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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때문에 결혼했나 본데? 먹을 걸 잘 주는 사람이었나 봐.
모나한은 로나가 건네준 치즈 쿠키를 우물우물 씹어 먹으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딱 하나씩만 손바닥으로 넘겨주는 쿠키가 감질나기 그지없는데, 또 먹고 싶어서 자동으로 손이 내밀어졌다.
분명히 욕실에 나오기 전에 욕실 문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표정을 다듬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쿠키가 참 맛있었다.
욕실을 나가자마자 눈썹 끝을 내리며 동정심을 사는 표정을 만들면서도 입꼬리를 살짝 올려서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믿어 보겠어요’라는 표정을 했는데, 갑자기 눈앞에 하얀 손이 쑥 밀어지더니 노란 치즈 쿠키를 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려던 말은 그 쿠키에서 맡아지는 향기에 쏙 들어갔고, 그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고 쿠키를 받아먹었다.
입 안에서 부서지는 치즈 쿠키의 맛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카망베르 치즈 쿠키인 것 같았는데, 향도 끝내 줬지만, 맛은 더 끝내줬다.
입 안에서 바사삭 부서지는 식감은 적당했고,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버터의 향은 황홀했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재료를 사용한 건지 온갖 음식을 맛본 혀가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먹어도 먹어도 손이 가는 환상적인 맛.
“쿠키가 참 맛있네요. 어디서 사신 건가요?”
“제가 만든 건데요.”
“……로나 씨, 아니지. 로나 님이요?”
와. 호칭이 격상했어. 역시 식욕의 노예라니까.
로나는 모나한의 호칭에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삼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빵사라고 했잖아요. 쿠키는 기본이죠.”
“기본요? 그럼 다른 것도…….”
“네. 뭐. 케이크라든지, 식사용 빵도 있고…….”
“혹시 저도 맛볼 수 있는 건가요?”
“음, 아공간 한번 열어 보시겠어요.”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급하게 아공간을 열었다가 입을 쩍 벌렸다.
아공간에 있던 잡동사니나 모았던 서적, 보석 같은 것들은 전부 사라지고 무기 몇 개와 비상용 물품, 보석 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전부 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빵이 가득하네요.”
“황홀하죠?”
“이게 전부 로나 님이 만든 건가요?”
“네. 전부 제가 만든 빵이에요.”
“전부 이 쿠키처럼 끝내주는 맛이겠죠.”
“당연히 그렇겠죠?”
“황홀하다 못해 기절할 것 같네요.”
“케이크도 먹을래요? 마침 모나한이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치즈케이크가 제 아공간에…….”
“감사합니다.”
로나는 빠르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까지 숙이는 모나한에게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넘겨주었다.
그는 마치 그 케이크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즈케이크를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긴장과 떨림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입 떠먹었다.
그러고는 승천할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아니, 진짜로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이야.
취향의 정 한가운데를 스트레이크로 맞아서 영혼이 가출한 표정이었다.
신성력 쓰면 ‘파아아아아-’ 하면서 정화될 것 같아.
원래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200년 동안 굳어진 취향이 폭발했나 보네.
로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런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제 빵을 처음 먹은 키메라들의 표정이 거의 저랬으니까.
스킬 레벨이 높아서 그런가? 로모나 빵을 즐겨 먹던 사람들도 자신이 만든 걸 먹고 나서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소리치곤 했다.
스킬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서 더 맛있어진 치즈케이크에 적응한 모나한도 아니고, 2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내성이 없는 모나한이 먹었는데 승천 좀 할 수 있지.
로나는 저대로 둘까, 아니면 흔들어서라도 영혼을 다시 불러올까 고민하다가 모나한의 어깨를 손끝으로 톡 쳤다.
“헉!”
“괜찮아요?”
“……혹시 여기 무슨 마법이나, 약이라도 들어 있나요?”
환각을 본 것 같은데.
블루베리와 치즈, 새하얀 우유와 통밀쿠키가 손을 잡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던데.
“그냥 제 실력이 좋은 거예요.”
“……결혼해 주세요.”
“네?”
“아, 아니지. 결혼을 이미 했다고 했죠? 저희가 부부라고 했죠?”
“음, 네.”
“과거의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정말 최고의 결혼을 한 것 같아요.”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하나에 의심과 불신을 모두 던져 버리고, 온갖 아양과 유혹, 그리고 조금의 순종을 보여 마음을 동하게 하는 사내가 나타났다.
흠, 처음 블루베리 케이크를 사 가고 다음 날의 모나한 같군.
이슬 맞아 진했던 회색 머리카락과 지금 물에 젖어 진한 회색 머리카락까지 아주 똑같아.
쯧, 다시 달달 느끼한 모나한으로 돌아왔잖아.
의심으로 새콤한 느낌을, 불신으로 매콤한 느낌을 내면서 가면으로 나를 속이려 하고 그걸 내가 전부 알아차리는 그런 전개는 이제 없는 건가!
후회남 모나한을 볼 수는 없는 걸까!
나도 한 번쯤은 후회 남주를 하기 위해 스스로 무덤을 파는 모나한을 보고 싶은데!
“음, 그럼 우리 사이에 대해 궁금한 점은 없는 건가요?”
“아……. 혹시 이건 왜 있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모나한이 목의 계약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나한이 제 빵에 반해서 종속이 되겠다고 했어요.”
