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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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틸라는 자신의 앞에서 저에게 손을 뻗는 발터를 바라보았다.

그저 마차에 오르기 쉽도록 도와주는 손일 뿐인데,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색 눈, 넓은 어깨, 뻗은 손의 셔츠의 흐름이나 그 아래 살짝 보이는 팔 근육, 자신에게 내민 손의 굳은살이나 길쭉한 손가락 같은 것들을 빤히 바라봐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상한 취향이 생긴 것 같았다.

오래 산 만큼 자신의 취향에 대해선 전부 알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이 더 좋고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향해 뻗은 손이나 진중한 눈빛 같은 것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간질거리게 되는 것이다.

모틸라는 뱀파이어라서 손에 땀이 잘 안 나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자신을 위해 뻗어진 손을 향해 다가갔다.

나들이를 위해 신은 높은 구두에서 나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빠른 것 같아서 살짝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움은 햇볕에 타 따뜻한 색으로 보이는 손에 닿았을 때 전부 사라져 버리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감정만이 가득해졌다.

“마차에 타는 게 참 오래 걸리네.”

“닥쳐.”

모틸라가 자신의 두근거림을 알아차리고 빈정거리는 모나한에게 말했다.

그를 조금도 쳐다보지 않고 여전히 발터의 남색 눈에만 시선을 한가득 담은 채였다.

살날도 별로 남지 않았는데, 좋은 것만 봐야지!

모나한같이 재수 없는 걸 볼 필요 있겠냐.

모틸라를 에스코트하느라 둘의 말을 다 들은 발터가 눈을 살짝 휘며 웃었다.

여전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지만, 그럼에도 모틸라는 알 수 있었다.

눈이 몇 도나 더 휘게 되었다든가, 입꼬리의 바들거림이 사라졌다든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을.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다는 웃음을 짓자, 모나한이 “웩.” 하고 소리를 냈지만, 모틸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온통 하얗게 변했던 세상은 연두색으로 파릇해지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지는 음지에는 아직 하얀 눈이 쌓여 있었지만,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벌써 피어 그들의 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고, 양지에는 새잎들이 너도나도 올라와 깨끗하고 여린 색을 자랑했다.

넷은 오랜만에 영지 밖으로 나가 옆 영지에서 부족한 가축을 사 오기로 했다.

로나와 모나한은 마차의 마부석에 타는 걸 좋아했으므로 발터와 모틸라는 자연스레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고급스러운 마차는 아니었지만 왔다 갔다 해서 6일 정도 지내기에는 충분한 마차이기도 했다.

애초에 뱀파이어 세 명에 기사 한 명이었으니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구두를 신었더니 발이 불편해.”

모틸라는 괜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발터가 앉으려고 했던 반대편 의자 위에 발을 턱 올려 두었다.

모틸라를 먼저 마차에 태우고 자신도 반대편에 앉으려 했던 발터는 비단 양말에 싸인 발을 보고 눈을 껌벅였다.

영지 일이나 담과 건물을 쌓기 위한 토목건축, 자경단과 함께했던 훈련 같은 것에서는 핑핑 돌아가던 머리가 이런 일에는 딱딱히 굳어 버리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발터는 낮은 마차 천장을 피해 몸을 굽힌 채로 모틸라의 발끝을 보며 눈만 깜박이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모틸라는 그 시선을 느끼며 비단 양말에 싸인 발끝을 까닥거렸다.

뱀파이어의 유혹술을 담아 장난스럽지만, 살짝 야하게!

힐끗 곁눈질하자 안 그래도 굳어 있던 발터의 턱에 힘이 들어가 힘줄이 톡 튀어나온 게 보인다.

모틸라는 모른 척 속으로만 키득거리다가 턱 끝을 살짝 들고 새초롬하게 발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해? 앉아.”

“……자리가-”

“여기, 내 옆에 앉으면 되잖아.”

깔끔하게 다듬고 예쁘게 손질한 검지로 자신의 옆을 톡톡 건드린다.

그리고 검지를 뻗어 의자 쿠션을 손톱 끝으로 살짝 긁어내려 당기며 속삭인다.

“싫어?”

“예, 예?”

자신에게 한껏 집중한 사내에게 손가락 움직임 하나가, 손톱 밑에서 천이 긁히는 소리가 얼마나 성감을 자극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옆에 앉아.”

그리고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박여 속눈썹을 살랑이며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면-.

쾅-!!

“……재수 없는 모나한.”

“크흠.”

발터를 한껏 유혹하던 모틸라는 마부석에서 마차 벽을 주먹으로 치는 모나한의 행동에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에 발터가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헛기침을 뱉었다.

모틸라는 그 모습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발터를 째려보다가 콧방귀를 뀌고는 옆을 다시 툭툭 쳤다.

이번엔 장난스럽지도 야하지도 않게, 약간의 심술을 담아서.

그 모습에 발터가 결국 작게 웃어 버리고는 모틸라가 손짓한 곳에 앉았다.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은지 어깨가 닿도록 앉은 게 만족스러웠다.

뭔가 고민하는지 앞만 보고 딱딱히 굳어 있다가 슬그머니 다가와 잡는 따뜻한 손도 좋았다.

모틸라는 키득거리다가 발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와 발터의 팔을 간지럽혔지만, 발터는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나한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렇습니까?”

“흠. 모나한이 밖에서 자기도 그렇다고, 로나만 있었으면 참 좋다고 말하네. 한결같이 재수 없다.”

