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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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으면서도 문밖에 있는 로나의 행동만 신경 쓰던 모나한은 마침내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잠그고 샤워실 밖으로 나왔다.

혹시 자신과 떨어졌을 때 무슨 짓을 할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로나는 방의 소파에 앉아 알 수 없는 주머니 같은 것을 허공에 던졌다 받기만 반복했다.

그는 물에 젖어 평소보다 진해진 회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앞머리에서 물 한 방울이 창백한 볼 위로 툭 떨어져 느리게 흘러내렸다.

그는 부드러운 수건으로 물방울을 닦고는 젖은 회색 머리카락을 느리게 털었다.

200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이 생각하기에 로나라는 여자는 전혀 자신의 타입이 아니었다.

오래 산 만큼 타입이라고 할 수 없이 필요에 따라 이것저것하곤 했지만, 적어도 하나는 같았다.

화려함.

화려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온갖 전등과 양초.

값을 매기기 힘든 보석들과 장식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끊이지 않는 가식적인 웃음소리와 돌아가는 치맛자락, 춤추는 구두들과 욕망에 절어 미끌거리는 혓바닥.

자신은 언제나 그런 것들 속에 머물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덧붙일 수는 있었다.

과거 불행했던 순간의 반동이라든가, 이왕이면 비싼 것들 사이에 있고 싶다거나.

어차피 끊어질 인연이라면 가벼운 게 좋다든가 하는 것들.

그러나 언제나 가장 큰 이유는 빌어먹을 식욕 때문이었다.

식욕은 인간의 커다란 욕구 중 하나라, 돈이 많은 곳에는 맛있는 음식이.

황금이 많은 곳에는 훌륭한 와인이.

권력이 높은 곳에는 온갖 희귀한 재료와 요리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키메라들이 결국에는 식욕에 무릎 꿇고 패배해 화려한 곳에 파리들처럼 꼬여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로나라는 여자는 딱 봐도 화려함이랑은 멀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에 꼼꼼한 마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이었고, 양쪽으로 꼼꼼히 땋아 내린 갈색 머리카락엔 간단한 머리끈 말고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귀걸이나 목걸이, 브로치 같은 액세서리도 없이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 하나.

자신도 같은 보석 색만 다른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결혼반지인 모양이고.

그 반지조차 화려하기는커녕 단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외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뱀파이어가 돼서 아름다워진 것과 퇴폐적인 분위기를 띤 것을 지우면 똑 부러지고 야무져 보이는 모습의 여성일 게 분명했다.

똑 부러진다는 말이나, 야무져 보인다는 문장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홍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그녀와 결혼했다는 말 같은 건 조금도 믿지 못하고 그냥 떠나갔으리라.

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국 수도의 가장 비싼 곳, 정원과 작은 숲, 5층짜리는 되어 보이는 저택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아주 적어 보였다.

게다가 장식된 그림이나 천, 화분과 장식 같은 것들도 전부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것에 가까웠다.

마감이 어색한 것들을 보아하니 직접 만든 가구들도 많아 보였다.

정원은 또 어떻고?

보통 귀족들의 화려하다 못해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가꾸는 것과는 달리 작은 꽃들이나 과일나무, 허브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시종의 숫자조차 적었지.

지금도 반쯤은 자신과 연관된 게 아니라 모틸라와 연관된 이가 아닐까 의심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아무에게도 제 피를 나눠 주지 않았으니까.

모틸라야 여기저기 맘에 드는 이들에게라면 아무렇게나 피를 나눠 줘 버리곤 했지만, 그걸 한심하게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꼭 모틸라와는 반대로 행동하게 되는 버릇 때문일까.

자신은 피를 나눠 줘도 될 것 같은 이를 만나도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그냥 포기하곤 했다.

그런 자신이 화려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이 될 것도 같지 않은 이와 결혼까지 했다고?

모나한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택에 오기 전 창밖으로 보았던 거리나 사람들의 옷차림, 물건 같은 것을 보면 200년이나 흘렀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였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나, 호칭을 들어 보면 로나라는 여자와 자신이 부부관계라고 주위에 알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우선은 상황 파악을 위해서라도 이 저택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모나한은 정신이 없어 자신이 가진 의심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후회하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그린 듯한 웃음을 지었다.

성직자같이 신실하고 순수하며, 믿음직하면서도 묘하게 퇴폐미가 있는 표정.

자신의 생김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는 그가 호감과 믿음을 사기 위해 수없이 지었던 웃음.

그러다가 모나한은 제 웃는 얼굴이 이상해 볼을 매만졌다.

여전히 성직자 같은 표정이었지만, 묘하게 무언가 달랐다.

살짝 풀려 있는 것 같은, 약간 헤벌쭉한 것 같은…….

뭔가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왜 표정이 이상하지?”

속마음을 감추는 완벽한 표정은 어디 가고, 좋아하는 게 다 드러나는 이상한 표정이 거울 속에 있었다.