“아하. 과거에 전 매우 현명했나 보군요.”
이렇게 바로 납득한단 말이야!?
오히려 당황한 로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모나한의 표정을 살폈지만, 모나한은 진심이었는지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그대로 로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로나는 결국 떨떠름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야 했다.
“……그러다가 연애를 해서 결혼까지 했고요.”
“빵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훌륭하셨나 보네요. 제가 푹 빠질 정도로요.”
“왜 푹 빠졌다고 생각하는데요?”
“방금 거울을 보는데, 제 웃는 얼굴이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거든요. 절 그렇게 만든 건 로나 님이시겠죠?”
“아, 예.”
젠장! 진짜로 새콤 매콤한 모나한이 없어졌잖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게 꽤 짜릿했는데!
나중에 후회하면서 매달리는 모나한을 볼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저 혹시 괜찮다면 아공간에 있는 빵을 더 먹어도 될까요?”
“제 아공간에 있는 거요?”
“아뇨, 아뇨. 그 정도로 염치없진 않아요. 제 아공간에 있는 걸 먹고 싶어서요.”
“그건 제가 모나한에게 준 거니까 얼마든지 마음대로 먹어도 돼요.”
“오, 이럴 수가. 마음도 넓으시군요. 자비로우세요.”
“……음, 네. 제가 좀.”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저자세인데?
평소에는 빈틈을 노리기 위해 웅크려 있다가 한 번씩 톡톡 주접을 떠는 모나한이라면, 이 모나한은 빵을 위해서라도 넙죽 엎드리는 모나한인데?
……그건 원래부터 그랬던가.
“그럼 뭐, 이제 궁금한 점은 없는 거죠?”
“참된 종의 자세란 궁금한 점도 알아서 눈치 빠르게 알아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나 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뭐, 날도 늦었는데 자러 갈까요? 밖이 벌써 깜깜해졌네요.”
“……뱀파이어는 야행성인데요.”
“저는 밤에 자서요. 모나한도 저와 같이 살면서 밤에 잤죠.”
“……절 정말 많이 바꾸셨나 보네요.”
모나한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로나는 그 안에 섞인 어색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뀐 것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의 모습은 매우 익숙한 것이라 로나는 모나한을 배려하기로 했다.
“저희가 같이 지금 이 방에서 잤거든요. 보다시피 침대가 하나뿐이고요.”
“부부니까 당연한 거죠.”
모나한은 조금의 어색함을 언제 드러냈냐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그리하겠다는 순종적인 표정과 함께였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모나한은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뱀파이어는 적응력이 상당히 뛰어난 종족이죠. 아시다시피 인간들 사이에 빠르게 섞여들곤 한답니다. 로나 님은 당연히 평소처럼 저랑 한 침대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불편한 건 아무것도 없게 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속눈썹을 살짝 내리면서,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면서.
부드럽고, 순종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조금은 야한 표정.
로나가 꽤 많이 보아 왔던 표정임에도, 그리고 꽤 좋아하는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쾌감을 느꼈다.
아마 저 표정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어서겠지.
진심으로 지었을 때의 표정을 알고 있어서 거짓이 빛바래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로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당연할 리가 없죠. 저기 방문으로 나가서 오른쪽 복도에 문 세 개를 지나면 손님 방이에요.”
“네?”
“거기서 자라고요. 잘 정리되어 있으니까 불편하지는 않을 거예요.”
“……전 괜찮습니다만.”
“제가 안 괜찮아요. 자요, 이거 줄 테니까.”
모나한은 방문 열쇠라도 주는가 하여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로나가 건넨 것은 딸기잼이 가득 들어간 페이스트리 파이였다.
“그거 먹고 자요. 오늘 모나한 주려고 만들어 놨던 간식이에요.”
“……감사합니다.”
먹을 것에 넘어갈 줄 아냐며 거절하기에는 너무 맛있는 향기가 났다.
모나한은 홀린 듯이 빵을 바라보며 로나의 명령을 따랐다.
로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 지었다.
저런 점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조금 안심되었기 때문이다.
로나는 자신이 안심했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손으로 누르듯이 문지르다가 한숨 쉬었다.
생각보다 모나한이 기억 상실에 걸려 차갑게 대한 게 상처가 되었나 보다.
좀 웃기기도 했지만, 빵을 먹기도 전에 가 버릴까 봐.
그럴 리 없겠지만, 빵을 먹고도 가 버릴까 봐 불안했다.
계약진 때문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려도 위치를 알 수 있었겠지만, 모나한이 떠났다는 것 자체로 큰 상처가 될 테니까.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기억 상실의 저주가 풀리고 돌아온 모나한이 할 표정도 보고 싶지 않았고.
후회남 모나한, 새콤 매콤한 모나한을 좀 더 보고 싶었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설탕과 버터를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은 모나한이었으니.
“적당히 새콤 매콤한 게 좋지. 너무 매운맛은 힘들어.”
한국인은 그냥 매운맛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맛있게 매운맛을 좋아하거든.
로나는 정말 오랜만에 혼자 있는 침실에서 잠옷을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침대를 만끽하며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어 보기도 하고 이불을 온몸으로 돌돌 감아 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드는 밤이 얼마 만인지.
그녀는 만족해하며 혼자만의 밤을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