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금의 마왕, 금색의 마왕
“…….”
쿠궁, 쿠구궁…….
얕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어느 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시끄럽군.”
“……마왕이시여, 그것이.”
사내의 한마디에, 사내 앞에 부복하고 있던 어느 여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저 짧은 한마디에 불과했으나, 마치 사형선고라도 들은 듯한 모양새였다.
‘떨면 안 돼, 떨면 안 되는 거야.’
……최선을 다해 속으로 그리 중얼거려보았으나, 어찌 그런다고 본능적인 두려움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여인의 몸은 그야말로 발작을 일으키듯 떨려댔고.
그 모습이 거슬렸을까.
“…….”
우직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금발의 사내가, 이내 한 차례 손을 휘저었다.
그래, 그야말로 가볍기 짝이 없는 움직임으로.
사내가 손을 유려한 궤적과 함께 움직였고.
“……!”
그 움직임에, 여인의 두 눈이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커지기에 이르렀다.
“마왕이시여! 잠시만, 제게 시간을 주신다면─”
퍼억!
여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마치 과일이 짓밟혀 터지기라도 하는 것만 같은 소음과 함께, 여인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거슬리는군. 이 중요한 때에. 쯧.”
그리고, 그러한 섬뜩한 광경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사내.
금색의 마왕은, 그저 한 차례 그리 중얼거릴 뿐이었으니.
바로 방금 전 하나의 생명을 허무하게 스러지게 만들어 놓고도, 그는 그저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자신의 마법에 어느 한 여인이 목숨을 잃은 것조차 이미 잊어버린 것만 같기도 하였다.
그 정도로, 그에게는 이러한 일이 그다지 깊게 와닿지 않는다는 말일 터.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여럿 있었다.
“…….”
“…….”
조금 전의 여인과 비슷하게 그저 몸을 바닥으로 낮추고, 신체의 떨림을 최소화하고 있는 여성이 열댓 명 정도.
그중에는 아직 채 10대 중반을 넘지 못한 것만 같은 소녀도.
20대를 넘어 30대를 바라보는, 묘한 색기를 흘리고 있는 여인도 있었으니.
그런 다양한 여성들에게 있어서,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저 조금 전, 머리가 마치 과일처럼 터져나간 여인에게서 최대한 시선을 떼어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동시에 떨려오는 신체 또한 최선을 다해 억제해가면서.
어느 여인은 숫제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절박한 것이었을까.
그 정도로 사내가 그녀들에게 있어서 두렵기 그지없는 존재인 걸까.
“…….”
그러나 그러한 여성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발의 사내는 그저 태연히 턱을 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슬슬, 완성이 되어 가는가.”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무기질적인 표정 위로, 아주 약간의 기대가 스치고 지나갔다.
쿠궁, 쿠구궁.
“…….”
……그리고.
조금 전, 한 여인이 그 목숨을 잃기 전 들려왔었던 소음이.
다시 한 차례, 금색 마탑 내부에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했으니.
쿵.
쿵.
쿵.
세 차례의 울림, 그것은 마치 거인의 발울림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거인의 발울림은, 이윽고.
쿵.
쾅, 콰앙.
콰아아아앙!
거친 폭음으로 그 형태를 바꾸기에 이르렀으니.
“……대체.”
……금색의 마왕이 드디어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사내의 두 눈동자에 선명한 분노의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밑의 놈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이,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리며.
사내가 비죽 웃음을 흘렸다.
“안 그런가? 케일.”
“…….”
휘익!
그런 사내의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에, 마탑 내부에 한 차례 얕은 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이내 누군가가 사내의 옆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죄송합니다, 마왕이시여.”
갈색 로브를 깊게 뒤집어쓴, 마치 자객을 연상케 하는 듯한 사내가 음울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
동시에 그가 금색의 마왕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고.
콰아아아아!
바로 직후, 금색의 마왕의 전신에서 거친 마나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읏.”
“읍, 우읍.”
그에 부복해 있던 여인들이 단체로 침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느 한 소녀는 구토감마저 올라왔는지, 연신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
“……큭.”
……그러나, 그런 그녀들마저도.
금색의 마왕의 압박감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로브의 사내만큼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였으니.
고오오오-
“큭, 크윽…….”
무형의 압박감에 계속해서 침음을 흘리던 사내가, 이윽고.
“……커헉!”
신음성을 참지 못하고 각혈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검은 피가 한 차례 튀어나왔고.
철퍽!
“…….”
그 검은 피는 이내, 금색의 마왕의 발끝에 닿기까지 하였으니.
촤악!
과연 거친 각혈을 내뱉을 때 동반된 신음성이, 그 자신이 생전 마지막으로 내었던 목소리였다는 걸.
사내, 케일은 알 수 있었을까.
아니, 아마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터.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아무런 감각조차 느끼지 못한 듯이.
생전의 그 표정을 그대로 간직하며, 케일의 목이 무형의 기운에 의해 베여나가 힘없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쓸모없는 것들.”
평생을 그 자신에게 충성을 바쳤던 사내를 바로 방금 전 베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금색의 마왕은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그저 태연하게, 혹은 무감정한 기색으로.
사내가 천천히,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구궁…….
또다시 한 차례 진동이 마탑 내부를 울렸으나.
조금 전의 그 울림들과는 그 결이 한층 달랐다.
“내가 직접 내려가야겠다.”
그 검은 눈동자를 더욱 어둡게 가라앉히며, 금색의 마왕이 양손에 거대한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웅-
마나가 거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우웅-
또다시 한 번 더.
“……실험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왔거늘, 제국의 개들이 벌써 당도하기라도 했는지.”
