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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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모나한의 걱정되는 표정에 깍지 낀 손을 살짝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식욕의 노예가 입덧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제가 지금까지 만난 임신한 뱀파이어들 중에 입덧한 이는 아무도 없었고요.”

임신을 핑계로 빵을 요구하는 이들만 오히려 많았지.

실리는 은근슬쩍 물어봤지만, 모틸라는 대놓고 요구하던데.

요구랄까, 애원이랄까.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지.

……그건 빵 냄새가 나기만 해도 그랬던가.

“아무튼 불안하면 실리에게 편지라도 보낼게요. 물어보면 되죠.”

“네. 그게 좋겠어요. 지금 실리 어디 살죠? 제 기억상으로는 왕궁 수도에-”

“여기서 30분 거리요.”

“……네?”

“가끔 와서 선물이라고 말하는 뇌물을 왕창 주면서 제가 만든 빵으로 아공간을 채우고 가죠.”

“…….”

“그러고 보니 실리가 올 때가 됐네요. 오면 물어봐야겠다.”

“……제가 기억 상실에 걸린 걸 알고 있나요?”

“아뇨. 모르죠. 말하면 재미있긴 하겠다.”

“엄청나게 놀림받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임신한 것까지 말하면 난리 나겠네요.”

“혼나기도 할 것 같아요.”

왜 이런 때 기억 상실에 걸렸냐고, 하필 그런 걸 걸리고 다니냐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은데.

모나한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지만, 로나는 키득거리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안 하는 걸 보면, 정말로 뱀파이어가 임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을 바라보다가 깍지 낀 손을 그대로 가져와 배에 올렸다.

로나의 손과 함께 그대로 움직이던 모나한의 손이 배에 닿자 움찔거렸다.

눈동자도 다시 방황하는 게 로나는 그저 웃겼다.

배에 깍지 낀 두 손이 닿고, 작고 빠른 심장 소리가 손을 통해 전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모나한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로나와의 기억이 없는 저는, 아이를 원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는 모든 것을 조심하면서 말했다.

자신이 하는 말에 로나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얼굴로.

“아이는, 아이란 건 그렇잖아요. 절 보고 자랄 텐데, 저에게 많은 걸 배워 갈 텐데.”

“그렇겠죠.”

“제가 누군가에게 존경이 될 만한 삶을 살았냐고 하면,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으니까. 누군가가 저에게서 뭘 배워 가겠다고 하면, 글쎄요. 비웃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아이에게 그럴 수도 없고.

깍지 낀 손이 떨려 와 불안할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모나한 자신이 아니라 로나의 손끝을. 동그랗게 깎은 손톱과 안쪽의 하얀 반달과 보드라운 살과 굳은살까지.

“200년간의 저는 아이를 원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요.”

“……그래요?”

“신혼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던데요? 둘이 있는 게 너무 좋다고.”

“200년간의 저도 확실히 저이긴 한가 봐요.”

“하지만 무서워하진 않았어요.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가끔은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도 나눴고, 불안보다는 기대감이 있었죠.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나한의 불안이 조금이라고 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아.

모틸라와 발터의 아이인 밀터가 자라는 것을 보아서 그럴까?

아니면 실리와 그란의 아이가 있어서?

모나한은 굳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생기면 뭘 하고 싶다든지, 어떤 걸 알려 줘야겠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지.

작고, 도란도란한 목소리로. 조금의 기대감과 조금의 떨림을 담은 목소리로.

“전 지금 매우 당황스럽고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조금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나한이 말했다.

“이해해요.”

로나의 대답에 모나한은 한참을 그녀의 배를 바라보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생각보다 더 무섭고 불안한 일이네요. 제가 조금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게 더 미안하고.”

“그렇겠죠.”

“……하지만 조금은요. 아니, 솔직히 이상할 정도로 많이.”

“기쁜가요?”

“……로나 성격이 급한 편인가요?”

“느긋할 때는 느긋하지만, 급할 때는 아주?”

“지금은 급할 때인가 보죠?”

“네. 진짜 급하니까 그냥 말해요.”

“맞아요. 기뻐요. 아주 많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요.”

모나한이 포기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나는 떨리는 목소리보다 훨씬 낫다는 듯이 장난스레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전 모나한이 기억이 돌아와서 할 반응을 기대하고 있어요.”

“이상한 짓 해야겠어요.”

“오. 더 기대되기 시작했어.”

“예상치도 못한 일을 해야겠어. 당황하는 얼굴을 보고 말 거야.”

모나한은 포기와 오기가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로나는 신난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그 웃음소리에 한숨을 푹 쉬고 최대한 다시 진지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이제 그 말을 얼마나 많이 할지 셀 차례인가요?”

“이럴 수가. 200년간의 저는 이럴 때 무슨 말을 했죠?”

“세다가 지칠 정도로 많이 해 주겠다?”

“흠.”

“몸으로 표현하겠다?”

“혹시 야한 농담도 했나요?”

“오, 아주 잘했죠. 많이 했죠.”

“기대하고 계시는군요.”

“저랑 200년이나 같이 살았더니 처음의 풋풋함이 좀 사라져서.”

“풋풋함이라니. 저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네요.”

“지나고 보니 풋풋한 순간이었던지라.”

“좋아요. 200년간 줄었던 풋풋한 모나한을 맛보게 해 드리죠.”

모나한이 결심한 듯이 하는 말에 로나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에 모나한이 한 번 더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로나를 품에 안고 일어났다.

