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나의 사랑스런 제자님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을 생각이죠?”
“음…….”
아셰라의 물음에 화이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어떻게 알았지?
단순 지레짐작?
혹은 어떠한 근거에 의거한 분명한 추측일까?
자신이 무언가 자신의 의도를 예상케 하게끔 흘려버린 힌트라도 있었던 걸까.
화이트의 머릿속에서 이래저래 재빠르게 추측들이 휘몰아쳤으나.
언제까지고 대답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은, 그렇습니다. 스승님.”
“…….”
화이트가 조금은 죄책감이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에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화이트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죄책감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일방적으로 통보해놓고, 막상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하겠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녀로 하여금 어떻게 이해하기를 바라는 의도인지, 말을 꺼낸 그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겠는데.
자신의 스승은, 아셰라는.
과연 자신의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겠는가.
“…….”
화이트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한 차례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름대로 표정을 관리한다고 하는 그였지만.
아주 잠깐 사이에 떠오른 그 감정의 편린을 읽지 못할 흑의 마왕이 아니었기에.
“……뭐, 그런가요.”
아셰라가 묘하게 납득한 기색으로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제자님.”
“……스승님?”
설마 그런 말이 돌아올지는 몰랐던 걸까.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아셰라의 첫마디에, 화이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응…….”
그에 한 차례 묘한 비음을 흘리며, 아셰라가 조금은 탐탁잖은 기색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뭐, 제자님 고집이야 제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니까요. 제자님이 작정하고 입을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 입을 비집어 열어 화염구를 처박아도 절대로 말을 꺼내지 않겠죠.”
“……크흠.”
가벼운 어조, 마치 밥이나 한 끼 먹자고 말하는 듯한 어투였으나.
그 속에 담긴 잔잔한 살기와, 살벌한 뒷말에 화이트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 흑색의 마왕이다.
그녀가 작정하고 자신의 입을 강제로 열어 화염구를 처박고자 한다면, 그에 불가능이란 없으리라.
‘……살벌하기도 해라.’
한 차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화이트가 애써 표정을 태연하게 꾸며냈다.
괜히 겁먹은 기색을 보여봐야, 그녀로 하여금 약점을 캐치할 수 있게 만들어줄 뿐이니까.
그렇기에.
“……스승님.”
“네?”
우선은 화제를 전환시킨다.
화이트가 매우 진중한 기색으로,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말씀을 못 드리지만, 제가 언젠가는.”
“……언젠가는?”
아셰라가 멍한 목소리로 되물었고, 그에 화이트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려댔다.
정말 불편하고, 또 미묘하기 짝이 없는 기색으로.
그러나 분명한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언젠가는.”
화이트가 다시금 입을 열어 말을 꺼내 들었다.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승님께. 제 모든 것을.”
“…….”
“……부디, 기다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화이트가 조금은 불안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그가 아셰라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기 시작했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분노할까.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기분이 상한 티를 팍팍 낼까.
아니면, 그저 온전하게 받아들여 줄까.
“…….”
그 무슨 대답이 나오더라도, 그저 기다려야만 했기에.
화이트가 입을 꾹 다문 채, 작게 흔들리는 눈빛을 아셰라에게로 향하게 했고.
“──.”
끝내, 아셰라가 입을 여는 때가 오게 되었으니.
그녀가 처음 꺼낸 첫마디는, 다름 아닌.
“알겠어요.”
“……!”
화이트가 반색할 정도로, 생각 이상으로 긍정적인 한마디였다.
“……스승님.”
화이트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고, 그에 아셰라가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금은 씁쓸하게, 그러나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느낌의.
그런 웃음과 함께,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있나요, 제가. 제자님께서 말을 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우리 사랑스런 제자님께서 도대체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저를 애태우는지.”
……실로 흥미롭고, 동시에 궁금하다며.
아셰라가 조금은 살벌한 눈웃음과 함께 그리 말을 끝맺었다.
“……!”
그에 화이트의 표정이, 그야말로 그 나이대의 소년처럼 환해진 것은.
아셰라로 하여금, 분노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끔 하는 광경이었으니.
“……아하하.”
어쩔 수 없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셰라가 풋 하고 한 차례 얕은 웃음을 내뱉었다.
*****
“…….”
화이트가 저택으로 되돌아가고, 근방의 숲속.
그 숲속은 다름 아닌 아셰라가 생활하는 공간이자, 화이트와 그녀의 집결지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으니.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러한 장소에, 제 3자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세르피아.”
아셰라의 눈빛이 한층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가 분명하게, 끼어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쿠궁, 쿠구궁…….
아셰라의 전신에서 천천히 검푸른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숲속의 나무나 돌덩이들이 그녀의 마나의 움직임에 따라 거칠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 압박감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세르피아’라고 불린 여성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
“불충을 용서하시길. 마왕님.”
그녀가 덧붙인 한마디에, 아셰라의 눈썹이 한 차례 불쾌한 기색으로 까딱거렸다.
“……그 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죠.”
“죄송합니다.”
“하아…….”
그저 올곧게 사죄해오는 세르피아의 모습에 아셰라가 싶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리도 진지한 기색으로 사죄의 말을 꺼내 온다면, 마냥 추궁하기도 뭣해지지 않는가.
“영악하기 그지없는 부하군요…….”
그렇기에 그저 한 차례 그리 중얼거리며.
파앗!
아셰라가 끌어올렸던 마나를 한순간에 흩어지게 했다.
그에 따라 마치 지진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흔들리던 숲속 또한 자연스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그런 숲속의 모습을 한 차례 둘러보며,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에 세르피아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입에 튀어나온 한마디는.
그녀로서도 무척이나 조심스레 꺼낼 수밖에 없는 한마디였으니.
