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첫 번째 복수
‘정체, 라.’
금색의 마왕이 꺼낸 말에, 화이트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조금은 예전의 일, 지금으로서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던 과거의 어느 한때였으니.
-나, 테이칸 클리포트는 화이트 클리포트에게 가주직을 온전하게 넘길 것을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9서클을 넘어서,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르다니……. 자랑스럽다, 화이트. 내 아들.
“…….”
그건 아마,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기 딱 1년 전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20대의 끝자락에 섰을 시점, 결국은 끝내 9서클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에 성공하였으니.
제국이고 왕국이고, 대륙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던 걸로 기억한다.
-……20대에 9서클을 넘어섰다고?
-말도 안돼. 클리포트 가에서 조작한 게 아닌가?
-설마, 저런 어린 녀석이 그 적(赤)의 마왕이나 황실의 대마도사와 동급이라고?
“…….”
……뭐, 그러한 이야기들도 여러모로 오갔던 것도 같긴 하지만.
중요한 건 그따위 하찮은 것들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딱 1년 뒤.
자신의 마법 스승이라 알려졌었던 아셰라의 마나가 폭주했고.
정신계 마법에 이미 상당히 예전부터 정신을 침식당하던 그녀는, 끝내.
‘타락’에 이르고 말았다.
그 청아한 푸른빛을 띠던 천상의 마나는 칠흑 같은 검은빛으로 물들었고.
대륙은, 세상은.
그로부터 단 1년만에, 종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정체, 내 정체라.”
한 차례 검은 피를 토해내는 금색의 마왕을 오연한 눈빛으로 내려다 보며.
화이트가 드디어 입술을 떼어냈다.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 금의 마왕.”
“……그 말은.”
화이트의 말에 금색의 마왕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한창 죽어가는 중인 그의 표정 위로, 약간의 기대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선은, 네 죗값부터 받은 뒤에 말이다.”
화이트는 그저 평범하게 그 자신의 얘기를 그에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서걱!
“크아아아악!”
가벼운 절삭음이 한 차례 울려 퍼지고, 금색의 마왕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힘없이 지면에 내려앉았다.
그에 금색의 마왕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으나.
“아직 부족해.”
후욱-
화이트에게 있어서, 고작해야 그의 팔 하나를 잘라내는 건 복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이었다.
화이트가 망설이지 않고 연속해서 그 자신의 푸른 창을 휘둘러댔다.
서걱, 서걱, 서걱!
“큭, 크아악, 크아아아아악!”
세 차례의 절삭음이 계속해서 울려퍼졌고, 그에 맞춰 금색의 마왕의 비명 소리 역시 점차적으로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푹!
“……커헉!”
오른팔, 왼팔.
오른 다리, 왼 다리.
사지라 할 만한 것을 모두 잃은 금색의 마왕의 심장을 향해.
화이트가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 청색의 창을 내질렀다.
“……컥, 크어억.”
“…….”
그저 무기질적인 눈빛을 번뜩이는 화이트의 밑에서, 금색의 마왕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려댔다.
그의 팔이 잘린 단면은 어느새 얼어붙어 괴사해가고 있었고, 그의 다리가 잘린 단면에서는 연신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네놈.”
금색의 마왕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게 무슨…….”
“…….”
무감정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띄우고 있는 화이트를 애써 노려 보며, 금색의 마왕이 힘빠진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내게, 내게 왜 이러는 거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다고……!”
금색의 마왕이 억울하다는 기색을 띠며 소리쳤고.
“……무슨 짓을 했냐, 라.”
그런 그의 말에, 화이트는 저도 모르게 얕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뻔뻔하기 그지없는 놈.
화이트의 푸른 안광이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후욱!
화이트가 들고 있던 청색의 창이 섬뜩한 궤적을 남기며 다시금 한 차례 휘둘러졌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휘두름에.
“……! ……!”
금색의 마왕의 전신에, 푸른빛을 띠는 자잘한 상처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겨났으니.
차마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금색의 마왕이 두 눈을 까뒤집었다.
만약 지금 정신을 잃는다면, 분명하게 그 목숨을 잃어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지만, 이 고통은 너무나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은, 그저 ‘편해지고 싶다’라는 단순한 감정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아득해져 가는 시야를 천천히 감으며.
금색의 마왕이 정신줄을 놓으려는 바로 그때.
“……기절하게 내버려 둘 것 같나?”
화이트가 두 눈을 사납게 빛내며 창을 들지 않은 손으로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리커버리recovery」
우우웅!
찬란한 푸른빛이 한 차례 선명하게 빛나며, 금색의 마왕의 육중한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그야말로 반강제적으로,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네놈……!”
……차라리 그렇게 정신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한결 편했을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금색의 마왕은 그런 생각을 품었고.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다음, 바로 직후부터.
자신을 무감정한 눈동자로 내려다보고 있는 백금발의 소년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를 말이다.
“……죽여라, 차라리 죽여!”
금색의 마왕의 몸이 점차적으로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금색의 마왕의 발작에도 화이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과연 12마왕, 자신이 앞으로 어떤 꼴이 될지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는 건가?”
오히려 더욱더 살벌하게 눈빛을 번뜩이며, 화이트가 서서히 입꼬리를 끌어올려 갔다.
“자, 시작해 볼까.”
“……허억, 허억.”
