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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니까 제 빵집을 여러 개 열고 싶다고요?”
“맞아! 레시피 제공을 원해!”
여러 관광지를 들르고 느긋하게 제국 수도에 도착한 로나는 실리가 하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서 제일 반갑다는 얼굴로 로나를 맞이하며 로나의 손에 들린 빵을 채 간 실리가 빵을 다 먹고 나서야 한 말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고 하던데, 옆에서 그란이 자신도 달라고 손을 뻗었지만, 도망까지 가면서 입으로 집어넣더라.
아무리 사이좋은 뱀파이어 부부라도 식욕 앞에서는 어림없었다.
결국 눈물 흘리며 좌절하는 그란에게 빵을 하나 더 줘야 했다.
“네 결혼식에 초대되었던 뱀파이어들이 네가 만든 빵을 먹고 난리가 났었거든. 우리 무리 안에서 불이라도 난 것처럼 소문이 퍼졌지. 모나한이 엄청난 제빵사랑 결혼했다고 말이야.”
인디고 영지에 쳐들어간다는 걸 말리느라고 힘들었다고.
겨우 진정된 실리가 로나의 치즈 쿠키를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모나한이 널 뱀파이어로 만들었다는 소문도 같이 돌지 않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돼서 누군가의 종속이 되었을지도 몰라.”
물론 모나한이 다시 널 되찾아 왔을 테지만. 평화롭다 못해 설렁설렁한 우리 무리에 피바람이 불 뻔했지.
그 정도로 다들 눈이 돌아가서 낑낑댔다고, 실리는 로나가 계속 꺼내 주는 빵을 그란과 결투하듯이 아공간으로 쓸어 담으며 이야기했다.
“모틸라 결혼식에 이례적으로 뱀파이어들이 많이 가지 않았어?”
“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모틸라가 놀라더라고요. 친하지도 않은 놈들까지 왔다고, 축의금이 어마무시하게 들어왔다고.”
“네 빵이 소문나서 먹으러 간 거야. 모틸라 결혼식은 덤이었고.”
“……그 정도로?”
“그 정도로. 그리고 소문이 사실이란 걸 확인한 뱀파이어들이 완전히 눈이 돌아갔지. 너를 무리 공용 제빵사로 추대해야 한다나 뭐라나, 빵집을 자기가 사는 곳에 열어 달라는 청탁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었어.”
막느라고 힘 좀 썼잖아.
어차피 뱀파이어가 됐으니까 좀만 기다리자고 말렸지.
“모틸라하고 있을 때라도 좀 평화롭게 있으라고.”
“……평화롭지 않은 미래가 예정된 건가요?”
“빵집을 차리지 않으면? 어떻게든 널 데려가서 빵을 만들게 할 놈들이 널렸는걸.”
“모나한은 못 막아요?”
“힘으로 권력으로 데려가는 게 아니거든.”
“그럼?”
“돈으로, 많은 돈으로,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으로.”
실리가 손으로 돈 모양을 만들면서 씨익 웃었다. 새하얀 이가 전등 빛에 반짝인 것 같았다.
여러분! 여기 자본주의에 물든 뱀파이어가 있어요!
“뱀파이어가 된 지 오래돼서 돈에 연연하게 되지 않았으면 모를까, 로나는 아직 어린 뱀파이어니까 돈으로 꼬실 수 있는 거지. 그걸 다들 잘 알거든.”
“……무서운 뱀파이어들.”
“우선 돈부터 들이밀고 보는 녀석들도 꽤 많았어. 나중에 갈 때 가지고 가렴.”
“……벌써요?”
“그럼. 창고 하나가 꽉 찼는걸? 아공간에 다 안 들어갈걸?”
“혹시 그거 받으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에이-. 그냥 성의 표시지 그건. 받아도 아무 탈 없어. 오히려 좋아할걸?”
“……무서운 식욕의 노예들.”
“이게 다 맛있는 거 먹으려고 버는 돈 아니겠니?”
실리가 자신이 주는 뇌물도 거기 있다며, 특별히 로나가 가장 좋아할 것 같은 걸로 준비했다고 속삭였다.
“도대체 뭘…….”
“10년 전에 마법 오븐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를 만들었는데-”
아, 최신식 오븐 주려고? 마침 도시에 오면서 카탈로그를 보며 눈을 빛냈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오븐 트렌드도 많이 변했더라고!
“그 업체를 주려고.”
“……네?”
“널 위해 10년 전부터 만들어 놓은 거야. 최고의 기술자들만 모아서! 특히 기술자 한 분이 오븐에 혼을 담을 것처럼 열정이 대단하시거든! 가만 들어 보면 흥분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오븐에 영혼을 바친 분이신데, 아주 짱짱하단다!”
로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가 이어지는 실리의 말에 입을 쩍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저기요? 뇌물의 크기가 다른데요?
어디서 오븐 덕후까지 끌고 와서 제작 중이신데요?
“새로운 오븐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로나가 제일 먼저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이 정도는 돼야 뇌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서 저 반짝이는 눈빛을 피하고 싶어!
“내가 관리자 자리를 괜히 제국 수도로 옮긴 게 아니란다! 분석 결과 로나의 빵집 본점을 세우기 가장 적절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거지! 더 많아지는 서류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더 부담스러워졌어! 뿌듯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지 말아요! 자랑스럽다는 표정 좀 그만하세요!
“그러니, 로나 본점은 제국 수도에 3층짜리 건물로 으리으리하게. 어때?”
“……네에.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오…….”
“아싸! 그란, 자기야! 나 해냈어! 이제 언제든지 로나의 빵을 먹을 수 있어!”
