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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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는 결국 감자도 먹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 모틸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모닥불이 모두 타 버리고 꺼질 때 즈음에야 느린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발터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려다가, 바로 옆 방의 화려한 문을 바라보고 나서야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건 발터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생긴 이상한 습관이었다.

그 화려한 문은 가진 방이 가주의 방이었고, 바로 얼마 전 아버지가 목을 매단 곳이었고, 자신의 방문을 열기 전에 긴 시간 동안 바라보고만 있게 된 방이었다.

그를 관도 없이 그저 땅에 묻어서인가, 아니면 모틸라 님이 자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밤새 문 앞에 서 계셔서인가.

발터는 그 후 저 방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말 필요한 일이 있더라도 화려한 방문 앞에서 몇 시간이고 귀를 기울인 다음에야 들어가곤 했다.

샹들리에가 무거운 것을 달고 겨울바람에 끼익거리는 소리나, 차가운 발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까 봐, 그는 화려한 문 앞에서 몇 시간이고 귀를 기울이곤 했다.

다행히 시간은 점점 줄었다. 아주 조금씩.

몇 시간은 한 시간이, 한 시간은 몇십 분이, 몇십 분은 몇 분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의 방을 보는 시간도 그렇게 줄었다.

다만 자신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울 때, 바로 옆방을 향해 귀 기울이는 버릇은 줄지 않아서, 발터는 끝내 지쳐 잠들 때까지 들리지 않은 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모틸라 님의 눈물이 제 손목에 떨어졌던 그날만큼은.

아직도 아버지가 허공에 매달려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창문을 보고 매달려 있었으므로, 처음 발견하였을 때 보았던 축 처진 등을 떠올리지 않았다.

발터는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허공에 매달린 아버지가 아니라 어린 시절 저택에서 영지를 바라보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저택은 아니었다. 망하기 전에 살던, 더 깨끗하고 넓고, 웅장하며 아름다웠던 곳.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조금도 정이 들지 않았던 곳.

아버지는 자신의 영지를 사랑하셨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으면서 돌아가시고 자신이 유모의 손에 자랄 동안, 아버지는 영지를 사랑하셨다.

검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어 열 살도 채 안 되어 기사 학원에 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영지를 사랑하셨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편지했을 때, 돌아오는 편지에서는- 아버지는, 아버지는 영지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그것을 알려 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영지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제게 이곳을 물려주셨다고 해도, 저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사랑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당신이 편지에서 그러셨죠. 네가 후에 다스릴 곳이라고, 의무를 다하라고, 의무를 다해 사랑하라고.

아버지.

당신은 저에게 조금도 사랑이란 것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그것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당신이 영지를 내려다보는 그 뒷모습, 그것뿐인데.

“잃어버릴 것들은 잊어버리는 게 낫다.”

발터는 낮은 목소리로 허공에 중얼거렸다.

“잃어버릴 것들조차 없으면 어떡합니까?”

그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묻는지, 모틸라 님에게 묻는지, 자신에게 묻는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제 팔로 눈을 가려 버린 채, 새까매진 시야에서 조용히 생각했다.

기사 학원에 다닐 적 친구가 자신을 보며 그랬더란다.

너는 천생 기사라고. 누군가를 쫓으며 살 성격이라고.

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평생 아버지의 뒷모습을 좇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새까매진 눈꺼풀 뒤에서 생각나는 것은 눈물이 매달려 있던 선홍색 눈동자였으므로.

모닥불에 비쳐 반짝이던 눈물이었음에도, 그렇게 낮게 가라앉았던 색이었으므로.

언제나 멀어 보이기만 하던 등이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와닿던 사랑이었으므로.

발터는 그게 가지고 싶었다.

눈물이 반짝이던 눈, 자신을 보며 비웃는 눈, 한심하다거나 어이없어하는 눈,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

흐릿하게 눈을 휘고, 아스라이 올라가는 입꼬리,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것 같은 웃음.

자신만만하게 콧대를 세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처럼 웃는 얼굴.

웃겨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온 얼굴을 환하게 벌리고 소리 높여 웃는 얼굴.

발터는 새삼 모틸라 님이 아주 많은 웃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그 웃음들을 매우 유심히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동시에 자신의 마음에 숨죽이고 있던, 발견하는 즉시 크게 부풀려 다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발터는 그 감정이 튀어나올까 봐, 몸을 옆으로 웅크리고 눈을 가리던 팔을 내려 자신의 입을 막았다.

