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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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서 야영할 모양입니다. 괜찮은 공터군요.”

“어, 어?”

“안 내리실 겁니까?”

모틸라는 언제 밤이 됐냐고 어리둥절하며 발터가 내민 손을 반사적으로 잡았다.

발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는 모틸라는 그가 손을 내밀면 습관적으로 잡아 버리게 되었다고, 이상한 버릇이 들었다고 투덜거렸다.

발터는 듣지 못한 아주 작은 목소리의 투덜거림을 모나한과 로나가 들었는지, 먼저 마차에 내려 공터에 서 있던 둘이 차게 식은 눈으로 모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틸라가 그들에게 입 모양으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자 둘은 동시에 미간을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각자 야영 자리를 만들러 움직였다.

커플이 똑 닮은 표정을 한다고 생각하던 모틸라도 그들을 도와 야영을 준비했다.

모틸라는 저녁 식사를 차리는 내내 기대감이 가득한 콧노래를 불렀다.

야영인데도 로나의 능력 덕분에 신선한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였다.

로나와 모나한이 밖에서 자겠다고 해서, 발터와 같이 마차에서 보낼 밤도 기대되었다.

조금 좁은 편이긴 하지만 뒤에 짐칸의 짐을 빼고 의자를 눕히면 충분히 침대가 되는 마차였으니, 둘이 붙어서 자게 될 게 분명했다.

“저녁은 뭐야?”

“고기 꼬치라도 만들어 볼까 하는데요. 이왕이면 대파도 구워 먹고. 가래떡도 구워 먹고.”

로나의 말대로 모틸라는 신선한 고기와 대파, 가래떡을 구운 꼬치를 저녁으로 먹어 치웠다.

로나가 바른 이상한 매운 소스도 맛있었고, 짭조름한 소스도 끝내줬다.

상점 창에서 나온 재료가 어찌나 신선하던지 소금만 뿌려도 맛있었다. 직접 꼬치에 고기나 야채들을 꽂아 넣는 것도 재미있었고.

모틸라는 만족하며 윗배를 통통 치고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박혀 반짝이고 있었다.

모나한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녀는 옛날부터 별이 많은 하늘을 좋아하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눈은 약한 빛까지 전부 잡아냈고, 별은 정말로 쏟아져 어딘지 모르고 헤매게 할 것만 같은 무수함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로나와 모나한의 배려를 받아 발터의 손을 꼭 잡고 마차로 들어갔다.

차라리 좁더라도 마차의 나무 천장이 더 마음에 들었다.

“밖에 하늘이 아름다운데 좀 더 보고 들어오셔도-”

“나 별 안 좋아해.”

“그렇군요.”

“……너무 날카롭게 말했니?”

“아닙니다. 모틸라 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돼서 좋습니다.”

“흐응.”

모틸라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웃고는 마차 의자를 뒤로 넘겼다.

발터가 자기가 하겠다는 듯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손을 저어 말리고는 이불이나 가져오라고 말했다.

명령을 충실히 잘 듣는 발터는 미리 챙겼던 폭신한 이불을 들고 마차로 들어왔다.

“이불 한 개만 들고 왔어?”

“……예.”

“잘했어!”

모틸라가 장난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크게 웃으면서 칭찬했다.

발터는 그 칭찬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젓고는 침대 위에 이불을 올렸다.

어느새 이불 속으로 꼼지락거리며 들어가는 모틸라를 바라보다가 그도 느린 속도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날이 쌀쌀한 이른 봄이었고, 둘은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피부는 조금도 닿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발터는 왠지 모를 긴장에 침을 꿀꺽 삼켰고, 모틸라는 그 소리에 키득거리다가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는 발터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건지.

겨울 동안 같은 침대에서 잔 적이 몇 번이고, 이미 몸을 섞은 적도 있는데.

발터는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에 언제나 긴장하곤 했다.

그래서 모틸라는 이런 순간마다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새벽의 남색을 가졌던 그 애를 만나던 순간보다 더 어릴 적.

뱀파이어가 되기도 전에, 피난길에 오르기도 전에.

오렌지꽃이 가득하던 마을에 검은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올려 묶고 깔깔깔 웃으면서 친구들이랑 달려 다녔던 그때로.

모틸라는 또다시 조금 우울해지려는 기분을 붙잡고 옆에 정자세로 누운 발터의 배 위에 다리를 턱 하니 올렸다.

허벅지 아래 발터의 배가 딱딱히 굳는 걸 느꼈지만, 어차피 좀 있으면 풀어질 걸 알아서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머리도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비비적거렸다.

그녀의 예상대로 발터의 몸은 금방 풀어져 팔로 자신의 허리를 감싼 채 토닥토닥 규칙적으로 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차라 아무것도 못 하니 잠이라도 재우려는 모양이었다.

조용하고 덤덤한 이라서 그런가? 발터 옆에 붙어 있으면 잠이 쉽게 몰려오곤 했다.

어차피 몰려오는 잠 이왕이면 더 오라고 모틸라가 꼬물꼬물 발터에게 더 붙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모틸라는 저 멀리서 벌레가 구워지는 냄새에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피난길에 먹을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그 쓰고 찐득하고 역겨운 이상한 맛이 나던 벌레 구이.

그거랑 언젠가 태워 먹었던 블루베리 잼 냄새.

정자세로 팔만 뻗어 모틸라를 토닥이던 발터도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코를 킁킁거리자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십니까?”

“으음……. 주위에 고블린하고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냄새가 났습니까?”

“응.”

