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 (132/154)

132

“여기에 행복이 가득 찼어!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로! 정말 괜찮아!”

모틸라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로나에게 소리쳤다.

무서운 로나. 제빵의 천사나 제빵의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언 철회한다.

저 아이는 제빵의 악마야, 마왕이야, 마신이야.

로나는 저 오글거리는 대사를 해야 빵을 만드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조리대를 넘어, 식탁을 넘어, 아공간을 넘어서라도 빵을 만들었다.

“좋아, 이겼군.”

로나가 모틸라의 절박함이 들어 있는 대사를 듣고 뿌듯하다는 미소로 말했다.

용사를 물리친 마왕 같았다.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네가 이겼다고 하자.”

모틸라는 윗배를 부여잡고 입으로 다시 튀어나오려는 빵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행복이 아니라 빵이 가득 차서 죽을 것 같아.”

모틸라는 어디선가 들은 라마즈 호흡을 ‘히히 후- 히히 후-’ 내뱉다가 안 되겠는지 응접실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뱀파이어가 되고부터 소화가 안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지금 처음 했다.

역시 사람이든 뱀파이어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나이 돼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모틸라는 옆에서 부축이라도 하려고 손을 내미는 발터의 양손 중 한쪽 손은 내려 주고, 한쪽 손은 꼭 잡은 다음에 등 뒤에서 뻔뻔한 얼굴로 커플 짓을 하는 로나와 모나한을 피해 응접실을 벗어났다.

흥! 너희들만 커플인 줄 알아? 나도 커플이야! 나도 발터 있다고!

모틸라의 흥흥거리는 콧소리를 들으며 발터는 손을 잡아서 좋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흥흥거리는 것을 몇 번 하다 멈춘 모틸라가 그런 발터를 힐끗힐끗 뒤돌아봤다.

그럴 때마다 발터는 입꼬리를 슬쩍슬쩍 올렸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지만, 모틸라에게는 통했으니 괜찮았다.

모틸라는 아까보다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볼 안쪽을 깨물고, 발터의 방에 도착했을 때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이 먼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신의 방문 앞에서 동공을 지진 시키는 발터의 한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올려다보았다.

발터는 뭔가 예감했는지, 한 손으로 문고리를 꾹 잡은 채였다.

“나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혼자 자기 싫은데.”

“호, 혼자요?”

“응. 같이 자 주면 안 돼?”

“같이 말입니까?”

“응.”

누나가 아무 짓도 안 하고 손만 잡고 잘게.

모틸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몇 시간 전까지 차가운 방 안에 축 처져 있던 그녀는 어디갔는지, 지금의 모틸라는 생기가 아주 반짝거리다 못해 번쩍거렸다.

발터는 그 모습을 보다가 모틸라의 생기 가득한 선홍색 눈동자를 한 번, 자신의 손을 꼬옥 잡은 하얀 손을 한 번, 그리고 그녀 뒤에 불을 피우지 않아 차가운 방을 한 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요.”

“어.”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대도 데우고.”

“어어!”

“그러고 나서 같이 자면-”

“좋아! 지금 당장 실행하자!”

모틸라가 잡은 손을 붕붕 휘두르며 대답했고, 발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그대로 손을 잡은 채로 벽난로를 피우고, 뜨거운 물을 물주머니에 담고, 침대를 데웠다.

발터가 긴장해 몇 번이나 침을 삼키는 소리에 모틸라가 숨죽여 키득거렸다.

“내가 이때까지 먹지 않고 놔둔 비장의 술이 있는데, 잔을 가져올 테니까 좀 앉아 있어.”

발터는 모틸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침실에 있는 조그만 탁자 옆의 의자에 앉으려다가 돌아보는 모틸라의 시선에 엉거주춤하게 멈추었다.

“거기 말고 침대에 앉아 있어!”

“……침대 말입니까?”

“그래! 침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잔에 술을 따르는 모틸라의 뒷모습에 발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침대에 각을 잡고 앉았다.

두 다리는 골반 넓이로, 허리는 바르게 세우고, 시선은 정면, 손은 주먹 쥐어 무릎 위에.

엉덩이에 닿은 푹신함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술을 따르고 뒤돌아본 모틸라가 발터의 그 모습에 한참을 웃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각 잡고 앉아 있는 발터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사적으로 모틸라의 허리를 부여잡은 발터가 당황해 눈을 심하게 깜박였다.

꾹 다문 턱에 힘줄이 톡 튀어나와 있어 모틸라가 그걸 구경하며 키득거렸다.

“긴장했어?”

“엄청나게 했습니다.”

“술 마실래?”

“예.”

모틸라가 잔을 건네주자마자, 목이 많이 말랐는지 발터가 술 한 잔을 꿀꺽꿀꺽 넘겼다.

그 모습을 모틸라가 살짝 걱정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건네준 술이 생각보다 도수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독한 술인 걸 전부 마시고 나서야 깨달았는지, 귀와 목을 새빨갛게 붉힌 발터가 모틸라를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위로 올렸다.

“왜? 나 보기 싫어?”

“……가슴이 보이십니다.”

“응! 나 가슴이 파인 옷을 좋아하거든. 목이 가려지면 답답해서 싫어!”

“……많이 보이십니다.”

“그래? 만져 볼래?”

“……예?”

“만져도 되는데.”

“…….”

모틸라는 발터가 엄청나게 고민하는 얼굴을 하자 키득대며 그의 목에 제 팔을 감았다.

얇고 차가운 피부가 뜨거운 피부에 감기자, 발터가 낮게 신음했다.

“이거 단추가 뒤에 달린 옷이다?”

“그, 그렇습니까?”

