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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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한은 거기 가만히 기다리라는 듯이 손짓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와 로나와 리앙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섰다.

“누가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다른 남자랑 이야기하래요?”

“오래간만에 새로운 남자를 좀 만나고 있었죠.”

“오, 저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는 없을 거라 자신할 수 있는데.”

“대신 모나한과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밀고 당기는 맛?”

“제가 열심히 당기기만 하는 편이긴 하죠. 근데 미는 건 로나 씨 취향이 아니잖아요.”

“날 너무 잘 아는군요.”

“모르던 날이 없었죠.”

어느새 찡그렸던 표정은 어디 간 건지, 부드럽게 웃고 있는 모나한의 표정과 둘 사이에서 오가는 농담에 리앙이 참지 못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그래서 신사분은 누구시길래 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건가요?”

“오랜만입니다, 모나한 님.”

“……정말로 누구신지?”

모나한이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특유의 예의 바르고 깨끗해 보이는 미소로 리앙에게 말을 걸었다가 리앙의 대답에 표정을 살짝 굳히고 다시 물었다.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폴먼 리앙이라고 합니다.”

“아! 그런 성이었다.”

“로나 님도 제 성은 기억 못 하고 계셨죠.”

“리앙……. 리앙…….”

모나한은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곤 이름만 중얼거렸다.

“빵집에 자주 찾아오던 갈색 앞머리를 버릇처럼 계속 뒤로 넘기던 사람이에요.”

“제 버릇 맞아요. 고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로나가 모나한에게 힌트라도 주는 듯이 하는 말에 리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엔 아실라 님이 제 매력 중 하나라고 해서 고치려는 걸 그만두었죠.”

“아! 아실라!”

모나한이 아실라의 이름을 듣자마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는 얼굴을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죠. 아실라의 무덤을 찾아왔으니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모나한 님은 그때도 로나 님 말고는 전혀 관심 없으셨으니까요.”

“지금도 그렇답니다.”

모나한이 리앙의 말에 오히려 그런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얼굴을 하며 로나 옆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모나한의 얼굴에도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머리가 새하얀 색이 됐네요.”

“로나 님이랑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부부는 닮는다잖아요.”

모나한이 또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답하는 모습에 로나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셨나요?”

“글쎄요. 로나 님의 눈이 많이 깊어졌다는 이야기를 막 했었는데…….”

리앙이 말끝을 흐리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모나한 님을 보자마자 온 얼굴에 생기가 돋더니 행복이라고 써 놓은 것 같은 표정이 되더군요.”

“제가 로나 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있죠.”

“아이고.”

“영원히요.”

로나의 못 말리겠다는 신음에 모나한이 뻔뻔한 얼굴로 한술 더 떴다.

리앙은 결국 그 모습에 또 웃고 말았다.

예전에 작은 빵집에서 보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오랜만에 젊다 못해 어렸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두 분은 정말 여전하시네요.”

“그때는 연인이었고, 지금은 부부인걸요. 많이 달라졌죠.”

“솔직히 그때도 이미 부부 같았어요.”

“저희가 그때부터 잘 맞았다는 증거죠.”

“아이고.”

“천생연- 읍!”

“그만, 그만! 버터 바른 혀 좀 그만 놀려요!”

결국 로나가 참지 못하고 모나한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렸다.

가염 버터라면서 갈수록 소금기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아니면 버터양이 늘어 가거나!

“지금 보니까 신혼을 넘어 중년 부부 정도 되는 것 같네요.”

리앙이 흐뭇하게 바라보던 표정을 조금 딱딱히 굳히고 중얼거렸다.

“됐어요, 어휴! 가면 갈수록 버터만 늘어가!”

“로나가 익숙해져서 버터를 많이 바르지 않으면 반응도 안 하시잖아요.”

“내 잘못이에요?”

“익숙하게 만든 제 잘못이라고 치죠.”

“좋아요.”

리앙은 순간 자신이 아실라와 했던 수많은 연애를 조금 반성했다가, 자신은 저 정도는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요즘 세상이 많이 바뀌었죠. 로나 님 이야기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있어요.”

“아……. 본의 아니게 제빵 업계를 꽉 쥐고 있죠.”

“네. 제빵 업계의 강자, 1위, 제왕……. 또 뭐더라? 아무튼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시던데요.”

“……진짜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

로나가 리앙이 하는 말을 듣고 온 얼굴을 찌푸리다 못해 탁자에 이마를 박으며 외쳤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그냥 뱀파이어나 이종족의 요구 사항에 맞춰 분점을 늘리고 있을 뿐인데, 그게 ‘공격적인 사업가’, ‘무자비한 점유율’ 같은 걸로 불리더니, 어느새 그것을 넘어 ‘강자, 1위, 제왕’ 같은 걸로 불리고 있었다.

“왜 그런 이상한 명칭을 붙이는 거야, 다들!”

“음……. 멋있어 보여서?”

“하나도 안 멋있어!”

“요즘은 제왕을 넘어서 ‘제황이 맞다’, ‘아니다. 악마나 마왕 같을 걸 붙이자’라고 토론하고 있더군요.”

“누구예요, 그놈들! 그놈들이 이상한 명칭 붙인 범인이지!?”

로나가 눈물을 줄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진짜로 저 명칭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부끄럽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만 싶고…….

“뭐, 반대로 ‘이종족 일자리 창조자’, ‘이종족 일자리 구원자’ 같은 걸로도 불리고 계시잖습니까? 아니면, ‘제빵계 레시피의 신’이라든가.”

“인제 그만 죽고 싶어졌다…….”

“아실라 님도 살아 계실 적에는 이번엔 어떤 명칭이 붙을지 두근거리면서 기대하고 계셨죠.”