“하……. 실리. 오늘 밤에 침대에서 누나라고 불러 줄까?”
“꺄악!”
* * *
로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갈색 돌길 위에 서서 제국 수도에 크게 올라가는 3층 건물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처럼 두 골목만 들어가면 뒷골목인 곳도 아니고,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도 아니었다.
가장 상권이 좋다는 광장의 한쪽.
따뜻한 색감의 갈색 벽돌과 그 비싸다는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온갖 마법을 써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벌레도 안 들어오고, 곰팡이도 생기지 않게 습도 조절도 되는.
제국 수도 관장의 3층짜리 빵집.
겉보기에는 정겹고 단아한 느낌이 있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면 온갖 마법과 돈으로 치장된 저 무지막지한 건물이 자신의 것이라니 로나는 아직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시골 마을의 건물이야 촌장님에게 잘 보이면 싼값에 얻을 수 있을 정도로 헐값이었지만, 이런 거대한 도시에, 그것도 제국 수도의 건물을 가지게 되었다니.
감히 꿈꾼 적도 없는 자리와 건물이었다.
로나는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서 손을 이마에 짚고 도대체 이 난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되짚어 봤다.
역시 시작은 실리가 말한 대로 자신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모나한의 초대에 뱀파이어들은 왔고, 인사를 나눴고, 결혼식을 축하해 줬고, 내가 만든 빵을 먹었다.
……결혼식 할 때, 구석에서 죽어라 빵만 입 안으로 집어넣던 미남 미녀들이 바로 그분들이었습니다.
<혹시 아공간에 넣어서 가져가면 혼날까?>
<모나한 이 자식, 그동안 그렇게 결혼도 안 하고 아무도 뱀파이어로 안 만들더니 어디서 이런 제빵사를……!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잘 보여서 한 조각이라도 더……!>
나중에 결혼식 축의금을 살펴봤을 때, 손발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펄떡펄떡 뛰게 하는 금액을 넣으신 분들도 바로 그분들이셨다.
“이, 이게 무슨……!”
“뇌물인 거죠. 앞으로도 계속 맛있는 걸 만들어 주길 바라는.”
놀라서 쓰러질 뻔한 로나가 뒤돌아봤을 때, 모나한은 ‘계획대로’라는 음흉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
근데 들어온 축의금을 보니 그 표정조차 존경스럽고 멋있어 보이더라.
뱀파이어 전용 하객 선물을 만들어 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참가 안 했던 이들은 소식을 듣고 엉엉 울면서 후회했다고. 그리고 그분들은 모두 모틸라의 결혼식에 몰려왔다고.
“로나가 또 결혼식을 하고 싶다면, 하객은 이미 준비된 거죠.”
언제든지 불러만 달라고 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며, 모나한이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10년이란 세월 동안 조용했던 뱀파이어들은 사실 기회만을 노리며 웅크리고 있던 것이었다!
로나가 인디고 영지에 나오기 전부터 물샐틈없는 뇌물 공세와 청탁을 로나와 그나마 친분이 있는 실리에게 집어넣어 그녀가 자신들이 있는 곳에 빵집을 세우게 한 것이었다.
제국 수도에 본점을 세우는 걸로 시작해 미리 수배해 놓은 제빵사를 본점에 교육받으러 보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빠르게 분점을 내도록 만든다!
넌 몸만 오면 돼! 그 레시피만 오면 돼!
여기 다 준비돼 있어! 와 주시기만 하십시오!
뱀파이어들은 오랜 게으름을 떨치고 열정에 불타올랐으며, 결국 그들은 로나를 훌륭히 꼬셔 각자 의논해 놓은 주요 도시에 빵집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름하여, 순식간에 전 대륙 주요 도시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빵집 로모나’ 되시겠다.
“이, 이 정도면 들어간 돈이 도대체…….”
뱀파이어가 돼서 창백해진 얼굴을 아예 새파랗게 만들며 덜덜 떤 소시민 로나가 실리를 보며 물었지만, 실리는 깔끔한 얼굴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오래 산 만큼 돈 많은 뱀파이어들은 많으니까!”
“하, 하지만 전부 제 명의로 됐는데요? 여기 이 서류를 보면 갑자기 제 앞에 생긴 건물이…….”
“걱정하지 마! 오래 산 돈 많은 뱀파이어들은 많으니까!”
“걱정된다고!”
깔끔 하다못해 상큼하고, 상큼하다 못해 공포스럽게 보이는 얼굴로 대답하는 실리에 로나가 절규하듯이 외쳤다.
갑자기 엄청난 재산이 생겼는데, 전생에는 소시민, 현생에는 가난한 시골 사람으로 살았던 저는 너무나도 두렵습니다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이해는 잘 되지만 조금도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요!
“로나. 돈 많은 뱀파이어들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돈이 많단다. 모나한과 모틸라는 뱀파이어들 중에 가난한 축에 속해.”
“아공간에 보물 상자를 몇 개나 넣어 다니는 저분들이요?”
“그럼. 진짜 돈을 잘 굴리는 이들은 선박을 몇 개나 가지고 대륙을 건너다니면서 교역하는걸?”
“허억…….”
“대 상단을 몇 개씩 가진 이들도 종종 있고, 미궁에서 모험가 일을 하는 녀석들도 은근 부자고.”
“그런 이들이 모두 합심해서 건물을 세운 거라고. 게다가 우리 무리 자금도 들어갔고.”
“뭔, 뭔가 국가 공금이 들어간 것 같은 그 말은 뭐죠?”
“실제로 비슷한 이야기이긴 해. 이건 우리 뱀파이어 무리에서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인 거지.”
“복, 복지…….”
그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내 빵이 엄청났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