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맞아야만 정신을 차리죠?
“제자님, 제자님.”
스승, 아셰라의 부름에.
흠칫.
소년, 화이트가 조금 뒤늦게 대꾸했다.
“……왜 그러시나요, 스승님.”
“……?”
화이트의 어투에 어려있는 묘한 감정에, 아셰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묘하게 꺼려하는 것만 같은 말투네요.”
“……에이, 설마요. 하하.”
화이트가 애써 고개를 홱홱 가로저으며 최선을 다해 부정의 뜻을 밝혔다.
“제가 어찌 하늘 같은 스승님을 꺼려하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나요? 하하.”
“…….”
화이트의 변명에도, 아셰라의 표정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의심하는 듯한, 묘하게 추궁하는 듯한 시선에 화이트는 그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데.”
“흠, 크흠.”
아셰라가 짧게 중얼거렸고, 그에 화이트가 헛기침을 하며 애써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했다.
“……그건 그렇고, 스승님.”
“뭐죠, 제자님?”
화이트의 말에 아셰라가 환한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그런 아셰라의 미소에 어딘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까 저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아, 그거 말이죠.”
그제서야 용건을 떠올렸다는 듯, 아셰라가 작게 손뼉을 쳤다.
“다름이 아니라, 가주께서 제자님을 불렀거든요. 그 얘기를 전해주려고 했죠.”
“……아버지가요?”
“그럼요. 가주가 제자님 아버지밖에 더 있나요.”
아셰라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
……그리고, 그런 가볍기 그지없는 아셰라의 미소를.
소년, 화이트가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금은 집요할 정도로.
“……?”
당연히 그러한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아셰라가 아니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아니에요.”
그에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이트가 옅은 미소를 그 입가에 걸었다.
‘……그래.’
나는 이 미소를 다시금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지막 마법을 시전한 거다.
……후회는 없다.
다만.
“…….”
휘몰아치는 상념을 속으로만 감추며, 화이트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죠, 스승님. 아버지는 약속을 어기면 불같이 화를 내니까요.”
“흐음…….”
화이트의 말에 아셰라가 한 차례 의문스러운 침음을 흘렸으나.
“뭐해요, 안 가요?”
“……아, 같이 가요!”
화이트가 의도적으로 발을 앞으로 내디뎠고, 그에 어쩔 수 없이 아셰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뒤를 쫓아갔다.
‘……제자님의 표정, 분명 뭐가 있었는데.’
……속으로 한 차례 의문을 품으며,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셰라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고 중얼거렸다.
“스승님? 무슨 말 하셨나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에 화이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셰라 역시 나름대로 그의 태도에 감정이 상했기에.
마치 복수를 하기라도 하듯이, 그녀가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자님이 먼저 얘기를 안 해줬으니, 저도 아무 말 안 할 건데요?”
“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스승님.”
“후후, 제 마음이랍니다~”
아셰라가 짧은 완드를 한 차례 휘저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후웅-
“……허.”
자연스레 그 바람에 편승해 아셰라가 재빨리 허공을 주파했고, 그에 화이트가 허탈한 웃음을 한 차례 내뱉었다.
“…….”
그녀가 먼저 떠나간 자리, 어느 한 숲속에서.
화이트가 씁쓸한 미소를 조용히 그 입가에 걸쳤다.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
당신의 정체를 이미 제가 알고 있고, 당신이 세계를 한 번 멸망시킨 시간대를 제가 경험하고 왔다는 것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말한다 한들,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스승님이라면…….”
……그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까.
이해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든 최후의 마법진, 그 구조를 다시금 떠올려 재창조하고.
그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인다면, 분명 아셰라는 이해를 할 수 있으리라.
비록 납득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해한다’ 라는 개념은 성립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천성이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마법의 결과물로 보여주기만 하면, 행성이 사실은 평평했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
그렇지만.
화이트는 그 자신의 스승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구원해내기 전까지는.
-부디, 과거의 제가 제자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하아.”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아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표정 또한.
언제까지고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그렇지만, 잊어야 하겠지.”
화이트의 두 눈동자에, 아련하고도 어딘가 묘하게 광기가 서린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삶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태어난 나를 이끌어주고, 나를 가르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구할 수만 있다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 번이라도.