점차 금색의 마왕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그야말로 과호흡으로 정신을 놓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한가지 말해두지, 금의 마왕.”
그 입가에 잔잔하면서도, 어딘가 살벌한 느낌을 주는 미소를 천천히 띄우며.
화이트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금색의 마왕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네가 기절한다 한들, 금방 평온을 맞이할 일은 없을 거다.”
“허억, 허억…….”
금색의 마왕의 얼굴 위로 확고한 두려움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온전하게 두 눈에 담으면서.
화이트가 살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인지는, 네가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씨익-
이윽고, 그 입꼬리를 사납게 끌어 올리며.
후웅!
화이트가 그 자신의 창을 한 차례 유려한 궤적을 남기며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일찍 죽어버리지 말라고, 금의 마왕.”
……네가 최악의 고통을 받아가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이, 나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유일한 길이니.
화이트가 한 차례 그 머릿속을 깔끔하게 비웠다.
─지금 생각할 건 쓸데없는 상념도, 혹은 이다음의 뒤처리에 관한 고민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신의 원수인 금색의 마왕에게, 철저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
그것에 관한 생각만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화이트가 살기를 담은 푸른빛의 마나를 그 자신의 창에 새겨넣기 시작했다.
*****
“……흐음, 흠.”
아셰라가 한 차례 눈꼬리를 유려하게 휘게 하며, 총총걸음으로 앞으로 이동해 나가기 시작했다.
‘제자님은 잘하고 있을까요.’
이내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약간의 걱정스러운 감정이었으니.
한 차례 머릿속으로 백금발의 소년을 떠올리며, 아셰라가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제자, 화이트 클리포트.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로 아끼는 제자.
화이트는 현재, 금색 마탑의 상층부에서 마탑의 마법사들과 대치하고 있을 터.
……물론 그녀의 제자인 화이트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임은 틀림이 없었으나.
12마왕이라는 존재는, 그 결이 한층 달랐다.
비록 금의 마왕의 성격상, 곧바로 나서지는 않을 테지만.
소란이 심해지면 분명, 그 자신이 직접 나설 터.
……그렇다면 화이트로서도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제가 도와야만 하는 겁니다.’
아셰라의 눈동자에 확고한 의지의 빛이 담기기 시작했다.
……애초에 새벽에 클리포트 가의 저택을 몰래 빠져나가는 화이트를 따라나선 이유가 무엇인가.
-전, 12마왕 전부를 죽일 계획입니다.
“…….”
언젠가, 그녀 자신의 제자가 내뱉었던 말을 속으로 떠올리며.
아셰라가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무슨 일을 겪었고, 그가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화이트의 눈동자 그 깊숙한 곳에 떠올라 있던, 12마왕에 대한 명확한 분노의 빛이었으니.
……걱정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아끼고, 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제자다.
어찌 걱정을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아셰라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전력을 다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나를 최대한으로 효율적이게 운용해 금색 마탑의 지하를 털었다.
끝내 그녀가 얻어낸 것은, 금색 마탑에서 금의 마왕이 몰래 실험하고 있던 무언가에 대한 정보였으니.
아마 제국과 클리포트 가문에서 파악한 마나의 파동이라는 것은, 금색 마탑 지하에 있는 그 지하실에서부터 시작된 것일 터.
그렇지만 이제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제가 다 망가뜨려 놓았으니까요.’
얕은 웃음을 흘리는 아셰라.
그녀의 표정 위로 나름대로 흥미로운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금의 마왕……. 제법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더군요. 비록 역겹기 그지없는 실험이라고는 해도 말이죠.”
후우.
그녀가 한 차례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은 선을 넘었습니다, 금의 마왕.”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 서서히 선명한 살의가 떠오르고 있었다.
“…….”
우웅-
금색 마탑의 지하에 한 차례 인위적인 바람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바람에 자연스레 편승하며, 아셰라가 재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위로, 위로.
금색 마탑의 지하, 그 최하층에서부터.
지상으로 나가기까지.
그야말로 한순간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속도로 주파해 나가며.
“…….”
그녀가 금색 마탑의 외부로 빠져 나왔고.
“……이건?”
이내 그녀의 두 눈동자에 들어온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으니.
그 거대하던 금색 마탑이 반으로 쪼개지고,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뿐일까, 금색 마탑 소속의 마법사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으며.
“……!”
그곳에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장소에서는, 두 개의 거대한 마나가 느껴져 왔으니.
아셰라의 고개가 빠르게 어느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제자님?”
느껴지는 마나의 파동.
……이건.
아셰라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알 수 있었다.
모를 리가 있겠나.
선명하게 뿜어져 나오는 이 두 개의 마나의 파동은.
하나는 그녀 자신의 제자의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그녀와 같은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한 금의 마왕의 것이었으니.
“……제자님.”
아셰라의 얼굴 위로 걱정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 아니겠죠.”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애써 꽉 쥐며, 아셰라가 이를 악물었다.
타앗!
바로 직후 그녀가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기다려요, 제자님. 제가 곧 갈 테니까.’
제자에 대한 걱정과, 금의 마왕에 대한 분노를 동시에 표정 위로 떠올리며.
아셰라가 바람을 타고, 음속을 돌파해.
재빠르게 그 거대한 평원을 주파해 나갔다.
……그 평원의 끝자락에 펼쳐져 있을,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광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