수없이 만들어 완벽했던 가면이 사라지고, 진실만이 온전히 드러나 있었다.

꼭 수없이 지어서 근육이 그대로 만들어져 버린 것 같은 모양새.

모나한은 자신의 모든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버리는 것 같아 약간의 부끄러움과 심각함을 느끼면서 얼굴 근육을 만지작거렸다.

볼에서부터 시작한 손은 얼굴을 거쳐 목까지 뻗어 갔다.

그리고 목에 모나한의 손끝이 닿았을 때, 진한 붉은빛이 일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음산함에 가까운 빛은 모나한뿐만 아니라, 온 욕실을 붉게 물들였다.

모나한은 그 음산한 빛에 온통 물들어 있는 거울 속 자신을 딱딱히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 붉은빛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생각은 순식간에 안 좋은 쪽으로 기울었다.

* * *

치즈 쿠키가 든 주머니를 허공에 던졌다 받던 로나는 갑자기 손끝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손장난을 멈췄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진동을 느낀 손끝을 문지르다가 의아함이 가득 실린 표정을 지었다.

이 진동이 무슨 의미인 줄은 잘 알고 있었다.

모나한이 자신의 목을 만져 계약진을 발동시켰을 때 오는 반응이었다.

원래는 주종 관계를 위한 계약진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위치 알림기로 사용되고 있는지 오래였다.

사실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어서, 실제로 사용한 일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진동이 울릴 때까지 이런 게 있었다는 걸 잊어버려, 이게 무슨 의미였는지 생각해 내는 데 몇 초 걸릴 정도였다.

로나가 이제 필요 없지 않냐고, 풀어 버리자고 할 때 모나한이 한껏 웃으며 ‘제가 당신 것이라는 증거잖아요’라면서 놔두었었지.

명령을 어기거나 강제로 풀어 버리려고 할 때 생기는 고통도 없애 버린 지 오래였다.

로나는 ‘욕실에 있으면서 갑자기 위치를 왜 알려 주는 거지?’라고 고민했다가 무언가 깨닫고는 소파에 기대어 있던 허리를 세웠다.

기억 상실에 걸린 모나한은 계약진이 위치 알림기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걸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욕실에서 씻다가 계약진을 발견한 거겠지.

이제 욕실에서 나오는 모나한의 표정이 엄청나게 싸늘하거나, 아니면 감정을 숨긴 채 순종적으로 웃는 낯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제 감정을 건들기 위해 불쌍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고, 오히려 아주 유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둘 다이거나.

로나는 안 그래도 의심 가득했던 그가 이젠 불신까지 가득하겠다고 생각해 땋은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며 욕실 문으로 다가갔다.

의자에 앉히고 나서 쿠키를 먹일 생각이었는데, 나오자마자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로나의 생각대로 계약진을 발견한 모나한은 머릿속으로 온갖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전에 자신과 계약했던 이가 얼마나 끔찍하고 역겨웠는지, 그는 그 이후 다시는 계약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충분했고, 그자와 했던 일을 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잠을 자야 했는지.

그런 자신이 계약으로 묶여 있다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맡아지는 냄새는 분명 피비린내였는데.

마법이나 주술 같은 것으로 정체를 숨겼을 확률은.

이 기억 상실이 그녀의 술수일 가능성은.

모나한은 붉은빛을 가라앉히며, 차가워진 자신의 표정을 보며 온갖 가능성을 떠올렸다.

마녀, 마족? 아니면 반대로 신전?

선홍색 눈조차 마법으로 만든 건가? 그렇다면 모틸라가 엮여 있을 가능성이.

우리와 다른 무리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나? 선홍색 눈동자를 가진 다른 키메라가 있을 수도 있지.

실리의 이름을 꺼낸 것으로 봐서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고.

모나한은 제 머리로 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단정하게 소매를 채우고, 유혹적으로 보이도록 셔츠 단추를 살짝 풀고, 머리카락을 촉촉해 보일 정도로만 말렸다.

눈을 살짝 문질러 눈가를 붉게 만들고 연습 삼아 눈썹을 축 늘어트려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필요하다면 동정심을 사서라도 정보를 얻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것까지 전부, 이왕이면 이 계약진을 지워 버릴 수 있을 때까지.

감정을 흔들고 욕구와 욕망을 일으키고 결국엔 자신에게 빠진 이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잘하는 짓이었으니.

거짓된 가면을 쓴 채로 행동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며, 잘하는 짓이었다.

자신이 정말로 저 여자와 결혼한 건지.

결혼했다면 도대체 이유가 뭔지도 자신이 원한다면 손쉽게 알 수 있으리라.

온갖 난잡한 것들을 그러잡아, 마침내 삼켜 버리는 짓거리는 뱀파이어라는 종족에겐 아주 쉬운 일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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