“두 분은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모틸라는 발터의 그 말에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하려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모나한이 앉아 있을 나무 벽을 힐끗 한번 바라보고는 시선을 창문 밖을 향해 돌렸다.

봄이라서 그런지 겨우내 잠들어 있던 나뭇가지의 끝이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발터의 말이 맞았다.

모나한이랑은 사이가 좋았다.

실험실에서 말라비틀어진 눈이 마주쳤을 때부터, 선홍색 눈이 되었을 때도, 피를 뒤집어썼던 나날들에서도, 도망쳤을 때도, 다시 만났을 때와 같이 일할 때에도.

서로 떨어져 있던 순간에도, 멋대로 원망하던 순간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언제나, 끝까지.

가끔 소식만 닿아도, 소식이 닿지 않아도 괜찮았다.

언제 어디서든 그냥, 투덜거리면서 날 걱정하면서, 내 생각을 하면 미간을 팍 찌푸리고 못된 소리를 하면서 잘 살고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이제 로나도 있으니까.

지금도 마차 밖에서 들리는 모나한의 목소리가 온통 아양과 짜증 나는 애교, 주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밝은 웃음과 작은 농담과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니까.

모틸라는 문득 저런 목소리를 오래 들을 수 없게 됐다는 것에 슬퍼졌다가, 그래도 저런 목소리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모나한이 로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작 부리는 목소리에 미간을 팍 찌푸리고 복수라도 하듯이 발터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너만 수작 부릴 수 있는 줄 알아? 나도 할 줄 안다고!

그녀는 딱딱히 굳어 있는 어깨가 풀릴 때까지 이마를 비비적거리다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후회는 아주 익숙했다.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으므로.

술에 취해 있거나, 먹을 것에 취해 있는 순간이 아니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전부 후회였으니.

그리고 그녀는 이 순간 또 다른 후회가 그녀를 맞이하는 걸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감정이 생겼던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아쉬웠다.

남은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여전히 그저 흘러가는 시간, 아무것도 이루는 게 없는 하루. 그냥 멍청히 낭비해 버리는 시간인 것 같은데도, 아쉽고 아쉬워서.

모틸라는 봄이라서 그렇다고 중얼거렸다.

나뭇가지에 연두색 물이 들어서 그렇다고.

새잎이 연약해서 그렇다고.

녹아내리는 하얀 눈이 아쉬워서 그렇다고.

발터가 뭔가 눈치챘는지, 맞잡은 손을 한번 꾹 잡고 놓아주었다.

모틸라는 놓아 버리는 손이 야속하게 느껴져 따라가려다가 발터가 품에서 꺼내는 꽃 모양 쿠키에 멈칫했다.

“……그게 뭐야?”

“모틸라 님께서 조금이라도 우울해하시는 것 같으면 입에 넣어 주라며 로나 님이 주셨습니다.”

“로나도 참-”

“우울하셨습니까?”

“조금?”

“그럼 쿠키를 드십시오.”

“……누군가의 애완견이라도 된 것 같네.”

모틸라는 입으로 들어오는 꽃 모양 쿠키를 순순히 받아먹으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지, 입에 들어오는 쿠키의 모양이 전부 달랐다.

저건 벚꽃, 저건 해바라기.

붓꽃과 튤립, 오렌지꽃과 장미, 응? 이건 할미꽃인가?

모틸라가 쿠키라기엔 너무 섬세하게 털 하나하나까지 아이싱으로 만들어 놓은 할미꽃을 발터의 손에서 가져가 요리조리 돌려보며 구경했다.

할미꽃 모양으로 쿠키를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건 분명히 모나한이 만들었을 거야. 아니면 모나한이 쿠키 아이싱을 섬세하게 하는 걸 보고 신난 로나가 할미꽃 모양도 만들어 보라고 했다든지.

이상한 데에서 섬세한 손길을 자랑하는 데다가 로나가 하는 말이라면 전부 좋다고 듣는 녀석이니까 그 녀석이 한 게 분명해.

발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할미꽃 모양의 쿠키가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틸라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나?”

“네. 우아한 발걸음으로 외모를 뽐내며 걷다가-”

“흠, 내가 좀 우아하긴 하지.”

“발을 잘못 디뎌서 넘어지며 한 바퀴 구르고.”

“뭐?”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갑자기 그루밍을 시작하던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아니, 뭐라고?”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아냐. 수식어가 엄청나게 길었어. 깜짝 놀랄 정도로 길었다고. 고양이라는 단어 앞에 엄청나게 긴 설명문이 있었어.”

모틸라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발터를 보며 말했지만, 발터는 그 시선을 한번 피했다가 다시 모틸라와 시선을 맞추곤 특유의 덤덤해 보이는 표정을 할 뿐이었다.

모틸라는 ‘이 자식을 어떻게 혼내지?’라는 표정을 했다가 마부석에서 킥킥거리며 자신을 비웃는 모나한의 웃음소리에 우선 저 자식부터 혼내자고 결심하며 창문 밖으로 몸을 빼려고 했다.

마부석으로 넘어가서 로나를 안고 마차 안으로 들어올 테다!

발터 이 자식도 마부석으로 던져 버릴 테다!

모나한이 모틸라의 음모를 알아차렸는지, 마차를 멈추었다.

모틸라는 이때다 싶어 로나를 납치해 오려다가 마차 문을 여는 발터의 모습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눈을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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