발터의 커다란 손에서 그의 코와 입술, 턱이 엉망진창으로 뭉개지도록.

욕심이 났다. 욕심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어떻게 이런 커다란 게 숨겨져 있었는지 그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입을 막고, 눈까지 거세게 감은 채로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걸 어떻게 숨겨야 하면 좋을지, 어떻게 없애야 하면 좋을지.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감정을 숨기거나, 모른 척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없애 버리는 것에도 재능이 없었다.

게다가 친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너는 천생 기사라고. 누군가를 쫓으며 살 성격이라고.

이제 평생 모틸라 님을 좇으며 살 것 같았으니, 그렇게 오랫동안 이걸 숨길 수 있을 만큼 요령 있지 않으니.

그냥 보여 줘 버리자고, 어차피 전부 들통날 거, 숨기지 말자고.

발터는 제 감정과 오랫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몸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부터 쉬지 못했던 머리를 가지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

이게 잘한 결정인지, 아니면 지쳐서 포기해 버린 건지 구별할 수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숨기거나 요령을 피우는 데에는 전혀 재능이 없었지만, 결정한 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데에는- 그래, 친구가 말하기를, 그리고 자신도 인정하기를.

자신은 천생 기사가 체질이었다.

* * *

모틸라는 두 눈을 깜박이며 당황했다.

자신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다는 사람이 어디 갔단 말인가.

이건 어느 쪽으로 보나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새인데? 그것도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데?

처음에는 눈치챌 정도의 행동은 아니었다.

딱히 말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다가와서 막 눈웃음치면서 유혹하는 것도 아니고, 살랑거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바로 눈치챈단 말인가.

행동만 묘하게 바뀌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참이었단 말이다.

마을에서 죽어 가는 가축을 잡았다고 보내 준 고기를 자신의 접시에 올려 주는 것으로 모틸라는 발터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겨우 눈치챘다.

평소라면 모틸라가 고개를 저으며 넘겨주면서 아사 어쩌고라고 빈정거리면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 먹었을 텐데, 자신이 꺾지 못할 정도의 고집으로 고기를 건네주는 게 시작이었다.

뻔히 잘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면서도 발 디딜 곳이 분명하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다가 잡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얼굴로 자신을 도와주었지만, 귀만은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시늉도 안 했던 요리를 영지민에게 배워 오려 노력했다.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가끔 계란 요리에서 껍질이 씹혔다.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꼬박꼬박 지킨다든가, 자신에게 눈을 떼지 않고 하나하나 관찰하고, 시선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언제나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해서 남색 머리카락의 가마를 여러 번 구경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모틸라는 ‘이게 바로 발터식 호감 표현인가?’라고 고민하면서도, 그녀는 빠르고 편하게 결론을 내렸다.

“뭐, 내가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매력적이긴 하지!”

모틸라는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턱 끝을 높이며 자화자찬했다.

역시 난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성격도 고와! 지금까지 만난 사람 모두! ……거의 모두가 날 좋아했다고!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스스로를 칭찬하며 흥흥거리다가 그만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터가 자신의 어떤 모습에 호감을 느낀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예전부터 그랬다든가, 천천히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거나 하면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변한 시점이 너무나도 확실했다.

자신이 왜 이 마을에 도움을 주는지 말했던 모닥불을 피웠던 그날 밤.

나의 후회이자 슬픔을 이야기했던 날, 울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또 울어 버린 날.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 것들을 보여 줘 버린 날.

“그래도 이번엔 눈물 딱 한 방울이었다고.”

모틸라는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혹시 그건가? 여인의 약해 보이는 모습에 심장이 뛰는 부류? 눈물에 약한 타입?”

전혀 그래 보이지 않던데……. 하긴 그놈도 기사 어쩌구니까 그럴 수도 있지.

모틸라는 가볍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말로 봄이 되면 떠나야겠다고, 마을이 살아나는 것만 딱 보고 떠나자고 생각했다.

“이제 감정놀음은 질색이야.”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인제 와서 무슨 연애고 사랑이야.

내가 원하는 건 그냥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곳의 푹신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평화롭게 있는 거라고.

“열심히 모른 척해야지.”

그럼 알아서 떨어져 나가거나, 아니면 내가 봄이 돼서 가 버리면 되지.

떠난 후엔 발터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지 알 바 아니고.

그녀는 부러 가볍게 생각하며 발터가 덜어 준 고기나 냠냠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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