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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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한은 로나가 안내해 준 손님방의 문을 열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방은 저택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좀 더 화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나한은 그 화려함에 이상하게도 어색함을 느껴졌다.

이것보다는 직접 만든 것 같은 마감이 어색한 가구가 있던 방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여기저기 놓여 있던 방이 더 익숙했다.

그러나 그 익숙함도 잠시, 어두운 과거도 화려한 과거도 가지고 있는 그는 잠들 곳을 가리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모나한은 망설임 없이 정돈된 침대의 이불 위에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있는 화려한 무늬를 눈만 깜박이며 보기를 한참.

로나의 말대로 밤에 잠드는 습관을 들였는지, 눈꺼풀이 점차 무거워졌다.

모나한은 오늘 하루 로나의 옆에 있었던 모든 일이 너무나도 익숙해 오히려 어색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잠들지 못했다.

몸은 나른하고 눈에는 한껏 졸음이. 눈꺼풀은 무거웠고, 생각은 드문드문 끊겼다.

분명히 잠들기 직전의 상태임이 분명한데도, 잠깐 잠이 들더라도 깜짝깜짝 놀라며 일어나 버리곤 했다.

그는 정자세로 누워 있던 몸을 몇 번 뒤척였다.

이불을 덮지 않아서 그런가 해, 이불도 덮어 보고. 잠들지 못하는 자신의 몸에 이상함을 느끼며 손을 쥐었다 펴기도 몇 번, 몸에 긴장을 풀려 숨을 크게 몰아쉬어 보기도 몇 번.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는 원할 때 잠들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꼭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 뒷골목이나 실험실에서 겪었던 졸린데도 불안해 차마 잠들지 못하는 밤을 다시 겪는 것 같았다.

“……이게 불면증이라는 건가?”

모나한은 그나마 가장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은 자세를 한 채로 중얼거렸다.

이불을 덮는 게 아니라 둘둘 말아 품에 안은 자세.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이 이상한 자세가 가장 긴장이 풀어졌다.

그러나 몸은 그 자세 또한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이 알 수 없는 걸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앞머리를 거세게 털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뱀파이어라 며칠 밤을 새우더라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지 않나.

잠과 싸울 바에는 그냥 일어나 버릴 생각이었다.

모나한은 짜증이 서린 표정으로 방을 몇 바퀴 돌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방문 밖을 바라보았다.

복도에서 들린 누군가의 가벼운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저택의 시종들은 전부 다른 층에서 잠들어 있었으므로, 모나한은 그 발소리가 누구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망설이다가 방문을 열고 발소리의 주인이 간 곳으로 향했다.

* * *

로나는 부엌에서 따뜻한 우유에 꿀을 막 집어넣다가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모나한이 어색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는 로나와 눈을 마주치자 살짝 미소 지었다.

로나도 그 웃음에 화답하듯 살짝 웃어 주고는 따뜻한 머그잔을 든 채로 완전히 뒤돌았다.

그녀는 조리대에 등을 기댄 채 꿀이 든 숟가락을 우유에 천천히 휘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잠이 안 오던가요?”

“……졸리긴 했지만 잠들 수는 없었죠.”

“저랑 마찬가지네요. 졸리긴 했는데, 겨우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더라고요.”

로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들고 있던 머그잔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꿀 넣은 우유 어때요?”

“……감사합니다.”

중간에 잠이 깨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둘은 언제나 같이 부엌으로 내려와 따뜻한 꿀 우유 한 잔을 마시곤 했다.

로나는 평소 그러던 버릇대로 한잔 더 만들어 버린 따뜻한 우유를 건넸다.

둘은 아무 대화 없이 조용히 우유를 마셨다.

로나는 모나한이 아무 말 없이 다 마신 머그잔을 탁자 위에 올려 두는 것을 바라보다가 손안의 컵을 빙빙 돌렸다.

한 모금 남은 우유와 채 섞이지 않고 가라앉아 있던 꿀이 작게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섞여 나갔다.

마지막의 한 모금을 마시고 컵의 바닥을 보았는데도 로나는 이상하게 방으로 돌아갈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모나한도 마찬가지인 건지 식탁 위에 올린 손끝을 한 번씩 문지를 뿐 그대로 부엌에 서 있었다.

“술 한잔할까요?”

“술요?”

“저번에 그란이 보내 준 좋은 와인이 있거든요. 우리 둘 다 술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구석에 박아 두었지만요. 이럴 때야말로 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럴 때가 어떤 때일까요?”

“잠들 수 없고, 왠지 외로운 밤?”

로나가 장난을 담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모나한도 동감한 건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평소 이런 말을 하면 느끼한 대답이 오갔던 로나는 모나한의 진지해 보이는 끄덕임에 살짝 뻘쭘함을 느끼고 작게 헛기침했다.

그러고는 찬장에 올려 두었던 와인을 몇 병 꺼냈다.

모나한이 도와주려는 듯 손을 내밀자, 로나는 모나한에게 와인 몇 병을 건네고 그녀는 와인 잔을 든 채로 부엌 옆의 조그만 응접실로 들어갔다.

와인이 특유의 달콤한 향기를 내며, 유리잔 안으로 흘러내렸다.

로나는 모나한이 와인을 따르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그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어디서 이상한 교육을 받거나, 이상한 직업을 가졌었다더니 와인 따르는 게 무슨 전문 바텐더 같았다.