나는 언제까지고, 시간을 되돌리리라.
“……하하. 뭐라고 하는 건지.”
화이트가 조금은 허탈한 기색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중2병 감성이 결국 뇌마저 점령해 버리고 만 것인가.
최근 들어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결 늘어난 것만 같았다.
……상념이나 잡념 또한 이래저래 늘어났고.
어찌 되었든,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스승, 아셰라를─
“뭐해요?”
“아, X발!”
순간적으로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이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자님, 뭔 발이요?”
“……아, 스승님.”
“뭔 발?”
“그, 그게 말이죠…….”
아셰라가 환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으나, 그 눈만큼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빛을 그 눈동자 위로 띄운 채, 화이트를 올곧게 직시해오고 있었으니.
섬뜩하게 좁혀들어오는 살기의 감각을 느끼며, 화이트가 애써 변명을 떠올려 내고자 두뇌를 굴려댔다.
“…….”
그러나, 끝내 변명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으니.
화이트가 끝내 선택한 방법은.
“……텔레포트.”
후욱!
“……?”
그 자리를 긴급하게 탈출하는 것이었으니.
“……제자님?”
화이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그 자신의 스승인 소녀가 그 얼굴을 살벌하게 일그러뜨리고 분노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후환이 두렵지만.’
어쩌겠나.
일단 지금 이 상황부터 모면하고 보자.
뒷일은 미래의 나에게.
수고해라, 미래의 나.
나는 이제부터 생각을 포기하겠다.
*****
“……왜 꼴이 그렇냐?”
“하하…….”
아버지의 물음에, 화이트가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 차례 볼을 긁적였다.
-제자님은, 맞아야만, 그 험한 입이 고쳐지죠?
“…….”
몇 분 전의, 그 자신의 스승님이 보여줬던 압도적인 폭력을 떠올리며.
화이트가 어지러운 감각에 한 차례 이마를 짚었다.
“……어떤 분을 화나게 해서 말입니다.”
“아하, 그렇군.”
화이트의 짧은 한마디에, 그의 아버지인 테이칸 클리포트 공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아…….”
마치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한 그의 표정에 의아함을 느낄 법도 하건만, 화이트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뭐, 대체로 다 그 자신의 업보인 탓에.
자신이 이런 식으로 뚜드려 맞고 돌아오는 경우, 대부분 그 자신의 스승인 아셰라가 관련되어있는 일이 많았으니까.
새삼스레 폭력적인 스승님이라고 생각하며, 화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참아야지.’
정말이지 그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기특한 모습.
만약 아셰라가 그런 그의 생각을 읽었더라면, 분명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법으로 폭격을 가하리라.
-죽으세요.
‘예?’
-그냥 죽으라고요.
“크흠, 흠.”
……언젠가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화이트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무튼, 아버지. 부르셨다고요.”
화이트가 화제를 전환시켰고, 그에 테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내 테이칸의 표정 위로 나름대로 진중한 빛이 떠올랐으니.
“……뭔 일이라도 있었답니까?”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을까.
화이트의 표정 또한 덩달아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
테이칸의 입에서부터, 화이트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 만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12마왕의 일좌(一座)가 움직였어.”
“──.”
12마왕.
그 짧은 한 단어에.
화이트의 표정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악귀의 그것과도 같이 변하기 시작했다.
12마왕이라 함은, 그의 스승인 아셰라─
즉, 흑의 마왕이 포함되어있는 열두 명의 마왕을 뜻하였으니.
그들은 대륙에서 최고로 뛰어나며, 또 최악으로 손꼽히는 열두 명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화이트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스승님을 타락시키고, 폭주시킨.’
……철천지원수라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편히 죽지는 못할 거다.’
그런 살벌한 생각을 속으로 품는 화이트.
그리고, 그런 기색이 겉으로도 드러났을까.
“……화이트?”
“아.”
테이칸이 의아함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제서야 화이트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계속 말씀하세요, 아버지.”
화이트의 말과 동시에 그의 눈꼬리가 유려하게 휘었고.
……그건, 정말이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을 정도의 변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