우웅, 우우웅-
마나의 울림이 연속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잠깐을 못 버티는 건가. 제자라는 것들이, 정말이지 하나같이 쓸모가 없군.”
사내가 계속해서 중얼거렸고.
우웅-
한 차례 더.
마나가 그 특유의 울음소리를 잔잔하게 내뱉은 건, 그쯤이었다.
“……음?”
그제서야 이변을 감지했을까.
금색의 마왕이 두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 봤다.
“…….”
그 육중한 양손에는, 그야말로 도시 하나를 소멸시킬 정도의 거대한 마나가 모여있었으나.
우웅-
“……이건.”
금색의 마왕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마탑 내부에 울려 퍼지는 이 마나의 울음소리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
금색의 마왕이 그 표정 위로 어처구니없다는 빛을 띄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탑을 울리게 할 정도의 마나를 뿜어내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이런 강렬한 마나를 퍼뜨리고 있다는 말인가?
“……대체, 그 누가?”
금색의 마왕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이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고, 완벽하게 다루어 낼 수 있는 존재라면.
최소한 그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
“……허.”
금색의 마왕이 헛웃음을 한 차례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신과 동급이라면, 이 대륙에 채 수십 명이 되지 않았고.
그 대부분을 12마왕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다른 마왕이 내 탑에 쳐들어 왔다고?”
순간 뇌리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꺼내 드는 금색의 마왕.
‘아니.’
그러나 이내 그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12마왕의 갑작스런 기습, 혹은 침공.
아마 그러한 종류의 공격은 아닐 터.
‘협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마왕이라면, 절대 그러한 일을 벌이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동시에 생기는 의문이 하나 있었으니.
“……누구냐.”
서서히, 금색의 마왕이 그 자신의 두 눈동자 위로 섬뜩한 살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꺄악!”
그의 마나가 거칠게 뿜어져 나왔고, 그에 부복해 있던 여성들이 순식간에 그 정신을 잃었으나.
금색의 마왕은 그따위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누구냔 말이다.”
그저 분노를 터뜨리며, 그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릴 뿐.
‘……제국의 황실이 나서기라도 한 건가? 혹은, 클리포트 가문의 가주가 직접 나왔다거나.’
비록 겉으로는 분노의 빛을 띠고는 있었으나, 그 속은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으니.
거친 분노로 마나를 불태우면서도, 금색의 마왕이 있는 힘껏 두뇌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 마나를 퍼뜨리고, 자신을 공격할 세력, 혹은 인물이라면.
12마왕을 제외한다면 몇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하니 대마도사 급은 아닐 테고.”
우선 첫 번째로, 금색의 마왕은 하나의 가정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마도사 급의 마법사가, 이리도 갑작스레 자신의 마탑에 공격을 가했더라면.
그 정도로 큰 움직임을 보였었다면.
그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비록 그러한 마법사가 작정하고 몸을 감춘다고 하면.
당연히 그와 동급인, 대마도사 급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럴 경우, 대륙의 어디서든 큰 사건이 터져 나왔을 거다.
대륙의 대마도사 급이란, 대부분 각자의 세력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었으니.
물론 그 모습을 감추고 은거에 들어간 대마도사 급 마법사도 몇 있긴 하였으나, 그들은 자신의 마탑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서.
대마도사 급의 바로 아래, 대마법사 급의 마법사라면?
그 가능성이 한층 넓어지기에 이른다.
“…….”
대마법사 급의 마법사 중에서 자신을 공격할 만한 동기가 있는 자들의 명단을 머릿속으로 펼쳐 보며, 금색의 마왕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황실 마법사단의 인물들, 마법명가인 클리포트 공작가의 가주 테이칸 클리포트.
그도 아니면, 그도 아니라면.
혹은 또 다른,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마법사가─
“……대체 누가, 이렇게 갑작스레.”
그러나, 끝내 결론은 나오지 않았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그 어떠한 마법사가 이렇게 자신을 공격해 온 것인지, 도저히 추측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건.’
금색의 마왕이 머릿속으로 천천히 몇 명의 인물의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나온 불완전한 결론은.
“황실의 대마법사 급 마법사들인가.”
그나마 가장 그 자신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제국의 황실 측의 인물들이었으니.
으득!
“……감히.”
한 차례 이를 거칠게 갈며, 금색의 마왕이 두 눈동자에서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열이 받은 모양새였다.
“제국의 사냥개들 따위가, 나의 마탑을!”
콰아아아아아!
그의 사나운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부터 살짝 어두운 빛깔의 마나가 거칠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찾았다.”
“……!”
금색의 마왕이, 그 자신의 마탑을 공격해온 자들의 정체가 황실의 마법사들이라고 반쯤 확신하고 있을 즈음.
어느 한 소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구지?’
금색의 마왕이 멍한 기색으로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게 누구든 간에,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자신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 그저 태연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그건 금색의 마왕으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멍한 태도를 유지하게끔 만들었으니.
“──.”
……그 ‘소년’은, 그러한 틈을 놓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후우우욱!
순간적으로, 마탑 최상층의 밑부분에서부터 무언가 거대한 압력이 엄청난 속도로 상승해오기 시작했고.
“─무슨?”
그 기척을 느낀 금색의 마왕이 한 차례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릴 즈음.
그 바로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탑의 최상층이 허무하게 꿰뚫려 푸른 하늘을 올곧게 드러내었고.
이내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검은 로브를 대충 뒤집어쓴 채, 양손에 청아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었으니.
“─실험이라.”
소년, 화이트가 짤막한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내, 화이트가 그 푸른 눈동자를 한 차례 번뜩이며.
“나에게도 조금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금(金)의 마왕.”
조금은 살벌한 기색으로, 그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