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 (148/154)

148

모나한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영웅화가 그려진 화려한 손님 방 천장과는 다르게 이 침실의 천장은 밤하늘의 별을 형상화한 천장이었다.

실제로 금을 썼는지, 아니면 다른 보석을 썼는지, 달빛에 살짝씩 반짝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도롱거리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 잠을 잤다.

진짜로 잠만 잤다.

로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와인 잔에 남은 와인을 전부 마셔 버리더니,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 건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잘 부르다가도 한 번씩 음이 이상해지는 콧노래여서 묘하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소리였다.

그녀는 와인 잔을 책상에 놓아두더니 바로 침대로 다가가 이불 속으로 푹 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빼꼼히 들어 그를 바라보고는 ‘안 오고 뭐 하냐’라는 표정으로 옆 베개를 토닥였다.

로나의 말대로 자신도 이 방에서 수많은 밤을 보냈는지, 로나가 베개를 두드릴 때마다 자신의 냄새가 났다.

모나한은 조금 떨떠름한 마음이 들어 더더욱 미소 짓고는 로나의 손짓대로 침대로 들어갔다.

침대는 편했고, 익숙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잠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목적이 있었고 로나가 한 걸음만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손등이 살짝 스친다든지, 그에게 몸을 기댄다든지, 손가락을 얽혀 온다든지 하는 작은 신호.

얼마 지나지 않아 로나는 이불을 턱까지 푹 덮었고.

모나한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고.

로나는……. 잠들었다.

“……진짜 주무십니까?”

진짜로 잠들었다.

숨소리는 느리고 규칙적으로 변했고 로나의 얼굴은 잠든 사람 특유의 풀어진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모나한은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솔직히 잠들려면 몇 분 정도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잠든다고?

그것도 옆에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끝내주고 매력적인 상대가 있는데?

“로나 님? 정말로 주무시는 거예요?”

아니죠? 아닌 거죠?

모나한은 풀어진 표정을 지나 꿀잠을 자는 표정인 로나의 어깨를 마구 흔들어 깨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부부라면서! 부부라면서!

응접실 소파에 누워서 하던 유혹은 어디 갔어!?

술 한잔 먹이고 맛있는 것까지 먹인 건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는 신호 아니었어!?

쇄골 살짝, 목선 사르륵, 진한 갈색 머리카락의 흔들림.

유혹적으로 맞춰 오던 눈빛과 웃음, 작은 웃음소리 같은 건.

컵을 건네며 살짝 닿았던 손이나, 까닥이던 하얀 발가락.

걸어가며 슬쩍 보이는 발목이나 살짝씩 보이던 동그란 귀.

잔을 흔들던 손목과 술을 마시며 보여 주던 목선 같은 건.

“유혹이잖아요……!”

그게 전부 그냥 행동한 거였다고? 날 유혹한 게 아니었다고?

그냥 진짜로 익숙하지 않아 잠이 안 오니까, 날 방에 데려와서 잔 거라고?

“설마 그냥 내 시선이……?”

내 시선에 그렇게 보였을 뿐인가?

로나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나에겐 유혹적으로 보였던 건가?

모나한은 순간 자신이 매우 꼼꼼하고 주의 깊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그냥 잠옷이었고, 사실은 그냥 술을 마시는 모습이었을 뿐인데.

사실은 그냥 걸어가는 발걸음이고, 사실은 그냥 날 보며 웃는 것뿐이었는데.

자신은 그 모든 걸 세세하고 진득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로나가 그 시선을 매우 익숙하게 받아 냈다는 것을.

그는 로나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작은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무런 유혹도 아니었는데, 혼자 넘어가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친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웅크리고는 작게 낑낑댔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도 좀 차고, 아니면 방 밖에 나가서 좀 달리거나, 부끄러움을 달래며 혼자 자고 싶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옆에 있는 로나를 깨우고 싶지도 않았고, 옆을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뱀파이어로 살게 되면서 과거를 딱히 기억하려 하지도, 돌아보려 하지도 않던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너무나 잃어버린 200년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옆에서 바로 잠들어 버린 로나가 조금 야속했고.

……조금 많이 분했다.

* * *

모나한은 분한 마음을 느끼며 천장의 별을 세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예민한 청각이 새벽의 새소리를 듣고 잠이 든 머리를 천천히 깨웠다.

아직 반쯤은 수면 상태라 비몽사몽 중인 모나한은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들이쉬었다.

잠결에 옆으로 돌아누웠는지, 한쪽 볼에 폭신한 베개가 느껴졌다.

그리고 품에 안긴, 자신의 체온에 비해 따뜻한 무언가도.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온도와 높이를 가진 무언가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촉감에 달콤한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모나한의 후각은 제일 먼저 피비린내를 맡았지만, 그 피비린내에 익숙해지면 맡아지는 냄새가 있었다.