가끔 술을 마실 때마다 보는 모습이긴 하지만 언제나 신기해 눈을 반짝이며 보곤 했지.

로나는 기억이 사라져도 결국 모나한이라고 생각하며 와인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술을 싫어하는 그녀를 배려한 그란 덕분일까?

와인은 상당히 달콤한 맛이 났다.

단맛에 기분이 좋아진 로나가 작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와인 한 잔을 빠르게 비우고는 허공에 손을 휘저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의 온갖 안줏거리를 탁자 위에 꺼냈다.

“……아공간에 맛있는 걸 많이 넣어 놓고 다니시네요.”

“술 마실 때 안주 직접 만들면 귀찮잖아요. 미리 만들어 놓는 거죠.”

이런 한입짜리 음식들은 심심할 때 하나씩 꺼내 먹기도 좋고요.

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모나한이 가장 좋아했던 달콤한 과일이 올라간 치즈타르트류를 건네주었다.

블루베리 치즈케이크가 그에게 뜻깊은 음식이 되어서인가? 그는 그 이후에도 달콤한 크림치즈가 들어간 음식들을 가장 좋아하곤 했다.

그리고 그건 기억을 잃어버린 모나한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나한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타르트를 한입 먹었다가, 이내 한 손에 든 잔은 내려놔 버리고 타르트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로나가 그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자, 웃음소리를 들은 모나한이 멋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입에 들어가는 타르트는 그대로였다.

“좋아하더라고요. 치즈타르트.”

“음, 정말 맛있네요.”

모나한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로나는 한번 크게 웃고는 와인 잔을 든 채로 소파 위에 몸을 눕혔다.

졸렸던 몸에 알코올까지 들어가니 눕고 싶어진 것이다.

모나한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

방금까지는 혼자 있는 방이, 혼자 누운 침대가 어색했던 거고.

지금은 같이 있으니 다시 긴장이 풀려 잠들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로나는 머리만 대면 잠드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손으로 옆머리를 괸 채 요령 좋게 술을 홀짝였다.

모나한이 그 모습을 보다가 옆에 있던 담요를 들어 로나의 다리를 가려 주었다.

입고 있던 잠옷이 소파에 누우면서 올라간 모양이었다.

로나는 그 담요를 한번,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는 모나한을 한번 바라보고는 담요 끝에 튀어나온 발끝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방에서 같이 잘래요?”

“예?”

“매일 같이 자던 사람이 사라지니까 어색해서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기억도 못 하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고, 그냥 잠만 같이요. 어때요?”

로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싫다면 얼마든지 거절해도 좋다는 제스처였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그린 듯이 웃음 지었다.

눈가를 휘고 입가는 올리고 선홍색 눈동자를 살짝 반짝이면서.

잘생긴 얼굴과 알코올, 따듯한 조명과 함께한 유혹적인 웃음이었으나 로나는 모나한의 진짜 웃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로 ‘그린 듯한’ 거짓인 것을 눈치챘다.

또 어딘가 이상한 생각이나 하는 모양이지.

처음 만났을 때 하던 음흉한 생각이나, ‘인간은 원래 그래’ 같은 어두운 생각.

로나는 와인 잔을 한 바퀴 돌리며 모나한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붉은 와인을 홀짝이며 가벼운 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따라오는 모나한의 발소리에 얕은 웃음이 흘렀다.

* * *

로나의 말대로 모나한은 로나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할 때부터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목에 달고 있는 주종 계약.

뇌에 폭죽이 터진 것같이 미뢰를 자극하다 못해 취향의 정중앙을 가격하는 빵들.

그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녀에게 잘 보이는 걸 넘어 유혹할 이유는 충분했다.

과거의 자신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당연했을 테고 말이다.

아마 유혹하다 못해 완전히 잡아먹어 온 삶은 지배 중일 게 분명했다.

주종 관계? 그런 건 사랑에 빠지거나 욕망에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지금도 봐라. 자신이 조금이라도 입꼬리를 올리면 눈앞의 여자는 따라서 웃고 만다.

경계심도 없이 올라간 잠옷 치마를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편하도록 풀어놓은 단추 덕분에 목덜미와 쇄골을 다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담요로 로나의 다리를 덮어 주고는 담요 아래 까닥이는 로나의 발끝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경계심이 없는 게 아니라 유혹일지도 모르겠다고.

낮과는 다르게 풀어헤친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나 붉은 와인을 마시며 혀로 입술을 핥는 모습이, 자신의 표정을 빤히 보면서 한 번씩 흘리는 눈웃음이.

졸린 듯 나른하게 깜박이는 눈과 느릿하게 훑어 내리는 시선이.

동족의 피 냄새는 역겹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나는 피비린내는 꽤 마음이 동했으므로.

모나한은 그녀가 유혹한다면 넘어갈 의향이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것과 같게, 로나는 붉은 입술을 열어 조심히 속삭였다.

“방에서 같이 잘래요?”

“예?”

“매일 같이 자던 사람이 사라지니까 어색해서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기억도 못 하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고, 그냥 잠만 같이요. 어때요?”

그냥 잠만 잔다는 말이 참 빤히 보이는 변명이라고 생각하며, 모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맘에 든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고 먼저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뒤따라갔다.

원래 곱슬머리인 건지, 아니면 하루종일 땋고 있었기에 곱슬거리는 건지.

진한 갈색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고, 손에 들고 있는 와인을 마시는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맨발로 방을 나왔던 건지 복도의 카펫 위를 걷는 발이 새하얗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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