 이르러 가는 환자를 원래대로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 또한 가능하고, 그 어떠한 철벽의 요새라 할지라도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으로 철저히 파괴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럴진대, 어째서.
“……스승님.”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격하게 흔들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째서, 그러한 대마도사 급 마법사라는 놈이.
그 자신의 스승 하나 구하지 못하냔 말이다.
정신계 마법에 실시간으로 침식되어 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느냔 말이다.
……결국 끝내는, 그녀로 하여금.
이러한, 최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결말을 맞이하게끔.
내버려 두었는가.
“…….”
화이트의 눈동자가 서서히 공허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 얼굴 위로는 무표정한 빛을 띄운 채, 화이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합니다.”
“제자님.”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스승님. 아셰라…….”
“……제자님.”
“내가,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뛰어났더라면. 내가 당신을 괴롭히는 요소들을 모두 파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
계속되는 아셰라의 부름에도, 화이트의 혼잣말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저 무기질적인 눈동자를 공허하게 번뜩이며, 화이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아, 아셰라. 제발.”
“…….”
화이트의 목소리가 서서히 물기에 젖기 시작했다.
“스승님, 아셰라. 날 내버려 두지 마요, 제발. 날 버리고 가지 말라고.”
“아하하…….”
화이트의 중얼거림에 아셰라가 자조가 섞인 웃음을 한 차례 흘렸다.
그에 화이트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을 슬며시 치워냈고.
“……스승─”
“제자님.”
화이트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화악!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아셰라가 온힘을 다해 화이트를 꽈악 끌어안았다.
“……스승님?”
화이트가 얼빠진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당황할 만도 하지 않겠나.
상태가 심각할 정도로 위태롭기만 하던 그녀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안겨들었다면.
“……아, 안됩니다. 우선은 안정을 취해야만─”
그렇기에, 화이트가 재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말을 쏟아내려 했으나.
“─이미 늦었어요.”
“…….”
그저 짤막한 아셰라의 한마디에, 화이트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주륵.
……화이트의 그 새하얀 뺨을 타고,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런 그 자신의 제자님을 향해.
“……제자님.”
아셰라가 잔잔하고도, 어딘가 안정감을 주는 고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요. 제자님의 책임이 아니니까.”
“…….”
“……너무 원망하지 마요, 제자님 그 자신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자님의 잘못이 아니니까.”
“……스승님.”
화이트의 표정이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어느새 그 양쪽 눈에서는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내가 이렇게 스러지게 된다 하더라도.”
다르게 말하면, 타락하게 되더라도.
짧게 덧붙이며, 아셰라가 옅은 미소를 그 입가에 걸었다.
“……나의 제자님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니까.”
“…….”
“제 말,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어요. 제자님.”
이내 아셰라가 화이트에게서 그 몸을 슬며시 떼어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온몸에서 힘이라 할만한 것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아셰라가 조심스럽게, 화이트의 앞머리를 걷어냈다.
“스승님……?”
그 갑작스런 접촉에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으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셰라가 그저 묵묵하게.
톡-
……그 자신의 입술을, 화이트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우스꽝스럽게 바뀌었다.
“……아하하.”
그 표정이 자못 재미있었던 걸까.
아셰라가 쿡쿡 웃음을 흘리며, 유려한 궤적과 함께 환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잘 지내요, 화이트. 나의 제자님.”
“……스승님.”
“……비록 ‘지금의 나’는 이렇게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제자님의 행복을 기원할게요.”
“스승님……!”
화이트의 부름이 점차 격해지기 시작했으나, 아셰라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잔잔한 미소만을 얼굴 위로 띄운 채.
“……후후.”
아셰라가 환한 눈웃음과 함께 말을 끝맺었다.
“다시 한번 제자님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아마 그건 무리겠죠.
……뒷말은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조금은 씁쓸한 기색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의 제자는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법사였고, 언젠가 그녀 자신을 막기 위해 앞에 서게 될 터.
……그렇지만, 아마.
그때쯤의 자신은.
……지금의 ‘자신’이 아니게 되어 있으리라.
“그럼, 안녕. 나의 제자님.”
“……아, 아.”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저지만, 당신과 함께한 20년은, 무척이나 행복하기 그지없었어요.”
“아, 안 돼. 아셰라……!”
무언가, 어째서인지.
묘하게 불길하기 짝이 없는 감각에, 본능에.
화이트가 급히 아셰라를 향해 손을 내뻗었으나.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
그 바로 직후, 거칠게 내리꽂힌 검은빛의 번개에.
-……제자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시간대의 저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거겠죠.
‘그 시간대의 화이트’는, 마지막 순간만을 제외한다면.
세계의 종말까지 남은 1년간.
다시는 그 자신의 스승이 제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 아.”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절망에 젖은 신음성이 내뱉어지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이윽고.
“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자신의 세계가 붕괴하는 감각을 온전하게 느끼며.
화이트는, 그 자신의 두 눈동자를 어둡게 물들이기에 이르렀으니.
“──.”
……포기할 것 같나.
포기할 수 있겠나.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어떻게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나는, 나는, 나는.
……나의 스승, 아셰라를─
“……하, 아하하.”
이윽고, 우습게도.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공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 표정만큼은 분명하게 절망이 섞인 채로 일그러뜨리며.
“…….”
9서클을 넘어선 대륙의 대마도사.
‘화이트 클리포트’는,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세계의 종말까지 남은 1년.
그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서.
‘시간’에 간섭하는 마법을 창조해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따위 운명, 내가 비틀어 버리겠다.”
끝내, 결국은.
마법의 길에 있어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고.
……그렇게.
시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