모틸라가 마차를 나가며 답하자 발터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로나와 모나한도 냄새를 맡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냄새가 흘러온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레 구운 냄새랑 반쯤 타 버린 잼 냄새가 나.”

“예?”

“그게 딱 고블린이랑 사람의 피 냄새거든.”

발터는 모틸라의 말에 구운 벌레에 대해 상상했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가 볼까요?”

“굳이 가 보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냄새가…….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요?”

“모닥불 때문이겠죠.”

발터의 말에 로나와 모나한이 차례대로 대답하고는 아공간에 있던 검을 꺼내 허리에 찼다.

그 모습을 본 발터도 마차에서 내려와 허리에 찼던 검을 한 번 더 점검하며 모닥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풀 사이로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튀어나왔다.

모틸라가 말했던 고블린의 피 냄새가 저것인 듯, 사내들은 검붉은 자국을 옷 이곳저곳 묻힌 채였다.

네 명밖에 안 되는 데다가, 일행 중 둘은 여자라 그런지 사내들은 일행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낄낄거렸다.

손가락질까지 하는 게 뒷골목의 양아치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행태라 발터는 검의 손잡이에 한쪽 손을 올린 채로 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오자 상황을 파악한 모나한이 한숨을 푹 쉬고는 아공간에서 석궁을 꺼내 사내의 앞으로 발사해 경고했다.

옆에 서 있던 모틸라도 같이 아공간을 열어 스태프를 꺼내자 다가오던 사내는 그대로 멈춰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발터는 긴장하고 있었던 몸에 힘을 빼고, 그자가 하는 걸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덜덜 떨며 아부하며 자신들이 지나가는 용병이라며, 혹시 호위가 필요할까 봐 접근했다며 손을 싹싹 비비는 용병대장의 모습에 발터가 시선을 돌려 저 멀리 서 있는 사내들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이런 시골에서 용병 일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손쉽게 도적으로 변하는지 발터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은 이른 봄이라 이들에게 일을 시킬 만한 마을이 없었다.

다들 이맘때면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어서 날이 풀리길 바라고 있을 텐데, 용병을 고용할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주위 영지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발터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하는데, 그때 용병 중에 그나마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튀어나와 로나의 이름을 불렀다.

로날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로나에게 온갖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로날드가 하는 로나와 친하다는 말에 발터는 매우 의아해했다.

그가 생각하는 로나는 대단한 능력을 갖췄지만, 그에 반해 하루하루 규칙적이고 착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저 로날드라는 사내는 딱 봐도 한심한 짓만 하고 다니는 양아치였고.

발터의 생각대로 로날드라는 사내에 대한 로나의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

로날드라는 용병이 느끼한 소리를 시작하자 모나한까지 동시에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특히 모나한은 살기를 뿌리기까지 했으니 친하지 않다 못해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모틸라가 ‘혹시?’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로나가 대놓고 “친구도 아니고, 한 번만 더 그런 오해를 하면 빵을 만들어 주지 않겠다.”라고 경고하는 걸 보면 최악을 넘어 경멸에 가까운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발터는 그에게 관심을 꺼 버리고 용병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도 아니고, 혹시나 해서 대조해 봤지만, 자신의 영지를 습격했던 도적들과도 인상착의가 달랐다.

발터의 의아함이 풀리기 전에 그들은 물러났고, 로나는 기분이 매우 나쁜지 상점 창에서 그 비싼 소금을 꺼내서 허공에 뿌려 대기 시작했다.

들어 보니 진상을 만나면 하는 의식이라던데, 어느새 합류한 모나한도 같이 허공에 소금을 뿌려 대며 다시는 로널드라는 사내와 만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했는지 악마를 물러나게 하고 삿된 것들을 정화하는 기도문을 외우기까지 했다.

뱀파이어가 읊는 기도문이라니. 손을 꼭 쥐고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기도하는 둘을 발터는 조금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모틸라도 웃겼는지 그들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본 로나는 발터가 용병들이 사라진 곳을 보고 있는 모습에 의아해하며 신경쓰이는 게 있냐고 물었다.

발터는 그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주위에 저들을 고용할 만한 마을이 없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 용병 일을 한다는 것이 신경 쓰여서요.”

“음…….”

“그냥 떠돌이일 수도 있으니까요. 몬스터를 잡아 파는 이들일 수도 있고.”

발터는 자신이 괜한 것까지 고민한 것 같다며 신경 쓰실 필요 없다고 말하고는 로나의 배려에 따라 모틸라와 마차 안으로 돌아갔다.

만나는 김에 로나에게 딸기잼 쿠키를 얻어 온 모틸라가 신난 얼굴로 마차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누워 쿠키를 먹어 치웠다.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었지만 특유의 고혹적인 미모와 몸매, 우아한 동작으로 인해서 휴식 시간을 가지는 나른한 귀부인으로 보였다.

제멋대로 뒹구는 바람에 올라간 치마 끝을 발터가 조심스럽게 내려 주고, 발아래로 굴러간 이불도 덮어 준 다음, 발터는 모틸라 옆에 누워 그녀가 쿠키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하나 먹겠냐고 내미는 쿠키를 거절하고는 야금야금 먹어 치우는 붉은 입술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묘하게 어른스러운 분위기와 말괄량이 같은 행동이 공존하는 분이긴 했지만, 자신이 편해진 건지 제 앞에서 더더욱 풀어진 모습을 하는 게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발터는 모틸라가 쿠키를 다 먹고 다시 자신에게 붙어 콧노래를 부르자, 그 콧노래의 박자에 맞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오늘 마차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기분이 나빠 보였는데, 자기 전이라도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터는 자신이 잠들 때까지 토닥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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