밀가루가 구워져서 부풀 때 나는 고소함.

설탕과 버터가 섞여 녹아내리는 달콤함.

크림치즈 특유의 향도 살짝, 설탕에 졸인 과일들의 냄새도 약간.

달콤하면서도 살짝 씁쓸한 초콜릿의 향과 고소한 우유 냄새도 함께.

그 냄새들은 모두 적절히 어우러져 마치 완벽하게 구워진 빵을 오븐에서 막 꺼낼 때의 냄새 같았다.

따끈한 열기와 함께 느껴지는, 그저 맡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모나한은 그 냄새를 맡으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굽이치고 있는 진한 갈색 머리카락과 새하얗다 못해 살짝 창백한 목덜미.

동그란 어깨선이 숨 쉬는 것에 따라 살짝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들리는 것은 창밖의 새소리와 아침을 맞은 풀벌레의 울음소리.

이슬이 몇 방울 아래로 떨어져 흙으로 스며드는 소리와 자신의 품에 안긴 이의 규칙적인 숨소리.

“……헉!”

모나한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분명히 어젯밤 정자세로 천장의 별을 새며 잠들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옆에 누운 로나를 품에 안은 채 자고 있었다.

그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려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가, 셔츠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자신도 모르게 셔츠 앞섬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방금까지 자신이 안고 있던 로나의 체온이 분명했다.

로나 또한 등을 데워 주던 체온이 갑자기 사라진 게 느껴졌는지, 동그란 어깨를 부르르 떨더니 한 손을 뻗어 더듬더듬 이불을 찾았다.

딱딱히 굳어 있던 모나한은 그 손짓에 반사적으로 자신이 빠져나오느라 내려간 이불을 덮어 주었다.

로나가 그 이불을 꼭 쥐고는 살짝 움찔거리더니 천장을 보고 돌아 누운 자세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왠지 차가워진 셔츠 앞섬이 아쉬워 다시 조금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로나가 미간을 움츠리며 꼼지락거리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했다.

이불을 덮어 줬는데도 불편해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품에 안고 토닥이기라도 해야 하나?

아, 창문 밖에 새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는 건가?

가서 새라도 쫓아내고 와?

그러나 모나한이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로나가 눈을 떴다.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눈을 느리게 몇 번 깜박이더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잠결에 눌렸던 진한 갈색 머리가 이상한 모양새로 붕 떠 있다가, 뱀파이어의 신비함으로 인해 마법처럼 가라앉아 예쁜 모양으로 찰랑거렸다.

로나는 그런 머리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옆머리를 몇 번 긁적이다가 느린 속도로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나한은 그 모습을 욕실 문이 닫혀 ‘탁!’ 소리가 날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이 옆에 있든지 없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모습으로 욕실로 사라져 버린 로나.

그에 반해 자신의 몸은 이 모든 걸 익숙해했지만, 기억상으로는 너무나도 어색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반응을 못 하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침대에 굳어 있다가, 슬그머니 내려와 방 안을 잠깐 방황했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이 담긴 주전자와 유리컵을 보고, 반사적으로 물을 따라 마셨다.

한 잔으로는 부족해 두 잔째 마실 때 즈음, 모나한의 등 뒤에서 다시 ‘탁!’ 하고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나한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엔 총명해진 로나가 서 있었다.

“잘 잤어요, 모나한?”

“……그럭저럭요.”

“그래요? 전 완전 잘 잤는데. 역시 옆에 있던 사람이 그대로 있으니까 잠이 솔솔 오더라고요.”

“아주 잘 주무시던데요. 베개에 눕자마자 잠드시던데.”

“원래 그래요. 빠르게 잠들어요.”

로나는 원래 그렇다고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와 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그녀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물을 마시는 건데, 모나한은 자신의 시선이 어젯밤과 같이 반사적으로 그녀를 따라간다는 것을 느꼈다.

유리잔에 뭉개진 입술이라든지, 물을 마시기 위해 살짝 들린 턱선이나, 목 넘김으로 인해 움직이는 목선 같은 거.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본다면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로나는 그런 시선이 매우 익숙한지 망설임 없이 물 한 잔을 비우더니 모나한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해요? 안 씻을 거예요?”

“……씻으러 가겠습니다.”

“제 머리 땋을- 아, 기억 상실이었지.”

로나는 모나한이 아침마다 제 머리카락을 땋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것을 기억하고 반사적으로 말했다가, 기억 상실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말을 돌렸다.

“음, 먼저 준비를 마치면 부엌에서 아침 만들고 있을게요. 익숙하지 않은 게 많을 거니까 천천히 해요.”

로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하고는 화장대에 앉아 기초화장을 시작했다.

모나한은 그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 거울을 통해 마주친 선홍색 눈동자에 의문이 섞이자 고개를 꾸벅이고는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거울을 통해 지켜보던 로나가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고는 화장을 마저 이어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