“입기도 어렵고 벗기도 어려운데, 좋아해서 겨우겨우 입거든.”

“그렇습니까?”

“벗겨 줄래?”

“……그렇, 아니, 예?”

로나의 빵을 너무 많이 먹어서 답답한데, 단추 좀 풀어 줘.

모틸라가 발터의 새빨간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자, 발터가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만큼 떨리는 눈동자로 모틸라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모틸라가 선홍색 눈동자를 한껏 휘며 웃었다.

그 웃음에 발터가 또다시 시선을 피해 앞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말없이 기다렸을까.

덜덜 떨고 있던 커다란 손이 등 뒤에 닿는 것을 모틸라는 느꼈다.

그녀는 발터가 그만두지 않도록 그대로 가만히 기다렸다.

등 뒤에서 작은 단추가 하나씩 톡, 톡. 풀어지고, 그만큼 옷자락이 사륵거리며 흘러내렸다.

“하…….”

마지막 단추를 풀자마자 발터가 낮은 한숨을 흘려서 모틸라는 결국 키득거리며 웃고 말았다.

발터의 목덜미에 웃음이 가득 담긴 숨이 적나라하게 닿았다.

모틸라는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그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쉬었다.

단 냄새가 났다.

설탕보다는 나뭇잎의 단내에 가까웠다.

비가 오고 나서 낙엽에서 나는 냄새. 그 냄새에서 살짝 더 달콤한.

“좋은 냄새가 나.”

“……땀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만.”

“지금 땀을 흘리고 있어서?”

“매우 긴장을, 해서.”

“응, 여기, 머리카락이 끝나는 부분 있잖아. 여기가 촉촉하다.”

모틸라가 발터의 목을 휘감았던 팔을 풀고, 귀 뒤와 옆 목의 머리카락이 끝나는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발터가 그 손길에 참지 목하고 낮은 앓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곳이 그렇게 예민한지 처음 알았다.

모틸라 님과 만나고 나서 처음인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빨개졌다.”

“……계속,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응. 그래서 좋아.”

“……감사합니다.”

발터의 감사 인사에 모틸라가 또 키득거리고는 손을 그의 시선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나 팔이 좀 답답한데, 소매를 잡아 볼래?”

“이렇게 말입니까?”

“응, 그리고-”

놓치지 말고.

모틸라가 속삭이며 팔을 물렸다. 발터가 소매를 잡고 있던 만큼, 등 뒤에 단추를 풀어 놓은 만큼 옷이 벗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번에 발터는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얇은 목덜미, 달빛에 더욱 창백하고 요사스러워 보일 정도로 빛나는 피부, 부드럽게 떨어지는 선.

“예뻐?”

“……예. 아주.”

“나도 알아.”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모틸라가 그 칭찬에 기쁘다는 듯이 눈을 휘었다.

그리고 발터의 어깨를 부드럽게 뒤로 밀었다.

발터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모틸라가 발터의 위로 타고 올라 그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내려앉아 둘의 사이를 가렸다. 시선만이 진득하게 마주치고 있었다.

“싫어?”

모틸라가 불안과 걱정이 조금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발터가 그 목소리에 눈을 한 번 짙게 감았다 뜨며 답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당신은 어느 하나 싫은 게 없었습니다.

“정말?”

“정말로요. 당신의 후회조차, 제가 가지고 싶은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모틸라의 볼을 매만졌다.

갈색의 따뜻한 피부가 차가운 피부를 부드럽게 만졌다.

모틸라는 눈을 감고 한참을 그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가 볼을 타고, 목선을 따라 흘렀다가, 어깨를 한 번 감싸고.

팔을 따라 내려갔다가, 허리에 머무르는 것까지.

모틸라는 치맛자락조차 전부 벗어 버리려고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발터와 눈을 마주쳤다.

먼저 입을 맞춰야 할 것만 같아서 고개를 내리고, 입술이 닿고, 혀가 오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둘은 피식거리며 웃고 말았다.

창밖에서 모나한과 로나의 웃음소리가 밝게 울리고 있었다.

“밖에서 웃는 소리 들리지?”

“그렇네요.”

“둘이 눈 속에서 놀고 있나 봐.”

“재밌겠군요.”

모틸라는 자신의 아래에 누워 있는 발터를 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웃는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

“무슨 날 말씀이십니까?”

“으으음. 발터를 홀라당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뭐어? 너 진짜 이상하다.”

“혹시 이런 점이 싫으시다면-”

“누가 싫다 그랬니? 안 싫어, 안 싫어.”

오히려 좋아.

모틸라는 장난기와 웃음이 가득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옷을 대충 여미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테라스로 나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커튼 안으로 그녀가 사라지고, 모틸라의 목소리가 높게 울렸다.

“너희, 뭐 하는 거야-!?”

“눈사람 만들어요!”

“뭐? 나도 할래!! 금방 내려갈게!!”

“따뜻하게 하고 와요!”

“알았어어-!”

발터는 그 말을 들으면서 두꺼운 외투를 챙겨 테라스로 나갔다. 그리고 난간에 상체를 기울이고 있는 모틸라를 잡아당기며 외투를 걸쳐 주었다.

“눈사람 만들러 가자!”

“알겠습니다.”

“따뜻하게 하고 말이야.”

모틸라가 발터가 자신의 입은 외투의 단추를 잠가 주는 손을 보며 말을 이었다.

“목도리도 하고, 장갑도 끼고-”

“모틸라 님도요.”

“그래, 우리 둘 다.”

둘은 웃음이 가득한 채로 말했다. 따뜻하게, 두꺼운 외투도 목도리도, 장갑도 모자도, 손도 잡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