“……그 소년을 믿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 짧은 한마디에, 아셰라의 얼굴에서 표정이라 할 만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고오오오-
조금 진정되었던 마나의 움직임이, 다시금 불안한 기색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세르피아.”
“예. 마왕, 아니, 아셰라 님.”
아셰라가 고요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그에 세르피아가 쩔쩔매며 겨우 대답을 꺼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감각을 느끼며, 세르피아가 한 차례 마른침을 삼켰다.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의 주군, 충성을 바친 대상이.
클리포트 공작가의 후계자인 백금발의 소년에게,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만.
그녀의 가장 충실한 부하로써, 혹은 종으로써.
할 말만큼은 해야 했기에.
“…….”
그러나 아셰라가 은연 중에 흘리는 마나의 압박을 버텨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저 이를 악물고, 세르피아가 압박감을 버텨냈고.
“제가.”
……끝내,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소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말고, 어떠한 의심도 품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조금은 살기가 담겨져 있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세르피아가 몸을 움찔하면서도 재빠르게 대답을 꺼내 들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년이 오늘 꺼낸 이야기는 도가 지나쳤습니다.”
“…….”
“12마왕의 건에 대한 이야기라니요. 절대 그 소년이 꺼낼 만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아.”
이어지는 세르피아의 설득 비스무리한 무언가에, 아셰라가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 또한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조금은 씁쓸한 감정을 속으로만 품으며, 아셰라가 마나를 또다시 흩어지게 했다.
그에 한 차례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을 느끼는 세르피아.
이내 그녀가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고,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로서는 그리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기에, 모든 것을 들은 건 아니지만.”
그녀의 표정 위로 심란한 기색이 떠오르고 있었다.
“……제가 아는 화이트라는 소년은, 절대 그러한 말을 꺼낼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랬다.
그저 그녀가 느낀 ‘화이트 클리포트’라는 소년은.
비록 불세출의 마나를 타고난, 언젠가 최강의 마법사들의 일익이 될지도 모를 인재긴 하여도.
절대, 12마왕과 관련된 문제에서 그런 진지한 말을 꺼낼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 자신의 주군이 분노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한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녀 자신의 주군은 지나칠 정도로 태연했고, 그에 감히 충언을 올려야 하는 역할을 가진 것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비록 그녀가 분노를 터뜨려 소멸하게 되더라도, 말은 꺼내야만 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셰라는 나름대로 그녀의 말에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제 제자님께 위해를 끼치는 일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세르피아.”
“……아셰라 님!”
“반론은 받지 않겠어요.”
쩌어엉!
“……!”
푸른빛의 마나가 날아들어 세르피아의 목을 감싸쥐었다.
별다른 살기가 담기지는 않았으나, 그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고.
그렇기에 더 이상 세르피아는, 그 무슨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돌아가세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 장소로.”
“…….”
그저 그런 아셰라의 말에,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따르는 것뿐이었으니.
화악!
한 차례 마나가 일렁거렸고, 그 직후.
세르피아가 숲속에서 그 모습을 순식간에 감추었다.
“…….”
그리고, 그렇게 숲속에 홀로 남게 된 아셰라.
그녀의 표정 위로, 미묘하고도 어딘가 아련해 보이는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르피아, 당신은 도저히 납득하기가 힘들었겠죠.’
어째서 그 자신의 주군은, 그 소년을 그리도 믿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넘어선 신뢰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기에 각오를 다지고 충언을 올린 것일 거다.
그에 새삼스레 분노를 품지는 않는다.
그녀의 감정 또한, 충분히 이해는 하고 있었기에.
……그렇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었다.
“……제자님.”
이내 아셰라의 입에서부터 어딘가 복잡미묘한 목소리가 천천히 새어 나왔다.
‘내가 그를 믿는 이유?’
피식-
아셰라가 얕게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래.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유에 불과했으니.
아마 그건, 10년 전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 PC! 콘솔! 아무튼 뭐든 간에 내 전자기기들! 으아악!
“……푸훗.”
순간 떠오른 그녀 자신의 제자님의 목소리에, 아셰라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어쩌겠나.
이 세계로 넘어오고 수백 년.
그 오랜 시간 동안, 처음으로 만난 동향(同鄕)의 인물이었다.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나.
어찌 친근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최초엔 비록 그러한 단순한 이유에 불과했다지만.
자라면서, 같이 생활하면서, 그를 가르치면서.
어느샌가, 그 소년 자체가 마음에 들게 되었다.
“……알고 있어요, 실은.”
아셰라가 씁쓸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
……그 자신의 제자님이,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는 걸.
언제나 무언가 고민을 품고 있는 듯한 표정, 혹은 무언가를 심히도 두려워하는 것만 같은 표정.
“……아하하, 제자님도 참.”
설마 자신이 그걸 읽지 못하리라 생각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자신의 제자님은 자신을 심각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혹은, 그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다거나.
“후후…….”
아셰라의 얼굴 위로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언젠가는.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승님께. 제 모든 것을.
-……부디, 기다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기다려야겠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자신의 제자님, 화이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순간에 어른의 얼굴을 가지고, 소년의 표정을 지우게끔 되었는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말해주겠다면.”
그게 수년이든, 수십 년이든.
자신은 그저 기다리면 될 문제일 뿐이다.
……오랜 세월을 기다리는 것에 있어서, 그녀는 무척이나 자신이 있었고.
만약 끝까지 그녀 자신의 제자님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후, 후후. 후후후…….”
……서서히, 아셰라의 표정 위로 살벌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야말로, 이때까지 누적된 괘씸함을 집합시켜서.
그 괘씸하기 짝이 없는 제자님에게,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안겨주리라.
“……하하, 그렇게 되기 싫으면.”
얼른 모든 걸 얘기해달라고요.
……나의 사랑스런 제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