“우선 침대로 가죠.”

“흠. 야한 이야기인가요?”

“아닌데요. 그냥 자러 갈 거예요. 졸리신다면서요.”

“놀라서 잠이 달아났죠.”

“그래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 거잖아요.”

“그게 싫었어요? 그런 목소리인데?”

“기억 잃고 첫날밤에 같이 잘 때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알아요? 부부라고 하지, 한 침대에서 자자고 하지. 이건 유혹이구나, 나는 기억 상실인데 어떡하지?”

“흠.”

로나는 모나한의 품에 안겨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다리를 동당거렸다.

그 동당거림에 맞춰 몸을 살짝씩 흔들던 모나한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침대에 누웠더니 순식간에 드르렁-.”

“예전의 모나한도 싫어하더라고요. 분위기를 잡고 싶으면 절대로 침대에서부터 시작하면 안 된대요.”

“매우 동감해요. 안도와 함께 이상한 분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분했어요?”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좋고 목소리도 끝내주는 남편이 옆에 누워 있는데, 바로 잠들다니.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죠.”

“그렇죠? 그 매력이 통하고 있죠?”

“그럼요. 매일 두근거리는걸요.”

로나는 ‘옜다! 받아라, 칭찬이다!’라는 느낌으로 말했다. 모나한은 그것도 좋다며 받고 씨익 웃었고.

둘은 어느새 방문 앞에 도착했다. 모나한이 안정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로나를 침대에 내려 주었다.

“진짜 아무 짓도 안 할 거예요?”

로나가 모나한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말했다.

그 말에 모나한이 로나가 침대에 편하게 눕도록 상체를 숙이며 답했다.

“네. 정말로요.”

“흠. 풋풋한 모나한과 즐겨 보고 싶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안 되겠네요.”

“왜요?”

“기억이 돌아온 제가 엄청나게 질투할 거 같으니까.”

“똑같은 모나한인데?”

“그래도 질투할 거예요. 지금도 200년간의 자신에게 좀 질투 나기 시작했는데, 원래의 저는 어떻겠어요.”

질투의 화신일 게 틀림없어.

모나한이 장난 반 진심 반인 목소리로 말했다.

로나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나한의 목에 두른 팔을 당겨 그에게 짧게 입 맞추고 떨어졌다.

모나한이 그 입맞춤에 멈칫하며 몸을 딱딱히 굳혔다가, 그대로 따라가 길게 입술을 맞추고는 떨어지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질투할 게 틀림없어요.”

“어떡해요. 난 입 맞추고 싶은데.”

“주인님이 하시고 싶으면 하셔야죠.”

“모나한은 입 맞추기 싫어요?”

“진심으로 입 맞추고 싶으니까 질투하는 거예요.”

“과거의 자신에게?”

“지금은 과거의 자신을, 분명 나중에는 지금의 저를.”

모나한은 낮은 목소리를 그렇게 말하고는, 한 번 더 입을 길게 맞추었다.

그러고는 매우 아쉽다는 눈으로 떨어지며 말했다.

“씻으러 갈 거예요.”

“흠. 깨끗이 씻고 와요.”

“유혹하지 말아요.”

“그냥 씻고 오라고 한 건데.”

“유혹으로 들렸으니까 유혹이에요.”

“알아요. 제 목소리만 들어도 유혹적이잖아요.”

“과거의 제가 그랬나요?”

“그럼요.”

“와. 진짜로 질투 나네요. 빨리 기억이 돌아오는 게 좋겠어요.”

“난 재미있으니까 좀 천천히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안 돼요.”

로나는 반사적으로 ‘싫어요, 꺼져요’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말장난이 통하지 않을 게 분명해서.

“그렇네요. 일찍 돌아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요.”

“……뭘까요. 정말로 과거의 제가 질투 나네요. 당신이랑 보냈던 시간을 없애 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을 정도로.”

“빨리 씻기나 해요. 머리카락이나 촉촉하게 하고 와요. 잘생긴 얼굴 보면서 즐기게.”

“그게 취향이시라면야, 기꺼이.”

모나한이 반쯤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욕실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로나는 작게 미소 짓고는 배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직도 배에선 작고 빠른 심장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조금은 실감 나지 않아서, 로나는 배에 들리는 소리에 맞춰 손끝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다가 잠들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많은 기대와 조금의 불안이 서성이는 밤이었다.

흔들리는 모나한의 표정도 재미있었고, 기억이 돌아온 모나한의 반응도 정말 기대되었다.

풋풋한 모나한이 즐거운 것도 사실이었고, 200년이 흘러 둘만 알 수 있는 말장난이 가득 쌓인 모나한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었다.

로나는 졸음이 차기 시작하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무엇 때문에 졸린지 이유를 알고 나니 더 졸린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다시 배에서 들려오는 작은 심장 소리에 맞춰 손끝을 두드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머리카락을 촉촉이 한 채 씻고 나온 모나한이 잠든 로나를 보고 작게 한숨 쉬고는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혀 줄 때까지.

몸이 움직이는 느낌에 눈을 뜬 로나가 모나한의 촉촉한 머리카락을 기어코 칭찬하고는 다시 잠들 때까지.

흐릿한 잠결에도 작고 빠르게 울리던 심장 소리에 따라 느리게나마 같이 움직이던 손끝은 같은 이불 안으로 들어온 손이 감싸 잡자 조용히 멈추었다.

잠결에 작은 입맞춤이 이마에 닿는 것을 느꼈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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