“아이고, 아실라야!”

“그분은 뭔가 예쁜……. ‘요정’이나, ‘천사’ 같은 걸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로나가 리앙의 말에 울기 직전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면서 동공을 지진시켰다.

“로나 님이 워낙 공격적으로 분점을 늘리셔서 그런 명칭은 채용되지 않았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요정이나 천사 같은 명칭이 붙었다면 서류고 뭐고 사람 없는데 처박혀 버렸을 거야!

아실라……. 여전히 무서운 아이…….

“로나 님 전용 아트 북도 만들고, 신문은 하나하나 다 오려 붙여서 수집하시고, 인형 제작도 하시고…….”

“……네?”

로나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귀를 긁적였다.

“방금 헛소리가 좀 들렸는데……?”

“로나 님 소식이 들리기 전에는 그냥 은사님 같이 생각했던 모양인데, 로나 님이 제빵 업계를 쥐고 흔들자 존경심이 많이 커지셨는지, 눈빛을 반짝이면서 그런 걸 모으고, 만들고 그러셨죠.”

“…….”

한번 만났어야 했나? 내가 안 만나 줘서 아실라 머릿속에서 내가 미화된 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혼자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니, 아실라!?

“돌아가실 때 같이 무덤에 넣어 드렸습니다. 천국에 가셔도 즐기시라고…….”

“제가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아실라의 무덤을 파서 그걸 빼앗아 불태우고 싶네요.”

“걱정 마세요. 예쁘게 나온 사진과 그림만 가득했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로나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모나한이 무언가 크게 깨달은 얼굴을 했다.

“그렇군……. 아트북이라…….”

“모나한, 그런 짓 하면 진짜 불태워 버릴 거예요. 아트북 어쩌고 뿐만 아니라 당신도!”

“흠, 몰래 할 자신이 있는데요.”

“뭐, 이 자식아!?”

“흠, 좋은 걸 알려 줘서 감사합니다, 리앙. 아실라에게도 배울 점이 생겼네요.”

“그거 아냐! 너 이상한 거 배웠어!”

로나가 모나한을 짤짤짤 흔들며 말했지만, 모나한은 오랜만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며, 이 취미는 상당히 오래 갈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즐길 취미가 생겼네요. 우선 처음 목표를 한……. 100권으로 잡을까.”

“그게 처음이에요!? 도대체 몇 권까지 만들 생각인데!?”

“죽을 때까지 만들 예정이니까……. 아니네요.”

“오, 그만둘 생각이 들었나요?”

“1년당 한 권씩 만드는 게 좋겠어요. ‘몇 년도 로나’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여서…….”

“아실라 님이 생전에 즐겨 사용하시던 서적 제작 전문점을 소개해 드릴까요? 거기 종이 질과 표지 가죽 마감이 아주 괜찮죠.”

“아, 꼭 부탁드립니다.”

로나는 아무리 흔들어도 한껏 기뻐 보이는 얼굴로 말하는 모나한의 모습에 포기하고 황망한 눈빛을 했다.

이렇게 되면 못 말린다는 것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학습한 지 오래였다.

리앙이 로나의 그 얼굴을 보고 크게 웃었다.

정말로 바뀐 게 하나도 없는 이들이었다.

아실라 님이 보시면 참 좋아했을 텐데.

어쩌면 모나한 님이랑 의기투합해서 같이 로나 님을 찬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로나 님은 도망가다가 잡혀서 포기하고 말이야.

정말 좋아했겠지.

리앙은 환히 웃으며 과거를 추억했다.

학생 시절, 바람에 엉망진창으로 흩날리던 분홍색과 물기를 머금었던 하늘색을.

하얀 볼에 잉크를 묻힌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던 모습을.

청년 시절, 분홍색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빠르게 걸어 다니던 발걸음.

부당한 반대에 부딪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하늘색, 다음 날 아침에 부은 눈으로도 씩씩하게 일어나 웃던 입꼬리.

눈가에 주름이 슬고, 발걸음에 여유가 생겼던 어느 날, 급하게 달려와 성공했다며 환하게 웃던 얼굴. 꼭 끌어안던 작은 몸.

점점 연하게 변해 가던 분홍색,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더더욱 작아지던 나날들.

느려지는 발걸음과 그럼에도 맑았던 하늘색아.

마지막까지 웃던 낯으로 자신은 아주 오래 기다리고 싶으니 천천히 오라 하던 그대여.

리앙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더욱 웃었다.

그렇게 웃을 수 있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지만, 이젠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된 표정이었다.

“제목은 역시 금이 들어간 잉크로 할까 봐요. 반짝반짝 예쁘고 고급스럽게.”

“네네, 마음대로 하세요.”

“로나도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설마 ‘몇 년도 모나한’ 이런 거 만들라고 하는 건 아니죠? 자신 없는데.”

“이번에 사진기였던가? 순간을 빠르게 기록하는 마법 장치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로나가 말해 줬던 거랑 비슷한 게 생겼다고 하던데. 시제품이라도 사용해 볼까 해요.”

“오, 그런 건 조금 갖고 싶다.”

“저도 들어 봤습니다. 저쪽에 마탑에서 파는 것 말이죠. 저도 가지고 싶던데.”

“만난 김에 선물로 하나 드릴게요.”

“이런,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리 손주 녀석이나 좀 찍을까 해서.”

“손주도 있어요?”

“이젠 할아버지인데요, 뭘.”

세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카페에서 나왔다.

리앙은, 아마 로나 님을 만난 이야기를 아실라에게 해 주려고 이때까지 정정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녀가 하늘색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들을 이야기를 모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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